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un issue & focus 5월호
- 서언: 권력공간의 변천사
역사적으로 모든 지역과 나라에서 권력공간은 다양하게 존재해왔다. 죽은 자의 공간은 거대한 돌과 봉분의 흔적으로 남았다. 피라미드와 적석묘와 고인돌, 인도의 타지마할, 그리고 왕들의 능(陵)이 그러하다. 중국의 진시황 병마용은 거대한 지하궁전으로 축조되고 수천년의 역사를 안고 묻혀 있다가 고고학의 발전에 힘입어 20세기 후기에 다시 인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신들의 공간도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그리스 아테네와 로마, 그리고 페르시아와 남미 잉카문명 마야문명 등에서 권력자들은 신의 이름을 빌려 거대한 축조물로 위용을 떨치고 과시하였다. 종교의 정교함이 더하면서 신들의 집은 더욱 화려하고 웅장하게 변해갔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시작하여 로마의 성베드로 사원,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사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아직도 건축 중인 천재건축가 가우디의 성가족교회, 무수히 남아있는 불교사찰들이 그러하다.
다음으로 권력자들은 직접적인 자신의 공간 만들기로 나아갔다. 궁전의 건축이 그러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권력자들은 당대의 재력을 총동원하여 위세를 떨치고 영원히 살 것처럼 궁전을 지었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 중국의 자금성, 우리나라 조선 왕조의 궁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과도한 집 짓기는 국고를 탕진하고 왕조를 멸망시키고 혁명을 유발했다.
이 모든 권력자의 공간은 시대적인 역할을 다한 후에 어김없이 국민에게 개방되어왔다. 죽은 자의 공간은 그의 시신과 유산을 담아서, 신들의 공간은 신의 이름을 빌린 종교예술의 유산으로, 그리고 절대왕정의 궁전은 자신들의 삶의 현장을 그대로 남기는 형태로 개방되었다. 피라미드, 타지마할, 베르사유 궁과 자금성이 그랬다.
좀 더 나아가서는 제국의 궁전들이 문화콘텐츠로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박물관으로의 용도변경이 그러했다.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이 그렇다. 제국주의 시대에 권력자는 아무 거리낌 없이 약탈문화재로 그 공간을 채웠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문화유산과 예술품으로 권력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켜나갔다.
권력자의 핍박을 피하여 청교도가 이주하여 건국하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표방한 미국의 경우에는 제국의 역사가 부재하였다. 당연히 거석문화나 궁전(宮殿)이 없다. 그냥 “집”으로 불렸다. 세계최강 미국 대통령의 집이 <하얀 집>(White House)이다.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어 임기제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임기 중 일하는 집이다. 오랜 역사유산이 없으므로 이를 대체하는 문화공간을 지어나갔다. 미국의 스미소니언 인스티튜트,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이 예이다. 모든 하드웨어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기반을 둔 문화예술유산으로 채워나갔다. 영국도 의회주의가 정착하면서 입헌군주제 국가임에도 국민대표의 공간인 의사당은 <의회의 집>(Houses of Parliament)로 부른다. 우리도 민주공화정치체제를 표방한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은 <푸른 기와집>(Blue House)로 불렸다. 왕조시대의 궁과 다른 표현이다.
- 청와대가 지니는 역사 문화적 함의
위치적으로 청와대는 일본제국주의 시대 구 조선총독의 관저에서 출발, 일제의 패전 철수 후에는 미군정사령관 관저로 쓰이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부터 이승만 대통령이 집무실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당시엔 조선시대의 지명에 따라 경무대(景武臺)로 불렸다. 이후 윤보선 대통령이 경무대 본관의 청기와에 착안하여 청와대로 개칭하였고 노태우대통령 시기에 지금의 본관을 신축하였다.
