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nsun issue & focus 2월호
대한민국 보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보수 정치사에서 두 번째로 맞이한 탄핵 정국은 국가 리더십의 실종이라는 또 다른 비극을 초래했다. 현대사를 이끌어 온 보수의 심장은 멈췄고, 보수의 정신은 혼미하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실패를 넘어 도덕적 책임의 상실, 자유의 가치 훼손, 국가공동체라는 보수주의의 기본 원칙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무너진 보수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애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의 신중한 개혁, 러셀 커크(Russell Kirk, 1918-1994)의 보수주의 정신 그리고 박세일(1948-2017)의 공동체자유주의에서 중요한 지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서구 보수의 가치
서구 보수주의는 급격한 변화를 경계하며 전통, 질서, 점진적 개혁을 중시하는 사상적 흐름이다. 급진적인 프랑스 혁명의 혼란을 반성하며 등장한 보수주의는 현대 정치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영국의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버크는 보수주의 철학을 기초했으며, 그의 사상은 커크를 비롯한 현대 보수주의 사상가들에게 계승되었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에서 보수주의의 핵심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립했다.
첫째, 전통과 관습의 존중이다.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하는 급진적 혁명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고 경고했다. 둘째, 점진적 개혁의 원칙이다. 사회 개혁은 반드시 점진적이고 신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셋째, 사회는 유기적 공동체라는 인식이다. 각 세대는 서로 연속성을 가지며, 공동체 전체의 조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넷째, 종교와 도덕의 중요성이다. 종교는 개인의 도덕성을 형성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버크의 사상은 전통을 경시하고 이성을 과도하게 신뢰한 계몽주의와 이성주의에 대한 강한 반론을 제기하며 유럽과 미국 보수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버크의 사상은 커크를 통해 현대적으로 계승되었다. 커크는 『보수주의 정신, The Conservative Mind』에서 보수주의를 단순히 과거를 보전하는 것이 아닌, 원칙을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재구성하는 철학으로 정의했다. 그는 보수주의가 고정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시대적 필요와 상황에 따라 강조하는 원칙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았다. 커크는 보수주의의 여섯 가지 핵심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보수주의는 인간 사회의 도덕적 질서가 신적인 초월적 질서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인간의 본성은 불완전하므로 사회는 영원한 도덕적 법칙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둘째, 역사와 전통은 세대를 거쳐 축적된 지혜의 산물이며, 급진적 개혁보다는 검증된 제도를 통해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인간 사회는 자연스러운 위계질서를 갖고 있으며, 자유와 평등의 조화가 필요하다. 지나친 평등주의는 사회적 안정을 해칠 수 있으며, 모든 인간은 신과 법 앞에서만 평등하다. 넷째, 개인의 자유는 사유재산 보호를 통해 보장되며, 재산권이 보호될 때 독립적인 시민사회와 자율적인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다. 다섯째, 역사적으로 검증된 전통적 지혜와 규범은 인간의 무절제한 충동과 급진적인 권력 욕망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여섯째, 이성을 강조하는 유토피아적 사고를 경계하며, 사회 개혁은 역사적 경험과 신중함을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도자의 덕목은 신중함이다. 커크의 원칙들은 현대 보수주의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으며, 미국의 공화당과 보수적 지식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버크와 커크는 권력과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공유했다. 인간의 본성이 많은 제약이 있음을 인정하고, 권력은 반드시 견제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권력은 분산되어야 하며, 법과 관습을 통해 제약받아야 한다. 지나친 중앙집권과 국가 권력의 팽창을 경계하며, 자율적인 공동체와 전통적 가치의 보호를 강조했다. 특히 커크는 “한 나라의 제도적이고 도덕적 장치들이 경시되면 인간의 무정부적 충동이 표출되고, 모든 권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착각하면 사회는 무정부 상태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셀 커크 지음, 이재학 옮김, 『보수의 정신』) 이처럼 보수주의는 단순히 기득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과 질서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축하는 철학적 원칙을 지향한다. 또한, 지도자는 권력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야 함을 강조한다.
