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의사 입학 정원 증원
먼저 의대 입학 정원 증원 문제, 즉 의사 수 부족(?)이라는 화두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배경을 살펴보자.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사건이 있는데, 바로 2020년 의대 입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등의 정부안이 전공의 파업 등 거센 의료계의 저항으로 인해 보류(?)된 적이 있다. 소위 <2020년 의료대란>을 말한다. 당시 정부의 논지는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의료 이용 증가와 의사 수 부족으로 불거진 필수 의료와 지역 의료의 기반 악화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 수 증가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런 의료대란 후에도 제대로 된 담론 과정 없이 봉합해 버리고 말았다. 이 점이 참 아쉬운 대목이다. 전공의 파업으로 전국의 모든 대형병원의 진료가 올스톱되는 난리를 겪었다. 의료대란 이후 아무런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한심할 뿐이다.
또다시 고민과 대화의 중간 과정 없이 의사 수 확대라는 이슈를 갑자기 끄집어냈다. 문제는 의사 수를 증원에 대한 합의 과정이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불거진 의료 문제 즉 ‘필수 의료 인력의 절대적인 감소, 지역 의료의 붕괴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과연 대한민국은 의사 수 부족 국가일까?’라는 아주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의문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미래 의료 체계에 대한 청사진이 마련된 이후 증원의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기본의 기본이다. 청사진이 없으니 우왕좌왕하게 되고 정책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의사 수는 부족하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6명에 불과한데, OECD 가입국 전체 평균이 3.7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낮은 수준이다. 전체 의사 수가 적고 매년 새로 배출되는 의사 수도 OECD 최하위권이다. 지난 2021년 기준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의대 졸업생 수는 7.26명으로 OECD 39개국 중 38위다. 한편, 18년째 동결된 한국의 의대 입학 정원은 3,058명인데 반해, 인구가 우리의 절반 수준인 호주는 3,845명, 인구가 8,317만 명인 독일은 9,458명이고 우리와 비교해 인구가 2.5배 정도인 일본은 9,330명에 달한다. 즉 우리는 인구 대비 의과대학 입학 정원만으로 보면 분명 의사 수가 적은 국가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적은 의사 수를 가진 의료가 왜 지금에 와서야 문제가 되고 있을까?
사실 객관적인 자료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의사 수의 적절성 여부는 그 나라의 의료 시스템과 국민의 의료 활용도 등 문화적 측면을 살펴야 한다. 예를 들면 사회주의 의료를 선택하는 국가의 경우 의료를 기본권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의료 시스템이 많은 의사 수에 기반을 둔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의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이런 국가에서 국민의 의료 만족도가 높을까? 매우 낮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의사가 관료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인구 대비 의사 수를 본다면 북한은 초 선진국에 해당할 것이다. 이렇게 적은 수의 의사 수로도 그동안 한국 의료에 대한 국민의 의료 접근성이 그 어느 나라에 비해 좋았던 것은 우리의 제도가 아이러니하게도 의사에게 많은 수의 환자를 진료해야만 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즉 한 명의 의사가 일당 10명의 환자만 진료해도 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100명의 환자를 진료해야만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런 제도 때문에 비교 대상 국가의 1/2 또는 1/3의 의사 수로도 그동안 국민은 불편감을 못 느꼈다. 그렇다면 현재 문제가 되는 필수 의료 인력의 부족, 지방 의료의 붕괴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필자는 이 문제를 우리의 의료 시스템의 문제가 의사 수 부족보다 우선한다고 본다.
2. 저수가 정책의 위험성
우리의 건강보험제도는 1960년대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 후반에 기본 틀이 갖춰졌다. 그리고 현재의 모습으로 오기까지 조합 방식을 거쳐 2000년에 통합 건강보험으로 탄생했다. 그런데 제도 도입 초기부터 우리의 건강보험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지, 어떠한 방식으로 운영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 과정이 생략됐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기본 철학과 지속 가능한 건전한 의료 정책의 설계가 없기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순적인 부분들이 요소요소에 산재하는데, 한 마디로 사회보험의 기본 개념조차 없는 이상한 제도로 지금껏 끌어온 면이 있다. 예를 들면 사회보험의 성격에서는 의료 서비스 제공의 포괄성과 최소의 원칙이 있다. 이 말은 건강보험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포괄적이기는 하지만 최상의 서비스를 지향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만일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지향하고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어마어마한 재정 지원이 있어야 하기에 사회보험의 성격에는 부적합하다.
그러나 건강보험을 유지할 만한 충분한 제원의 여건 없이 대중영합주의 도입으로 공급자인 의료인의 협조(?)를 단서로 저수가 정책을 고수하게 되었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영리 추구가 가능한 비급여 진료의 출구를 열어준 것이다. 즉 지표상의 수가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선에서 결정하고는 의료인들에게는 이를 보상할 수 있는 탈출구를 열어주었으니 애당초 우리 의료가 결국 언젠가는 영리 추구와 비급여, 과잉 진료로 갈 수밖에 없는 제도로 설계되었다.
