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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개정 노조법, 왜 갈등을 키우고 있나?
 
2026-04-30 14:23:44

Hansun issue & focus 5월호 


<개정 노조법, 왜 갈등을 키우고 있나?>

김덕호 성균관 대학교 교수 /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



1. 들어가면서

 

개정 노조법(일명 노란봉투법)이 시행되자마자 산업현장은 빠르게 요동치고 있다. 법 개정의 취지는 원·하청 구조와 간접고용 확산 속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주체를 교섭의 장으로 끌어들여 제도 밖 갈등을 제도 안으로 흡수하자는데 있다. 그러나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도입된 제도는 현장에서 쉽게 저항에 부딪힌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설계가 정교하지 않으면 법은 갈등 해소 장치가 아니라 새로운 충돌의 진원지가 된다. 지금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를 보여준다.

 

시행 한 달 만에 전국 372개 원청 사업장을 대상으로 1,011개 하청노조, 146천 명이 교섭을 요구했다. 노동위원회에서도 사용자성 인정과 교섭 단위 분리 결정이 잇따르고 있다. 이는 법 시행과 동시에 교섭 대상과 범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공부문에서는 돌봄 노동자들이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공동교섭을 요구했다. 제조업에서는 현대차·현대모비스·포스코·한화오션 등 대기업 원청을 상대로 동시다발적 교섭 요구가 이어졌고, 물류·유통업계에서도 원청 책임을 둘러싼 긴장이 높아졌다. 이미 물류 현장에서는 BGF리테일을 상대로 화물연대가 교섭을 요구하며 대치했고, 운송 거부와 대체 차량 투입이 맞물리면서 극도의 긴장 상태가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안타까운 사망 사고까지 발생했다. 무엇보다 정확한 진상 규명이 우선이지만, 이번 사건은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때 사회가 얼마나 큰 비용을 치르는지를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법이 시행 초기부터 충돌의 배경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2. 개정노동법의 쟁점

 

갈등이 한 사업장을 넘어 산업 전체로 확산될 경우 경제적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노사 모두가 법 시행 초기의 혼란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문제는 교섭 확대 자체가 아니라 이를 감당할 기준과 절차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속도는 빨랐지만 설계는 따라가지 못했다.

 

첫 번째 쟁점은 사용자성 개념의 모호성이다. 개정법은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본다. 문제는 이 문구가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납기 요구는 단순한 거래상 요구인지, 근로시간 통제인지 불분명하다. 안전수칙 지시는 산업안전 책임 이행인지, 사용자성 징표인지 논란이 될 수 있다. 원청의 전산시스템 사용, 출입통제, 작업표준 제시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법률가마다 해석이 다르고 현장에서는 더욱 혼란스럽다.

 

노조는 사용자성을 최대한 넓게 해석해 원청 책임을 주장하고, 기업은 최대한 좁게 해석해 직접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판단은 노동위원회와 법원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노사관계의 현실은 긴급하고 판단 절차는 느리다. 그 시간차가 갈등을 증폭시킨다. 더구나 노조법상 사용자성 인정 논리가 파견법상 불법파견 판단과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원청이 근로조건에 실질적으로 개입했다는 주장은 곧바로 직접고용 의무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교섭에 응해도 리스크, 거부해도 리스크인 구조다.

 

따라서 사용자성 판단은 단순한 선언 조항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기준이어야 한다. 최소한 임금 결정권, 근로 시간 편성권, 작업 지휘권, 인사권, 안전 예산 결정권 등 핵심 요소별로 어느 수준의 관여가 있을 때 사용자성이 인정되는지 세밀한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 누가 사용자인지 불명확한 제도는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제도가 되기 쉽다.