2. 한국 보수가 걸어온 길
① 구한말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격랑 속에서 초기 보수는 외세의 침탈을 막고 유교적 질서를 수호하려는 위정척사파로 대표되었다. 이들은 자주독립을 내세웠지만, 국가전략과 미래 비전은 없었다. 전통을 보존하고 왕조 국가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보수의 첫 번째 역할에는 충실했으나, 전통의 기반 위에서 점진적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두 번째 역할은 수행하지 못했다. 결국, 수구(守舊) 기득권에 머물렀다. 한편, 진보는 시대정신이었던 개화(開化)를 열망하며 구체제의 혁명을 시도했으나, 급진적 성향과 정치적 기반이 없어 실패했다. 보수와 진보의 시도는 모두 좌절되었지만, 이후 시대적 도전과 응전을 거치며 각각의 이념적 노선이 구체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②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크게 보수적 민족주의와 진보적 민족주의로 나뉘었다. 이승만과 김구로 대표되는 보수 세력은 반공주의와 민족 자결주의를 강조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29세에 한성 감옥에서 집필한 이승만의 『독립정신』은 한국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는 불후의 정치철학서였다. 자유, 민주, 헌법, 법치, 도덕적 의무를 강조한 그의 사상은 이후 대한민국의 국가 운영 원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반면 진보 세력은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이념을 수용하며 반봉건 및 반제국주의 운동을 이끌었다. 특히 조선공산당은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을 주장하며 북한 정권의 성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한국의 진보 세력 형성에도 깊은 뿌리가 되었다.
③ 건국
해방 정국은 좌와 우, 보수와 진보 간 죽느냐 사느냐의 체제전쟁이었다. 보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하려 했고, 진보는 공산주의 체제를 지향했다. 이러한 갈림길에서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 노선을 선택했다. 이후 보수는 반공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6.25 전쟁을 통해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사명을 수행했다. 진보는 일제 잔재 청산과 친일파 처벌을 주장하며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상했으나, 냉전 체제 속에서 이승만 정부의 강력한 반공 정책에 의해 정치적 입지가 축소되었다. 이후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등장하기까지 보수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④ 산업화
보수는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 전략을 통해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주도했다. 성장과 안보가 일차적인 국가 목표였던 박정희 정부의 부국강병(富國强兵) 정책은 위대한 경제적 도약을 이루었고, 산업화는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통치와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그림자를 남겼다. 진보는 산업화 과정에서 보수가 놓쳤던 민주주의, 사회적 평등, 노동자와 농민의 권리를 옹호하며 산업화의 부작용을 비판했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 사건은 진보 운동의 분수령이 되었고,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⑤ 민주화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다.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보수와 진보는 각각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걸출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갈등과 협력을 거듭하며 민주화 과정을 이끌었다. 보수는 안보와 경제성장을 중시하면서도 민주적 가치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반면에 진보는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 계열의 운동권 세력을 중심으로 급진적 정치 사회적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NL과 PD는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이라는 허상과 허구를 사회에 주입했다. 남시욱은 『한국 진보세력 연구』에서 이러한 현상을 급진좌파세력의 혁명적 열기로 비유하며, 그들 뒤에는 1960년대 초반부터 줄기차게 전개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지원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이들은 오늘날 제도권 정치, 민노총의 강성노조 그리고 급진적인 시민운동의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⑥ 선진화
2000년대 이후 보수의 시대정신은 ‘선진화’였다. 박세일 교수는 “보수는 산업화의 경륜과 민주화의 열정을 결합하여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도약시키는 사명이 있다”고 강조했다. 선진화는 선택의 자유 확대, 평등의 존중, 성장과 분배의 균형, 시장경제의 확대와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추진되었다. 반면에 진보의 시대정신은 ‘포용 사회’로 집약된다. 노무현 정부는 ‘사람 사는 세상’을 기치로 내걸며, 평등, 분배,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중시하는 정책을 펼쳤다. 보수와 진보는 때로 국가 발전을 위한 상호보완적 역할을 수행했으나, 동시에 극한 대립으로 사회적 갈등과 국민 분열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남겼다.
