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nsun Brief 통권370호
1. 서론
2. 상법 개정이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
1) 집중투표제의 의무화
2) 감사위원 분리 선임 대상의 확대
3) 자사주의 의무 소각
3. 결론
1. 서론
상법은 이른바 기본 6법에 속하는 중요한 법으로서 법무부가 소관하고 있다. 상법은 기업의 설립, 조직, 운영 및 해산 등 기업 활동 전반을 규율하는 주된 법률로서, 그 개정은 기업의 법률적 환경을 변화시키고, 이는 곧 기업의 의사결정 방식, 지배구조, 그리고 투자자 관계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지금까지 중요한 상법 개정은 법무부가 법학 전문가(교수), 실무자(판사, 변호사), 업계 대표 등으로 상법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장시간에 걸친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한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소라는 명분으로 체계적인 정합성과 그 파급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국회 다수당의 주도 아래 상법 개정이 연달아 이루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피자면, 주주의 충실의무를 주주에게 확대하는 것과 전자주주총회의 도입, 독립 이사의 도입 및 확대, 그리고 감사위원 선임 시 합산 3% 룰 적용을 내용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7월 3일 국회를 통과하여 7월 22일에 공포되었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하는 개정 상법이 공포된 지 보름이 채 지나지 않은 8월 1일 여당의 일방적인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산 2조 원 이상 대규모 상장회사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의무적으로 집중투표제의 방식에 따라야 하고 분리 선임해야 하는 감사위원을 2명 이상으로 늘리는 상법 개정안을 다시 한번 통과시켰다.
그리하여 기업을 옥죄는 제2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 밖에도 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자사주의 의무 소각을 내용으로 하는 여러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어 머지않아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하에서는 앞으로 개정이 예정되어 있는 상법에 주식회사 관련 제도를 소개하고, 이러한 상법 개정이 한국 기업의 경영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상법 개정이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
1) 집중투표제의 의무화
집중투표제를 시행하는 경우 주주가 보유한 1주에 대해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의 의결권이 부여되며, 투표의 최다수를 얻은 자부터 순차적으로 이사에 선임된다. 예를 들어, 3명의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1주를 가진 주주는 총 3표의 의결권을 갖게 된다.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려는 것은 일반주주가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고 대변할 수 있는 후보를 이사로 선임함으로써 다수 주주에 의한 이사 선임을 지양하고 회사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집중투표제로 이사를 선임한다고 하더라도 일반주주가 상장회사에서 자신을 대변할 이사를 선임하는 것은 그가 보유한 주식의 비율이 크지 않는 한 사실상 어렵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면 회사의 제2, 제3의 대주주만의 잔치가 될 뿐이다. 결국에는 집중투표제는 기관투자가와 행동주의 펀드와 같은 대주주를 위한 제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집중투표제하에서는 극소수의 표를 얻고도 이사로 선임될 여지가 있어 오히려 대표성에 문제가 야기될 여지가 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100주를 발행한 어느 한 회사에서 제1대 주주 갑이 40%를 보유하고 있고, 다른 주주 을과 병이 각 39%, 21%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집중투표의 방법으로 5명의 후보 중 2명을 이사로 선임한다고 가정하자. 갑, 을, 병은 각 80개, 78개, 42개의 의결권을 가지게 된다. 만약 갑, 을, 병 모두가 투표를 전략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갑은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반드시 1명 이상의 이사를 뽑겠다는 의도로 후보 A에게 79표를 투표하고 나머지 1표를 후보 B에게 투표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을과 병도 모두 후보 A에게만 투표하였다고 하자. 이 경우 5인의 후보 중 다득표순으로 199표를 받은 후보 A와 1표를 받은 후보 B가 이사로 선임된다. 하지만 A와 B가 이사회의 구성원인 이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득표수의 차이가 무려 198표나 되는 것은 그냥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집중투표제의 의무화가 그동안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글로벌 스탠더드가 절대 될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집중투표제에 내재된 효용 상의 한계와 이 방식에 의하여 선임된 이사가 전체 주주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약점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의 정치가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상법상 주식회사 제도가 그러한 대의민주주의를 기본적인 모델로 삼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집중투표제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2) 감사위원 분리 선임 대상의 확대
감사위원 분리선임에 대한 논의는 2013년 6월 법무부가 한 차례 입법예고를 한 이후 끊임없이 논의되다가 마침내 2020년 12월 감사위원 1인 이상을 분리 선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여 상법에 도입되었다. 이처럼 감사위원 분리선임은 무려 7년 이상 논란의 중심에 있다가 최근에서야 입법으로 마무리된 것인데, 감사위원 분리 선임 대상을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은 이제 와서 과거의 논의에 다시 불을 붙이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감사위원은 미국이든 일본이든 한국이든 간에 이사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 이사회의 구성원인 감사위원 2인 이상을 분리 선임할 때 상법 개정안에 따라 최대 주주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3%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하여 의결권을 배제하는 것은 이사 선임권을 제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주주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할 방법이 침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미국법이나 일본법에서 이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결권 제한 규정을 찾을 수 없음은 당연하다. 특히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충분한 지분을 가진 지배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에게 총 3%에 해당하는 의결권만을 인정하여 이사를 선임하도록 하는 것은 그의 지배권을 제한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최대 주주가 보유한 주식에 부수되는 지배권 혹은 경영권은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법률로 강제적으로 박탈하는 것이 과연 헌법에 합치되는지가 논란이 될 여지가 있다. 이미 20대 국회에서도 감사위원 분리선임에 관하여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마저 “주주가 이사 선임에 대하여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주주가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여 지배권을 실현하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인데, 이를 제한하는 것은 주주가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는 가장 핵심적인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므로 재산권의 일종인 주주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있음”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분리 선임하여야 하는 감사위원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경영권의 불안정하게 될 우려가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예를 들어, 100주를 발행한 어느 회사에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이 65%를 가지고 있고 국내의 기관투자자 2인이 각각 10%씩 가지고 있으며, 해외의 5개 행동주의 펀드가 각각 3%씩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 회사에서 이사를 선임할 경우 현행 상법에 따라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 과반수와 발행주식총수의 25% 요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만약 전체 주주가 주주총회에 참석하였다면 최소 25표를 받아야만 이사 선임이 가능하다. 그런데 감사위원을 분리 선임하는 경우 3%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서는 발행한 주식의 수에 산입시키지 않으므로 이 회사는 사실상 24주를 발행한 것으로 된다. 후보자는 24주의 25%에 해당하는 6주만 득표하면 감사위원로 선임된다.
