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nsun issue & focus 7월호
1. 다른 생각, 다른 헌법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은 자연스럽게 한민족 주도의 건국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는 ‘식민 조선’이라는 업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해방 직후 한반도에는 전승국 미국과 소련의 문화가 맹위를 떨치면서 남북은 각기 다른 정치사상과 국가 체제를 꿈꾸고 있었다. 물론 식민 조선의 사상이나 통치 제도는 생각할 수 없었고, 조선왕조로의 복귀도 아니었다. 따라서 건국 과정에서 꿈은 ‘조선왕조의 체제’도, ‘식민 조선의 체제’도 아닌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고 새로운 정치체제와 경제제도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즉 남북한이 꿈꾼 나라는 민주주의에 기반한 근대국가 건설이었다. 그러나 건국 과정에서 미-소의 영향으로 남북한에는 서로 다른 정치사상과 체제가 이식되면서 다른 건국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남북이 생각한 민주주의는 미-소가 추구하는 가치관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였다. 건국 과정에서 남한이 추구하려고 한 가치는 ‘자유, 민주, 시장, 다양,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였고, 북한이 추구한 가치는 ‘평등, 계획, 획일, 인민’ 등이었다. 이는 남북은 ‘건국’이라는 비슷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속내는 무척 달랐다. 이처럼 우리 민족에게 미-소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매우 달랐다는 점은 불행 중 불행이었고 지금까지도 사상논쟁이 이어지는 아픔이 지속되고 있다.
남북한은 해방 이후 1948년 독자적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건국이라는 외양’을 갖추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남북은 ‘건국의 외양’을 갖추기 위해 국가의 기본적 골격인 헌법 제정에 착수했다. 헌법 제정은 국민의 기본 권리와 의무, 정부의 구조 및 작동방식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필연적 절차였고, 남북 분단 상황에서 남북 지도자는 헌법제정을 통해 자기 중심의 국가건설(nation building)의 정통성(legitimacy)을 확보하려고 했다. 결국 남북이 각기 다른 헌법제정 절차를 밟은 까닭은 국가건설의 제도적 합법성과 정당성을 확보해 국가 건설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정통성이란 ‘한 사회·국가의 정치체제, 정치권력, 전통 등을 올바르다고 인정하는 일반적 관념’이며, 국가의 정통성은 ‘국민들의 총체적인 신뢰와 지지(支持)를 받을 수 있는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합법성’으로 규정된다. 정통성 확립이 중요한 이유는 국가·사회의 구성원이 국가·사회 질서에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고, 자발적 복종이 국가·사회의 안정적 지배의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즉 국가의 정통성은 국가권력에는 ‘통치의 명분을 제공’하고, 국민에게는 ‘통치의 정당성과 적절성에 대한 신념을 생성, 유지케 하는 명분을 제공’한다. 결국 국가의 정통성은 구성원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고, 통치 권력의 권위를 보장해 줌으로써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주는 데 의미가 있다. 이처럼 건국 정국에서 남북한이 정통성 확보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향후 건설될 국가 정체성(identity)의 기본 가치를 규정하는 핵심요소라고 인식하고 정통성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결국 남북한은 정통성이 국가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이는 체제와 제도를 구획(區劃)하는 핵심요소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한은 국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의 기본권과 의무, 국가권력의 조직 및 작용 등에 관한 규정을 포함한 헌법을 제정하고 국가건설의 골격을 마련했다.