 

두 번째 쟁점은 노동쟁의 범위 확대에 따른 경쟁력 약화 우려다. 개정법은 임금·근로시간·복지 등 전통적 근로조건뿐 아니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까지 노동쟁의 대상으로 넓혔다. 언뜻 타당해 보이지만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매우 광범위한 해석이 가능하다. 구조조정, 사업양도, 생산라인 재편, 외주화, 신규 채용 축소, 설비 자동화, AI 도입, 공장 이전 등 거의 모든 경영상 판단이 근로조건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 전환기 기업은 기술 변화에 맞춰 빠르게 투자하고 생산 체계를 재편해야 한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물류 등 글로벌 경쟁 산업일수록 속도가 생존을 좌우한다. 그런데 투자와 구조 개편이 매번 쟁의 대상이 되고 파업 가능성이 상존한다면 기업은 결정을 늦추거나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특히 자동화와 AI는 피할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인데, 이를 노사 대립의 상시 의제로 만들 경우 국내 산업만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이 있다. 노동권 보호는 필요하지만, 혁신을 가로막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최근 주요국들은 산업 전환기에 노사 협의를 강화하되 투자 결정 자체는 기업의 책임 영역으로 남겨두는 방향을 택하고 있다. 우리는 협의와 교섭, 교섭과 쟁의의 경계를 지나치게 흐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쟁점은 원·하청 교섭단위와 교섭의제 세분화에 따른 상시 분쟁 구조다. 하나의 원청 사업장 안에는 원청노조, 복수의 하청노조, 업종별 산별노조, 지역지부가 동시에 존재한다. 각 조직은 이해관계가 다르다. 원청 정규직 노조는 기존 임금체계와 고용안정을 중시하고, 하청노조는 직접고용·임금 격차 해소·복지 확대를 요구한다. 하청노조끼리도 업종과 계약조건, 조합 규모, 노선이 달라 요구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교섭 의제까지 임금, 복리후생, 안전, 작업환경, 고용형태, 사업재편, 외주화, 자동화 대응 등으로 세분화되면 사실상 1년 내내 교섭과 분쟁이 반복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어떤 노조는 임금으로, 다른 노조는 안전으로, 또 다른 노조는 직접고용 문제로 각각 교섭과 쟁의를 진행할 수 있다.

 

하나의 사업장에서 시기만 달리한 부분 파업, 순환 파업, 릴레이 쟁의가 반복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기업은 생산계획을 세우기 어렵고, 협력업체는 납기 불안을 떠안게 되며, 결국 피해는 소비자와 국민경제로 전가된다. 노사 갈등이 노노갈등, ·하청 갈등, 기업 간 갈등으로 확산되는 구조다.

 

특히 수십 개 협력업체가 얽힌 조선·자동차·건설 현장에서는 한 공정의 중단이 전체 공정 지연으로 이어진다. 일부 사업장의 부분 파업도 연쇄적 생산 차질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사업장 단위 노사분쟁보다 파급력이 훨씬 크다.

 

3. 개정 노동법에 따른 과제

 

그렇다면 과제는 무엇인가. 우선 노동계는 권리 확대만큼 책임 원칙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정당한 쟁의행위는 보호받아야 하지만 폭력, 점거, 출입봉쇄, 3자 피해를 수반하는 불법행위까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투쟁의 상시화는 사회적 지지를 약화시킨다.

 

경영계 역시 과거의 방어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형식적 하도급 구조 뒤에 숨기보다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영역이 있다면 책임 있게 대화에 나서야 한다. 협력업체 노동자의 안전, 작업환경, 복리후생 문제를 외면한 채 비용 절감만 추구하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법을 만들었다면 현장 혼란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사용자성 판단, 교섭요구 공고, 교섭창구 분리, 쟁의 범위 등 핵심 쟁점에 대해 신속하고 예측 가능한 행정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노동위원회 판단도 장기화되지 않도록 신속심판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보완입법이 시급하다. 첫째, 사용자성 판단 요소를 임금·근로시간·안전·인사권 등 항목별로 구체화해야 한다. 둘째, 경영상 결정 중 직접적 고용변동이 예상되는 경우와 일반적 투자·기술도입을 구분해 쟁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셋째, ·하청 교섭단위는 현행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형해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넷째, 교섭요구 단계에서 의제를 명확히 특정하도록 해 무제한적 교섭 확대를 막아야 한다.

 

법은 선언이 아니라 작동하는 구조여야 한다. 기준이 모호한 권리는 충돌을 낳고, 책임 없는 권한은 분쟁을 키운다. 개정 노조법이 진정 갈등을 줄이는 법이 되려면 이제는 이념적 찬반을 넘어 현실적 보완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구호가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하고 갈등을 줄이는 더 정교한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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