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박재완은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로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삼성전자의 첫 사외이사 의장으로서 이사회 독립성과 경영 투명성을 확립하고 이사회 중심 경영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1955년 1월24일 경상남도 마산(현 창원)에서 태어났다. 부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23회에 합격해 감사원과 재무부에서 일했다. 김영삼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뒤 공직에서 물러나 성균관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17대 국회에서 활동했다. 이명박정부가 출범하자 청와대 정무수석, 국정기획수석, 고용노동부 장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
삼성전자와 롯데쇼핑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근면성실하며 일처리가 치밀하다. 특권의식이 없이 서민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활동의 공과
△삼성전자 첫 사외이사 의장 선임
박재완은 2020년 2월21일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에 선임됐다.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처음으로 사외이사로서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삼성전자는 2018년 3월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했다. 2년 만에 외부인사를 의장으로 선임하며 이사회 독립성과 경영투명성을 높였다.
삼성전자는 “박 의장은 최선임 이사로서 회사와 이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며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행정가로서의 경험 또한 풍부해 이사회의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자리는 노조와해 혐의로 구속된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이 2020년 2월14일 물러나면서 공석이 됐다. 박재완은 여러 차례 의장을 고사하다가 끝내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각에서 박재완이 삼성그룹 관계법인인 성균관대 교수를 맡고 있다는 점을 들어 독립적 역할 수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2년 8월8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세법개정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며 임기 후반부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했다.
7% 성장, 4만 달러 소득, 세계 7위 경제규모의 7.4.7 공약을 앞세운 'MB노믹스'가 실패한 상황에서 박재완은 구원투수격으로 기획재정부 장관에 올랐다. 그는 취임 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조정하며 경제연착륙을 시도했다.
MB노믹스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서민생활 어려움이 가중됐다는 지적이 많아지면서 박재완은 물가안정과 일자리 창출을 통한 서민생활 안정을 도모하는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뒀다. 경제체질 개선을 위한 경제주체 건전성 강화와 서비스업 선진화정책 등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도 나섰다.
박재완이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무상복지, 반값등록금 등 과도한 복지공약과 증세요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자 월스트리트저널(WJS)이 "포퓰리즘에 맞설 배짱을 지닌 합리적 정부 고위인사"라며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다만 유럽 재정위기, 고유가, 고환율 등 대외환경 악화의 영향으로 기대한 만큼의 성과가 뒤따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높은 환율을 유지하면서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펼쳤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고용노동부 장관
이명박 정부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한국사회 노동문제가 경직된 노동문화에 있다고 보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일자리 마련에 힘썼다.
박재완은 역점과제였던 세종시 수정안이 좌초되자 2010년 7월 청와대 수석에서 물러났으나 한 달도 되지 않아 8월 고용노동부 장관에 지명됐다. 그는 노동 분야에는 경험이 많지 않았으나 청와대 수석 출신의 '실세 장관'으로서 29년 만에 노동부에서 확대 개편된 고용노동부의 중심을 잡았다.
고용노동부의 정원을 늘리고 기구를 정비하는 한편 무능력자 퇴출제도를 도입하는 등 조직을 쇄신하는 역할을 했다. 정부 차원의 종합고용정책인 2020 국가고용전략도 수립했다.
2020 국가고용전략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파견허용 업종 조정, 비정규직 사용기간 확대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늘리는 내용을 뼈대로 했다. 매년 24만 개 일자리를 2020년까지 선진국 수준인 70% 고용률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외에 '청년 내 일 만들기' 프로젝트 추진, 일자리 현장지원단 출범 등 길지 않은 재임기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했다.
반면 노정관계는 악화했다. 근로시간 면제한도제(타임오프제)와 복수노조 등의 내용을 담은 노조법 개정안을 시행하면서 노동계의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박재완은 노조법 재개정을 요구하는 양대 노총을 두고 "대기업 정규직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권력"이라고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노동계는 이명박 정부가 친재벌 정부라며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2009년 3월19일 세종로 정부청사 별관에서 행정안전부 주최로 열린 '녹색성장 및 경제활성화를 위한 전국 부시장. 부군수. 부구청장 회의'에서 2009년 국정방향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 참모로 재직하며 국정운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정부혁신-규제개혁TF팀장을 맡아 18부4처의 정부조직을 13부2처로 개편하는 개편안을 마련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무수석에 박재완을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일찌감치 박재완을 정무수석으로 마음에 두고 있었다면서 그를 향한 신뢰를 내비쳤다.
