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nsun Brief 통권354호
1. 배경: 해양 구조물과 이어도 문제와의 연계
2. 중국의 구조물 설치의 용도와 목적
3. 전망과 우리의 과제
한중 양국 사이에 영해 문제가 또다시 불거져 나왔다. 중국이 양국의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겹치는 서해의 잠정조치수역에 지금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일방적으로 설치한 해양 구조물 때문이다. 2018년(선란 1호), 2022년(관리시설로 석유 시추설비 형태의 구조물), 2024년(선란 2호)에 세운 이 구조물들은 정확하게 확인된 바 없지만 해저 지층에 고정시킨 고정형 구조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중국은 그 주변에 감시탑처럼 생긴 반잠수형 구조물인 선란 1, 2호기를 띄워놓았다. 2000년에 체결된 한중 어업협정에 따르면, 어업 이외의 활동은 금지돼 있다. 따라서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의 중국 측 수역 안이라도 구조물을 설치한 건 위법이다. 중국 측 주장대로라면 그것이 “부유하는 구조물”이어서 국제해양법 위반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유엔해양법협약과 국제 판례에 근거하면 경계가 획정되지 않은 수역에서 상대국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해양환경에 대한 영구적인 물리적 영향”을 끼치는 행위는 금지조항으로 돼 있다.
이로 인해 한국 내에 그것은 중국이 서해의 해양 경계선을 확장하기 위한 예비단계의 계획적 조치가 아닌가 하는 우려와 함께 반중여론이 꿈틀거렸다. 지난 4월 23일 서울에서 열린 제3차 한중 “해양협력대화” 회의에서 중국은 문제의 구조물 중 2개는 부유식이고, 1개는 영구적으로 고정된 시설물이 아니라 순수 심해 양식시설로서 영유권이나 해양 경계선 획정 문제와는 무관하고, 중국 정부가 설치한 게 아니라 민간 기업이 자금을 투자해서 설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3개의 시설물 모두 잠정조치수역 바깥으로 이동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추가 시설 설치를 절대 반대한다고 주장한 한국 측의 요구에 대해선 중국 측은 향후 더 이상 추가 설치는 없을 것이지만 기존 시설의 이동은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연 중국이 말하는 게 사실의 전부이고, 그들이 약속을 이행할 것이라고 온전히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구조물 설치가 단순히 이 구조물로 끝나는 단일 사건일까? 우리 정부는 미중관계,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인식까지 포함해서 다각도로 진상을 파악한 후에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중국이 서해안에 해상구조물을 설치한 배경과 목적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먼저 결론부터 밝히면, 중국 측의 상기 해명을 온전히 믿고 안일하게 대응해선 안 된다. 이 구조물은 해양 영유권이나 경계획정 문제와 무관하지 않고 향후 서해의 해양선 경계획정에서 더 많은 해역을 점하고자 하거나 협상에서 이어도(중국명 蘇岩礁 쑤옌자오)에 대한 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포석일 수도 있다. 지금부터 이 같은 몇 가지 의문에 대해 항목별로 자세히 따져보겠다.
1. 배경: 해양 구조물과 이어도 문제와의 연계
문제의 구조물은 이어도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중국이 자국 안보 면에서 이어도가 속해 있는 동중국해와 서해를 별개로 보지 않고 하나의 연속체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어떤 지역을 영유하고자 할 때 국가전략 차원에서 통상 4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제1단계는 도상 침략(map's aggression)이다. 이는 분쟁의 소지가 있거나 문제가 되고 있는 분쟁지역에 대해 상대국과 외교교섭을 벌이기 전에 먼저 자국 지도에 자국령으로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 제2단계는 해당지역을 공동관리수역에 넣거나 쌍방의 합의가 되지 않을 때는 국제분쟁지화 한 후 공동관리수역에 넣는다. 제3단계는 쌍방의 공동개발이다. 제4단계는 공동개발 중 자국 영유권을 선전하면서 실제 점유를 시도하는 것이다. 중국이 대체로 이 과정을 밟은 사례가 남사군도다. 인도와의 국경분쟁에서도 유사한 선례를 남겼다. 이 관점에서 보면 중국은 이어도에 대해선 이미 제1단계인 도상 침략을 완료했다. 중국이 영해, 대륙붕과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획정 선포한, 자국 육지 영토의 1/3에 상당하는 300만km²안에 이어도가 들어가 있다. 이어도가 중국 관할해역의 일부라고 한 중국의 발표는 제2단계인 공동관리 수역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이어도의 국제분쟁지화를 노리고 우리의 반응을 탐색하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중국의 구조물 설치 사태도 이런 관점에서 꼼꼼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은 영토와 영해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나라라는 점이다. 러시아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중국학계에는 자연스레 강역을 연구하는 ‘강역학(疆域學)’이 폭넓게 발달해 있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관련 연구도 성하다.
