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un issue & focus 6월호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서 우리는 정상적인 사회로 돌아왔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이미 패러다임이 바뀐 사회에 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생활 습관을 바꿨다면 과학기술 발전은 세상을 바꿔놓았다.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하면 일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메타버스,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는 로봇과 AI 등으로 인해 삶의 행태는 물론 가족관, 결혼관 등 의식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변화를 겪고 있다.
- 전환기 사회현상
우리는 지금 기존의 사회질서에서 새로운 질서로 바뀌는 전환기 사회에 살고 있다. 효와 예의 등 전통적 윤리관이 흔들리고 있지만 아직 시대변화에 부응한 가치관이 정립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혼란스러운 현상을 빚고 있다. 가정과 직장에서는 위계질서와 직급파괴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서는 선배로부터 배우기보다 후배에게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와 정신의 결정체인 언어와 문자의 사용 방법까지 변하면서 소통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단어와 문장보다 줄임말을 쓰기 때문에 기성세대는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능동과 피동 구분은 물론 사람과 사물까지 구분하지 않고 쓰기도 한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사물에 대해서도 존댓말을 쓴다. 고객에 대한 예의를 표시한다는 것이 자기도 모르게 ‘커피가 나오시고’라고 말하는 것이 그 사례이다. 언어에 의한 소통 장애는 사실을 왜곡시키기도 하고 무엇이 진실이고 사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게 하기도 한다. 때로는 탈진실(post truth) 같은 용어로 언어의 유희를 부리기도 한다. 여기에 정치인까지 끼어들면서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을 흐릿하게 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면 누구든지 판단할 수 있는 내용도 정치편향에 따라서 확증편향을 갖고 옳고 그름을 결정하려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건강사회의 기반이 되는 정직과 신뢰가 축적될 수 없다. 대신 거짓과 허위와 권모술수가 횡행한다. 건강한 사회는 사회적 자본이 충만한 사회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사회적 자본은 줄어들고 그 반대되는 사회적 부채는 늘어나고 있다. 위선과 거짓은 사회적 신뢰를 낮추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어렵게 한다. 이런 사회는 포용과 배려의 마음이 낮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위법은 물론 사회규범조차 지키지 않는다. 또한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과잉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실제 일부 사회지도층은 거짓과 위선으로 진실을 호도하기도 한다. 노조나 각종 이익집단의 데모 역시 자기 이익을 위해서 거리를 막고 교통 혼잡을 일으키고 소음을 내면서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자기 피해만 크게 생각하고 타인에 대한 피해나 공익에 대한 배려는 소홀하다. 이들은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사회적 책임에는 예외가 없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책임 의식을 갖고 행동해야 하지만 이런 의식이 박약하다. 오히려 과잉 이기주의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이런 행태는 공동체에 해를 끼친다. 자기 이익과 편리성만 강조하다 보면 타인에게 불편을 주게 된다. 사소한 것이라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자기의 사소한 일상이 타인에게 부담이 된다면 이는 자제해야 한다. 특히 위험을 유발하는 행위라면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회적 부채
사회적 부채는 사회적 자본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회적 규범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은 사회이다. 이런 사회일수록 믿음보다 의심을 많이 한다. 거래관계에서는 사람에 대한 신용을 알아보느라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의심이 많을수록 믿음이 낮을수록 협력보다는 갈등과 대립이 많아지고 위험사회가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목적보다 수단을 중요시하는 목적과 수단의 대치 현상을 빚기도 하고 부패를 유발하기도 한다.
사회적 부채사회에서 사회적 자본사회로 이동하려면 신뢰가 쌓여야 한다. 신뢰와 배려는 서로가 주고받는 것으로 사회발전을 이끄는 핵심축이다. 신뢰와 배려가 부족한 사회일수록 거짓과 위선이 넘친다. 거짓과 위선은 법의 문제이기에 앞서 양심과 도덕의 문제로 불법보다 더 나쁘다. 따라서 바람직한 건강사회가 되려면 시민 개개인이 도덕성과 정직성 등 공공선에 대한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건강한 사회라면 사회지도층은 물론 시민까지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데 소홀해서는 안 된다. 시민의 1차적 사회적 책임은 사회규범 준수이고 이것은 사회적 자본의 토양이다. 사회적 자본이 높은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시민이 깨어있어야 하며 정직하고 도리와 염치를 지키는 지도자가 나서야 한다. 위선적인 사람도 지나치게 이기주의적인 사람도 사회적 공공선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양심까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시민들의 마음속에 있는 덕성을 발현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덕성 즉 공공선을 살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수록 사회적 부채는 줄어들고 사회적 신뢰는 높아진다.
신뢰 사회로 나가는 데에는 정치인의 역할이 크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와 행실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제1덕목은 청렴의무 즉 정직성이다(헌법 제46조). 그러나 현실은 헌법 규정과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정치인들의 연이은 위법, 탈법 의혹만 봐도 그렇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에 불거진 각종 의혹, 송영길 전 대표의 전당대회 ‘돈 봉투’. 김남국 의원의 코인거래 의혹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의원은 당윤리위 검사과정에서 탈당하여 당의 조사는 모면했다. 탈당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행태는 이번만이 아니다. 2021년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탈당 권유를 받은 국회의원들 중 비례대표 국회의원에게는 의원직을 유지해주려고 ‘강제 출당’이란 꼼수를 쓰기도 했다. 민형배 의원은 검수완박법안 개정을 위해 탈당했다가 1년만에 복당했다. 이 행위로 “민 의원 탈당은 개인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자율적 결정으로 위장이 아니어서 법안은 유효하다”고 판결한 헌법재판소의 논리가 무너졌다. 현재도 송영길 전 대표의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두 의원이 탈당했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에 있으면 건강한 사회발전이 어렵다. 왜 그럴까?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윗물이 맑아야 아래 물이 맑다”는 우리 속담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 시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회적 등불이 되어야 할 정치인, 노조지도자,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의외로 공공선에 대한 의식이 박약하다. 자기는 예외라는 인식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 축적과제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극심한 갈등은 취약한 사회적 자본의 수준을 반영한다. 사회적 자본 축적 없이 건강한 사회발전은 이루어질 수 없다. 바람직한 것은 지성인과 깨어있는 시민이 앞장서는 밑으로부터의 변화이다. 신뢰와 배려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자본 형성에 국민적 합의와 대중의 자발성을 이끌어 내는 사회적 기풍을 진작시켜야 한다.
갈등이 끊이지 않는 사회에서는 신뢰와 배려가 솟아날 수 없다. 서로 역지사지 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 갈등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조직인 정당과 노조가 먼저 의식과 행태를 바꿔야 한다. 양자 중에서도 정치인이 먼저 선공후사의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정치에서부터 위선과 거짓이 없어져야 사회 전반에 맑은 기운이 솟아날 수 있다. 그러려면 명분과 실제가 일치되는 언행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포용과 배려의 건강한 사회가 되고 사회적 자본도 높아지게 된다.
그래도 사회문제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구조화된 문제일수록 그렇다. 구조적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하기보다 중장기적 시각에서 지속적으로 설득하면서 풀어나가야 한다. 문제해결 과정에서 가장 바람직한 접근 방법은 이해당사자 설득이다. 사회적 문제는 개별적으로 처리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도자와 시민이 함께하는 공동의 노력을 펼쳐야 한다. 구조적 문제일수록 속도보다는 방향성을, 피상적인 현상 해결보다는 근본 원인을, 부분보다는 전체를 고려해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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