Hansun issue & focus 11월호
최근 교사의 지위나 권한 문제를 둘러싸고 교권 추락에 대해 우려가 상당하고, 또한 일부 교사들의 불행한 자진(自盡)이 줄을 이었다. 이런 불행을 끊기 위한 노력은 다방면으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교원의 권위와 권리의 현황과 문제점, 그 개선 방향과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해보기로 한다.
- 학생인권조례의 비뚤어진 자화상
일부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이후 학생들은 교실에서 교사의 말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굴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전교조가 체벌을 없앤 이후, 1990년대 중반 서태지가 ‘그만 됐어!’를 외치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인류문명을 2-3년 전으로 후퇴시켰다는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2-3년간의 교육공백은 이런 비교육적?반교육적 상황을 더욱 심화시켰다.
학생들은 제때 등교하지 않고, 몇 교시 후에 오기도 하고, 수업 중에는 배 아프다고 하면서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수업 중에 떠들거나 돌아다니거나, 수업을 방해했고, 엎드려 자거나 교사의 수업에 참여?집중하지 않았다. 조퇴도 제멋대로 하고, 하교도 제멋대로 한다. 이때 교사들은 학부모에게 동의를 구할 뿐이다. 그런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부모의 권위 역시 온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부모의 권위가 무너졌으니, 가정교육을 통해 바로잡기도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학교라는 사회공동체에서는 하고 싶은 활동도 참아야 하고, 하기 싫은 공부도 해야 할 때가 있다. 교사는 이런 상황을 유도하고 설득하거나 강제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최근 금쪽같은 외동아가 늘었고, 결손가정으로 교실은 그야말로 동화처럼 ‘왕자와 공주, 고아와 거지’가 뒤섞여 있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한 학급이 온전히 모여서 수업하는 곳이 얼마나 될까? 급식실에서도 식판을 엎거나 식탁 위로 올라가 화풀이로 발을 쿵쾅 구르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감정노동자’로 전락하고 있으며, 그 언행에 자기검열이 심하여 전문가로서 자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학교에서 질서, 시간 엄수, 단정, 정숙, 성실, 조심 등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학교가 더 이상 지탱되고 있다고, 인재가 길러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학교는 사회화라는 기본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 그렇게 길러진 학생들은 청년이 되어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입사와 퇴사를 밥 먹듯 한다.
- 교육 이외 업무에 내몰린 교사
교사들도 참 어려운 처지이다. ‘교육복지 조사 실시 업무’, ‘학습 준비물 구입 대금 지급 품의서 작성’, ‘방역 인력 인건비 지급 및 수질검사’, ‘교육활동 중 다친 학생에 대한 학교안전공제회 보험금 청구 업무’ 등 떠맡겨진 행정실 잡무 처리, 교외 활동을 준비하는 서류 뭉치 작성, 학교 주변 시설 관리 업무, 교육청 공모 사업에 반강제 배정, 학부모회 뒤치다꺼리 등으로 교사들은 교사답지 못한 일에 시달린다. 이 밖에도 교육청, 교육지원청의 공문, 학교관리자들의 교사에게 업무 떠넘기기, 공무직 등으로부터 하다만 일 종결하기 등, 이런 일을 하느라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치고 키우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호소이다.
진상 학부모가 적지 않다. 걸핏하면 교사에게 직접 전화해서 막무가내에 가까운 민원을 제기한다. 자기 아이만 봐달라는 부모도 늘었다. ‘교사의 인격을 무시하며 면박을 주고 희롱하기’, ‘교사의 복장 말투 자세가 그래서야 되겠냐며 훈계하기’, ‘아이 약 시간 맞추어 먹여 달라는 부탁하기’, ‘우리 아이는 따뜻한 물을 먹이라는 당부하기’, ‘급식 메뉴로 항의하기’, ‘맘 카페에서 특정교사를 좌표 찍고 ‘씹어대기’’, ‘우리 아이가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생떼 쓰기’, ‘아이들 사이 작은 다툼을 변호사 끼고 어른 싸움으로 크게 만들기’ 등 그 양상도 각양 각색이다. 자율성-전문성-책무성은 확대 선순환해야 하는데 그 순환구조가 깨진 교사들이 적지 않다. 오늘날 교사들은 민원해결사이자 감정노동자로서 일하고 있다.
- 교사 권위를 찾기 위한 9대 제언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교사가 제 자리에서, 자율적 전문가로서 한 손으로 교과수업지도를, 다른 한 손으로는 학생생활진로지도를 하는, 그 본업을 다하여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존경받도록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유엔아동인권선언에서 천명했듯이 자녀교육은 학부모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했을 때, 교사는 학부모를 대신하는 교육전문가이다. 부모는 자녀에 대해 주관적 편애에 빠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교사는 객관적?과학적?중립적?사회적으로 학생을 대할 필요가 있다. 교사가 부모 대신이라는 인식을 회복해야 교사의 권위는 선다. 또한 학부모는 고유권한인 자녀교육을 교사에게 전권 위임했다는 생각으로 교사를 신뢰해야 한다.