중국은 궁극적 목표인 세계 적화(世界赤化), 즉 세계혁명(world revolution)을 잠시 선반 위에 올려놓은 채 미국을 제치고 세계패권 국가가 되려 하고 있다. 그래서 먼저 자국의 안전과 이익의 보장 및 확대에 치중하고 있다. 중국은 해상에선 미국 및 일본과 면해 있는 동북아의 주요 연해 지역 그리고 중국의 둥베이(東北) 지역, 톈진(天津), 베이징(北京), 칭다오(靑島), 샹하이(上海), 닝뽀(寧波), 푸저우(福州), 샤먼(廈門), 홍콩, 광저우(廣州) 등의 중국 동남 연해지역에서 자국 안전이 결정된다고 보고 있다. 이 해역을 어떻게 방어하느냐 하는 것이 중대한 사활적 과제다. 중공 수뇌부에서 6·25 한국전쟁 전부터 이 지역을 자국 안보의 핵심지역으로 설정하고 대비해 오고 있는 이유다. 육상에서는 아래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핵심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변경지역이 존재하지만 중국 연안의 변경지역은 바로 북쪽 랴오둥(遼東)반도에서 대만을 거쳐 광둥(廣東)성에 이르는 연해지역에 면해 있는 서해(중국은 “황해”라고 부름), 동해(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북쪽 바다다.
중공 최고 권력자 시진핑이 미국에 패권경쟁의 싸움을 걸어 미국의 반격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의 대중국 압박 그리고 대만이나 북한의 유사시 미국의 중국 공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향후 중국은 무력으로 대만을 칠 경우 미국과의 전쟁을 상정하고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엔 전장이 대만해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은 동중국해에서 일본과 센까꾸도(중국명 “띠아위따오”)를 두고 영유권 분쟁을 해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를 둔 일본과 잠재적 적대관계에 있다. 그래서 중국은 대만 유사시엔 반드시 개입하겠다고 천명한 일본의 중국 공격도 상정하고 있어 대만 유사시는 일본 안보와도 직결돼 있다. 동시에 중국은 미국과의 군사동맹 관계에 있는 한국도 미중이 충돌하면 미국 편에 설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어도의 배후에는 미국이 관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중국의 턱 밑에 해당되는 한국(평택)에 미군의 최첨단 군사기지가 있다. 중국은
국 핵심지역의 안보가 위험해지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
좌표상 북위 32도 07분 22.63초, 동경 125도 10분 56.81초로 찍히는 이어도는 한반도와 중국대륙, 일본열도를 잇는 삼각형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중국과 일본을 잇는 항로의 중간 기점이자 한중 양국 공히 태평양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길목이다. 이어도는 그 위쪽 북단의 바다 서해에 연결돼 있고, 서해 자체의 전략적 가치에다 동중국해의 중간 지점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지점이다. 이곳은 한중일 3국 중 누가 수중에 넣는가에 따라 여타 상대국에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는 지정적 군사 전략적 요충지다. 마치 상대의 숨통을 조를 수 있는 인후(咽喉)에 해당된다. 서해 주변에는 중국의 칭따오항, 르짜오(日照)항, 따롄(大連)항, 북한의 남포항과 평양, 한국의 인천항, 평택항 등등 많은 항구들과 멀지 않는 거리에 있다. 그래서 서해를 장악하는 자는 나머지 국가들에게 자국의 안전이 위협 받을 수 있는 목줄이다.