박재완은 이명박 정부 3개월 만에 광우병 파동으로 1기 수석비서관이 모두 교체됐을 때 유일하게 유임된 인물이기도 하다. 정무수석으로서 광우병 촛불시위 정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시각도 있었으나 그는 국정기획수석으로 자리를 옮기며 재신임을 받았다.
국정기획수석 시절에는 세종시 원안 수정, 4대강사업, 농협 신경분리, 종합편성채널 도입 등 주요 정책을 이끌었다. 특히 4대강 사업을 ‘한국판 뉴딜정책’이라고 평가하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17대 국회의원
박재완은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감사원과 재무부 등에서 관료로 일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뒤 공직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하며 '국가혁신의 비전과 전략', '작지만 유능하고 투명한 정부' 등 정부 혁신과 관련한 저술을 남겼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책 전문성을 인정받아 함께 경실련에서 활동하던 박세일 전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과 함께 한나라당에 영입됐다. 비례순번 10번을 받아 여유있게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17대 국회에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비교적 중도적 성향을 나타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취임한 뒤 소장파를 중용하겠다는 뜻에 따라 대표비서실장으로 박재완을 발탁했다.
박재완은 2007년 대통령후보 경선 때 경선규정을 다듬고 조율하는 일을 했다. 박재완이 관리한 경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 비전과 과제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3년 2월7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임자가 불미스러운 일로 구속된데다 사상 첫 사외이사 의장이라는 의미가 더해져 박재완을 향한 관심도 높다. 어느 때보다 삼성전자 이사회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향한 요구가 많아지 고 있어 이사회 의장으로서 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독립기구로 새로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사회의 감시자 역할을 하는 만큼 이들과도 소통하며 준법경영을 위해 보조를 맞춰나갈 것으로 보인다.
박재완은 삼성그룹 관계 학교법인인 성균관대 소속 교수로서 독립성 문제가 제기됐는데 이러한 시각을 불식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연루사건의 최종 결론을 앞두고 있어 재판 결과에 따라 삼성전자의 오너경영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경영의 중심을 잡을 이사회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비전 2030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형 인수합병과 투자 등 이사회 차원의 결정이 많아질 수 있다. 주주 이익을 대변하고 회사의 지속성장을 위해 의장으로서 삼성전자가 흔들림 없는 경영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사건사고
△국정원 불법자금 수수
박재완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근무하며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별활동비를 수수한 혐의를 받았다.
2018년 2월6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국정원 특활비 수수와 관련해 박재완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그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자금 수수 경위와 사용처 등을 조사했다.
검찰은 박재완이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2008년 4월 총선에 대비한 여론조사 비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의심했다.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확산되자 이와 관련한 여론동향 파악에도 쓰인 것으로 추정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김백준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2억 원이 담긴 가방을 건네며 박재완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박재완은 검찰 조사에서 이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 자금을 여러 국회의원에게 현금으로 1천만~2천만 원씩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12월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회의장에 입장하며 d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재완은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과 중고등학교와 대학 선후배로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삼성과 관계가 논란이 됐다.
2018년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박재완은 장충기 전 사장을 형님이라 부르며 자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타파는 박재완이 골프장 예약을 요청하기 위해 장충기 전 사장에게 보낸 문자를 공개했다.
박재완은 사위의 미국 대학 입학을 위해 사위가 다니던 삼성 계열사 임원으로부터 추천서를 받도록 장충기 전 사장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뉴스타파는 박재완이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인 201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삼성전자 노동자의 백혈병 발병과 노동환경 사이에 관련이 없다는 발언을 한 것과 이후 장관에서 물러나 2016년 3월 삼성전자 사외이사에 선임된 점을 문제 삼았다.
이와 관련해 박재완은 “장충기 사장과 잘 아는 사이나 공직에 있을 때 공과 사를 구분해 일했다”며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는 산업안전공단 등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바탕으로 얘기했다”고 해명했다.
△병역 기파와 위장전입 의혹
박재완은 이명박 정부 시절 고용노동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병역문제와 위장전입 의혹과 관련한 추궁을 받았다.
