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시

                       임보선 시인

산다는 일

언젠가 떠나는 일이

말로도, 뜻으로도

예측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밖으로 흘린 눈물보다

안으로 삼킨 눈물을

내 쏟지 않은 것은

우리들의 약속

저 북망산 길

빈 몸으로 가시는 데

행여 짐 될까

돌아오지 않을 사람

추억도 숨 죽여 흐느꼈다

겨울바람 부는

도피안사 그 숲

바람소리 숲 속을 헤매며 울고

부처님의 미소도 슬픔되어 파고 들었다

떠나신 지 사흘 뒤 밤새 내린 눈

온 천지는 하얀 세상

눈 그친 하늘

그러는 사이

그리운 사람은 설인이 되셨다

결기서린 짱짱한 자작나무도

세한의 외로움과 무게를 견디지 못 하고

어느덧 휘어버린 그 생애처럼

휘청거리며 넘어갈 때

쓸쓸한 바람소리 밤새도록 그 숲속 울며

훑어갔다

님이시여

그대는 어느 세상에서

겨울바람 되셨는가

민족의 지도자

한반도 선진화

남북통일을

필생의 과제와 업으로 품으시고

시대를 앞서 가신 훌륭한 경세가시여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고귀하신

큰 스승 선지식인이여

아 !

이제 누가 있어

우리의 소원 통일을

그토록 외치며 노래를 부르리오

흩어진 바람 모아 밤 새워 가도

어느 세월에 어둠 속 불빛

그 큰 별 다시 찾으리오

동지 섣달

눈 속 동백보다 더 붉은 꽃이 떨어졌는데...

전생에 지은 복으로 이생에서 복을 받아

시절 인연 닿으신 큰 스승 선지식

이제는 한 마음 모아

그 높은 뜻을 받들어 이어가리라

수도승처럼

쌓여만 가는 그리움

돌아오지 않는 안부

훗날을 기약한다

살아서 맺은 인연

떠나서도 인연이리라

언젠가 함께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영원히 기억을하리라

음력 세밑 서쪽 하늘 노을이

유독 더 붉었다

부디 잘 가시옵소서

부디 안녕히, 안녕히 잘 가시옵소서

부디 편안히 그 먼 곳에서

이승에서 못 다하신 그 꿈을 꼭 이루시어

저희들을 수호해 주시옵소서

정유년 새해 첫 겨울

그 먼 길 떠나시는 데

외롭지 않으시게

저희들 마지막 배웅을

진심으로 합장하옵니다

님이시여

참으로 존경했습니다

참으로 사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