중국은 자기들이 이어도를 통제할 수 있으면 외부 세력의 해상 위협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상 항행과 무역의 안전과 원활함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반대로 만약 이어도가 타국의 손에 통제되면 중국 영토의 완정성과 해상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은 이어도를 중국의 안전을 해치고 유사시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도 중국으로 공격해 들어올 수 있는 전초기지로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이어도 주변 해역에는 풍부한 석유 및 가스 자원이 매장되어 있어 이어도를 장악하는 것은 인근 해역의 광물 자원 채굴권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잠재적 중국 공격에 대비해야 하는 중국은 이어도를 서쪽으로는 장강 삼각주를 바라보고, 동쪽으로는 황해를 억제하는 매우 의미 있는 “섬”으로서 황해와 동중국해 해역의 핵심 지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거시적인 안보 구도 및 중국의 대응전략이라는 측면에서 동중국해와 서해는 중국의 전략가들에겐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안보 방벽이다. 이 점은 실제로 중국이 이 두 바다를 하나의 바다로 보고 있는 사실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육지에 둘러싸여 반폐쇄적 가장자리에 위치한 서해 역시 중국에게 전략적으로 긴요한 해역이다. 서해는 북쪽으로 압록강 하구에서 남쪽으로 창장(長江) 하구 북안에 이르는 기동각과 제주도 남서쪽 모서리, 서쪽으로 중국 랴오닝(遼寧), 산둥반도, 동쪽으로 한반도와 인접해 있으며, 면적은 약 38만 ㎢이고, 평균 수심은 44m, 가장 깊은 곳은 140m에 달한다. 중국은 동북아 지역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인 서해를 중국의 지정적 핵심지역을 보호할 수 있는 전략적 경계지역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서해는 수산자원이 매우 풍부하고 꽃게, 갈치, 황어, 병어 등 각종 어류가 번식하여 연간 어획량이 수백만 ton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세계 유수의 어업 생산지이기도 하고, 해저에 약 수십억 ton의 석유, 천연가스 등이 다량 매장돼 있는 에너지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2. 중국의 구조물 설치의 용도와 목적
그런데 과연 중국은 구조물을 왜 뒤늦게 2010년대 후반에 와서야 서해의 잠정수역 안에 세웠을까? 이와 관련해서 센카쿠열도와 이어도에 대한 중국의 과거 대응을 보면 그들의 의도를 추론할 수 있다. 지금은 센카쿠열도의 대립이 첨예하지만 사실 중국은 1970년대 이전엔 문혁 등 중국 내부의 혼란 상황으로 인해 센카쿠열도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동중국해에 대량의 해저 광물자원이 매장돼 있다는 조사 결과를 알게 되면서부터 관심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이 해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중국이 이어도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극히 최근의 일이다. 대략 2000년 이전까지는 중국 언론이나 학술계에는 거의 언급된 게 없다. 이어도에 대한 영유권 시비도 “2001년 1월 26일 청와대가 쑤옌자오를 ‘이어도’로 불법 개명하도록 지시한 데서 비롯됐다”고 억지를 피웠다. 또한 중국은 현재 중국 해군과 공군이 이어도 인근을 상시 순찰하고 있고, 한국의 통제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 현상태로 가면 이어도가 한국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중국 내 인민들에게 호도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 공군기가 수시로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실들이 함의하는 바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 중국이 이어도 북쪽 해역인 서해에 선란 1, 2호 등의 구조물을 설치한 것은 자신들이 한국에 선점당했다고 생각하는 이어도의 전략적 가치를 상쇄시킬 대용 해역의 확보나 대한국 협상용 카드 확보로 시도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중국에 이어도가 한중 간 서해에서의 충돌이나 대만 유사시 한국이 참전할 경우 서해와 한국을 견제할 수 있는 핵심 요충지로 인식됐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구조물들은 어떤 용도로 세워진 것일까? 중국이 말한 대로 순수하게 사기업의 사업용 심해 양식시설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중국 산둥 해양그룹이 서해 양식장 개발에 나선다며 설치한 해당 구조물은 석유시추 시설인 ‘애틀란틱 암스테르담호’를 개조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중국은 구조물을 사기업이 투자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럴 개연성은 높지 않다. 