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un Brief 통권333호
1. 머리말
정부의 ‘기업 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에 호응하여 국회 더불어민주당은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는 것에 대한 교환조건으로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 개정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이미 20개 이상의 관련 개정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반면, 대통령실 얼마 전 “실제로 주주가 어려움을 겪거나 피해를 볼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핀포인트로 고쳐나가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보다 명확하게 주주의 이해관계를 해치는 부분에 대해 규정하고 이 부분을 엄격하게 제어하는 그런 형식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국민의힘당도 충실의무 개정에는 소극적이다. 어느 주장이 옳은지 검증해 보기로 한다.
2. 충실의무에 대한 오해
먼저 상법 제382조의3 이사의 충실의무 규정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은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끝에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면서 1998년 12월에 도입한 규정인데, 당시 일본 상법의 충실의무 규정을 모델로 한 것이다. 일본 상법은 미국 판례법상 “충실의무(duty of loyalty)”를 모방했다. “Loyalty”라는 단어만 보면 “충성”, “충실”이라는 뜻이지만, 상법상의 충실의무는, 많은 경영학 교수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이사가 회사에 대하여 충성할 의무를 규정한 것이 아니다. 이사가 그 지위를 이용하여 회사 재산을 편취하여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규정이다. 충실의무의 구체적 내용도 이사가 회사의 주주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 이사의 경업금지(상법 제397조), 자기거래의 제한(이사 등과 회사 간의 거래)(상법 제398조), 회사의 기회 및 자산의 유용금지(상법 제397조의 2) 등이 그것인데, 모두 ‘이사와 회사 간의 이해관계 충돌의 국면’을 회피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충실의무 규정은 소액주주 보호와는 직접 상관이 없는 규정이고, 밸류업과도 밀접한 관계가 없다. 이사가 회사 재산을 도둑질하는 것은 회사의 감사조직이 알아서 할 일이기 때문이다.
3. 문제점
문제는 ① 회사 분할 이후 이중상장 시 기존 주주 보호, ② 불완전 모자회사 또는 계열회사 관계에 있는 기업 간 합병의 경우에 적용될 합병비율이다. ①의 문제는 몇몇 회사의 물적 분할과 이중상장으로 기존 회사의 주주들이 피해를 보았다는 주장에서 드러났다. ②의 문제는 지배주주가 두 합병 당사회사 중 하나의 회사에 많은 지분을 들고 있는 반면, 다른 하나의 회사에는 보유 지분이 적은 경우에 생긴다. 지분이 많은 회사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지분이 적은 회사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저평가하게 되면, 지배주주는 큰 이익을 보거나 그룹 지배력을 높이게 되나, 저평가된 회사의 주주들은 피해를 본다. 위의 주장들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4. 해결책
그렇다면 이처럼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대응책을 마련하면 된다. 위의 사안들은 기업 구조조정에 관한 문제로서 상법의 구조조정 부분 또는 자본거래에 해당하는 사안들로서 자본시장법 및 그 시행령에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고 확실하다. 상법 제3편 회사편, 제10절(합병), 제11절(회사의 분할)에서 해결하면 된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합병비율 계산 방법이 규정돼 있으므로 이 부분을 손보면 된다. 원칙 규정이 아니라 정밀하게 상법 구조조정 규정이나 자본시장 관계법을 고치면 된다는 말이다.
일본의 경우는 2005년 회사법 제정 시에 합병가액 산정 시 ‘공정한 가격’으로 정하도록 했다(일본 회사법 제5편 조직재편, 합병, 회사분할, 주식교환 및 주식이전. 제785조 제1항, 제797조 제1항, 제806조 제1항). 이는 합병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시너지를 지배회사가 독점하게 되고, 소멸하는 종속회사의 주주들은 주주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일의 경우는 조직재편법(Umwandlungsgesetz)에서 다루고 있다. 예컨대 독일 조직재편법 제25조 제1항은 “조직재편법 상 합병 과정에서 자산 상태의 검사나 합병계약 체결 시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소멸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직접 손해를 입은 소멸회사의 주주는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한다. 예컨대 소멸회사 이사의 과실로 인해 합병비율이 불공정하게 산정됨으로써 직접 손해(예: 존속회사에 대한 지분율 희석)를 입은 소멸회사 주주는 소멸회사 이사에 대해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한다”고 규정한다. 이 외에도 조직재편법 제125조 제1항, 제176조 제1항, 조직재편법 제205조 제1항 등에도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다.
5. 결론
대통령실이 발표한 것처럼, 실제로 주주가 어려움을 겪거나 피해를 볼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핀포인트로 고쳐나가는 것이 옳다. 그렇게 해야만 보다 명확하게 주주의 이해관계를 해치는 부분을 교정하고 그 부분을 엄격하게 제어할 수 있다. 이 방향이 진정 투자자와 법을 존중하는 접근 방향이다. 무언가 개선한다면 구체적인 규정을 손봐야 하고, 상법상 원칙 규정이자, 이사의 도둑질할 의무를 규정한 ‘충실의무 규정’을 개정하는 것은 정치적 포퓰리즘일 뿐,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상법상으로도 이사가 자기 자신의 사익을 위하여서는 물론이고, 제3자를 위하여 회사의 이익을 희생하는 경우에도 충실의무 위반이 된다. 이때의 제3자에는 지배주주 또는 주요주주도 포함되며, 현행법상 이사가 지배주주 개인을 위해 불법적이거나 지배주주 또는 주요 주주에게는 이익이 되면서 동시에 회사(또는 전체 주주)에게 손해를 미친다면 그 사무를 집행한 이사는 이미 충실의무를 위반한 것이 되고 현행법에 의거 처리된다. 따라서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을 개정할 필요도 없으며, 동시에 이는 배임ㆍ횡령의 문제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결국, 해결책은 이미 상법에 마련돼 있고, 주주는 각자가 그 권리를 행사하면 충분하다. 이 부분에 대해 상법학계의 광범위한 합의가 존재한다. 입법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기업이 저평가되는 이유는 기업의 수익성이 나쁘기 때문이고 사업 전망이 흐리기 때문이다. 수익성이 나쁜 이유는 수많은 요소가 작용하나, 규제 때문에 기업이 신나게 영업활동을 할 수 없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기업주가 주가를 올릴 유인이 없는 것도 저평가의 원인이다. 주가를 높이면 기업인 사망 시 60%에 이르는 주식상속세 때문에 기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 또한 주가가 높으면 시가배당시 매년 지급해야 할 배당금 현금 조달 압박이 커진다. 어떤 기업인이 이런 부담을 안고서 주가를 부양하려 애쓰겠는가?
충실의무 규정 논의는 실제로는 소액주주를 위한 것이 아닌 소액주주를 위하는 척하는 기만전술에 불과하다. 충실의무 규정은 일반규정일 뿐이어서 구체적으로 소액주주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규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충실의무 규정 개정은 기업 경쟁력 강화와 밸류업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상법 체계만 망가뜨리게 된다. 이런 포퓰리즘 법안은 철회되어야 한다.
대통령실의 해법이 옳다. 모델은 위에서 언급한 일본 회사법과 독일 조직재편법을 참조하여 한국 상법 및 자본시장법을 고치면 된다. 그렇게 해야 실질적으로 소액 주주에게 도움이 된다.
※ 본고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