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un issue & focus 11월호
박광무 한선재단 문화관광정책연구회장, 성균관대 초빙교수
- 오징어게임의 배경
오징어게임 출연자들은 한마디로 거대한 현대사회 군상들의 모임이다. 그 숫자는 456명이었다. 456억 원이라는 거액의 판돈을 놓고 한판 승부를 건 게임이 시작된다. 한결같이 똑같은 헐렁한 녹색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다. 누적된 빚에 억눌린 사람들. 찌든 인생의 빚을 갚기 위해 그들 모두는 여섯 가지 게임에 참가한다. 하나의 게임에서 이기면 다음 게임에 참가할 자격을 얻는다. 그러나 이기지 못하면 죽음이 따른다. 빚 때문에, 빚을 갚기 위하여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사느냐 죽느냐의 또 다른 게임에 내몰린 빚진 자들의 모임. 그것이 오징어게임 참가자들의 운명적 실체이다.
까마득한 기억 속에 달동네가 있었다. 수돗물이 안 나와서 구청에서 물차로 배급하는 물을 받기 위해 달동네 엄마들은 언덕배기 산동네의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돌짝밭같은 길 위에 양동이를 끝도 없이 늘어놓았다. 따가운 햇살을 받으면서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물차의 호스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을 받는다. 그 물로 엄마들은 아이들의 밥을 해서 먹였다. 빨래도 그 물을 아껴서 하였다.
달동네의 언덕배기는 또한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여기에서 아이들은 길바닥에 오징어 모양을 그려놓고 편먹기를 하였다. 인간 내면의 깊이에는 투쟁과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잠재된 무의식이 존재한다. 그 무의식이 상대를 이기고 내가 살아야 하는 게임행동에서 표출된다. 딱지치기도 마찬가지이다. 세모네모로 접어서 만든 커다란 종이딱지. 상대편의 딱지를 내 딱지로 힘껏 내리쳐서 넘기면 내가 이긴 것이고 상대편의 딱지를 못 넘기면 내가 지는 거다. 인생은 단순히 이기느냐 지느냐로 행복하냐 그렇지 못하냐로 판가름 난다.
누구든 해맑은 동심을 가지고 자연 속에서 살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산업화를 겪으면서 그 동심은 도시로, 도시로 내몰렸다. 도시가 포화상태가 되면서 달동네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그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보지만 성공의 자리에 다가가기에는 너무나 길이 아득하다. 밤잠을 줄이고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면서 애써보지만 돈을 벌 방법이 없는 많은 실패자(loser)들이 생겨났다. 하루 종일 막노동으로 땀 흘려서 번 돈을 밑천 삼아 나도 한꺼번에 큰돈을 잡아볼 수 없을까라는 유혹에 빠진다. 그들은 낮 동안에 힘들게 번 돈을 ‘뽑기’에서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다음날 또 힘들여 일당을 벌었다. 이번엔 경마장에서 달리는 경주마에 판돈을 다 걸었다. 내가 건 경주마가 먼저 결승선에 도달하면 이겼거나 그렇지 않으면 또 판돈을 모두 날렸다. 낙엽이 뒹구는 경마장 가는 길은 낙엽 대신 떨어져 나간 마권(馬券)이 낙엽처럼 나뒹굴고 나의 꿈도 떨어진 마권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인생의 낙오자가 되어버린 자들이 456명이나 모였다. 한결같이 내 인생을 짓누르는 빚의 무게를 어떻게든 떨쳐낼 수 있을까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서.
