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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미국 거주 탈북청년이 본 북한의 실상과 미래] 통권196호
 
2021-11-17 13:28:45
첨부 : 211117_brief.pdf  
<기획시리즈2 - 해외청년들을 만나다>
세계의 청년들을 만나 각국 청년들의 생각과 한국의 정책 이슈에 대해 논하는 대담 형식으로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Hansun Brief 통권196호 

옥승철 한선재단 청년정책연구회 정책위원
옥스퍼드 Blavatnik School of Government 공공정책 석사
파리정치대학 School of Public Affairs 행정학 석사
 

작년 우연히 미국에 거주하는 탈북 엘리트 청년인 이현승 씨를 소개받았다. 북한 노동당에 최연소로 입당한 엘리트이다. 그런 그가 가족과 함께 김정은 정권 통치시대에 탈북했다. 미국에서 그는 북한의 인권 운동, 미국 정부, 싱크탱크 자문역을 하면서 새로운 북한에 대한 모습을 그려가고 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 평소 통일과 북한의 개혁개방에 뜻이 있는 청년으로서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북한 엘리트 청년이었던 그가 가지고 있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 통일관, 북한의 인권 상황, 그리고 통일방안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현 승

북한 엘리트 출신버지(리정호), 외화 조달과 김 위원장 일가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곳인 노동당 39호실 출신

평양외국어학원중국 동북재정경제대학 국제무역경제학 전공

미국 정부싱크탱크, NGO 자문 역

현재 미국에서 북한의 인권문제김정은 정권 비판통일운동을 하고 있음.

 

 1.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북한 원산에서 1985년에 태어나 그곳에서 3년 살고, 아버지가 39호실로 옮기면서 평양으로 이사를 갔다. 평양에서 초등학교는 금성학원(리설주가 나온 곳으로 최고의 명문 학교로 통한다)에 다녔고, 평양 외국어학원에서 영어를 전공하였다. 외국어학원을 졸업하면 군대를 면제시켜줬는데, 군 면제 대신 자원입대하여 북한군 4군단과 총참모부 작전국에서 3년 3개월을 복무하고 북한 노동당에 입당하였다. 20살에 입당하였는데 북한에서는 이런 사례가 처음이다. 어린 사람을 입당시킨 전례가 없었다. 북한의 엘리트 지도층으로 가는 보장된 길이었다. 


북한 주민들은 40대 이후에도 노동당에 입당하기 힘들다. 입당 후 중국 동북 재경대학에서 국제무역과 경제학을 전공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국과 북한의 대외무역을 시작하였다. 중국 파트너들한테서 먼저 자본을 끌어다가 광산을 개발하고 이 광물로 중국 투자자들에게 갚는 형식으로 사업을 했다.


Q: 탈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중국에서 7년 정도 살다 보니, 북한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북한이 중국보다 못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중국에는 이동의 자유,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자유 등 다양한 자유들이 있었다. 그래서 중국 유학 중에 북한이 중국만큼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저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 유학 온 친구들은 다 같은 생각이었다. 

 

2013년 김정은은 고모부인 장성택과 그 측근들을 숙청하기 시작하였다. 노동부 행정부 부부장 리용하, 장수길 부부장이 처형되었는데, 장수길은 저의 아버지와도 잘 아는 사이였고, 저는 그의 사위와도 친했다. 그런데 갑자기 처형을 당하니까 나와 우리 가족은 신변에 큰 위협을 느꼈다. 일주일 후에 장수길 사위도 처형되었다. 그들이 처형을 당할 때 고사총으로 사격을 했는데 사람 형체가 없어졌다. 그걸 화염방사기로 불로 태우고 공화국의 신성한 땅에 더러운 것들이 뭍일 수 없다 하여 탱크로 남은 시체의 잔해를 밀어버렸다. 


