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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국가정보원의 집행검 ‘국가보안법’
 
2023-03-09 12:27:54

‘리니지’ 게임에서 ‘진명황의 집행검’은 최강의 아이템으로 꼽힌다. 필자는 리니지 게임을 전혀 모르지만, ‘집행검’은 게임 중에 얻기도 워낙 어려운 데다 압도적 성능을 지니고 있어 실거래가가 2억 원에 육박하는 아이템이라고 한다. 국가보안법이 사라져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필자의 눈에는 국가보안법이야말로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집행검이다.

국가보안법의 위헌성을 짧은 지면에 언급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보안법 제5조(자진지원·금품수수), 제6조(잠입·탈출), 제7조(찬양·고무 등), 제8조(회합·통신 등)까지 주요 조항들의 첫머리에 붙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조문만 보더라도 국정원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이용하기 좋을지 짐작할 수 있다.

국정원과 경찰이 지난 1월 18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를 이유로 민주노총 본부와 일부 산별노동조합 사무실 등 10여 곳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2월 23일에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남본부에도 국정원과 경찰이 요란한 압수수색을 벌였고, 국정원 직원이 금속노조 경남본부의 규탄 기자회견을 기자인 척 사찰하다가 적발되기까지 했다. 국정원의 이같은 수사 행태에 대해 시민사회는 ‘보여주기식 압수수색과 언론플레이’를 통해 2024년으로 예정된 대공수사권 이관을 되돌리려는 ‘기획’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1) 혐의의 사실관계나 경중과 무관하게 비밀정보기관인 국정원 직원들이 기관의 로고가 박힌 점퍼를 버젓이 입고 나타나 고가사다리차까지 동원한 압수수색을 벌이는 모습만으로도 대공수사권을 사수하려는 국정원의 ‘무력시위’로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 아니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정원의 원훈이 무색하다.

국정원발 ‘간첩사건’을 구실로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에서는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의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거나 국정원법 개정 취지와 목적을 무력화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12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국정원의 베테랑 대공수사요원들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만약 이게 아무런 대책 없이 경찰로 이관될 경우 우리 스스로 대간첩 작전에 무장해제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철수 의원도 지난 1월 13일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을 되찾아 주고 전문 사이버 방첩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이 정당, 노조, 시민단체 등의 지하조직과 오프라인을 통한 첩보 공작을 교묘히 배합하고 있다”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대통령실은 ‘관계자’의 입을 빌어 국정원-경찰 합동수사단 신설이나, 국정원 직원의 경찰 파견이나 경찰의 국정원 직원 출신자 대거 채용 등을 통해 조사 역량을 보완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2)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미 지난해 12월 13일, 국정원의 직무에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에 대한 수사’를 포함하는 내용의 국정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3) 지난 1월 26일에는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관에 대해 ‘해외 수사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국내에 있는 경찰이 대공수사를 전담하는 부분에 대해선 살펴볼 여지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여당 차원에서 대공수사권 이관의 전면 재검토를 공식화하고, 대통령조차 국정원 개혁을 되돌리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 같다. 원세훈,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등 전직 국정원장들이 단골로 법정에 서는 나라에서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국정원을 국내 정치에 악용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시대적 과제이자 정치·사회적 합의로 진행되고 있는 국정원 개혁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국정원 개혁의 퇴행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4)

대공수사권 존치론의 빈약함을 대신하는 ‘기획’과 ‘공작’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존치론을 펴는 측의 주장을 보면, 대체로 “현재의 국내·국외 정보 통합, 정보와 수사의 통합, 경찰의 외국 내 정보·수사활동 금지, 국정원의 파일·정보·노하우와 정보 및 협조망 활용이 불가능하다는 점, 경찰의 능력 미흡 등으로 국가대공수사능력을 현저히 약화시키고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을 고무시킬 위험이 크다”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5) 그런데 그 논거들에서 헌법과 법률에 바탕을 둔 입법적 근거는 매우 빈약하다. 주로 북한의 ‘대남 공작’과 ‘무력 도발 위협’, ‘엄존하는 간첩’, ‘테러’와 ‘사이버 위협’ 등 우리의 안보환경의 특성 때문에 국정원에 대공수사를 맡겨야 한다는 게 논거의 핵심이다. 심지어 “간첩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잡지 못하기 때문에 없어 보인다”며 “간첩을 못 잡는 이유는 무능 때문이 아니라 변모된 간첩에 대응할 입법 수단이 태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강변한다.(6) 또 “국가안보사범의 또 다른 특성은 법정에서 유죄를 이끌어 처벌하기에 충분한 증거는 항상 태부족하다”며, “해외세력이나 적대국가와 연결되어 전개되는 범죄의 성격은 반대로 증거의 반은 항상 정보와 수사접근이 불가능한 적국이나 해외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7)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역설적으로 정보와 수사를 분리하고, 국내와 해외 정보 수집 활동을 분리해야 할 필요성을 드러낸다.

