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맹이 없는 양회
지난 1일 중국에서는 전국정치협상회의가, 5일에는 전국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가 개최되었다. 이른바 ‘양회(兩會)’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예년에 비교하면 이번 회의 같이 내용이 없고 주목할 만한 이야기가 없는 적이 없었다. 전인대에서는 통상적으로 1년 동안 중국 정부의 실적과 성과를 발표, 올 한 해 동안 정부 사업 방향 및 개요를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정부 업무보고’의 시간을 갖는 자리다. 이 보고에서 세계가 전통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단연코 경제정책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업무 보고에는 가히 주목할 만한 새로운 정책이 소개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총리의 기자회견도 올해부터 취소되었다. 총리의 기자회견은 중국의 경제정책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자리였다. 장쩌민 집정시기부터 명맥을 이어온 회견이 이번 전인대에서 사라졌다. 이는 총리의 역할과 기능을 축소한 ‘국가조직법’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총리에게 부여한 중국 경제 발전 정책과 전략 관장의 권한과 책임이 이제는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모두 이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조짐은 시진핑이 경제, 금융 등 경제 전반에 관련된 중국공산당 내의 핵심 의사결정 조직인 ‘영도소조(領導小組)’의 위원장직을 집정 2기(2017-22) 때 모두 맡기 시작하면서 엿보였다.
이번 ‘양회’에서 그래도 흥미가 유지되었던 것은 중국 외교부장의 기자회견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지난 7일 양회의 정례 기자 회견 자리를 가졌다. 이 회견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중국 외교에서 우리나라가 핵심적인 위치를 점한 데 있다. 지난 1년의 외교적 성과를 자화자찬하고 앞으로 1년의 외교 행보에 대한 포부를 밝히는 자리에서 왕이 부장은 중국 외교의 성공적인 결실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우려 사항도 밝혔다. 그 우려 사항의 중심에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2. 3가지 중국의 우려 사항
중국의 우려 사항은 세 가지였다. 미중관계, 한반도 문제와 대만 문제다.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한 중국의 우려는 날 선 경고로 이어졌다. 중국과 협력하지 않을 경우 ‘후과(後果)’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것이 핵심 메시지였다. 다시 말해, 중국의 입장과 원칙을 존중하지 않으면 대가를 치룰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 중국의 경고성 메시지의 핵심 내용이다.
왕이 부장은 미중관계가 지난 11월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 기간 동안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으로 개선의 진전을 보였다고 자평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미정책의 3개 원칙, 즉 상호존중, 평화공존, 협력과 ‘윈-윈’을 재강조한 점을 부각하고 이를 미국 측이 수용한 점을 호평했다. 그러면서 향후 미중관계에서 견지될 기본 노선임을 또한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대미정책의 3개 원칙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상호존중은 미중 양국 관계의 발전 전제조건을 의미한다. 평화공존은 양국이 지켜야 할 마지노선(red line)이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준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양국의 충돌 대가는 가히 상상을 넘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협력과 ‘윈-윈’은 양국이 관계 개선을 해야 하는 목표이자 동력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미중 전략경쟁의 모든 원인의 책임을 미국에게 전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국이 당면한 도전 과제는 자신에게 있다면서 중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는 중국이 미중 전략경쟁이 시작되면서부터 일관되게 견지해 온 입장과 견해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만약 혼신을 다해 중국을 압박하면 그 손해가 미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미국은 따라서 역사적, 세계적 추세를 간과하지 말고 중국의 발전 필연성을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직시할 것을 주문했다. 이를 인정하고 중국과의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를 위해 왕이 부장은 미국에게 ‘언행일치’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3. 쌍궤병행을 강조한 왕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문제의 근원이 명백한 점을 강조했다. 이는 한반도의 안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데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즉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의 조성 원인에 세계가 주목할 것으로 주문한 것이다. 왕이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 ‘쌍궤병행’을 견지하는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는 곧 ‘단계별로 병행’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를 쌍궤병행의 진척이 없는, 즉 평화체제를 구축하지 못하는 이유로 그는 설명했다. 주지하듯 중국이 2017년부터 주장하는 쌍궤병행은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동시 구축’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그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헤치는 이들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는 점도 잊지 않고 경고했다. 세계가 이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더 이상의 혼란을 묵과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였다. 그는 한반도의 문제가 또 다시 냉전 구도가 재현된 데에 불만을 표했다. 그리고 이런 구도로 몰아가는 이들이 역사적 책임을 지는 입장도 표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대가를 치룰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대만 문제에서도 대만의 독립을 부추기는 이들의 대가를 강조했다. 왕이 부장은 대만 독립을 조장하는 행위를 중국이 자국의 주권에 대한 도전 요소로 간주하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이러한 이들에 대해 ‘제 살을 깎아 먹는 대가’를 치룰 것으로 엄중 경고했다.
4. 정교한 외교적 원칙과 전략 대응이 요구
이 세 가지 이슈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우리의 입장에서는 더 정교한 외교적 대응(우리의 원칙과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미중관계에서 한미동맹의 요소로 간접적으로 중국에 ‘눈엣 가시’같은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미중관계의 악화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는 소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을 중국도 간과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에 대한 우리만의 대비책은 중국에게 엄중 경고하는 것 외엔 아직 없다. 미중 전략경쟁을 빌미로 우리의 바다와 하늘을 무분별하게, 무차별하게 침범하는 행위를 중단하는 입장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의 군사력과 국력 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인 우리를 미국과 결탁하는 결과로 몰아넣는 장본인이 중국이라는 점을 피력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문제는 당사국의 동맹관계 현실 때문에 주변 동맹국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된다. 여기에 중국도 예외일 순 없다는 사실과 현실을 중국 측에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 한반도 안보 문제 책임론에서 중국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도 중국의 더 적극적인 참여와 역할을 주문하는 의미를 다시 전해야 한다. 북한의 ‘합당한 안보 우려’는 한국과 미국, 한미동맹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국이 우리의 바다와 하늘을 무력화하고 한반도를 자국 방어 영역에 귀속하려는 저의 때문에 한반도 안보 문제에서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사실을 중국에게 우리는 알고 있다는 점을 전해야 한다.
대만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대만의 방공식별구역과 중간선을 무시한 채 군사적 도발을 일삼고 있다. 이러한 행태를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나름 두 가지 이유에서 자신의 군사적 행위를 정당화, 합리화하려는 의도다. 방공식별구역과 중간선이 국제법이 아닌 국제규범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로서 중국의 관할 대상 지역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중국이 국제규범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방공식별구역과 중간선을 무시한다. 그러면서 대만에 행하는 행위를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주권 국가임을 무시한 것이다. 우리가 주권 국가이기 때문에 국제규범은 지켜져야 하는 사실을 인지시켜야 한다. 우리는 대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를 준수하지 못하겠다면 중국에게 하루 빨리 해상 경계선을 획정하는 것을 촉구해야 하겠다.
※ 본고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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