1996년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전세로 거주하면서 강동구 명일동에 집을 사고 전입신고를 한 뒤 실제 살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완은 주민등록 정리가 늦어 결과적으로 주민등록법 위반이 된 것은 사실이라며 불찰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노모를 모시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사정상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박재완은 고혈압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은 것을 두고 병역을 기피한 것은 아니라며 부인했다. 그는 신체검사에서 혈압이 보충역 기준인 160이 나와 국가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혈압 160 이상이면 약을 복용하지 않고는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한데 박재완이 고혈압 약을 먹지 않았다는 점, 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운동이 취미이자 특기로 기록됐다는 점 등 때문에 박재완이 고의로 병역을 기피했다는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 평가
▲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이 2011년 1월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열린 2011년 노사정 신년인사회에서 이희범 경총 회장,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 김성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과 함게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연합뉴스>
구속영장이 기각돼 구류로 그쳤는데 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오다 두부를 들고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을 고쳐 학업에 열중하게 됐다고 한다.
대학생 시절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등과 같은 하숙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홍 전 지사가 자서전에서 지방 출신의 S대 상과생이 짝사랑하는 상대가 있어 하숙집 동료들이 ‘돼지발정제’를 구해줬다는 얘기를 써 논란이 됐을 때 박재완에게 불똥이 튄 일이 있다. 박재완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다”고 관련성을 부인했다.
매우 근면성실하고 일처리가 치밀해 ‘바른생활맨’ ‘일벌레’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사무실에 늘 간이침대를 두고 생활을 할 정도다.
초등학교 때 결석 한 차례 하지 않았는데 학질에 걸렸을 때도 아버지 등에 업혀 학교에 갔다고 한다. 성균관대 교수 시절에는 8년 동안 100편이 넘는 논문을 썼다.
국회의원 시절에도 의원회관에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의원으로 알려졌다. 박재완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는 2006년 120건, 2007년 95건으로 같은 기간 17대 국회의원 중 가장 많았다.
특권의식이 옅고 소박해 서민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청와대 수석시절에는 경차를 탔고 장관에 취임한 뒤에도 3800cc급 대형 업무용 차량을 1600cc급 준중형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두 차례와 장관 두 차례 등 이명박 정부 내내 중요한 자리에 재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물러난 뒤 그의 철학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출범한 이명박대통령기념재단 발기인으로 참여한 뒤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교수 시절에는 경실련 정책위원장, 경제정의연구소 부소장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다. 다만 총선을 앞두고 경실련에서 사퇴한 지 하루 만에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비례대표로 출마해 폴리페서로서 시민단체 활동을 정계진출의 디딤돌로 삼았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정치권에서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에서 인연을 맺은 박세일 전 의원과 가장 가까웠다. 박세일 전 의원이 창립멤버였던 경실련에 참여하며 인연을 이어갔고 박 전 의원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은 17대 총선 때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나란히 비례 초선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여의도연구소 소장과 부소장 등으로 손발을 맞췄다. 박재완과 함께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맡은 박형준 전 의원까지 3박으로 묶여 불리기도 했다. 박재완은 2017년 1월 박 전 의원이 별세했을 때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관가에서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박재완의 복심으로 알려졌다. 박재완이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시절 김동연 전 부총리가 비서관을 지냈고 박재완이 기획재정부 장관일 때는 김 전 부총리가 예산실장과 제2차관을 맡는 등 여러 차례 손발을 맞췄다.
종교는 불교로 법명은 금산이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근무시절 청와대 불자회장을 맡기도 했다.
롯데자이언츠의 열성팬으로 평소에도 야구에 빗댄 표현을 종종 한다.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에는 “구속을 1㎞ 높이는 것보다 제구력을 1㎝ 개선하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며 재정의 확대 투입보다 적재적소 투입이 중요하다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기획재정부 장관 때까지 정책 홍보 등의 목적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2012년에는 가수 출신 애널리스트 김광진씨의 사회로 페이스북에서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묻고 장관이 답하다'는 이름으로 정책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 현직 장관 최초로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채널 '홈앤쇼핑'에 출연해 인터뷰를 했다. 원래 엔유씨전자의 점보파워 믹서기 판매방송에 직접 출연해 중소기업 제품 판매를 지원할 계획이었으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공무원 출연 금지 조항'을 위반할 우려가 있어 판매 대신 중소기업 제품에 관심을 촉구하는 인터뷰로 대체됐다.