한편, 건강보험이 전 국민 건강보험으로 통합되기 이전에는 지역 조합 방식이었고 당시만 해도 진료권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지금처럼 전국 어디서나 아무런 제재 없이 그 어떤 의료 기관도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장치마저 없어지고 때마침 고속열차의 등장으로 인해 전국이 실질적인 일일생활권으로 들어오면서 모든 환자가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사실 모든 환자가 중병에 걸리면, 아니 요즘은 중병도 아닌데도 진료를 위해 서울로 향한다. 이런 국가는 없다. ‘텍사스 환자가 더 나은(?) 진료를 위해 뉴욕으로 온다?’, ‘오사카 주민이 진료를 위해 도쿄로 온다?’는 것은 매우 예외적 현상이다. 우리나라처럼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않는다.
왜 우리만 유독 이럴까? 유독 남과 같은 대접을 받아야만 한다는 국민성까지 들먹이지는 않더라도 다양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의료의 수요와 공급을 그냥 방치한 탓이 근원이라고 본다. 의료는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시장에 던져두고 방치하면 끝 간 데 없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특히나 우리처럼 저수가를 기본으로 한 상황에서는 이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3. 규모의 경쟁이 만든 수도권 쏠림 현상
2000년도 이후 의료계에는 의과대학의 전통은 무시되고 규모가 병원의 서열을 결정짓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불과 40명의 입학생을 가진 신생 의과대학 병원이 ? 엄밀하게는 협력병원이 ?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의과대학 병원을 제치고 부동의 병원 서열 1위를 차지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뭐 이상할 일도 아닌 것이 미국의 경우 병원 서열 1위 하는 Mayo Clinic도 어느 의과대학 소속인지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본격적인 규모 경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에 수도권 대형병원들은 전국 환자를 쌍끌이 어선 마냥 쓸어 담기 시작했고, 환자가 수도권으로 향하다 보니 의사들의 수도권 쏠림현상이 가속화되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아무런 대책 없이 전공의 특별법이라는 제도하에 전공의 근무 시간을 반으로 줄이면서 쏠림 현상을 더 부추겼다. 대형병원이 유지될 수 있었던 근간이 저렴한 노동력의 전공의 인력이었는데 이 인력이 어느 날 갑자기 반 토막 나고 그로 인한 근무 환경의 열악해지면서 도미노처럼 의료 인력이 취약한 병원들에서부터 빠져나갔다. 가뜩이나 저수가에 지쳐있던 필수 중증 의료 분야는 아예 젊은 의사들의 관심 밖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 예견은 했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 단 한 번도 지속 가능한 의료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나 정책은 없었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의료 수요자인 환자를 대변해서 기금을 관리하는 건강보험공단이라도 의료의 필요도를 계산하고 공급을 조율하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건강보험공단은 수수방관을 했다. 이는 건강보험공단의 잘못이 아니라 건강보험이 의료제도 자체라는 인식 때문에 정부가 공단에 자발적인 역할을 기대하거나 허락한 적이 없었다는 점도 한 요인이다.
4. 보상 제도 도입이 필요
국민은 어떠한 제약 없이 마음껏 의료를 이용하는 현재의 제도에 익숙해 있다. 가벼운 진단을 받아도 바로 다음 날 서울의 최상위 병원에 당당히 입성할 수 있다. 초기에 정해진 저수가의 틀 안에서만 죽어라 고생하면서 진료하던 의사는 비급여 진료를 기반으로 한 과잉 진료에 친숙하다. 의료 환경이 변했다. ‘어려움을 참고 의사로서의 사명감으로 남들이 안 하는 중증 필수 의료에 매진하라고?’, ‘남들 수도권에 살 때 지역에 남아서 보람찬 의사 생활을 하라고?’, ‘환자가 외면하는 지역 의료를 지키라고?’, ‘모든 국민이 수도권, 서울로 서울로’ 하는 문화 속에 환자도 외면하는 지방에 남아서 사명감으로 필수 의료를 사수하라고 하기에는 MZ 세대에게는 역부족이다.
지역에 의사가 없어서 환자가 수도권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수도권으로 몰리기 때문에 의사가 수도권으로 쏠리는 것이다. 이런 환경을 외면한 채 의사 수를 왕창 늘려서 그중에 요행으로 낙수 효과를 보겠다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지속 가능한 건강한 의료에 대한 정교한 설계 없이, 왜곡될 대로 왜곡된 현 의료 체계를 유지하는 방책으로 의사 수를 늘린다면 효과는 의문시된다.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다. 설계가 부실한데 좋은 건물이 나올 수 있겠는가? 게다가 걱정이 하나 또 있는데, 가뜩이나 이공계 인재들이 의대 쏠림 현상이 심한데 느닷없이 입학 정원을 늘리면 과연 이 나라 이공계의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 그 점도 우려스럽다.
미국의 의사들은 우리가 외면하는 중증 필수 의료 분야 지원 열기가 여전히 높다. 미국 의사는 유독 사명감이 높은 것일까? 미국 의료 시스템이 문제는 많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보상(reward)가 확실하다는 점이다. 미국 의사의 연봉 상위는 바로 우리나라 의사들이 꺼리는 그런 전공들이다. 고생한 만큼의 보상이 주어진다면 거기서 존경심과 자긍심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바로 보상 제도가 매우 미흡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형병원이 본래의 취지에 맞게 중증 입원 환자 중심으로 운영하고, 2차 지역 종합 병원들을 회생시키고 환자들의 무분별한 의료 이용을 어느 정도 정리한다는 전제 아래 우리에게 필요한 의사 수를 계산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지속 가능한 안정적이고 바람직한 의료제도의 설계가 우선이고 의사 수 문제는 차후의 문제라는 점이다. 이것이 순서가 바뀌면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의료는 미래가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