얼마 후 중국에서 유학을 같이 한 친구의 가족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고, 장성택과 연관돼서 일했던 사람들이 매일 제거되었다. 어느 날은 평양시 평천구역의 중앙당 행정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사람 전체를 잡아갔다. 2014년 5월에는 장성택 부인인 김경희 밑에 있던 경공업부 산하 고위직 20명, 김경희 자금담당 등을 총살하였다. 처형당했던 사람의 손자가 나와 중국에서 대학을 같이 다닌 친구였는데 그 친구 또한 갑자기 행방불명되었다.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일 년 동안 피의 숙청을 지켜보며 그러한 무자비한 지도자를 우리가 믿고 충성을 할 수 있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의 성공보다는 밖으로 나가 북한이란 곳을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만들고 싶어 탈북을 감행했다.


Q: 사회 엘리트 지도층이 바라보는 북한은 어떤 모습인가?


A: 한번 해외를 경험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나오고 싶어 한다. 북한 안에서 아무리 직위가 높아도 안에서 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가지 자유를 제약받기 때문이고 경제적으로 중국에서 지내는 게 더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2014년 아버지가 북한 정권으로부터 북한 관광총국 총국장 자리를 제의받았는데 그 제안을 거부하고 중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경제 무역 관련 직책을 선택했다. 장관급 자리 제안을 거절하고 자유로운 삶을 택한 것이다.


Q: 북한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기업, 상점 등이 많이 생기고 있는지? 


A: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 고난의 행군 이후 전통적 배급 체계가 무너지면서 장마당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살기 위해 장에 모였는데 점점 사람들이 모이면서 국가에서 통제가 안 되자 장마당을 정식 허가제로 변경하고 통제하였다. 2003년 김정일 당시 국가를 운영할 자본이 부족하여 장마당을 승인하였다. 장마당은 초기 시장경제 형태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마당이 주민들의 생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곳이 되니 없애지는 못하고 통제했다. 장마당을 통제하기 위해 국가 보위부 요원들과 노동당 당일군들이 장마당 안에 배치되었다. 장마당에서 상인들이 무엇을 파는지, 그리고 사는 사람들은 무엇을 사는지 확인을 하며 일일 보고를 당에 하고 있다.


장마당이 이처럼 초기 시장경제의 시발점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대북 지원은 장마당 형성에 방해가 되기도 했다. 2000년 초 김정일이 장성택에게 통일거리장마당을 만들라고 지시하고 완성했는데 갑자기 김대중 정부에서 많은 돈과 식량 등 물자들이 들어오니까 김정일은 장마당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다. 장마당을 통해 돈을 벌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또 식량만 해결이 되면 배급체계를 통해 주민들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에 장마당이 500여 개가 넘는다. 북한의 거의 모든 주민들이 장마당을 통해서 살아가고 있지만 시장경제의 기초인 사유재산권은 법적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이것만 봐도 북한 정권이 얼마나 사람들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다. 


Q: 김정일과 김정은의 개방정책에 대한 개인적 평가는?


A: 2009, 2010년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의 국가지도자들이 북한에게 개혁개방을 권고하였다. 김정일은 장성택에게 북한의 개혁개방 책임을 맡겼다. 장성택은 일단 북한 주민들이 해외에 자유롭게 나갈 수 있도록 매회 출국할 때마다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증제도를 한번 허가를 받으면 일 년간 자유롭게 출국할 수 있도록 바꾸었다. 도강증을 만들어 무역을 위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도록 하였다. 북한 주민들은 중국으로 나가 중국의 식당, 상점, 시장 등을 보고 배워서 북한에 돌아와 식당, 상점 등 가게를 만들고 작은 기업들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돈을 버는 방법을 알기 시작하면서 시장경제의 흐름이 북한에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김정일 사후 집권한 김정은은 오히려 개방정책에 반대되는 통치를 했다. 일단 대외경제, 무역과 관련된 사람들을 대거 숙청하였고, 조선합영투자위원회, 국가경제개발위원회 등 개혁개방과 관련된 부서를 거의 모두 해산하였다. 이로 인해 황금평 개발 등 자유무역지대의 개발 또한 흐지부지되었다. 개혁개방의 흐름과 움직임이 사라졌다. 김정은은 “경제를 살리자, 경제정책을 우선시하자”라고 외쳤지만 말뿐이었다. 그의 경제정책은 현실적으로 경제를 살리는 정책이 아니었고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통치자본을 만들어내고 북한이라는 국가가 영원히 자신의 통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경제정책을 원했다. 