2006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부녀가 나란히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등재됐다. 박재완은 반부패 활동과 재무관리·행정분야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영국 케임브리지 인명사전에 올랐다. 샌디에이고 토리콰인즈 공립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딸 박신영씨는 우수한 성적과 과외활동 경력으로 미국 마르퀴스의 인명사전 후즈후 고등학생 부문에 등재됐다.
◆ 경력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3년 2월14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0년 5월부터 1981년 5월까지 행정사무관 시보로 총무처, 경상남도, 국가안전보장회의 등에서 일했다.
1981년 5월부터 1983년 5월까지 국가안전보장회의 행정사무관으로 근무했다.
1983년 5월부터 1992년 11월까지 감사원 부감사관으로 활동했다.
1992년 12월부터 1995년 3월까지 재정경제원(재무부) 행정사무관을 지냈다.
1995년 3월부터 1996년 2월까지 대통령비서실에서 행정사무관과 서기관으로 파견근무했다.
1996년 3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04년 5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제17대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을 역임했다. 산업자원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국회개혁특별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2006년 7월부터 2008년 2월까지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았다.
2008년 3월부터 2008년 6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2008년 6월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으로 이동했다.
2010년 8월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됐다.
2011년 6월 기획재정부 장관에 임명돼 2013년 3월까지 재직했다.
2014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2016년 삼성전자와 롯데쇼핑 사외이사에 선임됐다.
2020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 학력
1967년 성호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마산중학교를 졸업했다.
1973년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7년 2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6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6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상훈
1983년 6월 감사원장 상장을 받았다.
1984년 12월과 1922년 11월 두 차례 감사원장 표창을 받았다.
◆ 가족관계
1980년 4월20일 배우자 오문옥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남은 서울 노원구의 한 성형외과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기타
2013년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 본인과 배우자, 자녀 명의로 모두 12억1065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고혈압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고 1977년 2월19일부터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1978년 3월17일 소집해제 됐다.
‘대통령의 성공조건’(2002), ‘국회의 성공조건’(2004), ‘국가 재창조를 위한 정부개혁’(2017), ‘국가와 좋은 행정’(2017), ‘수저계급론에 대한 진단과 정책 제언’(2018) 등의 책을 썼다.
◆ 어록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2년 5월29일 중소기업제품 판매전용 홈쇼핑인 '홈앤쇼핑'에 출연해 쇼핑플래너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기획재정부>
“정부 재정은 쓰고 나면 성과가 나와야 한다. 하다못해 KTX 선로라도 남아야 한다. 허겁지겁 나눠주는 데 쓰게 되면 흔적도 남지 않는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사업은 쓰임새에 맞는 성과가 나왔는지 의문이다.” (2019/04/03,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와 간섭을 줄여야 한다. 최순실 사태의 뿌리는 ‘숨은 큰 정부’이고 그 토양은 정부와 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기대 수준이다. 정부 입김의 축소보다 최순실 사태의 재발을 막는 더 나은 대안은 없다.” (2017/03/28, 한국경제에 기고한 ‘대통령 탄핵이 남긴 숙제’)
“우리나라의 소득분배 상태는 지니계수와 분위별 상대소득비중, 소득점유율, 상대빈곤율 등을 고려할 때 선진국 평균에 가깝다"며 "'헬 조선'이나 '금수저' 주장의 근거는 약하다. 분석결과 한국의 계층 이동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2017/08/08, 한국경제연구원 세미나 ‘흙수저는 금수저가 될 수 없는가’에서)
