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un Brief 통권317호
1. 기술적 우위가 낳은 낭보
2.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인식 전환
3. 원전 신르네상스 시대의 대비책
1. 기술적 우위가 낳은 낭보
15년 만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2009년 12월 27일 아랍에미리트(UAE)의 바라카 원전 4기의 건설을 한전 중심의 팀코리아가 수주했다. 2024년 7월 17일 한수원 중심의 팀코리아가 체코의 듀코바니 원전 2기 건설을 수주했다.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으로 인해 체고에 향후 테믈린 부지에 추가로 건설될 2기의 원전 수주 경쟁에서도 우리가 일단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체코가 테믈린 2기에 대한 입찰에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택하기 위해서는 한국을 택하지 않은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그럴 이유가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번 입찰에 체코 측 206명의 평가자들이 20만 쪽에 이르는 입찰서를 평가했으며 2,700여 개의 질의를 했다고 한다. 체코 정부의 말을 빌리면 체코 현대사 최대 사업이라고 하니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치밀하게 입찰을 평가했는지 알 수 있다. 기술성, 사업 적격성, 공사비, 공사 계획 등에서 모두 한국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하니 다음 평가에서도 우위가 뒤집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평가다.
1988년과 1989년 프랑스가 우리나라 한울 1, 2호 기를 건설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프랑스 기술로 원전을 국내에 건설하는 나라였다. 35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체코 원전을 수주했다. 15년 전 UAE에서도 우리가 프랑스를 제치고 수주에 성공하였으니 이번 수주는 우리나라 기술력과 산업경쟁력이 프랑스를 능가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즉 중동뿐만 아니라 유럽 시장에서도 우리 원전 기술의 우수성을 재확인 시켜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체코 원전 수주는 어쩌다 한 번 있는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09년 우리가 UAE 원전을 수주한 직후인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한동안 신규 건설 프로젝트가 주춤했었다. 그래서 UAE 프로젝트 이후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주하기까지 1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2.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인식 전환
이제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전망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200개 넘는 국가들이 2050년 전후로 탄소중립을 선언하였고, 원자력을 이용하는 22개국 정상은 UAE 두바이에서 열린 기후변화 당사자국 총회에서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용량을 3배로 늘리겠다는 선언도 했다. 또한 인공지능 서비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최신 인공지능 서버 1대가 소비하는 전력량은 전기차 18대가 소비하는 전력량과 같으니, 앞으로 인공지능이 필요로 하는 전력을 24시간 내내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공급하기 위해서 원자력에너지가 필요하다. 인공지능 서비스는 24시간 실시간으로 제공된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 같은 간헐성 재생에너지는 24시간 지속 공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24시간 공급할 수 있는 원자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원자력 전력 공급자와 별도의 전력공급 계약을 했고, 아마존은 아예 원자력발전소 옆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전력을 공급받도록 하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는 원자력과 패키지로 같이 건설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원전 시장에 체코 진출은 유럽 원자력 시장도 우리에게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영국은 지속적으로 우리나라가 원전건설에 참여해 주길 요청하고 있고, 네덜란드는 2035년까지 2기, 스웨덴은 2045년까지 10기를 계획하고 있다. 물론 프랑스가 유럽 연합국가로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 체코 입찰에서도 프랑스가 같은 유럽 연합국가로서의 끈을 아주 중요하게 강조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모든 면에서 한국이 나았기 때문에 이번 수주에 성공한 것이다.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용량은 현재의 3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정확히 말하면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2050년까지 원자력을 현재의 3배로 늘려야 한다. 그렇다면 대형 원전 800기의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1980년대 최대 연간 30여 기의 대형원전 건설사업이 시장에 나오던 시기에 못지않은 ‘원전 신르네상스’가 시작되는 것이다.