3. 탄핵정국과 보수의 위기
보수는 현재 궤멸적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탄핵 상흔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도 또 다른 탄핵 정국을 맞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후 보수는 시대정신을 대변하지 못하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으며, 보수당은 분열되었고,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반국가세력 척결과 헌정 질서 수호’라는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러나 선진 한류의 꽃을 피우는 시대에 계엄 사태를 겪은 국민은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국회의 요구에 따라 계엄은 해제되었지만, 이후 진행되고 있는 사법부의 심판과 탄핵 정국은 80년 전 해방 정국의 체제전쟁에 버금가는 대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현재 국민은 계엄 사태의 발생 원인과 과정 그리고 헌재를 비롯한 사법부의 심판 진행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가 어떠한 태도를 보이는지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어느 쪽이 더 국익을 해치는지, 누가 더 헌정 질서를 유린하는지에 대한 국민 눈높이의 평가가 진행 중이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국민의 이러한 판단은 사법적 결과를 넘어 향후 정국의 흐름과 보수와 진보의 진퇴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정책 혼선과 소통 부족으로 인해 국정을 협치보다는 대립과 갈등 중심으로 운영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독단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통치 스타일은 국민적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과 용산 참모진은 대통령을 ‘민심의 길’로 이끄는 데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윤석열 정부는 고립을 초래했고, 국정철학인 ‘공정과 상식’은 실현되지 못했다. 보수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 상실은 보수 정치 세력이 스스로 초래한 자업자득의 결과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진보 정치 세력의 책임이 더욱 엄중하다. 민주당은 국민이 부여한 다수당의 권한을 남용하며 협치를 외면했고, 결국 의회 독재로 이어졌다. 그들의 독주적 행태는 헌정사에서도 유례없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법치와 헌법 질서를 무시한 의회 폭거, 탄핵의 정치적 도구화,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탄, 정치적 편향성과 포퓰리즘적 입법 남발 등은 탄핵 정국의 근본 원인이 되었다. 특히 이재명의 민주당은 역대 어느 당보다도 가장 약탈적인 정치 행태를 보이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만약 민주당이 집권당이었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보수와 진보 모두 이번 탄핵 정국에서 큰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보수는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새로운 비전과 리더십을 확보해야 하며, 진보 역시 법치와 민주주의 원칙을 존중하는 책임 있는 정치 세력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번 탄핵 정국은 대통령 권력을 포함하여 한국 정치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4. 한국 보수가 나아갈 길
여당은 무능으로 국민의 비판을 받지만, 야당은 전체주의적 권력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국민의 혐오를 낳는다. 박세일은 20여 년 전 진보의 수구적 행태를 ‘구(舊)진보’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첫째, 비(非)자유민주주의와 민중민주주의를 추구하며, 자유와 성장보다 평등과 분배를 우선시하는 국가 개입주의를 고집한다. 둘째, 반(反)시장적, 반기업적 정서를 확산시키고, 반미·반일 노선과 친중·친북 노선을 견지하며 북한 정권의 비위를 맞추는 데 집중한다. 셋째, 언론 통제와 여론 조작을 통해 정파적 통제를 강화한다. 넷째, 자학적 역사 청산주의, 좌파적 수정주의 사관, 집단적 이기주의와 급진적 변혁주의를 강조한다. 다섯째, 입헌주의에 도전하며 전체주의적 국정운영의 성격을 보인다. 여섯째, 좌파 포퓰리즘을 통해 정치인의 단기적 이익과 대중의 지지나 인기 확보를 위해 국가의 장기 이익을 저버린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20년이 지난 오늘날 더욱 깊어지고 있다.
박세일은 보수당이 나아갈 방향으로 ‘혁신적 중도보수’를 제시했다. 첫째, 보수당은 이념과 비전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명확한 철학과 가치 체계를 기반으로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모든 정책은 당의 이념과 시대적 비전에 부합해야 한다. 셋째, 자유주의를 확대하고 다원주의 가치를 수용하며, 중도는 물론 합리적 진보까지 포용하는 통합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넷째, 과거 세대의 성취와 실패를 성찰하고 계승하며, 미래세대를 위한 혜안과 통찰을 제시해야 한다. 다섯째, 기득권을 내려놓고 도덕적이고 정직한 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해 의식 개혁과 정풍(整風)운동을 지속해야 한다. 여섯째, 보수의 승리는 단순한 권력 획득이 아니라 사상과 비전의 승리에서 비롯되며, 세계 흐름을 파악한 국정운영 방향과 방략(方略)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보수당 역시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정통 보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박세일의 공동체자유주의는 보수와 진보를 넘어 국가이념의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다. 공동체자유주의는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자유주의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아 성취이자 국가 발전의 원리로, 공동체 안에서 절제되고 책임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러셀 커크도 보수의 핵심 가치로 ‘질서 있는 자유’(ordered liberty)를 강조했다. 공동체주의는 개인의 행복과 국민통합의 원리이다. 가족, 사회, 국가, 역사 등 공동체는 보수주의가 강조하는 전통과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담고 있다. 또한 공동체주의는 모든 구성원의 존엄의 평등, 공정한 기회와 포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진보적 가치도 포함하고 있다. 공동체자유주의는 현대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자유와 창의를 바탕으로 개혁과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보수적 안정성과 진보적 혁신성을 융합하고 있다.