사실 구 조선총독의 관저는 경복궁의 뒤편에 배치함으로써 조선의 국왕을 감시하는 구조가 아닌가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 건물은 경복궁 앞에 건축하여 고종황제가 근정전에서 앞을 바라보면 시멘트로 바른 총독부의 밋밋한 뒷벽이 거대한 장벽처럼 시야를 가리는 구조였다. 울분을 토하지 않았겠는가! 이 총독부 청사를 김영삼대통령 때 철거하여(1995.8,15.) 민족정기의 회복 기치아래 경복궁의 원형을 복원하게 되었다.
□ ‘권력자의 공간’에서 ‘국민의 공간’으로 전환
이제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함께 구 조선총독의 관저로 시작된 권력자의 자리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순간이 되었다. 청와대 개방이라는 역사적인 시점에 권력시대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건물이 전면적으로 국민의 공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민주주의의 발전사로 이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도가 권력을 제왕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제헌헌법이래 역대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의 역사를 부정한 적이 없다. 오히려 운영과정에서 인(人)의 장막이 만들어지면서 대통령을 제왕적인 모습으로 변질시켜온 면이 없지 않다. 권력이 부패하거나 과도하게 집중될 때 제도를 형해화(形骸化)하고 공간의 벽을 높게 만들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권력자를 고립시키고 국민과 멀어지게 만들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하게 만드는 결과가 이어졌다. 집(House)이 궁전(Palace)로 변질되었다. 대통령의 공간이 국민과 차단되면 소통의 차단으로 이어진다.
이제 청와대의 개방은 대통령이 권력의 담벼락 안에서 나와 국민 곁으로 다가감이요 권력자의 공간이 국민의 공간으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대통령이 명실상부하게 주권자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으로서 공간적 이격이 아닌, 주권자 곁으로 다가감을 의미한다.
- 청와대 개방의 의미
먼저 공간적으로는 ①폐쇄적 공간에서 개방적 공간으로 바뀜이다. 권력자가 권위적일수록, 권력의 집중이 강할수록 공간은 폐쇄적으로 운영된다. 절대 권력은 역설적으로 권력자의 보호와 경호를 강화하게 만들었다. 때로는 권력의 찬탈을 막기 위하여, 때로는 민중의 봉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권력은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발전시킨 나라일수록 권력공간의 담벼락은 낮아져갔다.
다음으로 ②청와대 개방은 정치사적으로 ‘단절된 균형(punctuated equlibrium)’의 새로운 시점(始點)이 됨을 뜻한다. 권력공간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역사적 제도주의의 관점에서는 제도의 변화가 새로운 균형을 정착시켜나감이다.
셋째로, ③문화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정치공간이 문화공간으로 바뀌는 또 하나의 바람직한 사례를 남기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모든 궁은 지금 박물관으로 용도변경을 하였거나 혹은 그자체로 역사적인 문화유산공간으로 개방되고 있다. 덕수궁 석조전을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으로 사용하며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건물도 정치공간에서 행정공간을 거쳐 지금은 문화공간이 되었다. 정치적 혼돈기에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머물렀었고, 경제가 중심이던 때는 경제기획원이 있었다. 그 후 문화체육관광부 청사를 거쳐 2000년대 초에 지금의 역사박물관으로 변경되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반세기는 정치가치가 자연스럽게 경제가치로, 다시 문화가치로 발전해 온 역사라면 그 살아있는 증거들이 관청의 역사이기도 했다. 정부청사가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이전한 이후 마침내 청와대가 국민공간화됨으로써 어쩌면 그 종지부를 찍은 것일지도 모른다.
- 개방된 청와대의 활용 방안
개방된 청와대는 국민과 외래관광객 모두에게 전면 개방하되 다음과 같이 몇 가지 방향을 가지고 단계별로 공간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담아나가면 좋을 것이다.