왜냐하면 중국은 안보 관련되는 사안에 개인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이 사기업임을 포장하지만 실제는 국가가 설치한 것으로 봐야 한다. 구조물의 양식은 심해 양식시설이라고 해도 목적은 차후의 안보용으로 치밀하게 계산해서 벌인 행위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정찰 위성을 통해 중국이 설치한 이동식 대규모 철골 구조물 1기를 포착한 한국 정보 당국에 의하면, 구조물은 직경 50m, 높이 50m 이상의 것이라고 한다. 사실 중국 측은 구조물이 양식장 관리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헬기 착륙장도 있고, 최대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가로 100m, 세로 80m 규모라 어업이 아닌 전략적 용도로 의심받고 있다.
구조물이 사업용인지 비사업용인지는 무엇보다 중공의 의지가 결정적이겠지만 이외에도 중국이 약속대로 기존 시설을 철거할 것인가, 그리고 고정용인가, 이동용인가 하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 전자인 철거 여부와 관련해서 중국은 문제의 구조물을 양식시설이라고 주장하면서 선란 1, 2호기가 있는 바다를 국가 심해양식 시험구로까지 지정했고, 칭다오시는 올해 안에 선란과 유사한 반잠수형 구조물 10개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라고 언론에 발표한 바 있는데 귀추가 주목된다. 후자의 구조물 형태와 관련해서 국내 석유시추 전문가들이 “‘애틀란틱 암스테르담호’가 수심 약 120m 이내 해상에서 고정형으로만 운영되는 시설”이라고 한 바 있다. 3년 전인 2022년, SBS가 처음으로 중국이 서해에 석유시추 시설로 추정되는 구조물을 세웠다는 보도를 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같은 자리에 고정돼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제의 구조물이 해저 바닥에 고정시키는 형식이라면 향후 이것은 중국이 서해에서 충분히 영향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기지가 될 수 있다. 또 지금은 사업용으로 사용된다고 해도 그것은 추후 비사업용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이 2014년부터 남중국해에 인공섬들을 만들기 시작하여 대공포와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해 군사 요새로 둔갑시키더니 결국 인공섬을 중국 영토, 주변 바다는 중국 영해라고 우기고 있는 사례를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중국 측이 지난 4월 23일의 한·중 회의에서 해당 구조물이 순수 양식시설로 영유권이나 경계획정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면서 필요하면 한국 측 당국자나 전문가들의 서해 시설물 현장 방문을 주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은 한국 내에 확산되고 있는 중국의 “서해 알박기” 논란을 의식해서 선제적으로 해명하고자 한 시도로 판단된다. 중국이 서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3. 전망과 우리의 과제
이번 사태에 대해 한국 정부는 중국 측의 말을 많이 믿는 듯이 보인다. “올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이 예상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중이 관계 관리에 공감대를 형성한 점, 중국이 서해 구조물 관련 한국 내 논란에도 예정대로 회의에 응한 점, 이례적으로 해당 지방정부 관계자의 중앙대표단 파견을 통해 설명에 성의를 보인 점” 등을 보고선 향후 중국이 추가로 시설 설치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마디로 안이한 태도다. 방심은 금물이다. 어떤 나라와 협상을 해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중국과 협상을 할 때는 중국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더라도 그들의 말을 100%는 믿어선 안 된다. 또한 시진핑은 대략 금년 8~9월 안에 권력의 제1선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올 10월 말 개최 예정인 APEP 회의의 참석을 위한 그의 방한 문제를 중국의 구조물 철거 문제와 관련짓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한국 정부는 지난 2022년부터 중국 정부에 서해 잠정수역 내 시설물 설치 중단을 요구해 왔고, 지난 4월 23일의 한·중 회의에서도 중국 측에 3개 시설물을 잠정조치수역 바깥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어렵다면 비례적 대응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은 서해의 구조물을 쉽게 철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시설물의 철거 시한을 못 박아서 중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우리도 잠정수역에 거리 비례해서 구조물을 설치하는 비례적 대응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공법이다.