- 오징어게임의 잔혹성
게임에 참가한 자들은 모두 산업화 초기시대의 집단생활을 다시금 체험한다. 그들에겐 똑같이 헐렁한 트레이닝복(training clothes)이 주어졌다. 그리고 똑같은 철제 침대가 제공되었다. 아침 기상나팔 대신에 녹음된 클래식 음악소리를 듣고 잠을 깨었다. 이제부터 그들에겐 죽느냐 사느냐를 판가름하는 게임이 펼쳐진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게임에서 술래가 돌아보는 순간에 움직이면 죽음이다. 술래의 눈을 피해서 5분 동안에 목표지점까지 무사히 도달하는 자가 살아남고 다음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죽음이냐 살아남느냐’라는 처절한 생존게임이 축구장 만한 넓은 운동장에서 펼쳐진다. 동료가 움직일 때마다 금속성 총소리가 울리고 빨간 핏방울이 선혈이 되어 낭자하게 튀어 오른다. 인형이 돌아볼 때 움직인 자는 섬뜩하고 매서운 인형의 눈동자에 포착되는 순간 처절하게 죽어간다. 소름 끼치는 동료 참가자의 죽음을 곁에 두고 나는 악착같이 살아남고 전진해야 한다.
게임에 익숙해지면서 오래전에 날 괴롭히던 자를 조롱하면서 즐길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이 게임이 중독성인 것은 죽음과 삶의 기로에서 다음으로 전진한다는 짜릿한 쾌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편으로 이어진다.
동물의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먹고 먹히는 순간의 연속이다. 인간세계가 어쩌면 동물의 세계 이상으로 더욱 잔혹하지 않는가를 암시하는 것 같다.
- 오징어게임의 분석
작품에서 오징어게임을 움직이는 실체는 빅 데이터를 보유하고 이를 조종하며 모든 참가자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는 대형(大兄 Big Brother)이다. 영화에서 게임을 운영하는 얼굴에 가면을 쓰고 붉은 복장을 한 자들은 그 하수인들이었다. 통제자의 실체는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커다란 확성기로 전해지는 주최 측의 기계음 같은 차가운 말소리는 운동장에 둘러선 참가자들을 그 자체로 주눅 들게 만들고 있다. 살아서 돈을 쟁취해야만 한다는 더욱 절박함에 내몰리고 있다. 통제자는 참가자들의 신상정보는 물론이요 과거의 행적과 개개인의 빚의 규모와 내용까지를 다 꿰뚫고 있다. 소름 끼치는 정보 파악에 피 감시인들은 고양이 앞의 쥐새끼처럼 꼼짝 말라는 상태에 이른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1949년에 출간한 소설 『1984』에 따르면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 당(黨)은 허구적 인물 빅브라더(Big Brother)를 내세워 당원인 개개인의 삶을 감시하고 어디에서도 개인의 자유는 허락되지 않는 사회를 묘사했다.
이 감시자는 시대가 흐르면서 거대한 권력집단 즉 일당독재 혹은 절대다수를 차지한 정당이기도 하고 산업시대의 거대한 기업이기도 하였다. 정보화의 진전과 4차산업혁명 이후 초연결시대로 이행하면서 그것은 슈퍼컴퓨터를 장착한 빅데이터 운영주체로 바뀌고 있다. 이 작품의 실체가 바로 그러한 슈퍼컴퓨터를 지닌 보이지 않는 권력자이다. 그 이상하고 음산한 권력자에 비교하여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회의 실패자(loser)들은 너무나 무기력한 존재이다. 권력자가 제시한 게임의 규칙에 대하여 오로지 판돈을 내가 거머쥐어야만 한다는 절박감에서 아무 저항도 못하고 이의 제기도 없이 규칙을 받아들이고 게임의 포로가 되었다. 이상한 권력자는 게임을 통하여 한 사람 한 사람 무자비하게 총으로 쏘아 죽이면서 크로노스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나는 이 이상한 게임을 즐기는 보이지 않는 권력자를 증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돈에 내몰린 서글픈 빚쟁이 군중들이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다른 이는 몰라도 나만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그 몸짓과 눈빛이 애처롭다.