먼저 현대 한국정치의 역동적인 역사공간으로서의 가치와 유산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중심제 정치체제를 이어온 한국정치사의 특성상 청와대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권력의 심장부였다. 여기서 격동의 한국 정치경제사회의 변화를 총괄하고 수시로 밀려드는 국내외적인 도전과 위기에 응전하며 전진해온 역사의 증거공간이다. 청와대 본관을 그와 같은 의미공간으로 가꿀 수 있을 것이다. 세종시에 위치한 대통령기록관(Presidential Archives)의 서울분관 역할을 부여할 수도 있고 대통령박물관(President Museum) 공간으로 꾸며도 좋겠다.
둘째로는 민주주의의 실천과 산업화 발전의 증거공간이 되어야 한다. 격렬한 정치적 논쟁을 거치면서도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비틀거리는 것 같았지만 전진해왔다. 국내외적으로 숱하게 경제적인 위기가 닥쳐왔지만 이 또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치열하게 극복해 나감으로써 오늘날 3050클럽에 이르는 경제적인 위업을 달성해왔다. 청와대 영빈관의 통로 등 다양한 공간들을 이러한 역사적인 파노라마 전시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는 미래 대한민국의 방향을 성찰하고 당대의 국민과 미래세대에게 교육과 교훈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핵공간이 청와대가 아니던가. 이제 글로벌 시대로 나아감에 있어 초연결 투명사회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의식수준에 걸맞게 미래 대한민국의 비전과 도전의 꿈을 심어주는 공간으로서 관저 혹은 여민관 등을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넷째로는 청와대의 모든 시설과 조경과 자연을 포함한 공간을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 청와대 개방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내용이 다양하게 나왔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2천억원으로 분석하였고 한국경제연구원은 연간 방문객효과로 국내외 관광객 1,740만 여명, 내외국인 관광지출 효과 1조 8천억원으로 예측하였다. 분석의 기준과 방법에 따라 다양한 액수가 산출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질적 고도화를 이룸이다. 최고의 품격과 최상의 품질을 보장하는 문화관광상품으로 보여주고 서비스하고 차별화된 명품 기념품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 지속가능한 글로벌 코리아 플랫폼의 중심이 되길
감춰있던 공간이 개방됨으로 인한 반사적인 상승효과가 한동안 이어지고 나면 정지된 공간을 역동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것은 공간예술에 더하여 행위예술의 장으로 상시적인 명품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최고의 관광 상품을 유지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한민족의 면면히 이어온 역사문화자원을 첨단기술과 연계한 융복합 문화관광상품으로 무한히 창출해낼 수 있다. 특히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의 접목을 비롯한 초연결 초고속 글로벌 공유시대에 한국문화 글로벌 팬 플랫폼(K-platform)의 중심공간으로 발전시켜나갈 수도 있다.
플랫폼은 복합현실시대에 네트워크의 중심이다. 고도화된 자유민주자본주의 경제사회에서 플랫폼은 다중 복합적인 중심이 복수로 공존한다. 개방된 청와대의 공간과 경관과 변화된 기능과 시스템이 비정치적인 영역에서 이러한 초연결의 다중복합네트워크 센터 중의 하나로 기능할 수 있다. 그와 같이 되도록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개방된 청와대공간의 정치 경제 문화적인 용도변경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 맺음말 : 부패한 권력의 종식과 상선약수(上善若水)가 구현되는 정치
권력의 심장이 부패하면 정치 패혈증을 유발하고 이는 국가사망의 지름길이 된다. 정치의 최고의 사명은 가치를 권위 있게 배분하는 일이다. 부패한 권력은 권위를 상실하고 권위를 상실한 권력은 가치의 배분에 실패하게 된다.
권력의 부패가 구조적으로 고착될 때 더 이상 정치는 작동하지 않고 국가위기를 초래한다. 이번 청와대의 개방이 권력의 고임으로 인한 정치의 흐름을 막고 부패를 확산하는 위기로부터 벗어나고, 부디 물과 같이 정치의 흐름도 순리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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