한국이 중국의 기존 구조물을 제거하지 못하고 구조물 설치를 방임한다면 중국은 거리낌 없이 구조물을 확대할 수도 있다. 향후 중국이 어업시설이라는 구실로 양국의 해상 경계선 획분의 기준으로 삼아서 해당 구조물들을 경계선 획정 협상에서 더 많은 수역을 차지해야 한다는 근거로 활용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럴 경우 중국은 한국의 해양 권익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뻗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향후 중국은 해안선 길이에 비례해 해양 경계를 나누는 ‘등비례’ 원칙을 고수할 것이다. 또한 대륙붕을 기준으로 한중 양국의 경제수역의 경계를 가르자는 입장이다. 한국보다 해안선이 훨씬 더 긴데다 황허(黃河)강과 창장의 토사물이 서해와 동중국해의 해저에 퇴적돼 대륙붕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두 바다의 경계선을 그으면 서해와 동중국해 모두 대부분 중국에 들어가게 된다. 중국은 일본과의 중일 간의 경제수역 경계의 획정 협상에서도 동중국해의 해저 지형과 구조, 즉 대륙붕의 자연적 연장 원칙을 주장했고,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처럼 양국 영해 기선의 중간선을 경제 수역의 경계로 정할 것을 요구해 오고 있다. 우리 정부는 양국의 영해 기선을 기준으로 한 경제수역의 ‘중간선’을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기존의 ‘등거리’ 원칙에서 물러나선 안 될 것이다.
이어도에 관해서도 중국은 결코 영유권 주장을 단념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주장할 것이다. 중국이 한중 EEZ 협상에서 이어도를 공동관리수역에 넣자고 주장하고, 이 목표가 달성되면 다음 수순으로 양국 공동개발을 요구할 수 있다. 마지막엔 공동개발하면서 이어도의 중국영유를 선전해 이를 소유하거나 개발 지분을 확대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중국이 필리핀, 타이완 등과 영토 분쟁 중인 남중국해에서도 비슷한 행각을 벌여온 것에서 예측할 수 있다. 중간선으로 경계를 가르는 방법을 택하면 이어도는 한국쪽 EEZ 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어도가 국제 분쟁지화돼 국제해양재판소에 중재를 맡길 경우 문제는 복잡해진다. 따라서 과거 당사국의 해안선 길이와 바다 면적에 비례해 EEZ경계선을 획정한 판례를 따르게 되면 이어도는 중국에 넘어갈 수도 있다. 국제분쟁지화 되면 우리에게 유리할 게 없다는 얘기다.
중국은 앞으로도 민간인들로 구성된 군사무력조직인 “해상민병대”를 조직해서 이어도와 서해에 출몰시켜 준전투행위를 수행시킬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그들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해도 중국 정부의 책임은 없다고 억지를 부려왔듯이 앞으로도 이 행태는 반복될 것이다. 이는 “회색지대전략”(Grey Zone Strategy)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한국전쟁 때 중국이 북한에 보낸 “항미원조지원군”을 국가가 보낸 군대가 아닌 민간인 조직이라고 강변한 것과 같은 성격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Lex talionis)”이라는 경구는 장식물이 아니다. 평화는 평화 시에 지켜야 한다. 우리도 중국과 유사한 성격의 회색지대전략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 본고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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