“대통령의 위기를 나라 발전의 기회로 바꿔야 한다. 오늘의 혼란은 새 시대를 여는 진통이자, 1987년 헌정체제를 마무리하는 시련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기도 한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단을 바로잡는 권력구조 개편을 의제에 올려야 한다.” (2016/11/20, 한국일보 기고문 ‘대통령의 위기를 나라의 기회로’)
“이번 공약들의 공통분모는 ‘큰 정부’와 ‘경제 민주화’로 모아진다. 이런 약속들이 실현되면, 우리 경제는 실패로 판명 난 ‘사회주의’와 다름없는 틀을 갖추게 될 것이다.” (2016/04/12, 20대 총선을 앞두고 동아일보에 기고한 ‘사회주의 문턱까지 넘어선 총선공약’)
“(총선 출마는) 생각이 없다. 9년 동안 중앙에서 일하는 등 공직은 할만큼 했다. 역량 있고 참신한 분들이 나서야 하고 제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능력부족이다. 앞으로 총선 출마기사가 안나오게 도와달라.” (2015/12/11, 20대 총선에서 창원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자 기자들에게)
“노동개혁은 심각한 청년실업을 완화하고 추락하는 성장잠재력을 복원하기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초미의 과제다. 나라의 미래인 청년들의 실업난과 급속히 추락하는 성장잠재력, 그리고 다가오는 경제사회 위기를 지켜만 볼 수 없어 성명을 발표하게 됐다.” (2015/10/06, 정기국회에서 노동개혁 법안을 처리할 것을 촉구하는 지식인 1천 명 성명을 발표하며)
“상대적으로 위상이 약해지고 있는 행정의 힘을 길러야 한다. 전두환 대통령 때는 경제수석도 몇 년씩 하고, 행정실장도 몇 년씩 했지만 지금은 행정직을 2년 정도 했으면 굉장히 오래 했다고 얘기할 정도다.” (2015/07/16, 한국행정학회 하계 학술대회 기조발제)
“아픔 없이 얻는 것은 없다. 개혁을 위해서는 아픔을 감당하고 과감한 개혁을 하지 않으면 한국경제 살 길이 어렵다.” (2014/10/08, 삼성 수요사장단 회의 ‘한국경제의 도전과 개혁과제’ 강연에서)
“사내유보금 과세는 세계 표준과 부합하지 않는다. 일부 국가에서 도입된 사내유보금 과세 제도의 도입취지는 탈세 예방이 주안점이다. 기재부 장관 시절에도 공식적으로 반대했고 지금도 입장 변화가 없다.” (2014/07/24, 전경련 CEO 하계포럼 강연에 앞서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권과 정부 등 '관병'의 인기 영합주의와 지역, 이념, 이익집단 등 '향병'의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에게만 나라 장래를 맡길 수 없어 한반도 선진화의 의병이 되겠다.” (2014/02/26,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취임식에서)
“4대강 사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2013/10/23, 전경련 주최 경찰 중간관리자 경제교육 강연에서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당한 것을 놓고)
“참여정부의 연간 성장률(4.3%)은 세계경제 성장률(4.8%)보다 낮았으나 이명박정부(2.9%)에선 세계경제와 성장률이 같아졌다. 어떤 정권이든 공과 과가 있다. 근거 없는 폄하보다 진지하게 공과를 따져 미진한 점을 보완하도록 힘을 모을 때다.”(2013/10/03, 중앙일보 박명림 칼럼 ‘도대체 MB는 왜 집권했는가?’에 반론 기고한 ‘흑백논리로 왜곡해선 안 돼’)
“2년 가까이 이명박 감독과 김황식 코치가 이끄는 국가대표 경제팀에서 태극마크에 노란 완장까지 차고 함께 뛸 수 있어서 참으로 영광이었다. 인저리 타임까지 끝나 이제 저는 유소년 캠프의 트레이너로 복귀하지만 핵심전력이 남아 있기에 든든하다. 저는 OB로서 여러분(YB) 뒤를 잇고자 하는 WB(Wanna Be) 육성에 전념하겠다.” (2013/03/22, 기획재정부 장관 이임사)
“우리에 대한 자부심(Self-Respect)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세계 7번째로 ‘20~50 클럽’에 가입하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발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혁명적 사고(Revolutionary Thinking)를 견지하고 우리 안에 숨은 창조혁신의 DNA를 발현해 과거의 ‘페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선발자)로 변해야 한다.” (2012/12/28,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안 본 용은 그려도 본 뱀은 못 그린다'는 속담이 있다. 특히 선거에 나타난 민의야 말로 '본 뱀'이다.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민심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우리의 잘못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2012/12/20, 기획재정부 직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장률 주먹구구식 전망 발언은) 용어를 잘못 선택한 명백한 실수였다. 내년 성장률을 4%내외로 개략적으로 전망할 수밖에 없었던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었다.” (2012/10/25,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겠다. 9월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주먹구구식으로 4.0%를 제시한 것이다. 예산 심의 과정에서 근접된 전망치를 제시하겠다.” (2012/10/24, 국회 국정감사에서)
“태풍 피해가 클까봐 마음놓고 좋아하지도 못했지만 `Aa3'는 이제껏 우리가 무디스로부터 받아보지 못한 등급이다. 런던올림픽처럼 경제올림픽에서도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둔 것이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조차 `룩킹 삼진' 당하듯 속절없이 신용등급을 강등당하는 `글로벌 경제위기 시즌'에서 거둔 성적이니 `대회신기록'으로 해석해도 민망하지 않다.” (2012/08/28, 무디스 국가 신용등급 상향조정과 관련해)
