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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다시 길 잃은 보수, 재건 가능할까?
 
2024-05-23 11:01:46
◆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치개혁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4월 총선 패배로 윤석열 정부는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과제 입법과 예산, 인사권 행사 등에서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총선 패배 원인에 대해 “그동안 제가 국정 운영해 온 것에 대해서 국민들의 평가가 좀 많이 부족했다는 것이 담긴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야권이 제기한 정권심판론을 대통령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번 총선 결과가 갖는 정치적 함의는 크게 세 가지로 축약된다. 첫째, 민주당의 압승으로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이 국가 통치권을 두고 극렬한 싸움을 벌이는 ‘극단적 이중 권력’의 시대가 도래했다. 집권 2년도 안 된 여당이 중간 평가 성격의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 붕괴’라는 최악의 결과는 면했지만, 이렇게 굴욕적인 참패를 당한 적은 없었다.

1996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신한국당은 과반 확보에 실패했지만 제1당(139석)을 차지했다. 2000년 총선에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115석)은 제2당이 됐지만 야당인 한나라당과의 의석 차이는 18석에 불과했다. 2016년 총선에서도 새누리당(122석)은 제2당으로 패배했지만 민주당과의 차이는 단 한 석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용산 대통령’(윤석열)과 ‘여의도 대통령’(이재명)이 극한 대립을 하게 됐다.

둘째, 거야의 비토크라시(Vetocracy)가 정부여당의 모든 정책을 거부할 수 있기에 윤 정부는 식물정권으로 전락할 위기에 봉착했다. 야권은 국회에서 180석 이상을 차지했기 때문에 국회 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 또 야권은 패스트트랙을 단독 추진할 수 있어 모든 법률안을 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해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게 됐다. 프랑스 같으면 대통령이 의회 다수당 출신의 인사를 총리로 기용하는 ‘동거 정부’가 등장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뉴라이트와 강성 보수층에 의존하다 폭망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야당이 동의하는 국무총리 후보를 임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야권 일각에서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을 탈당해 거국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한국의 정치 지형이 진보 정당이 주도하는 범야권의 시대에 돌입했고, 보수 정당은 비주류로 전락했다. 대한민국 보수 정당은 201620(새누리당), 202021(미래통합당), 202422(국민의힘) 3연속 총선에서 패했다. 이번 총선에서 범야권이 192석을 차지했다. 사회 각 분야에서 개발연대의 주역들이 물러난 자리를 586 전대협 세대와 97 한총련 세대가 차지하게 됐다. 보수 정당은 TKPK에서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영남당으로 전락했다.

 

특히 수도권 총선에서 보수 정당은 궤멸적 패배를 연속으로 당했다. 수도권에서 2016년 총선 28.7%(35), 2020년 총선 13.2%(16), 2024년 총선 15.6%(19)를 얻는 데 그쳤다. 주목할 점은 보수 정당은 세 번 총선에서 패하는 동안 당명이 계속 바뀐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같은 당명으로 세 번 연속 승리했다. 그만큼 보수 정당은 취약하고 진보정당은 견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민주당은 245만 명의 권리 당원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 정당인 반면, 국민의힘 책임 당원은 80만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보수 몰락의 이유를 윤 정부의 오만과 불통, 내로남불과 정책 실패에만 맞추는 것은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대한민국 보수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을 보다 심층적으로 고찰해보면 첫째, 보수는 변화와 혁신을 외면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로 상징되는 새로운 보수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채 이념적 경직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윤 정부는 국정 운영 기조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복원, 법치주의 확립, 자유와 연대, 동맹 강화를 내세웠다. 그런데 이런 보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개혁이나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이념과 실천의 부조화로 신뢰를 잃었다.

 

둘째, 외연 확장에 실패했다. 중도 확장은 뒷전이고 운동권 및 이재명·조국 심판, 범죄자 척결 등 해묵은 보수 결집에만 집중했다. 또한 지난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 대상이었고 공동 정부의 한 축이었던 중도를 대표하는 안철수 의원을 국정 운영의 훼방꾼이라며 배척했다. 한국 보수 우파는 중도를 향한 제3의 길이 보이지 않았다. 과거 뉴라이트 세력과 강성 보수층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셋째, 서민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고 세대 교체를 통한 청년 민심을 얻는 데도 실패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1977년 서민을 위한 획기적인 복지 정책으로 전 국민 의료보험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한국 보수당은 강남·부자·대기업 등 가진 사람을 위한 정당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2022년 대선 승리 이후 국민의힘은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30대 젊은 당 대표를 내부 총질을 한다며 쫓아냈다. 총선에서 영입한 청년들을 험지에 출마시키는 황당한 일도 자행됐다.


진보적 가치 차용하는 보수 빅텐트필요


넷째, 정체성의 위기다. 보수 우파는 위기 때마다 인지도는 높지만 정치 경험이 부족한 외부 인사들을 수혈해 문제를 해결했다. 1997년 대선 때는 이회창 전 총리, 2022년 대선에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 2024년 총선에선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영입했다. 그 과정에서 정치 경륜과 경험이 많은 당 중진 인사들은 반개혁 이미지의 올드보이라는 이유로 소외됐다. 결국 마이너스 정치로 내부 통합을 이루지 못했다.

 

다섯째,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확대하는 보수의 대중화가 빈약했다. 진보의 이권 카르텔과 촛불운동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전통적 보수 가치를 지키는 것을 주 정치적 목표로 삼는 보수의 집단행동이 위축되고 있다. 한국에선 한반도선진화재단, 국가미래연구원 등 극소수의 집단만이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보수는 이념과 조직으로 무장된 진보 세력과의 담론 싸움에서 이기기 어렵다.

