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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손현덕 매일경제 논설실장
 
2017-02-16 15:37:17

매경프리미엄 스페셜리포트

[손현덕의 생각] 내가 좋아한 보수주의자, 박세일


나는 기실 그 가치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립조차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보수니 진보니 하면서 진영논리에 매몰되는 걸 몹시 싫어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수와 진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개똥철학을 설파하는 사람도 별로 내키지 않는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보수에 대해 명쾌하게 정의(定義)를 내리는 사람을 딱 두 분 본 적이 있다. 정말 무릎을 치는 말이었다.


먼저 소설가 김훈. 그는 자신이 근무했던 한국일보 문화부 후배들과 꽤 오래전 술자리에서 보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보수는 법 지키고 세금 내고 아들 군대 보내는 거야.” 그의 보수에 대한 정의는 '책임'이었다. 개인적으로 100% 동의.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적어도 이 세 가지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그리고 두 번째 인물은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 그리고 이 칼럼에선 박 이사장님의 보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보수는 두 가지 가치를 지키는 겁니다. 하나는 자유, 다른 하나는 공동체. 자유는 국가발전이고 공동체는 국민통합입니다. 즉 공동체를 소중히 하는 자유주의자. 국민통합을 하면서 국가를 발전시키는 자. 그게 보수주의자입니다.”


박 이사장이 나에게 이 말을 처음 한 건 내가 정치부장으로 있었던 20091029. 늦가을이었지만 찬바람이 매섭게 불던 날 반포에 있는 자그마한 그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했을 때다. 인터뷰는 1시간을 예정했지만 2시간을 훌쩍 넘겼다.


사실 그를 인터뷰한 건 행정부의 세종시 이전이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2005년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과 수도를 분할하고 행정부처를 이전하는 세종시 문제에 대해 타협을 하자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홀연히 여의도를 떠났다. 이런 말을 남겼다.

여당에는 표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국가에는 재앙을 가져오는 이러한 정치적, 정략적 정책에 우리가 동의해줬다. 국민들께 엎드려 사죄하고자 한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다.”(200532일 한나라당 의원총회 연설문) 그러면서 망국적 포퓰리즘을 한탄하며 국회의원 배지를 국민들에게 돌려줬다.


이 시대 보기 드문 선비의 결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이날 인터뷰에서도 세종시에 대한 그의 소신은 눈곱만치도 변한 게 없었다. 세종시는 광복 이후 최대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포퓰리즘의 정의. 일부 국민의 정서에 영합하여 국익을 버리고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 행위. 명쾌하다. 세종시 문제는 좌파 포퓰리즘이 추진하고 우파 포퓰리즘이 이에 타협하면서 잘못되기 시작했다는 것.


당시 세종시법을 통과시킬 때 한나라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세종시와 관련해서는 늘 신뢰를 말했다.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거였다.

이에 대한 박 이사장의 일갈.


무엇을 위한 정치 신뢰인가. 약속도 그 동기가 어디에 있는가가 문제다. 세종시 문제는 처음부터 국가 이익 때문이 아니라 특정 지역 표를 의식한 인기영합 정책이었다는 것을 국민은 다 알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은 애국심이 적은 것 같다. 당리당략만 많다. 모두가 객()이고 진정한 주인, 진정한 지도자는 없는 것 같다.”


그가 세종시에 대해 이렇게 확고한 신념을 지닌 것은 그것이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에 해당된다고 본 것이고 그 보수의 가치는 바로 선진화였다. 그는 선진화를 통일과 함께 시대정신으로 봤다. 성장이니 분배니 하는 건 일종의 시대과제이지 시대정신은 아니라는 것. 경제만 된다고 선진화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세종시는 포퓰리즘이 선진화와 통일, 즉 시대정신을 후퇴시키는 정책이고 사건이었던 것이다(수도 남하 정책은 통일에 역행한다는 논리였다).


그는 정말 우리나라 정치가 삼류라고 질타했다.


국가와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게 정치입니다. 국가목표도 없고 국가전략도 없습니다.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인기영합적 포퓰리즘에 가세합니다. 그 결과 국정이 표류하고,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결국 국가가 실패합니다.”


그는 만날 때마다 한결같았다. 진정한 보수는 '개혁적 보수' '발전적 보수'라며 이것이 대한민국 보수의 주류가 돼야 한다고 늘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가 바라본 이 땅의 보수는 질서에 안주하는 '기득권 보수',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퇴행적 보수', 자기 희생을 거부하는 '이기적 보수'였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라는 사람들이 박세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60여 년을 무슨 꿈을 꾸며 살아왔는가를 자문했다.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하게 그의 가슴속 깊이 느껴지는 게 있었나 보다. 대한민국의 꿈. “가난했지만 부자가 되는 것도, 지극히 평범한 집안이었지만 권력을 얻는 것도, 그렇다고 위대한 학자가 되는 것도, 그 어느 것도 그 자체는 크게 매력적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 같다고 그의 저서 이 나라에 국혼은 있는가에 적었다.


박세일 이사장이 서울법대 교수로 부임한 1985, 그해 첫 학생으로 입학한 박수영 전 경기부지사는 보름 전쯤 은사를 찾았다. 위암 말기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였고 박 전 부시장의 면회를 마지막으로 그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졌다. 박세일 이사장은 제자가 찾아와 손을 잡자 힘겹게 두 마디 말을 내뱉었다.


대한민국, 잘해라.


P.S. 저는 오늘 오전 7시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그의 영결식에 꼭 가보고 싶었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이 글로 대신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원본 URL: http://premium.mk.co.kr/view.php?no=17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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