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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기업 목 죄는 ESG 공시… 자율화·인센티브 제공이 바람직
 
2024-03-20 09:46:40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6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위원들의 표결을 통해 3 대 2로 ‘기후관련공시 최종규정’을 가결했다. 이로써 미국 상장기업들은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SEC 등록서류 및 연례보고서를 통한 특정 기후관련 정보공시가 의무화됐다. 다만 아직 미국 내에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조지아주 등 10여 개 주가 소송을 예고하고 나섰고, 공화당도 반발하고 있다. 특히 올해 대선 결과에 따라 이 제도의 운명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다행히 중요 우려 사항 하나가 빠졌다. 스코프3가 빠진 것이다. 그동안 미국 내에서 온실가스 스코프3 측정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점이 논란이 됐었다. 스코프3는 공급사·협력사·소비자 등 공급망 전반에 걸친 배출량까지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기업들은 간접 배출을 포함한 탄소배출량이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나 어디서, 얼마나 발생했는지까지 정확하게 측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다. 이는 일반 농가에까지 과도한 부담을 준다는 비판을 불러오기도 했다.

스코프3 공시 의무화가 철회된 직접적인 이유는 법적 분쟁을 초래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스코프3를 강행할 경우 이에 반발하는 기업들이 소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또 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30일 미국상공회의소 등은 캘리포니아주를 상대로 ‘주 기후 공시법’이 엄청난 비용을 초래하고 주 정부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며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미국에서 스코프3가 빠졌다고 해도 기업들로서는 여전히 부담이 크다. 공시의무화가 점점 기업의 목을 졸라오고 있다. 공시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시장의 원활한 작동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 공감하지만, ‘공시 의무화’ 같은 규제적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정부는 가이드만 제공해야 한다. 기업이 각자 상황에 따라 공시제도를 활용하도록 자율화하면서 대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향의 제도 설계가 바람직하다.

한국회계기준원이 공시기준 초안을 열심히 다듬고 있다. 하지만 무리한 공시 의무화는 △잠재적 소송리스크 △통제·수집·정량화가 어려운 통계 요구 △모호한 중대성 평가 등 문제가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기존 사업보고서는 객관적 수치에 따른 과거 성과를 기반으로 한 재무제표 중심이었다. 반면, 기후 등 공시는 복잡한 가정이라는 추상적 수치에 기반한 추정값들을 기재하라는 것이어서 부담이 크다. 배출량을 집계하는 것도 통제나 측정 자체가 정확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측정 인력과 장비 등 인프라가 매우 미흡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내부 탄소가격 설정 같은 것은 대다수 기업에는 생소한 개념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는 그간 ESG 관련 의욕이 지나쳐 과속했다. 넷제로 달성 목표만 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는 2060년, 인도는 2070년을 제시했으나, 한국은 2050년 제로(0)를 목표로 2030년까지 40% 감축을 약속했다.

이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게 됐고, 국제사회에 공수표만 날렸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따라갈 수 있는 합리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목표 달성 기업에는 강력한 인센티브로 보답하는 것만이 ESG 공시를 연착륙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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