 

그 결과, 한국 보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혁신의 최우선 과제는 제3의 길을 통해 외연을 늘리는 것이다. ‘진보적 전환을 시도해 보수 빅텐트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압축 성장’, ‘자유 시장’, ‘반공 보수를 뛰어넘는 균형 성장’, ‘약자 배려’, ‘평화 보수로 변해야 산다.

 

보수의 창조적 파괴와 혁신은 올바른 청년 정치부터 시작돼야 한다. 특히 유럽 정당들의 청년 조직과 청년 정치인 양성 교육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령, 독일 기민당에는 청년 조직인 영 유니언이 있다. 2016년 당시 기민당 청년조직(14~35)에 만 12만 명이 가입해 있었다. 전체 당원 442000명 중 27%에 이른다. 여기서 헬무트 콜과 게르하르트 슈뢰더와 같은 실력을 갖춘 거물 정치인이 탄생했다.

 

진중권 동양대 특임교수는 보수 재건의 해법으로 보수여, 과거로 눈을 돌리지 말고, 어둠을 향해 앞으로 빛을 던지는 전조등이 되라고 조언한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보수의 재구성]이라는 책에서 보수의 입장에서 진보의 문제를 정확히 드러내고, 보수가 더 타당한 이념임을 보여 주려면 자신의 정치 철학과 가치에 대한 성찰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무너진 보수가 2027년 대선에서 부활하기 위해서는 보수 재집권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대선에서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4대 변수는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 연대, 이슈, 경제. 국민의힘 차기 대선 후보는 현직 윤석열 대통령과의 전략적 차별화가 필요하지만 적대적 관계를 만들면 필패한다. 현직 대통령은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총선 이후 용산과 대립각을 극대화하려고 한다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째, 선거연합이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는 3당 합당을 통해 영남과 충청을 토대로 호남(DJ)을 배제하는 선거연합 전략으로 승리했다. 2012년 대선은 보수가 분열 없이 치러진 최초의 선거였다. 박근혜 후보가 보수 총집결로 범진보 세력을 상대로 51.6%의 과반 승리를 일궈냈다. 반면 1997년 대선에서 집권당은 분열됐다. 이인제 후보가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해 19.2%를 득표함으로써 보수 표가 잠식되며 이회창 후보는 김대중 후보에게 1.6%p 차이로 패배했다. 2017년 대선에선 탄핵에 찬성한 유승민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함으로써 보수는 분열돼 패배했다.

 

보수의 활력은 경제 이슈에서 나온다


2027년 대선에서 보수가 승리하려면 선거 승리 연합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힘은 집권 2년 만에 선거연합 해체로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을 찍은 2030세대와 중도층의 이탈을 가져왔다. 결과적으로 중보·보수 연합은 해체됐고, 대신 중도·진보 연합과 2030세대와 4050세대의 연대가 뚜렷해지며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발전적으로 해체시키고 친윤 영남당이미지를 종식시킬 필요가 있다. 보수는 좌파 포퓰리즘과 개딸전체주의로부터 나라를 구한다는 이슈만으로 중도를 선점할 수 없다. 중도를 대표하는 인사들을 대폭 영입하고, 민생·개혁·도덕 이슈로 중도를 공략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2030 남성들 위주의 세대 포위론을 폐기하고 모든 청년 세대와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경제 이슈 선점이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frame)특정한 언어와 연결되며 연상되는 사고의 체계라고 정의했다. 레이코프는 전략적으로 짜인 틀을 제시해 대중의 사고 틀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며, 이 제시된 틀을 반박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해당 프레임을 강화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차기 대선에서 야권이 제기할 정권심판론 프레임에 맞서 여당은 경제 살리기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자신의 주머니를 두껍게 해주면 지지하고 그렇지 않으면 응징하는 이른바 포켓 밸류 투표(pocket value voting)’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이기 때문이다.

 

일본 자민당이 12년 동안 1강 체제를 구축한 것은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국민생활 향상 경제정책 덕분이었다. 과감한 금융 완화와 재정지출 확대, 마이너스 금리를 기반으로 하는 구조개혁 경제 구조가 핵심이다. 미국 보수 부활을 성공시킨 레이건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인 레이거노믹스의 핵심은 노동의 유연성과 감세였다.

 

보수, 총선 대패했지만 표 차이는 크지 않아


일본 보수의 상징인 자민당의 장기 집권을 연구한 유민호는 보수의 활력, 재생, 재구성을 논할 때 정신·이념이란 단어보다 돈·경제·경영이라는 단어부터 떠올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보수 정부는 규제 개혁, 수출 확대, 과학 기술 등을 통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힘은 경제에 유능한 보수정당이라는 명성을 되찾아야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

 

이런 보수 재집권 플랜의 최대 난제는 누가 보수를 이끌 것인가. 2000년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여의도 대통령이라고 불릴 만큼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이회창 대세론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이 총재는 재출마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이런 사례는 현재 총선 승리에 도취된 민주당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거대 양당에 대한 민심의 격차가 생각보다 크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14758083(50.48%)를 얻은 반면, 국민의힘은 13179769(45.08%)를 얻어 양당의 차이는 약 158만표(5.4%p)에 불과했다. 친윤계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SNS를 통해 뚜벅뚜벅 전략, 또는 가랑비 전략으로 3%p만 가져오면 대선에서 이긴다고 말했다.

 

물론 전제는 보수의 대변혁이다. 국민의힘에선 오세훈, 한동훈 외에도 홍준표, 안철수, 원희룡, 유승민 등 차기 대권 후보가 차고 넘친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독주 체제다. 2027년 대선은 무기력하고 패색이 짙었던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이 막판 뒤집기로 승리한 2002년 대선의 재판(再版)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향후 보수의 노무현은 탄생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이 보수의 미래를 가늠하는 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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