2. 다른 절차, 뚜렷한 차이
헌법은 국가통치의 근간이며, 국가 정통성을 정립하는 최우선적 제도적 장치다. 이런 헌법이 갖는 중대성을 인식한 남북한은 해방 직후 경쟁적으로 헌법제정에 착수했다. 이는 자기중심적 근대국가를 건설하려는 의욕의 산물로 평가된다. 그러나 남북한의 헌법제정 과정을 보면 뚜렷한 차이가 있다. 우선 한국의 헌법제정 과정은 ‘의회의 원리’를 따랐다. ‘의회의 원리’란 ‘선거구 획정 및 유권자 자격 획득 → 선거로 대표 선발 → 선발된 대표가 국회 구성 → 헌법기초위원 전형위원 선발 → 헌법기초위원 선발 → 헌법초안 작성 → 국회의 심의와 동의’의 과정을 거쳤다. ‘의회의 원리’는 ‘지역’이라는 대표성에 국한하지만 최소한 복수정당의 대표성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충실했다고 평가된다. 한편, 남한은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로 제헌의원을 선출해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이들이 헌법을 제정해 7월17일 헌법을 공포해 국민주권을 확립함으로써 8월15일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
반면 북한의 제정절차는 ‘소비에트(Soviet) 원리’를 따랐다. ‘소비에트 원리’는 인민의 완전한 의사 표현과 구현을 목표로 한다. 즉 ‘인민의 선거 → 인민위원 선발 → 인민회의 구성 → 조선임시헌법제정위원회 조직 → 헌법초안 작성 → 작성된 초안 인민회의에 제출 → 전인민의 토의에 회부 → 동의된 초안이 전 인민회의 토의에 회부 → 인민회의 특별회의에 회부, 수정심의 → 최종안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의 과정을 거쳤다. ‘소비에트 원리’의 결함은 ‘전인민적 대표성’을 표방하기 위해 권력핵심기구 및 정당, 대중조직, 지역, 직능대표를 모두 포괄하여 선임하였지만 권력핵심 인물들이 헌법제정위원으로 참여하고 이들은 노동당 소속이 압도적 우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헌법제정에는 단일정당인 노동당의 대표성이 철저히 관철된다는 점이다. 한편, 북한의 헌법제정 논의는 1947년 11월 19일 처음 공식화한 이후 헌법제정위원회 결성(12.20), 인민회의에서 토의 제안을 거처 전인민의 임시헌법 초안 토의 및 동의(48.2.12-4.25), 인민회의 특별회의(4.29),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8.25) 및 최고인민회의(9.2), 헌법위원회에서 헌법초안 심의(9.3-9.5) 후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을 채택(9.8)하고 9월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했다.
이처럼 남북한의 헌법이 각각 분리되어 제정되었다. 하지만 남북한은 서로를 의식·경쟁하면서 탄생한 쌍생아(雙生兒)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 남북한 헌법제정 과정의 특징은 남한은 제정 절차가 국회 내부에 제한되었지만 과정이 매우 논쟁적이었다. 반면 북한은 인민의 완전한 의사 구현을 위한 ‘절차’에 강조점을 두었지만 헌법 내용에 대한 ‘반대’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남북한 헌법은 모두 민주주의를 담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해 한국은 국민주권을, 북한은 인민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반영한 정치체제가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이고 북한은 인민민주주의다. 여기서 인민의 범주에는 부르주아, 지주 등은 제외되며, 주권은 인민이 참여하는 인민회의(Soviet)에 있다는 점에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지만(主權在民), 인민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주권이 없는 주권부재(主權不在)라는 점이 차이다.
3. 다른 헌법, 뚜렷한 차이
남한은 ‘의회의 원리’에 따라 마련된 헌법 초안은 총선거(1948.5.10.)를 통해 선출된 제헌의원으로 구성된 제헌의회에서 1948년 7월 17일 헌법을 공포했다. 이날을 우리는 제헌절이라고 한다. 이 헌법을 기초로 1948년 8월 15일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이 탄생했다. 반면 북한은 ‘소비에트의 원리’에 따라 마련된 헌법 초안이 1948년 9월8일 최고인민회의(우리의 국회에 해당)에서 인민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을 채택하고 9월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했다. 건국 정국에서 남북이 채택한 헌법의 현격한 차이는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인가, ‘착취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인가의 여부다. 자유민주의에 기반한 한국의 헌법은 포용적 제도가 착근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었고, 인민민주주의에 기반한 북한의 헌법은 착취적 제도가 착근할 토양을 제공해 주었다. 포용적 제도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생활에서 사회의 가능한 가장 광범위한 계층을 포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제도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착취적 제도는 정치 및 경제활동에서 정치적 의사 결정 및 소득 분배 과정에서 사회의 대다수를 배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제도로 광범위한 사회 계층이 배제되면서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은 필연적으로 엘리트에 속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의 경제적 권리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재산권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보장과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서 기업으로부터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여 경제 성장이 중단된다.
