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un issue & focus 6월호
국민의 힘이 지방선거에서 이겼다. 광역자치단체장 17곳 중 12곳에서의 승리는 여소야대 국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 도움을 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국정운영 방향을 밝혔다. 그러면서 오늘의 시대 증후군을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로 축약했다. 나아가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반지성주의’ 타파를 위해서 “과학과 진실을 전제로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을 주문했다.
- 반지성주의 의미와 사례
‘반지성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지성, 지식인, 지성주의를 적대하는 태도와 불신을 말한다.” 반지성주의자들은 과학의 바탕에서 본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있는 사실들을 모른 체 하거나 부정하면서 오히려 이를 차단하거나 공격대상으로 설정한다.
현실에서 ‘반지성주의’ 행태를 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거나 사실이나 진실을 왜곡하면서 자기주장만 하거나 부분적인 지식을 가지고 전체를 대표하는 구성의 오류를 범하거나 상대방의 언행을 힘으로 누르거나 다수결 원칙을 내세워서 소수의견을 무시하는 행태 등이다. 말과 행동이 다르거나 거짓을 진실처럼 애기하거나 사실과 다른 소문을 퍼뜨려서 대중을 속이거나 갈등을 유발하는 행위 역시 ‘반지성주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반지성주의’는 어느 특정 이념이나 진영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관계는 물론 어느 조직, 어느 관계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최근 들어서 반지성주의자들은 진실이나 합리성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탈진실 방식으로 대중에게 접근한다. 감성적 접근이 이성이나 합리성보다 호소력이 크기 때문이다.
‘반지성주의’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네편 내편을 가르기 때문에 박애 배려 포용 협동의 공동체 정신을 약화시킨다. 편을 나누는 것은 자기편만으로 시야를 좁힘으로서 객관성을 잃게 한다. 그 결과 자기들은 잘못하지 않고 옳은 일만 하고 있다는 과대망상증에 빠지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실에서 ‘반지성주의’ 사례는 많다. 지난 정권에서도 적지 않았다. 촛불정신을 내세워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으로 두 명의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 3명의 국정원장 구속은 법적 절차를 거쳤다고 하지만 독단과 아집의 ‘반지성주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조국사태에서 보듯이 편가르기와 진영논리, 자기들의 주장만 강조하고 타인의 말을 듣지 않는 진영논리, 내로남불, 편가르기 역시 전형적인 ‘반지성주의’ 행태이다. 좀 더 넓은 의미로 보면 표만을 의식한 음해성 선거운동, 지나친 포퓰리즘 정책, 젠더갈등과 세대갈등을 유발하는 정치인, 그리고 사실과 진실을 구분하지 않고 특정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팬덤 현상도 ‘반지성주의’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비판적 성찰 없이 방송이나 언론에 나와서 정치권력을 옹호하는 지식인들의 언행도 그렇다.
‘반지성주의’의 구체적 사례로 헌법 개정 시도를 들 수 있다. 나라의 기본가치를 바꾸는 것은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 나라의 최고 규범인 헌법 개정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하여튼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려는 헌법 개정은 실패했다. 그러나 초중등 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민주주의 발전’으로 수정했다.
제도나 행정은 적용기준이 같아야 한다. 같은 잣대라도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면 이것도 또한 ‘반지성주의’이다. 5대 원칙과 7대 원칙의 인사기준 적용이나 집회의 경우에 자기편이 하면 괜찮고 다른 편이 하면 잘못이라는 ‘내로남불’ 행태도 그렇다. 이렇듯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발상은 자유를 억제하고 ‘반지성주의’를 유발하는 동인으로 작용했다. 정책결정과정에서 숙의과정 없이 자기들의 주장만 옳다고 밀어붙이는 행태 또한 ‘반지성주의’라고 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부동산 정책 역시 ‘반지성주의’ 정책의 산물이다. 시도교육감들의 자사고 재지정 취소에 대해 법원이 위법하다고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2025년에 특수목적고를 일괄 폐지키로 한 교육정책 역시 ‘반지성주의’이다.