“법인세율 인상이나 이른바 재벌세 신설 등의 방법으로 법인세제 자체를 더욱 강화하고 부담을 늘리는 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 전 세계에섯 법인세율을 올리는 나라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법인세를 강화해 부담을 높이는 것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어 반대한다.” (2012/06/28,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합동브리핑에서)
“여야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최근의 `기업 때리기'식 공격은 국민 간의 편 가르기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12/02/02,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4%로 잡아 희망을 줄 것인지 3.7%로 시장 신뢰를 얻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내년에 양대 선가가 있음에도 후자를 선택한 것은 국민과 솔직하게 소통하고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자는 의미다.” (2011/12/12, 2012년 경제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의 친기업 정책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친기업 정책기조가 일자리를 만들고 국부를 늘리는 지름길이다.” (2011/09/05, 전경련 경제정책위원회 간담회에서)
“물가상승 압력에는 시장친화적이면서 창의적인 대안을 끊임없이 고민해야한다.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 고리가 복원되도록 세제 금융 예산 조달 등의 제도를 고용유인형으로 바꿔야한다. 우후죽순의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레오니다스가 이끌던 300명의 최정예 전사처럼 테르모필레 협곡을 굳건히 지킬 것이다.” (2011/06/03, 취임 후 첫 현장행보로 중소기업 유통매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어이없는 실점은 하지 않겠다. 우리 정부와 금융권에는 3년 전 전투에 투입됐던 주력부대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금까지 위기라는 파고를 잘 이겨냈듯이 이번에도 반드시 위기를 기회로 바꿀 것이다.” (2011/10/05, 전경련 50주년 기념 심포지움에서)
“양대 노총 대규모 집회에 나올 사람들은 근로조건이 좋은 대기업의 정규직 이익을 대변하는 소수의 노동권력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 모습은 결과적으로 중소기업 비정규직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일이다. 노동권력 횡포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2011/04/27,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수요정책포럼 강연에서)
“최근 노사관계를 보면 법에 도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걱정이다. 행정적 사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떼쓰는 노동운동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21세기에 20세기 방식 노동운동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2011/04/08, 최저임금위원회 2차 전원회의에서)
“확정판결되기 전까지는 이 분들이 현대차 소속도 아니고, 비정규직이라고 보기 어렵다. 파업형태의 무력시위가 계속되면서 국민경제와 지역경제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불법적인 무력행사는 즉각 중단을 하고 대화로 해결하는 게 좋겠다.” (2010/12/01, CBS라디오 변상욱의 뉴스쇼에서)
“청년에게 일자리는 희망이며 그 희망을 잘 가꿔 나가도록 환경을 만들고 지원하는 것이 고용정책의 최우선 과제다. 취임 첫 프로젝트로 청년 일자리와 관련한 종합 대책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2010/08/31, 경기도 두원공과대학 안성캠퍼스를 방문해 간담회를 하며)
▲ 박재완 한나라당 의원이 2008년 1월31일 국회에서 대정부질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의 세종시법은 수도권 인구분산, 국가균형발전, 해당 지역 발전의 목적을 이루는데 법 자체가 족쇄가 되고 있기 때문에 손대는 것이 불가피하다.” (2009/11/12, 국회 국정감사에서 세종시 수정안 추진과 관련해)
“미디어법은 80년 언론통폐합으로 왜곡된 신문과 방송시장을 바로잡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미디어산업의 미래를 이끄는 법이다. 방송을 대기업과 특정신문에 준다는 일부 주장은 그릇된 것이다.” (2009/08/05, 청와대 정책소식지 ‘안녕하십니다 청와대입니다’에 기고한 글에서 미디어법과 관련해)
“그동안 농협은 농업인을 위한 협동조합으로서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농협을 농업인에게 돌려드리겠다.” (2009/04/01, 청와대 정책소식지 ‘안녕하십니다 청와대입니다’에 기고한 글에서 농협 신용-경제분리 추진방안과 관련해)