둘째, 미성년자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성인에게 허락된 많은 권리를 유예(moratorium)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는 폐지되어야 하고, 아동?청소년만의 권리를 특권적으로 보장하는 각종 법률은 개정?폐지해야 한다. 교육법상 학교의 생활 규범이나 학칙은 학교 자체가 수립하고 집행할 일이지 외부의 시도의회나 교육청이 만들어 강요할 일이 아니다. 학생들은 경험이 일천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단기 조망적이어서 사회적 매너나 교양이 덜 갖추어져 있으며, 사건과 사태를 종합적으로 조망하지 못하기 일쑤다. 대다수 학생은 미성숙함을 인정하고 그 성장, 발달, 성숙을 위해 학교 교사, 가정 부모, 마을 시민은 협력해야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성인처럼 자신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자유와 책임을 조율하며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기에는 아직 미흡하고 성장 중에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명심해야 한다.
셋째, 학교는 사회적 공간으로서 그 생활 규범을 분명히 수립하고 집행해야 한다. 학생들이 제멋대로 굴면 학교는 수 차례 타이르고 경고한 후에, 그럼에도 끝까지 말을 듣지 않으면 퇴학, 정학 등의 처리를 제때 할 수 있어야 한다. 평생학습사회이고, 대안학교 등 교육기관이 워낙 많기에 퇴학은 학생들을 ‘교육’의 길에서 완전하게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의무교육 기간에도 퇴학을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해야 한다. 학생도 학교를 선택하고 학교도 학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뭔가를 무서워하고 조심할 때 학생들의 행동거지는 바르게 교정된다.
넷째, 학교는 학생을, 학생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교육비에서 학생당 경비를 우선적으로 바우처(학비지불보증수표)로 전환해 학교와 교사들이 남다른 교육 프로그램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유인하는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거기서 교사는 전문가가 되어갈 것이다. 선택할 학교는 ‘Summerhil’처럼 무한 자유가 보장된 대안학교에서 경찰?군대?교도소를 닮은 학교까지 다양해야 한다. 얼마 전 미국에서 지난 40년 이상 시행해 온 ‘마그넷 스쿨’과 ‘챠터 스쿨’에 대한 종합평가가 있었는데, 비용은 공립보다 덜 들고 교육효과는 높았다는 결론이었다. 일반인은 국공립은 공짜고 사립은 돈이 든다고 한다. 그 생각은 틀렸다. 국공립이 사립보다 국민세금, 돈을 더 많이 쓴다. 결국 교사들이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할 때 그 전문적 권위를 인정받는다. 우리나라에도 일부 자사고, 사립학교 등이 호평을 받으며 일반 학교에 비해 높은 권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섯째, 교사의 수업은 보호되어야 한다. 코로나 초기 온라인 수업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채 학부모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교사들의 대다수 수업은 그야말로 ‘엉망’이어서 학부모들이 깔보게 되었다. 특히 초등의 수업수준은 누구나 준비 없이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비춰졌다. ‘초등지식’을 다루는 초등교사들이 학부모들로부터 더 많이 무시당하고 있는 이유이다. 현재 교사에 대한 평가를 수업 참관도 안 해 본 학부모들이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수업 참관을 해 본 이들이 교사평가에도 참여해야 한다.
여섯째, 교사는 학생평가를 엄정히 시행해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학생의 행복을 빌미로 평가를 하지 않으니 학부모들은 자녀의 실력을 학원에서 확인한다. 학교에서는 놀거나 엎드려 자고, 학원에서는 공부하는 이유를 교육부와 교육청이 만들어 준 것이다. 평가권을 내려놓은 교사는 학생들로부터 전문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전교조나 교사노조 연맹 등에서는 가르친 대로 평가하겠다는 것을 절대평가라고 우기면서 그렇게 하자고 종용한다. IB DP 등에서는 교사가 세계 공통의 기준에 따라 출제하고 채점하는 것을 절대평가라고 하여 시험지와 답지를 공개하고 평가받는다. 너무 쉽게 출제하거나 후하게 채점하면 일률적으로 그 학생들의 점수가 깎이고, 너무 어렵게 출제하고 까다롭게 채점하면 그 학생들은 모두 손해를 본다. IB는 교사들이 절대평가 능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초기 3-4년 간 집중 연수?훈련시킨다. IB방식이 어렵다면, 교육부도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사회에 대해서는 매년 학생성장을 확인하는 절대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서?논술형 문항을 늘려가야 한다. 공교육의 대국민적 책무성이기에 시행을 미루거나 평가 참여를 학교 자율에 맡기지 말아야 한다.