국정원이 정보와 수사를 모두 틀어쥐게 되면, ‘태부족한 증거’만으로도 반드시 형사처벌을 해야 할 범죄자로 단정하고, 국정원만이 접근 가능한 정보거나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정보들을 가공해 혐의를 밝힐 증거로 조작하기까지 하며, 대상자 본인, 가족과 지인들에 허위자백을 받아내서라도 혐의를 덮어씌우려 드는 ‘국가폭력’, 헌법과 법률에서 규율한 인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매우 쉽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사법부로부터 최종 무죄가 확인된 2013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피해자 유우성 씨와 가족들), 2014년 보위사령부 직파간첩 조작사건(피해자 홍강철 씨)의 경우처럼 국정원의 증거 조작이나 가족이나 지인들에 허위자백을 강요한 사실을 검찰조차 사실상 방조한 사례들에서도 알 수 있다. 국정원의 탈북자 간첩 조작을 통제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역량은 매우 취약하다. 고문 가혹행위로 탈북자를 간첩으로 조작한 국정원 조사관들은 처벌받지 않은 채 현직에서 일하고 있다.(8)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의 담당 검사였던 이시원 씨가 현재 윤석열 대통령실의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실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만 보더라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시점은 2013년 2월 25일 당시 박근혜의 18대 대통령 취임식 바로 다음 날이다. 18대 대선에서 조직적 댓글 공작이 드러나면서 위기에 빠진 국정원이 언론까지 수단으로 동원하는 ‘기획’을 벌인 것이다.

국정원은 탈북자들에 대한 정보를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탈북자들은 남한에 들어오면 반드시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와 하나원을 거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취합된 탈북자에 대한 모든 정보가 국정원에 축적된다. 그런데 국정원은 탈북자의 여러 정보를 독점한 채 간첩 조작의 직접 대상자로 삼거나 조작사건에서 탈북자들에게 허위진술을 유도하고 위증을 교사했다. 국정원은 다른 수사기관과 달리 자금 사용에 제한이 거의 없고 자신들의 요청에 따르는 탈북자들에게 금전적인 이득도 제공했다. 생계유지가 힘든 탈북자들에 대한 경제적 이득의 제공은 간첩 조작 부역에 큰 유인으로 작용했다. 정보기관의 밀행성을 이용해 불법 수사를 해도 아무런 통제도 없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에서 여동생에 대한 변호인 접견권은 완전히 무시됐다. 여동생이 독방에 구금돼 무려 6개월 동안 완전히 단절된 채 온갖 불법행위를 당했지만 이런 불법 상태에 대해 국정원은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 이미 유우성 씨는 국가보안법에 따라 ‘간첩’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밀행성을 앞세워 간첩 조작 행위에 대한 수사까지도 방해했고, 심지어 탄로가 나더라도 온갖 구실과 은폐로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이나 불이익을 피해갔다. 국정원 수사관에게 주어지는 포상금과 승진 등의 혜택은 간첩 조작의 동기가 되기도 했다.

국정원은 국가비밀정보기관이다. 그런데 이런 정보기관이 독점한 정보의 남용에 대한 외부적 통제를 전혀 받지 않고 수사까지 진행하다 보니 조직적 이해에 맞는 결과를 얻기 위해 불법적으로 정보를 왜곡하고 이용해도 견제 장치가 없다. 오랫동안 기획되고 의도된 정보 수집과 정보 왜곡은 더 큰 조작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사회운동단체나 조직 내부에 아예 ‘프락치’를 심어두고 불법 사찰과 공작을 서슴지 않아 온 국정원에 국가보안법은 마치 집행검과 같다. 집행검을 휘두르기만 하면, 분단된 현실 속에서 아직도 색깔론이 국내 정치판까지 뒤흔드는 파장을 불러올 수 있으니 국가보안법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과 여당은 바뀌지만 국정원은 불사조다.

국정원 개혁의 핵심은 결국 형사처벌의 여부를 1차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수사기관으로 남겨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대공수사권은 물론, 아직 국정원법 제4조에 남아있는 대공조사권(「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와 관련되고 반국가단체와 연계되거나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행위에 관한 정보)도 폐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근거 법률인 국가보안법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 그래야 국정원이 권한을 자의적으로 오·남용하게 되는 여지를 줄일 수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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