3. 원전 신르네상스 시대의 대비책
이제 원자력발전 신규건설은 어쩌다 한 번 대형사업이 생기는 시기를 지나 대규모 신규 물량이 시장에 나오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신르네상스를 준비하고 이 기회를 꼭 잡아야 한다. 우선,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인 계획한 공사 기간과 예산 준수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핵심은 공급망이다. 우리는 거의 매년 1기의 원전을 지속적으로 건설해 오면서 튼튼한 공급망을 갖추었다. 수주로 기자재 공급 물량이 늘어나고, 원전수주로 인해 강화된 공급망이 또 다른 원전수주를 가능하게 하는 선순환이 이제 시작될 것이다. 이를 통해 ‘On Time Within Budget’이라는 우리의 최대 장점을 지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번 수주에서 입찰관련 서류의 제출기한 연기를 신청한 적이 없는 유일한 나라가 우리나라였다. 시작이 반인데 시작부터 서류제출을 연기하면서 공사는 제시간에 완료할 것이라 약속하면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 시장에 팔릴 물건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번 수주에 성공한 비결 중 하나가 2016년부터 체코와 같은 시장에 필요한 1,000MW의 원전을 준비한 것이다. 우리나라 원전은 1,000MW의 OPR1000 이후 1,400MW인 APR1400이 주종 노형이었다. 이에 우리는 시장이 필요로 하는 1000MW의 최신 원전을 준비했다. 중소국가나 내륙에 적합하도록 용량은 줄이고, 안전설비는 최신의 설계를 적용하여 APR1000 (사실상 APR+1000)을 개발한 것이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설계도 좋다. 하지만 검증된 것이 좋은 측면도 있으니 우리는 새로운 APR1000의 유럽인증을 추진해서 2023년 완료했다.
또한 국내에서는 별도로 표준설계 인가를 추진하고 있으니 수출하는 국가에서 새로운 설계에 대한 꼼꼼한 인증을 추진하고 있고, 유럽의 요건을 만족한다는 인증을 받은 우리나라 설계에 대해 신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APR1000을 이을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서 준비해야 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설계해서 적기에 납품하겠다고 약속하는 것보다는 이미 완성된 설계 중에 고르시면 적기에 납품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더 믿을만한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현재 개발 중인 혁신형 소형모듈원전의 개발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산학연관이 모두 협력해야 한다. 소형모듈원전은 아직까지 인허가를 해본 경험이 없는 새로운 물건이기에 더욱 세심하면서 강력한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블록화된 세계질서를 고려하여 원자력 연료 공급망을 강화해야 한다. 그동안 전세계 우라늄 농축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이제는 러시아의 우라늄 공급망을 서방의 국가들이 사용하는 것에 안보 차원의 문제가 생겼다. 이런 국제질서를 고려하여 우리나라 원자력 연료 공급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평화적 이용을 위한 우라늄 농축도 추진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나라와 같은 모범적인 원자력 평화적 이용 국가가 농축을 할 수 없다면 말이 안 될 것이다. 최소 60년, 100년까지도 운영될 원전의 연료 공급은 장기적이고 규모가 큰 사업이다.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원전연료가 우리가 수출하는 원자로에 장기간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하겠다.
넷째, 새롭게 열리는 원전시장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허가 체계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미국은 원자력 신르네상스에 대비하여 다용도, 선진 원자력 도입 가속화 법인 ‘원자력 발전 촉진법’(Accelerating Deployment of Versatile, Advanced Nuclear for Clean Energy Act, “ADVANCE 법”)을 제정했다. ADVANCE 법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원자력 리더십을 되찾고, 기존 원자력 발전을 지속 이용하면서 새로운 원자력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하기 위한 것이다. 핵심 중 하나가 새로운 원자력 도입을 지원하기 위한 규제 효율성을 향상이다.
ADVANCE 법에서는 원자력규제위원회(US Nuclear Regulatory Commission, US NRC)가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18개월을 포함하여 25개월 안에 새로운 원자로 승인 절차를 진행하고, 필요 인력을 충원하는 등의 활동에 있어서 자율적인 결정권을 가지도록 지원하고 있다. 즉, 인허가에 필요한 자원과 재원을 확보하고, 제도를 손보는 권한을 대폭 규제기관에 일임한 것이다. 우리도 새로운 원전 개발과 건설을 하는 데 있어서 불필요한 시간 지연이 없도록 규제기관이 효율적인 규제를 하도록 규제기관에 명시적인 책임을 부여하는 한편, 재원과 재량을 늘려줄 필요가 있겠다.
마지막으로 우수한 인력이 유입되도록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좋은 지원책은 물론 원전 건설과 수출이 활성화하는 것이다. 산업이 활기를 찾고, 보람과 대가가 있는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인력이 유입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이를 위해 대학과 대학원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필요하겠지만 현재 공기업 중심의 원자력 산업에 민간의 참여가 활성화되도록 할 필요가 있겠다.
원자력 분야를 지원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공기업 중심의 원자력은 안정 혹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분야라면, 민간 중심의 원자력은 보람뿐만 아니라 경제적 대가도 찾을 수 있는 분야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미국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면 지금과 같은 우수인력이 그 분야에 유입될 가능성은 없다. 이를 위해 현재 한수원, 한전기술, 한전원전연료와 같은 공기업의 인력채용 및 대우에 있어서 대폭 자율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으며 민간기업의 원자력발전사업 진출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겠다.
※ 본고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