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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필드트립] 북경대는 작은 중국
 
2014-10-29 16:07:00
북경대는 작은 중국
노아란(동덕여자대학교)


“자, 도착했습니다.”

가이드의 목소리가 작은 버스 안을 메웠다. 어깨를 누르고 있던 피곤함을 잠시 내려두고 터벅터벅 밖으로 나갔다. 밤새 내린 폭우에 먼지가 씻겨나간 하늘은 쾌청했다. 북경에서의 두 번째 하루를 시작한 청년한선. 이날의 첫 일정은 북경대학교 탐방이었다.

북경대 탐방은 정문이라 할 수 있는 서문이 아닌 북문에서 시작됐다. 북문은 지하철역과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다고 한다. 북경대 입구에 서면서 처음 든 생각은 ‘이곳이 과연 배움의 전당이 맞을까?’였다. 학교보다는 병원 같았다. 나를 더욱 실망시켰던 점은 북문 입구에서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공안의 모습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북경대를 구경하기 위해 입구에서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나라로 치면 중고생으로 보이는 자식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눈에 띄었다. 네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꼬맹이와 함께 온 부모님도 있어, 한국 못지않게 교육열이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됐다.

북경대 중앙도서관
<북경대 중앙도서관>

한참을 기다린 후, 한 명 한 명 북문을 통과했다. 공안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에 적혀 있는 인원과 우리가 일치하는지 집중했다. 배움을 얻어간다는 학교가 입구부터 삭막한 분위기라서 긴장도 됐고,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이런 공간이라면 말 한 마디도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안내는 가이드 대신 북경대 국제경영학부 학생인 ‘천보’가 해줬다. 입구를 지나 본격적으로 캠퍼스에 들어서니 좌우로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정면에는 북경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앙도서관이 위치해 있었다. 천보는 북경대 중앙도서관은 아시아에 있는 대학 중 가장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곳에서 마오쩌둥이 사서로 일했다고 전했다. 북경대 학생은 아니었지만 책을 좋아했던 마오쩌둥에게 도서관은 최고의 직장이지 않았을까? 아마 도서관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이 그에게 정치적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중앙도서관을 끼고 돌아 걷다보니 거대한 탑이 눈에 들어왔다. ‘북경대의 정신’이라고도 불리는 보야탑이었다. 북경대 내의 건물은 모두 8층 이하로 지어졌는데 건물이 너무 높으면 탑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야탑 안에는 20세기 당시의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펌프가 있다. 펌프는 보야탑 옆에 위치한 호수(웨이밍호)와 연결돼 있고, 펌프를 감싸고 있는 탑은 물을 끌어올릴 때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물이 오염되지 않도록 먼지를 막아주고 미적 효과를 주는 기능도 갖고 있다.

보야탑 왼쪽으로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호수가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름 없는 호수’라는 뜻의 웨이밍호(미명호, 未名湖)가 이 호수의 이름이다. 20세기 말, 북경대 내부에서는 호수의 이름을 짓기 위해 이 이름, 저 이름을 후보로 올려놓고 어떤 이름으로 정할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북경대 총장은 그 어떤 이름도 호수의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름을 짓지 않겠다고 결정해 호수의 이름이 ‘웨이밍호’가 됐다.

웨이밍호는 이화원의 호수를 축소해 만들어졌다. 이화원에 있는 돌배도 이 호수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배의 윗부분은 화재로 소실됐고, 갑판 부분만 남아있다. 중국에서 배는 황제를 상징하고 물은 백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는 황제의 근원이 백성에게 있으며 황제를 받치고 있는 존재도 백성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황제가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할 시 백성은 배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 이화원의 돌배는 서태후에게 아첨하기 위한 목적으로 돌로 배를 만들어 전복되지 않게 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북경대의 돌배가 불에 탔어도 아무도 복원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호수 주변에는 동네 주민들이 나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온 부부, 연인과 함께 나온 커플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이런 광경은 북문 입구에서 공안이 출입 통제를 하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여름의 푸르름을 한껏 머금고 있는 웨이밍호는 북경대 학생들이 가장 아끼는 공간이라는 천보의 말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웨이밍호>


<서문으로 나가는 길>

호수 근방을 걷다 보니 큰 문과 우겨져 있는 나무에 가려진 비석이 있었다. 비석이 있는 자리는 미국 사진작가 애드가 스노우가 묻힌 곳이라는 천보의 설명이 이어졌다. 종군기자였던 애드가 스노우는 중국의 수많은 사건·사고 현장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공헌했다. 국공내전 등 중국이 혼란을 겪고 있던 시기에도 그는 중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었다. 1975년 애드가 스노우는 생을 마감하면서 자신의 유해를 중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의 아내는 북경대에 그를 묻어 달라 부탁했다고 한다. 이후 40년이 지난 중국을 내려다보며 애드가 스노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웨이밍호를 따라 계속 걷다 보면 중국의 전통적인 건축물처럼 보이는 동양적인 건물들이 여기저기 있다. 놀랍게도 그 건물들은 미국인 건축가가 디자인했다고 한다. 어문학당을 비롯한 몇 개의 인문계 학생들이 그 건물을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건물에 들어서면 논어, 맹자를 외워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마오쩌둥이 쓴 편액>

드디어 서문에 도착했다. 많은 관광객들은 이 문을 통해 학교에 들어오고 싶어 한다. 서문이 북경대의 정문이고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문에는 마오쩌둥이 친필로 쓴 ‘北京大學 ’(북경대학) 편액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수많은 관광객들이 서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북경대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던 공간이었다. 우리가 다닌 곳들 중에는 ‘how much?’나 ‘tax’와 같은 간단한 영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중국어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북경대가 유일했다.

중국은 여전히 발전가능성이 높은 나라인 것 같다. 중국의 대학생들은 도전의 두려움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북경대 투어를 도와줬던 천보는 졸업 이후 무역 관련 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호주, 뉴질랜드, 한국 등 여러 국가의 학생들과 교류하고 있었고, 중국의 발전을 믿고 있었다. 천보는 자신처럼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많다고 전했다. 공무원 준비와 대기업 취업에 몰두하고 있는 한국의 대학생들의 모습과 대비됐다. 두려움 없는 중국의 청년들을 거울삼아 한국이 배워야 할 점, 경계해야 할 점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북경대는 작은 중국이라 할 수 있다. 학교에는 중국의 역사가 있고, 작은 이화원이 있다. 또 지금의 중국을 이끈 리더들의 크고 작은 이야기가 있다. 과거를 고스란히 품은 캠퍼스, 그곳을 누비는 학생들은 진취적인 자세로 지식을 습득한다. 그리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머지않아 정치, 경제, 과학 등 다방면에서 활약할 그들 역시 걸어 다니는 작은 중국이 아닐까. 그리고 이 인재들이 중국의 미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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