문제는 해외 행동주의 펀드가 담합을 하는 경우 총 24개 의결권 중 무려 15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사실상 최대 주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어 감사위원 2인을 모두 선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감사위원회가 3인을 구성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감사위원의 과반수가 해외 행동주의 펀드에 의하여 선임되는 셈이다.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주의 펀드의 속성상 이들이 이사회에 참석하여 의결권을 행사하게 됨으로써 회사는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경영을 하는 데 큰 지장을 초래하게 될 우려가 있다.
3) 자사주의 의무 소각
국내에서 적대적 M&A가 시도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어방법은 자사주의 취득이다. 대상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하면 시장에서의 유통 물량을 감소시켜서 공격자가 경영권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주식을 취득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더 나아가 대상 회사가 취득한 자사주를 우호적인 제3자에게 매각한다면 대상 회사의 경영권 유지에 큰 보탬이 된다. 이처럼 자사주에는 의결권이 인정되지 않을지라도 자사주를 처분하여 우호적 주주의 의결권 비중을 높이는 것은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자사주를 취득하면 유통되는 주식량이 감소되어 증권시장에서 주가를 상승시키게 된다. 그 결과 공격자가 시장 매집을 하거나 공개 매수할 때 처음 예정하였던 금액보다 더 큰 금액이 있어야만 적대적 M&A를 달성할 수 있으므로 그 M&A 의도를 좌절시키는 효과도 있다. 한편, 대상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잉여 자금으로 자사주를 취득하여 현금보유량이 감소된다면 그만큼 M&A 대상 회사로서의 매력이 줄어들기도 한다.
최근 영풍과 MBK가 고려아연이 자사주 취득을 통해 자신들의 공개매수를 방어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처분 신청을 두 차례 제기하였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마도 법원은 자사주 취득마저 못하게 한다면 국내 기업들이 적대적 M&A를 수수방관해야 하는 딱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였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이처럼 국내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경영 방어 수단이 자사주 취득밖에 없다는 데에는 생각을 달리할 수 없다. 따라서 자사주 의무 소각을 제도화하는 경우 국내 기업들은 약탈적인 행동주의 펀드에 대하여 무조건 항복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공격자는 선(善)이고 대상 회사는 악(惡)이므로 이사의 방어 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게다가 상법은 여러 규정을 두어 자사주를 기업의 재무적 목적과 구조조정 등을 위해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예컨대 임직원이 스톡옵션을 행사하는 경우와 교환사채를 교환할 때, 상환사채를 상환할 때도 자사주를 부여할 수 있다. 회사가 합병, 분할합병, 주식교환 등을 하는 경우 자사주를 그 대가로 교부할 수도 있다. 만약 자사주 의무 소각으로 인해 기업이 재무적 운영이나 구조조정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면 이는 또 다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될 수 있다.
3. 결론
새 정부의 자본시장 규제 정책은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개선하고 선진화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 평가된다. 소수 주주의 권익을 강화하고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여 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이야말로 장기적으로 한국 자본시장의 매력을 높이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상법 개정을 통해 기업지배구조의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집중투표제의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임의 확대, 자사주의 의무 소각 등은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예컨대,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약화시켜 경영 안정성을 해치고, 단기적인 이익 추구에 몰두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법 개정(안) 상의 각 제도의 도입을 하기에 앞서 한국 기업의 상황과 시장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균형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규제 대상이 되는 기업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규제의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 기업이 한국경제를 지탱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상법 개정이 자칫 죽 쒀서 개 주는 우(憂)를 범하는 일은 절대 발생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 본고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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