일곱째, 학교와 교사, 가정과 학부모는 협력하여 디지털 시대의 부작용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출생아 수는 급격하게 줄고 있지만 특수아 수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A. N. Whitehead나 J. Piaget가 말하듯 사람은 3단계를 거치면서 발달?성장?성숙한다. 초등 저학년까지는 동화와 낭만(romance)의 시기다. 이때 쏟아지는 디지털 뷰어 정보를 아동들은 처리하지 못한다. ADHD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가상현실과 디지털을 통한 간접경험을 대폭 줄이고, 다시 숲으로 자연으로 가서, 직접경험을 통해 아날로그 정보를 축적하도록 아이들을 노출시켜야 한다. 다음으로 초등 고학년부터 중등학교에서는 객관적이고 정확하며 정직한 정답(precision)에 더 많이 노출시켜야 한다.
현재 문과수업시간 비중은 50%, 이과는 30%밖에 안 된다. 초등교사 90% 이상이 고교부터 이과공부를 멀리한 문과출신들이다. 중등학교 여학생들은 문과와 예술계열에 치우쳐 있다. 정치인들도 문과출신이 절대다수로, 국회의원 300명 중 기술을 아는 이는 4명뿐이라고 한다. 이과는 공부하기 어렵고, 실기 실험 실습으로 공부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사회적 수요는 매우 높다. 청년실업을 줄이기 위해서도 정확성을 익히는 공부시간과 기간을 더 늘려야 한다. 대학 이상은 상징적인 일반화(generalization)단계인데, 이는 문?이과와 예체능 지식 정보를 모두 종합?절충하여 정답을 넘어 최선의 답과 여러 개의 해답을 내는 문명창달의 시기이다. 서로 충돌하는 쟁점과 논란을 종합하고 절충하는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학교가 도입하여 지킬 때 가능해진다.
여덟째, 교육의 무게중심을 학교 밖에 있는 교육행정기관이 아니라 학교 안으로 옮겨와야 한다. 독일의 학교나 우리나라의 대학과 같이, ‘공문으로 교육’한다는 교외의 인사들은 모두 교내로 들어와 교사의 수업과 학생생활지도를 도와야 한다. 교육부, 국교위, 17개 광역시도교육청, 176개 교육지원청, 367개 직속기관이 학교 밖에서 우월적 지위로 공문을 통해 학교와 교사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 공문이 교사를 수업을 방해할 정도라면 공문 생산하는 자리를 없애는 것이 상책이다. 독일처럼 교육행정을 일반행정과 통합하고 학교는 전문가인 교사들이 수업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해야, 교육의 무게중심이 학교에 있게 되고 교사의 권위가 선다.
아홉째, 교사들이 학생, 수업, 교실, 학교를 떠나 교외에서 ‘출세’하기보다 ‘교내’에서 승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교사들은 15년차에 교감, 교장이 되기 위한 한 가지 방편으로 전문직이 되어 학생, 수업, 교실, 학교를 떠난다. 남은 교사들은 다음 그림의 모습 중 하나로, 진하게 칠한 만큼 학교교육은 손해를 보고 있다.
교사들은 교실에서 아이들을 곁에 있는 선택을 한다면, 초임부터 정년까지 7급 공무원 대우를 받는다. 교단 위의 교사는 본업에 종사하지만 2급 정교사에서 1급 정교사로 평생 딱 한 번 승급할 뿐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예컨대 7급 주무관에서 6급 주사로 승급하는 것과 같은 공무원으로서의 승급이 아니다. 교사들의 성장욕구는 억압되었고 그들은 하향평준화에 길들여져 있다. 15년 차 즈음에 장학사나 연구사가 되면서, 비로소 6급 이상으로 승진할 수 있다. 학교행정실 직원은 5-6급이다. 그러니 교사들은 행정실에서 떠넘긴 업무를 울며겨자 먹기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교사들의 생애발달 단계를 재구조화해야 한다. 전반부에는 경력에 따라, 후반부에는 능력에 따라 승진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교사의 발달 성장을 추동하는 힘은 ‘승진’ 체제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에 달려 있다. 수습-희망-보람-긍지-우수-수석 등 그 명칭을 무엇으로 붙이든, 몇 칸의 승진 사다리를 만들어 교원은 교내에서 승진하게 해야 하고, 교육의 무게중심은 학교 안에 있어야 한다. 교사의 직급에 따라 그 맡을 역할도 보수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교사의 전문적 권위와 권한을 보장하는 길은 여럿일 것이다. 공식적 교육제도와 비공식적 교육 문화 속에서, 교사와 학생이 만나서 교육목표 달성을 위해 주고받는 교육과정, 수업, 교육평가가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중핵이다. 더 줄여서 ‘교사-교육과정-학생’이 교육의 중핵이다. 가정과 학부모, 교육행정기관 등은 모두 이 일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는데 지원과 협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모두 학생의 성장?발달?성숙을 위해 협력해야 하고 그 중심인 교사들이 자율적 전문가로서 교육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존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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