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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개인 존중하는 새 가족주의로 나아가야
 
2024-02-21 09:11:22

 손숙미 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인플루언서이자 신경 끄기의 기술을 출간한 마크 맨슨(사진)이 얼마 전에 한국을 방문해 한국은 경제와 문화면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묘사했다. 그 우울의 근거에는 유교의 가장 나쁜 부분인 수치심 및 평가와 자본주의의 현란한 물질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한국인의 물질주의는 2021년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17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됐다. 한국은 조사 대상 국가 중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삶을 의미있게 하는 1순위로 꼽았다. 그 조사에서 가족은 3순위에 그쳤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는 대부분 나라에서 일정 정도 소득이 증가하면 물질주의에서 개인의 발전과 자유를 중시하는 탈물질주의로 옮겨간다고 진단했다. 이런 흐름과 달리 한국은 높은 경제 성장을 이뤘음에도 변함없이 물질주의적 가치가 높고 자기 표현적 가치는 낮은 예외적인 나라라고 지적했다.

 

한국인의 물질주의는 6·25전쟁 경험과 이념적 대립,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등 불안과 관련된 요소도 있지만, 유교적 가족주의의 영향도 크다. 유교적 가족주의에서는 개인의 권리보다 가족의 유지와 번영을 중시하고, 높은 기준을 내세워 가족 구성원을 채찍질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후진국에서 태어난 부모 세대가 중진국 또는 선진국에서 태어난 자녀 세대와 함께 살고 있다. 지난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처음 분류했지만, 여전히 지금의 부모 세대에게는 옛날 보릿고개 시절의 굶주렸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고속 경제 성장을 달성했음에도 상대적으로 느끼는 물질적 박탈감과 억울함을 부모 세대는 자녀를 통해 해소하고 싶어한다. 부모는 자녀나 자녀의 배우자가 더 많은 연봉과 더 좋은 집을 마련하길 기대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물질주의는 자녀 세대인 20·30세대의 청년, 특히 여성들에게 대물림한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와 카카오 같이가치팀이 발간한 2019대한민국 행복 리포트에서 20·30 여성의 물질주의 성향이 가장 높았다고 보고했다.

 

물질주의에 따르면 물질의 소유와 획득이 삶의 목적이 되며 이를 통해서만 삶의 만족을 느끼고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 하지만, 물질주의 같은 외적 가치는 서열 평가가 쉬워 필연적으로 비교를 유발하게 된다.

 

유교문화권에서는 위신과 체면 때문에 주변 사람과의 비교가 더욱 심해진다.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평가하고 검열하게 되면서 불만족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우울감으로 연결된다. 역설적으로 물질은 추구하면 할수록 행복 수준이 낮아지고, 가족 관계와 사회적 관계의 품질이 나빠진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등한시하게 된다.

 

저급한 물질주의 문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유스러운 개인에 기반을 둔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이 필요하다. 개인주의는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지고 성취하는 것이다. 성과가 개인에 따라 달라지지만, 자신의 성취가 크든 작든 행복은 증가한다. 이렇게 되면 외적 가치인 물질에 대한 집중과 집착이 줄어들어 차츰 물질주의에서 벗어나게 된다. 특히 중진국이나 선진국에서 개인주의가 성숙하면서 타인에 대한 존경과 배려가 생기고, 이는 덜 이기적인 인간을 만든다.

 

패밀리즘(Familism)공동체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가족주의이고,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기반으로 한다. 패밀리즘은 사랑·미래·포용 같은 공동체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여김으로써 가족의 가치를 실현한다. 개인에게 가족을 위한 희생이나 체면을 유지하도록 강요하지 않으며, 책임감 있고 자율적인 개개인의 연합으로 가족인 공동체가 구성되는 것이다.

 

패밀리즘은 구성원들의 조화로운 양성평등 관계로 이뤄진 가족을 지향한다. 결과적으로 패밀리즘은 가족 구성원들의 갈등보다는 상호협력적 관계를 수반하며, 친절하고 따뜻한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유교적 가족주의에서 단번에 벗어나 패밀리즘으로 일시에 이행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꾸준한 교육으로 이제는 물질보다는 삶의 질을 가꾸는 방향으로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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