남북한은 건국 과정에서 제정된 헌법을 기반으로 상이한 체제를 바탕으로 체제경쟁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국가건설 이후 77년이 지난 지금 너무도 뚜렷한 성과의 차이 때문에 정통성 경쟁의 결과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는 국민이 스스로 주인이 되고자 하는 갈망을 실현할 수 있는 체제다. 즉 자유민주주의체제는 ‘나는 어떤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가 내 삶과 온갖 결정을 해 스스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을 도와주는 체제’이며, 이 체제에서는 자신은 행동하는 주체로서 기능하게 된다. 결국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 풍요와 번영, 법치, 인권과 평등, 평화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반면 북한의 공산주의 독재체제는 개인의 자유는 억압·박탈되면서 내 삶과 온갖 결정을 국가의 강력한 힘에 의존하게 되었다. 결국 이 체제에서 개인은 스스로 주인으로서의 주체(主體)가 되지 못하고 독재자의 힘에 의지해 행동하는 객체(客體)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치적 성과는 경제적 성과에도 직결되었다. 남북의 경제적 성과를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는 국민총소득(GNI)이다. 2023년 한국은행이 추계한 GNI를 보면 한국의 GNI가 북한의 GNI에 59.8배이며, 1인당 GNI를 기준으로 하면 29.7배에 달한다. 이런 성과의 현격한 차이는 대한민국 체제는 성공했고, 북한 체제는 실패했다는 사실로 귀결된다. 이는 건국 정국에서 우리가 선택한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헌법을 제정한 것이 옳았다는 것을 역사가 입증해 주고 있다. 따라서 후손들에게 헌법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제헌절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기 위해 이날을 국가 공휴일로 제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부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기대해 본다.
♡ 내 마음과 같은 정책후원 ♡
번호 |
제목 |
날짜 |
---|---|---|
163 | [2025년 7월] 남북한 헌법제정의 상이성과 그 성과![]() |
25-06-30 |
162 | [2025년 6월] 군가산점제 부활하나? | 25-05-30 |
161 | [2025년 5월]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자질과 덕목 | 25-05-07 |
160 | [2025년 4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국회식 연금 | 25-04-01 |
159 | [2025년 3월] 무책임한 추경과 경제 파탄 | 25-02-28 |
158 | [2025년 2월] 보수의 재건 | 25-02-03 |
157 | [2025년 1월]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불씨를 밝힙시다! | 25-01-06 |
156 | [2024년 12월] 디지털 시대의 근로시간제도 개혁해야 | 24-12-03 |
155 | [2024년 11월] 노인 연령 상향과 노인복지 | 24-11-04 |
154 | [2024년 10월] 한반도선진화재단 창립 18주년 : 성찰과 통찰 | 24-10-02 |
153 | [2024년 9월] 가계부채 왜 줄지 않는가? | 24-09-04 |
152 | [2024년 8월] 일본이 한국보다 합계출산율이 높은 비결 | 24-08-01 |
151 | [2024년 7월] 우리나라 상속세의 모순과 과제 | 24-07-04 |
150 | [2024년 6월] 국민연금기금 운용방식 바꾸어야 한다 | 24-06-03 |
149 | [2024년 5월] 3고 현상과 한국의 대응 방안 | 24-05-02 |
148 | [2024년 4월] 안중근이 주는 시대적 교훈 | 24-04-01 |
147 | [2024년 3월] ‘3·1 독립운동’과 자유통일 | 24-03-04 |
146 | [2024년 2월] 생성 인공지능과 HBM 반도체가 인공지능 신(新) 애치슨 라인을 만든다 | 24-02-06 |
145 | [2024년 1월] '품격 있는 대한민국'은 계속되어야 한다 | 24-01-04 |
144 | [2023년 12월] "9.19 남북한 군사합의" 파기: 이제는 북핵 대비에 전념해야 | 23-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