- 오징어게임의 시사점
지금 21세기 초연결시대에 이 권력자는 거대한 플랫폼기업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를 통제하는 더 거대한 권력집단일수도 있다. 그들은 개개인의 모든 정보를 다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내가 잠든 사이에도 나의 정보들은 자료가 되어 거대 권력자의 슈퍼컴퓨터 기록실에 무한정 쌓여간다. 그 데이터는 나에게 상품광고로, 융자를 받으라는 유혹의 전화로, 또 일상의 소식과 생활환경이 되는 날씨정보도 함께 제공하면서 되돌아 다가온다. 나도 모르게 내 일상이 슈퍼컴퓨터를 장착한 인공지능(비서)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누구든 오징어게임의 참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의 속성상 게임규칙을 만든 자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뽑기에서 아무리 뽑는 자가 발버둥 쳐도 제작자가 정해놓은 확률치에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경마는 차라리 경주자의 기량에 따라서 성공확률이 조금 더 높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조차도 승부조작에 걸리면 역시 헛일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반복 노출의 빈도가 높은 어휘가 상위순위에 오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노출빈도를 조작하는 또 다른 알고리즘의 작동에 의하여 지배당할 때 선량한 노력자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하며 오열하다가 쓰러지고 만다. 이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권력자는 과연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상황을 즐기고 있는가? 무수한 희생자의 피를 발판으로 더 많은 돈을 벌면서 음습한 미소를 띠고 있는가?
코로나바이러스19에 의한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모든 사람들이 자포자기로 내몰리는 상황이 확산되었다. 그것이 오징어게임과 같은 이상한 영화, 드라마 같은 영화에 폭발적인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설정이 영화 <기생충>과 어쩌면 판박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국인의 기호에 맞춘 드라마로 분석된다. 한국적인 정서에는 어쩌면 잘 맞지 않는 영화 같은 드라마를 이렇게 절묘하게 맞춤형으로 제작하였을까! 탄복하게 된다.
거대한 넷플릭스가 글로벌 네트워크와 2억 13백만 명(2021.10)의 가입회원이라는 막강한 수요자를 배경으로 상업성 드라마를 제작비를 대고 만들어냈다. OTT 시장의 강자로 군림한 넷플릭스는 1년 전의 7억 9천만 달러 수익에서 2021년에는 그 2배인 14억 5천만 달러를 벌었다. 한국인의 열정과 한국 영화계의 성실함과 창의와 강력한 경쟁력이 넷플릭스를 움직였고, 이러한 영화를 제작하면서 거대 자본과 네트워크를 지닌 플랫폼기업이 맞물려 돌아간다.
- 대응전략
시대의 흐름이 거대한 포털사이트와 플랫폼기업이 지배하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 이것은 정치권력의 위협과는 또 다른 위험성을 잠재하고 있기도 하다. 소비자 집단이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당면한 과제가 되고 있다. 해답은 참여에서 찾아야 한다. 참여는 자유의 보장에서 출발한다. 참여는 정치적 참여, 주주로서 참여,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일도 참여의 장이 만들어지고 구성원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다. 무관심집단이 증가하고 이를 권력자와 빅데이터 관리자가 간과하고 넘어간다면 말없이 바라보던 다수 군중은 나와 전혀 무관한 관리자와 권력자가 만들어놓은 게임의 규칙에 속수무책으로 따라가야 하고 그 규칙에 종속되고 만다. 그러면서 아무리 게임과 규칙을 잘 만들어 놓았고, 이 게임에 참가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을 한다고 해도 결국은 더욱 가난해지고 빚을 더 떠안게 되고 마침내 죽음이라는 영원한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참여 없는 피동적인 군중의 실상이 이렇게 허망하게 드러난다. 내가 그냥저냥 남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 따라가면서 불나방처럼 불빛 따라가서 소멸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적극 참여하여 나와 동료들에게 적용될 규칙 제정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며 때로는 관철하기 위하여 투쟁도 불사할 것인가를 결단해야 한다.
능동적인 참여 없이 만들어진 규칙에 내몰리는 삶은 자유가 없는 피동적인 구조로 고착된다. 그것을 용납하고 말 것인가? 우리 앞의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할 때 공동체의 자유를 존중하는 정치권력과 포털 사이트와 플랫폼 기업이길 촉구하면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개운치 않은 결말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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