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우만과 박세일

뿔테

어제 우연히 박세일 전 의원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났음을 알았다. 보수개혁의 가치를 들고 선진화를 국가전략으로 줄곧 주장한 정책가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의 번역자로 더 가깝다. 비봉 출판사의 경제학고전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출간되어 개정판까지 나온 이 책은 그의 선진화 전략의 사상적 기초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을 지난해 새해 벽두에 깊은 공감 속에서 탐독했고 영국의 경험주의적 전통을 확인했던 책이다. 부국덕민의 가치를 실현시키고자 정치활동을 전개하면서도 합리성과 자유주의적 가치를 지닌 몇 안 되는 정치인이었다.

박세일 교수의 죽음보다 며칠 앞서 폴란드 출신 지식인 지그문트 바우만의 별세를 전하는 기사도 있었다. 현대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로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은 책이 번역된 이다. 이른바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으로 설명되는 그의 담론은 불확실성의 세계로서 지구화된 오늘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의 저서 몇 권 가운데 중고책으로 정리했고 유일하게 갖고 있는 것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이다.

나는 낙엽을 주워 책갈피로 쓰는 때가 있는데 낙엽에 만년필로 2012년 가을 충대에서 라고 적혀 있다. 백합나무 잎사귀인데 그때 바람과 하늘이 무척 좋아서 벤치에서 책을 보다 말고 농대 넘어가는 고갯길까지 산책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편지글처럼 담담하게 그러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지닌 글이다. 두 사람의 지식인이 새해가 얼마 되지 않은 이쯤에 돌아가셨다는 게 아쉬움을 남긴다.

[블로그 발췌] 원본 URL: http://blog.naver.com/69esmin/220918789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