최근 보수당의 전략을 두고 ‘자유 우파 강화론’과 ‘중도 외연 확장론’ 사이에서 논란이 있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융합의 과제다. 보수의 가치를 강화하면서도 중원(中原)으로 확장해야 한다. 자유, 성장, 시장의 가치를 보다 강조하는 보수의 원칙이 평등, 분배, 정부의 개입을 앞세우는 진보의 논리보다 국가공동체에 더 부합한다는 점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 국가이념과 철학이 빈곤하면 국가전략과 개혁 비전은 모두 사상누각이자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보수는 이제 시대정신에 맞는 철학과 전략을 정립하고, 이를 실천할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 혁신적 중도보수의 길이야말로 보수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중적이고 반미, 반일의 정서를 표출했던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최근에 조기 선거를 예상하고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정치 이념을 초월한 실질적 해결책을 강조하는 듯하지만, 권력 유지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교묘하게 바꾸려는 기만적인 태도로 해석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념과 가치는 국가 운영의 방향과 원칙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서, 이를 부정하는 것은 정책 실패나 정치적 과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실용주의가 유권자의 즉각적인 요구를 반영하는 형태로 왜곡될 경우, 정책의 일관성이 약화되고 인기 위주의 포퓰리즘 정치로 변질될 위험성이 매우 크다. 이는 장기적인 국익보다 단기적인 정치적 이득을 우선하는 정책 남발로 이어진다. 실용주의는 이념과 철학에 뿌리를 내리고 그 유연성을 펼칠 때 빛을 발할 수 있다. 보수가 진보의 가치로 확장하거나 혹은 진보가 보수의 가치를 포용할 때 실용주의는 정치적 명분을 얻을 수 있다.
5. 결론
탄핵 정국을 맞아 보수와 진보는 정파의 대립을 넘어 체제 생존을 놓고 치열한 사상전을 벌이고 있다. 신냉전의 국제정치적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은 한미일 자유 진영과 함께할 것인가, 아니면 북중러 전체주의 진영에 동조할 것인가라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는 단순한 외교 안보의 노선 문제가 아니라 국가정체성과 대한민국의 명운을 좌우할 기준이다. 역설적으로 탄핵 정국은 국가정체성의 본질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의 핵심 원리로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와의 도덕적 연대에 의해 사회가 영속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폴 슈메이커(Paul Schumaker)는 『이념에서 공공철학으로: 정치이론 입문, From Ideologies to Public Philosophies: An Introduction to Political Theory』에서 이를 “모든 세대가 연결된 ‘존재의 위대한 체인’(A Chain of Being)”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구상은 국가공동체의 존속과 번영을 위한 근본적인 원칙임을 시사한다.
법률은 오랜 세대에 걸쳐 전통, 관습, 규범, 그리고 상식이 축적되어 형성된 사회적 산물이다. 그러나 이번 탄핵 정국에서 드러난 사법부의 후진적 행태는 국민에게 깊은 실망과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 재판의 지연, 여론에 흔들리는 법리 해석,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법 적용 등은 사법부가 정의와 공정을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법치주의는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부여된 초월적 권위이자 신성한 책임이다. 이를 훼손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며, 법치의 후퇴는 곧 국가의 쇠퇴를 의미한다.
대법원에 세워진 정의의 여신(Justitia)은 공정하고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사법적 권위를 상징한다. 여신의 명명(明明)한 눈은 진실과 불의(不義)를 꿰뚫어 보며, 어떠한 편견이나 외부의 영향을 배제한 채 엄격한 판단을 내린다. 오른손의 천칭(天秤)은 객관적인 증거와 사실에 기반한 공정한 판결을 의미한다. 왼손에 든 법전은 신성한 법치의 집행력을 상징한다. 과연 오늘날의 사법부는 정의의 여신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선포의 이유로 언급한 부정선거 이슈가 점점 더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다. 과거 부정선거 여론은 크지 않았으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선거 부정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국민이 40%를 넘고, 보수층에서는 70% 수준에 달하고 있다. 이지용은 『중국의 초한전(超限戰): 새로운 전쟁의 도래』에서 중국 공산당이 모든 경계를 초월하는 무제한 전쟁을 벌이며 자유세계를 침탈한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정치 공작전의 일환으로 한국의 정치 및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중국이 여론 조작, 인터넷 댓글 조작, 선거 시스템에 대한 직간접적 개입을 통해 한국의 친중화를 획책한다는 주장은 전체주의 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합당한 논리이며 상당한 개연성을 지닌다.
일선 개표 현장에서의 조직적인 선거 부정은 참여자 스스로 ‘배신의 딜레마’로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중국의 전문화된 해커가 선거 조작을 위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해킹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 고도화된 해킹 기술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수 있으며, 국정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해킹 취약성을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기회에 선거 부정과 관련된 모든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여 국민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논란을 넘어 국민의 헌법적 요구에 부응하는 국가적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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