Q: 개인적으로 북한을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 


A: 탈북 전에는 북한 체제가 중국만큼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국에 살면서 중국의 발전된 경제가 부러웠다. 특히 공산당을 유지하며 경제를 개방하여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북한이 따라가야 할 길인 듯 보였다. 

   

하지만 탈북 후 한국과 미국에서 살면서 지금은 통제된 자유가 있는 중국 시스템이 아니라 한국이나 미국식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통한 발전을 더 원하게 되었다. 중국은 공산당이 정보와 기업을 통제하는 한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이룰 수 없다.  일당 독재의 중국식 발전은 북한이 따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Q: 북한의 개혁을 위해서 정보가 엘리트 계층으로부터 흘러가려면 위에서부터 개혁의 움직임이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밑에서부터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 것인지 어떤 방법이 더 현실적인가?


A: 두 가지 방법을 다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주민들로부터의 개혁에 대해 설명하자면 북한은 일반 주민들이 개혁을 위해 모일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면 2000년대 초반 북한에 인터넷 채팅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대학생들이 채팅으로 농구를 하자고 학생들을 모았는데 각 대학에서 1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이자, 보위부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정부가 조직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위협으로 간주한 것이다. 그래서 3일 만에 채팅프로그램은 차단되었다. 


주민들이 모이려면 모일 수 있는 플랫폼이 있어야 하는데 북한에서는 그런 것들이 감시를 받거나 없기 때문에 아래로부터의 개혁은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북한의 엘리트부터 공략을 하면 더 쉬울 것이다. 정보의 접근에 있어서 그나마 자유롭기 때문이다. 해외 유학생들과 해외 방문자가 많기 때문에 외부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외부 정보가 어떻게 북한을 개혁해야 하는지, 김정은 정권 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알려주면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특히 젊은 엘리트들이 김정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진심으로 김정은을 따르는 엘리트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해외를 나가본 사람은 김정은 정권의 거짓을 다 알고 있다. 엘리트들이 북한의 변화를 위한 그 어떤 비전과 동력이 없기 때문에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Q: 정보를 보낼 때 어떤 내용들을 담아서 보내야 하는지?


A: 단계가 있다. 1단계는 경제, 시장, 경영, 민주주의 등 북한에서 알기 힘든 지식들을 교육하는 단계, 2단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장경제와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보를 주는 단계, 그리고 사상적으로 북한의 엘리트들을 움직일 수 있는 비전과 확신을 주는 단계가 있다. 개혁된 북한의 미래 비전을 보여주는 단계이다. 


또한, 북한의 엘리트들은 첨단 기술 등에도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들이 북한에 많이 전달되었지만 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한국이 잘 산다는 정도만 알게 된다. 그것보다는 한국의 경제력, 첨단 기술, 국방력 등의 영상을 보낸다면 북한의 엘리트들이 관심을 더 많이 가질 것이다. 


그리고 북한 군부 등 많은 사람들의 대표적인 착각이 북한은 미군만 없으면 한국을 쉽게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군만 한국에서 없으면 한국과 싸우자는 분위기가 팽만하다. 그래서 한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대한 정보를 보내 그들을 인지시킬 수 있다면 그들이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종전선언이 돼서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99.99%라고 본다.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강함에 대해 북한에 더 많은 정보를 보내서 교육해야 한다.

   

