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06 09:06:02
불과 몇 년 전 1,100원대이던 원·달러 환율이 이제는 1,500원을 넘나들고 있다.
시장에서는 1,400원에만 안착해도 다행이라고 이야기한다. 달러 가격이 뛰면서 수입 물가가 치솟고, 이것이 다시 가공품 가격을 밀어 올리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한국은행 역시 고환율 추세가 꺾이지 않으면 앞으로 물가를 장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환율은 한국 경제의 현실을 보여주는 계기판이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점차 하락하고 있으며 이제는 미국보다도 낮은 상황이다. 한국의 산업 경쟁력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점점 더 밀리고 있다. 이미 화학·철강 산업은 큰 타격을 받았으며, 반도체 산업도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미국은 무역적자를 이유로 자국에 관세를 올리면서 투자를 강제하고 있다.
우리는 원화 약세라는 뼈아픈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비행기는 하강하고 있다. 억지로 계기판 바늘을 꺾는다고 추락하는 고도가 회복되지는 않는다. 무리하면 기체가 산산조각 나는 경착륙을 피할 수 없다. 지금은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연착륙하는 위험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통화 주권을 지키는 일이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라는 키로 한국 경제라는 배를 조종한다. 그런데 이 키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해도 시중 금리는 미국의 고금리 기조를 반영하면서 상승한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스테이블 코인 활성화 논의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손쉬운 환전으로 국내에서 사실상 달러 스테이블코인 결제가 일상화되면 통화 주권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새로운 디지털 화폐 기술을 수용하더라도, 그 기저에는 반드시 우리의 통화 주권을 철통같이 지켜낸다는 확고한 안보적 접근이 전제되어야 한다.
둘째, 무분별한 확장 재정을 경계해야 한다. 전 세계가 자국 우선주의와 막대한 보조금을 앞세운 국가자본주의로 회귀하는 냉혹한 국제 질서 속에서, 우리 정부 역시 생존을 위해 재정 사용은 불가피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는 엄격한 전제 조건이 뒤따른다. 국가의 재정 투입이 혁신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촉진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재정을 어떻게 쓸지보다 생산성을 어떻게 높일지 전제 조건을 먼저 논의해야 한다. 경제는 생산성 혁신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지 통화량 증가로 성장하지 않는다.
아베 신조 정부는 초저금리와 재정 확장으로 통화량을 늘리고 구조개혁으로 성장을 되살린다는 전략을 추진했다. 그러나 전자서명 대신 도장을 찍는 나라에서 구조개혁은 요원했고 경제는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통화량 증가로 엔화는 하락을 거듭했고 결국 일본 서민의 삶은 더욱 고통스러워졌다.
셋째, 미래를 위한 국민연금은 단기 환율 방어나 경기 부양에 써서는 안 된다. 지금 국민연금의 가장 큰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심각한 저출산·고령화로 보험료를 낼 사람은 줄고 받을 사람은 늘어 연금 고갈이 예상된다.
주식시장 활황으로 고갈 시기를 늦췄다지만 지금처럼 기업 경쟁력이 계속 약해지면 이는 일시적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원화 가치 하락은 역설적으로 기금 수명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달러로 투자한 연금의 수익성은 높아진다. 물론 물가 상승에 연동해서 국민연금 지급액이 늘기는 하지만 국내 물가 상승은 수입 물가 상승보다 낮을 확률이 높다. 소비 규모가 한정된 시장에서 기업은 효율화로 원가를 절감할 수밖에 없어 실제 물가 상승폭은 제한된다. 국민연금 수지가 적자로 전환하는 2041년부터는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로 유입되며 환율 방어의 완충 역할을 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국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존속과 미래를 심각하게 직시해야 한다. 환율이 하락하고 거품이 꺼지며 경제가 연착륙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겪어야 할 고통은 분명 존재한다. 물가가 오르고 삶은 더 팍팍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눈앞의 고통을 피하려고 빚을 내어 재정을 탕진한다면, 그 짐은 고스란히 다음 세대의 몫이 되고 대한민국의 다음은 없다.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지금의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는 인내와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철저한 구조개혁만이, 내일의 대한민국이 다시 상승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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