“고유가와 세계경제위기 등 바깥에서 예상치 못한 외풍이 불어서 국민들이 열망하는 경제 살리기를 제대로 못 해서 송구스럽다. 우리는 대외경제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열심히 한다고 해결이 되는 문제는 아니다.” (2009/02/25,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불법시위 탓에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가치가 실제보다 낮게 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심각하다. 국제무대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려면 왜곡된 노사관계와 함께 불법시위 문제가 빨리 해결돼야 한다.” (2009/01/15, 한국행정학회 주최 ‘대한민국 국정, 어디로 가야 하나’ 포럼에서)
“이제 대운하 논쟁은 그만 하고 필요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해야 한다. 4대강은 다목적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한국판 뉴딜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4대강 정비사업을 하면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각 지역이 균형발전할 수 있으며 골재난도 해소할 수 있다.” (2008/12/16, SBS라디오 김민전의 SBS전망대 인터뷰에서)
“경제상황이 어려울 때일수록 멀리 내다보고 개혁을 더 착실히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볼 때 모든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개혁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부가 경제를 안정시키고 시장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긴급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장기적 안목에서 구조조정을 해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2008/10/10, SBS라디오 김민전의 SBS전망대 인터뷰에서)
“540여만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출범했지만 지난 6개월간 지지율을 상당부분 까먹고 친정으로 돌아와 송구스럽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으로서 깊이 사과드린다. 이명박 정부와 참여정부 출범 6개월을 비교하면 나름대로 노력했고 선방했다.” (2008/08/29,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하반기 주요 국정과제와 추진계획을 보고하며)
“최근 우리나라는 이념 이기주의가 극심해지고 있으며, 극심한 이념 이기주의는 우리나라가 선진화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자동차 노조가 미국산 쇠고기 문제 때문에 파업을 하는 일은 이념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2008/07/25, 대한상의 제주포럼 ‘새 정부 국정철학과 주요국정과제’ 강연에서)
"KBS 사장은 방송의 중립성도 고려해야겠지만 정부 산하기관장으로서, 새 정부의 국정 철학과 기조를 적극 구현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2008/07/21,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자연스럽게 중단된 상태다. 어떠한 국정과제라도 민심이 뒷받침되지 않고 호응을 받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반대여론이 압도적인 대운하 사업을 추진할 명분이 없다.” (2008/07/21,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지난 5년간 비대해진 정부조직과 방만해진 기능을 조정해 군살을 빼고 작고 유능한 정부, 국민 편하게 하는 정부를 만드는 게 목표다. 시급성에 비춰 저희팀은 정부조직을 재편하고 기능을 조정하는데 초기 역량을 집중하겠다.” (2007/12/28,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정부조직개편안을 2주 안에 마련하겠다며)
“황우석 박사 연구 지원과 관련한 노무현 대통령 및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박기영 전 보좌관의 개입 및 은폐 의혹, 과기부 등 정부 부처의 황 박사에 대한 연구지원 은폐, 기업의 지원 내역' 등을 조사키 위해 야 4당이 공동 제출한 국정조사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2006/05/15,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의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보유세를 오는 2007년까지 1%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과도한 탁상공론이다.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개발이익 환수 강화와 병행해 건물분 재산세와 거래세를 낮추는 방안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만 전환기적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2005/08/24, 국회 토지공개념 토론회에서)
“이해찬 총리의 발언은 계유정란의 일등공신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다가 결국 부관참시된 한명회와 1969년 닉슨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언론공격에 앞장서다 탈세 혐의로 하야한 애그뉴 부통령을 연상케 한다.” (2004/11/01, 한나라당 이해찬 총리 국정농단 보고회에서)
“17대 국회를 정책국회, 생산적 국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당의 정책 전문성이 강화돼야 하며 이번 총선이 정책 선거가 되어야 한다.” (2004/03/24, 경실련 정당정책 비교평가 기자회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