Q: 이번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A: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완전히 실패하였다. 일단 북한은 비핵화를 할 의향이 없다. 제가 북한에 있는 친구들에게 얼마 전에 물어보니 김정은은 비핵화를 한다고 한국 정부 대표단에게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이 북한 내부에 김정은의 비핵화에 대한 말이나 지시가 없고 비핵화와 관련된 내부정책이 단 하나도 없다. 내부 정책이 없으면 그 누구도 북한에서 비핵화를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김정은 비핵화를 꿈도 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항상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 대가를 요구한다. 북한은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다. 북한 관리들 또한 남북 정상회담을 주선할 때 대가를 약속받지 못하면 나중에 숙청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자서전에도 2010년 12월 정상회담 대가를 북측에서 요구했는데, 거절당하자 특사가 북한으로 귀국한 후 총살을 당했다고 한다. 그때 특사로 방문했던 사람이 류경 국가보위부 부부장이었으며 그 당시 김정은의 최측근이었다. 그가 총살당한 이유는 단 하나이다. 정상회담을 위한 대가를 받아오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북한 국가보위부 뱀골 사격장에서 모든 요원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당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북한 엘리트들은 남한과 교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 좌파 정권을 더 싫어한다. 남북교류를 하면서 많은 간부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일이 틀어지면 숙청을 당하기 때문에 북한의 통일전선부 역사를 보면 2000년대 초반에 남북교류 했던 사람들이 거의 다 죽었다. 한국과의 내통, 뇌물죄 등으로 숙청당했다. 그래서 북한의 통일전선부, 국가보위부, 외무성 등 한국과 연관된 부서 사람들은 남한과의 교류를 극도로 싫어한다. 항상 남북교류 이후에는 숙청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무분별한 지원은 김정은 정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개혁을 생각하는 북한 엘리트 입장에서 매우 반갑지 않다. 오히려 지원을 반대한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식량만 있으면 100년이라도 쇄국정책을 하겠다는 것이다. 제가 군대에 있었을 때 한국에서 지원이 오면 군대, 보안성 등등 북한 정권을 지탱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배급했다. 식량은 일반 주민들에게는 거의 지급되지 않는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에게 아무리 퍼줘도 소용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지원물자가 북한에 배급될 때면 북한에서는 각 단위, 부서들에서 남한의 대통령이 김정일에 무릎 꿇고 조공을 바쳤다는 강연을 매주하였다. 한국의 지원물자가 북한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고 이것이 북한의 내부 변화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Q: 통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상한 모습이  있는지?


A: 통일을 단계별로 생각을 해봤다. 먼저 북한이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되고, 시장경제를 도입해서 주민들의 생활수준, 경제수준, 문화수준이 한국의 절반 정도만큼이라도 올라와야 한다. 그래야 통일이 되면 통일 비용 등 부담이 덜 갈 것이다. 지금 많은 분들이 독일 통일 이야기를 했는데, 독일은 통일 비용이 많이 발생했다고 들었다. 그 이유는 동독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통일 때 남한 사람들에게 부담을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지정학적으로 세계 2의 경제대국인 중국, 그리고 러시아, 아래로는 남한, 일본 등의 경제권이 있는데 북한이 발전을 못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인적, 물적 자원들만 잘 활용해도 경제적 기반을 닦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북한이 어느 정도 자립적인 단계에 올라서면 한반도가 통일이 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연방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생각하는 연방제는 문재인 정부나 북한의 연방제 생각과 다르다. 문재인 정권과 북한은 두 국가 두 제도를 주장하지만 저는 두 국가 한 제도이다. 미국처럼 연방정부가 있고, 주가 자치를 하고, 외교, 국방은 연방정부가 한다. 연방 대통령은 남북한 총 투표로 뽑아야 한다. 

 

초기에는 김정은만 몰아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건 좋아도 싫어도 엘리트들이 이끌어가는 체제이다. 과도기를 거쳐야 한다. 동질성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점차 시장경제 등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도기적 시간을 주어야 한다. 노동당원 500만 명을 관리 및 숙청하는 것은 매우 현명하지 못한 생각이다. 북한은 가정마다 노동당원이 최소 한 명씩은 있다. 그 어느 사람들이 자기 가족을 숙청대상으로 정하는 한국정부를 좋아하겠나? 전체 노동당원들을 제거대상으로 정하는 것은 북한 주민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다. 


Q: 한국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A: 한국은 북한보다 우월하고 이뤄놓은 것들이 많다. 북한은 한국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분들이 노력을 해야 한다. ‘헬조선’이라는 용어처럼 한국에 사는 것을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시라. 북한을 생각하면 한국이 좋은 나라가 틀림없으니 긍지를 갖고 살아가면 좋겠다.

 

통일에 관해서는 통일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말고, 통일을 하면 손해를 본다, 왜 통일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통일의 이점을 생각해야 한다. 손해보다 이익이 많을 것이다. 통일 후에 한국이 더 부강하게 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생각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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