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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투데이] 기형적인 정당 운영 시스템 개혁이 정치 개혁의 본질이다
 
2024-01-18 12:51:25
◆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치개혁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4월 총선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에선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정당 파편화 현상이다. 거대 양당 체제를 종식하기 위한 제3지대 신당 창당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특히, 거대 정당의 전 대표들이 탈당해 신당 창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이준석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말 ”이제 시민 여러분께서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검투사의 검술을 즐기러 콜로세움으로 가는 발길을 멈춰달라“며 국민의힘을 탈당해 (가칭)개혁신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이낙연 전 대표도 지난 11일 “민주당이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했다”며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가칭) ‘새로운 미래‘ 창당을 선언했다. 민주당 비명계 '원칙과 상식' 소속 조응천, 김종민, 이원욱 의원도 지난 10일 민주당을 탈당해서 ’미래대연합‘(가칭) 간판을 걸고 창당을 본격화했다. 이밖에 양향자 의원이 창당한 ’한국의희망‘, 금태섭 전 의원의 ’새로운 선택‘도 신당 창당 대열에 합류했다.

이렇게 전례 없는 정당 파편화 현상이 나타난 근본 이유는 허약한 정당 체제 때문이다. 집권당은 다원성과 자율성을 상실한 채 대통령실과 수직적 통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거대 야당은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사당화되면서 방탄 정당, 팬덤 정당으로 전락했다. 한마디로, 당내 주류 세력이 비주류 세력을 포용하지 못한 채 당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둘째, 민심의 부조화 현상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 대한 관심과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도는 답보 상태다. 한국갤럽 1월 2주 조사(9~11일)에 따르면,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정치 지도자에 대한 선호도로 한동훈 위원장은 22%로 이재명 대표(23%)와 큰 차이가 없는 2위를 차지하면서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 지지도는 33%로 한동훈 비대위 출범(12월26일) 전인 11월4주때(33%)와 동일했다. 국민의힘 지지도도 12월 2주 때와 동일한 36%로 민주당(34%)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런 조사 결과는 ‘한동훈 현상’은 존재하지만 ‘한동훈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한편,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부 견제론’이 ‘정부 지원론’을 압도하고 있다. 앞선 한국갤럽조사에서 전자가 51%, 후자가 35%로 나타났다. 이런 추세는 지난해 4월 이후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도(34%)는 국민의힘(36%)보다 오차 범위 내에서 뒤지고 있다. 이런 결과는 민주당이 정권 심판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국민들은 신당 창당의 필요성에 대해 크게 동의하고 있지만 신당 창당을 이끌어 가는 인물에 대한 선호도는 지극히 낮다.

리얼미터의 작년 12월 조사(14~15일) 결과, 국민 2명 중 1명 정도(48.3%)가 신당 창당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한국갤럽 1월 2주 조사에서 신당 창당을 주도하는 이준석 전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한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는 각각 3%에 불과했다. 이들이 신당이 지향하는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제시하지 않은 채 창당도 하기 전에 오직 총선 승리를 위한 제3지대 연대론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한계다.

셋째, 게임의 룰인 선거법이 아직 오리무중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공천관리위원장을 임명했고, 외부 인재 영입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으며, 공직자 사퇴 시한(11일)도 넘겼다. 그런데 정작 선거법 개정은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지난달 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총 300석 중 지역구 253석을 어디서 뽑을지를 정하는 선거구 획정안을 제출했음에도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회의 갑질이고 거대 정당의 횡포다. 선거법이 이렇게 표류하면 정치 신인과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이뤄질 수 없다.

이런 특이한 현상 속에서 총선에 임하는 정당들은 앞다투어 저마다 정치개혁을 내세우고 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정치 개혁은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여러 특권을 포기하는 것이고, 더 헌신적, 효율적으로 국민 의사를 반영할 수 있게 체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불체포 특권 포기’, ‘금고형 이상 확정 시 세비 반납’, ‘자당 귀책으로 재·보궐선거 시 무공천’, 국회의원 정수 250인으로 축소‘ 등 4대 정치 개혁안을 제시했다.

이런 개혁안은 선거 때마다 나온 단골 메뉴로 새로운 것은 아니고 민주당 압박용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비대위원장의 신선함만으로 개혁은 지속되기 어렵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정치 개혁의 핵심은 무능한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고 검찰 정권을 종식시켜 정치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 장악에 대해 침묵하거나 방관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또한,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한 방탄 정당으로 전락해 개혁의 주체가 되기도 어렵다.

제3지대 신당 창당을 주도하는 세력들은 정치 양극화 주범인 양당 체제를 다당체제로 바꾸는 것이 정치 개혁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기존의 양당 체제는 악이고 다당체제는 선이라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총선 후 수많은 다당체제가 등장했다. 1988년 총선 후 4당 체제(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신민주공화당), 1996년 총선 후 4당 체제(신한국당, 새정치국민회의, 자민련, 통합민주당), 2004년 총선 후 5당 체제(열린우리당, 새누리당, 민주노동당, 새천년민주당, 자민련), 2016년 총선 후 4당 체제(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국민의당, 정의당)가 등장했다. 그런데 이런 다당체제 속에서 한국 정치는 바뀌었는가?

고 이건희 회장이 1995년 4월 베이징에서 ”우리나라 정치는 4류다“라고 했는데 다당체제가 주류였던 지난 30년 동안 한국 정치는 오히려 퇴보했다. 이런 불편한 진실로 정치 불신과 혐오가 팽배한 상황에서 현재 추진 중인 신당 창당을 폄훼하고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정치개혁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한국의 정당정치가 발전해서 정치가 정상화되려면 정당 체제가 아니라 전근대적인 정당 운영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현재 한국 정당의 가장 큰 문제는 ’시스템에 의한 ‘제도화된 권력 구조’(institutionalized power structure)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동하는 대통령, 당 대표, 비대위원장 등 당 지도부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개인화된 권력 구조’(personalized power structure)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고보조금을 받는 비대화된 중앙당 체제에서 당직, 공천, 국회직 등을 당 대표가 모두 독식하고, 당 대표의 생각과 말이 강제적 당론으로 정해지는 제왕적 사당화가 악의 근원이다.

단언컨대, 정치개혁의 본질은 신선함도 정권 투쟁도 다당체제도 아니다. 사당화된 기형적인 정당 운영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다. 당 지도부의 권한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통제받는 정당, 비대화된 중앙당 조직에서 벗어나 시스템과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운영되는 정당, 미래 어젠다를 갖고 경쟁하는 정당,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정 활동을 할 수 있는 정당, 자신들의 행위에 책임지고, 국민들의 요구에 적극 반응하는 정당, 자제와 상호 존중으로 협치가 가능한 정당으로 전환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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