의회운영에서 대화나 협의 없이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고 다수결 원칙을 내세워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행태 역시 ‘반지성주의’ 이다. 지난 2년간 의회운영은 다수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전횡했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면서 소수당인 야당 의견은 무시됐다. 입법과정에서도 소수당은 설 자리가 없었다. 이렇게 밀어붙인 법률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대표적인 입법만 봐도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 중대재해법, 화평법, 화관법, 기업규제 3법(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통합감독법)을 비롯한 시장기능과 기업 활동을 억제하는 각종 기업규제법을 개정했다. 이런 기업규제는 재벌과 대기업을 죄악시 하는 시각에 기인한다. 우리나라의 기업규제정책은 미국 바이든 대통령 방문 시에 보여준 기업중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기업이 경제안보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대기업을 적대시하고 기업 활동을 옥죄는 ‘반지성주의’ 행태로 일관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을 ‘반지성주의’로 마무리했다. 대통령 임기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입법절차를 무시한 검찰청법 일부개정법률과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뜻하는 ‘검수완박법안’)을 군사작전 하듯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국회의원의 위장 탈당, 회기 쪼개기, 국무회의 시간 변경 등 온갖 꼼수가 난무했다. 이처럼 다수의석의 힘으로 적법절차를 무시하는 ‘다수의 힘에 의한 지배’의 횡포는 협치를 어렵게 하고 건전한 의회활동을 가로 막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법부 역시 ‘반지성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의의 보루로 일컬어지는 법원마저 특정 이념에 휩쓸리면서 정치적 중립이 흔들렸다. 사법부 내의 특정 연구회출신들이 요직에 배치되고 이들과 입장이 다른 사람은 배제됐다.
- ‘반지성주의’에서 ‘지성주의’로
윤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제시한 가치는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이다. 이 중에서도 자유를 35회나 언급한 것은 그만큼 자유의 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유는 추상적이고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있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자유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숨 쉬던 사람이 숨을 잠간이라도 멈추면 힘들 듯이 자유도 마찬가지이다. 자유를 누리다가 조금이라도 제약을 받으면 불편하고 힘들다.
우리는 지난 3년간 코로나 팬데믹 과정에서 자유 제한이 얼마나 생활을 불편하게 했는가를 실감했다. 개인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학교도, 직장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공부하고, 집에서 일하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사회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코로나 확진자는 동선 추적으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았다. 소상공인을 비롯한 영세사업자들은 영업의 자유가 제한됐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표현의 자유까지 억압했다. 5.18 역사왜곡처벌법 및 5.18 유공자법 재개정과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을 통한 대북전단살포 금지가 그 사례이다.
헌법은 신체의 자유에서부터 학문예술의 자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직업선택의 자유는 실업으로부터 자유, 빈곤으로부터의 자유와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경제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에 연결된다. 문화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 정부의 간섭과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야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다. 그러나 ‘편가르기’, ‘진영논리’ ‘내로남불’과 같은 ‘반지성주의’가 활개를 치면 이 같은 인간의 기본적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자유는 반지성주의로부터 해방되어야 꽃피울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앞에 놓인 과제는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교육, 노동, 연금개혁은 더욱 어렵다. 그렇다고 피해 갈 문제도 아니다. 이런 문제를 풀어가려면 우선 갈등에서 화합으로 분열에서 통합으로 나가야 한다. 국민 개개인의 차이와 다름을 개성과 소질로 발전시켜서 화합을 도모하고 이를 하나로 묶어서 국민통합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나아가 ‘반지성주의’를 ‘지성주의’로 바꿔나가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우선 정직, 신뢰, 시민의 품성 고양을 통해 사회적 자본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 반면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거짓과 위선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에 앞서 정치적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위선과 거짓은 도덕적 문제로 준법정신과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고 과잉이기주의를 촉발함으로써 공동체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성주의’는 개인의 인권과 자유와 창의를 유발하면서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하는 ‘공동체자유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한편 ‘반지성주의’를 방지하는 노력도 펼쳐야 한다. 그 주체의 하나가 건전한 시민사회이다. 시민사회가 앞장서서 진실과 과학에 바탕한 합리적 대응으로 거짓과 허위에 맞서야 한다. 정치인을 비롯한 오피니언 리더 역시 소통, 협치, 여론수렴을 통한 정론을 세움으로서 정보왜곡을 차단해야 한다. 사실의 호도나 왜곡, 거짓과 허위에 대해서는 당당히 맞서면서 진실을 말해야 한다.
‘지성주의’가 복원될 때 개인은 자유를 누리고 대한민국은 선진 모범국가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나라는 든든한 국방안보로 국민이 안전한 나라, 자유와 창의가 꽃피고, 교육·과학·기술이 발전을 이끌고 시장경제가 성숙한 나라이다. 부정부패 없는 정직하고 깨끗한 나라, 사회정의가 살아 숨 쉬는 나라이다. ‘지성주의’가 발휘될 때 자유 인권, 포용 연대, 박애의 인류 보편 가치를 존중하는 모범 선진국가로 다시 태어나서 이웃나라와 세계로부터 사랑과 존경받는 품격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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