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사

이번송 아칸소주립대 경제학 교수

박세일 교수는 저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8년 후배입니다. 저는 박 교수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도움 받아왔습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현명한 사람들 중 나라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은 찾기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나라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 중 현명한 사람을 찾기도 흔치않습니다. 박 교수는 내가 본 사람들 중 우리나라를 가장 사랑하시면서 현명한 분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박 교수를 존경해왔습니다.

박 교수를 처음 만난 건 1990년 즈음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네브라스카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었으며 KDI 에서는 안식년을 맞은 해였습니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경제원론을 강의할 기회가 생겨 모교인 법학대학을 방문하였습니다. 당시 학장을 맡고 계시던 이수성 총리가 왜 후배인 법대생들을 가르치지 않냐며 박세일 교수의 중급 거시경제를 양도받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후 5년 동안 법대 후배들을 가르쳤습니다. 오랜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좋은 인연이 되어 준 박 교수님 감사합니다.

등산은 박 교수로부터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안민산우회는 제가 서울시정연에 근무하고 있던 1995년에도 일요일 아침마다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나가야했기에 등산에 참여하지는 못 했지요. 그 해 박 교수가 청와대로 들어가면서부터 등산일정이 매주 토요일로 바뀌더군요. 이후 저는 22년 동안 매주 산을 올랐습니다. 저와 등산을 동행하던 교수님들이 제 건강상태가 나쁘다보니 등산 중에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합니다. 이제 곧 만 77세가 되었음에도 제가 건강한 건 박 교수와 함께 등산을 한 덕입니다. 안민산우회덕에 매주 일요일 7시 첫 예배를 보는 잠원동의 한신교회에 있을 때마다 등산 생각이 납니다. 박 교수님 감사합니다.

박 교수로부터 받은 또 하나의 소중한 선물은 2002년부터 5년 동안 안민포럼 사무실에서 가졌던 대중교통활성화 모임입니다. 안민포럼으로부터 배운 점들을 토대로 매 월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소중한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열띤 토론의 장만 마련이 된다면 특별한 사례 없이도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자 하는 연구자가 많다는 점입니다. 박교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로 어떻게 세미나가 성공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으며 그 경험을 토대로 지난 6월부터 매달 이번송 인구·노인연구소 세미나를 열고 있습니다. 박 교수님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박 교수는 은혜만을 베풀고 가신 것 같습니다. 박 교수에게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을 텐데 박 교수에게 큰 도움을 되지 못한 거 같아 후회가 짙게 남습니다. 특히 박 교수의 선배라는 인연 덕에 혜택을 받기만 하고 제가 박 교수에게 충분히 되갚지 못 한 거 같습니다.

박 교수에게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실 것을 적극 권하였을 때 박 교수는 서울시장이 되는 것이 이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며 마다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박 교수가 시장직을 맡아 지도자의 길을 걸었더라면 한국의 정치수준이 지금보다는 높아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박 교수가 행정수도이전 문제에 대해 다른 입장을 취하여 한나라당 정책의장직을 사임 안하고 계속 정치의 길을 나아갔더라면 오늘 날의 한국 정치는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아있습니다.

지난 여름 출국 직전에 장오현 교수, 박남석 총무 부부와 함께 박 교수님 부부를 모시고 우리 부부가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남산을 걸으며 요즘 박 교수는 식사를 위해 먼 길 가지 않으려 한다며 선배가 식사를 하자고 하니 나왔다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그 때가 박 교수와의 마지막 식사가 되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후배이자 친구였던 박 교수를 먼저 보내 통탄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