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경쟁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다. 최근 국제 보고서들도 이 점을 강조한다. 대표적인 자료가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의 ‘AI 인덱스(Index)’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국가별 AI 논문, 인재 이동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또 하나 자주 인용되는 자료가 매크로폴로의 ‘글로벌 AI 탤런트 트래커’다.
이 두 보고서가 보여주는 공통된 특징은 AI 인재의 글로벌 이동 구조다. 상위 AI 연구자의 상당수는 중국 출신이지만, 연구 활동의 중심은 미국이다. 교육은 중국, 연구와 산업은 미국이라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 중국·인도·동유럽 등에서 학부를 마친 학생들이 미국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이후 글로벌 빅테크 기업으로 이동한다. 결국, 교육→연구→산업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인재 파이프라인이 형성돼 있다.
문제는, 이 구조가 한국에서는 국내 인재가 해외로 이동하는 통로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글로벌 기업과의 연봉 격차와 연구 환경 차이로 해외 인재를 국내로 유치하기도 쉽지 않다. 이를 극복하려면 기업과 대학이 함께 만드는 ‘연구 패키지’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은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이나 스탠퍼드대 AI랩처럼 기업 연구소와 대학 연구실이 캠퍼스 안에서 공동 연구하는 등 협력이 활발하다. 중국에서도 화웨이-칭화대 AI랩, 알리바바-저장대 AI랩처럼 기업 연구소가 대학 안으로 들어가 장기 공동 연구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교육과 연구, 산업이 한 공간에서 맞물리는 구조가 인재를 끌어들이고 기술 경쟁력을 키운다. 글로벌 대학들은 연구자 개인에게 연봉만 제시하는 게 아니라, 연구팀 구성과 연구 인력의 공급, 융복합 공동 연구 기회, 대학·기업 겸직, 연구 인프라 지원과 함께 배우자의 취업 기회 또는 경력 지원, 주거 지원 및 의료 혜택 등을 포함한 이른바 ‘연구 패키지’ 형태로 인재를 유치한다. 단순한 급여 경쟁이 아니라, 연구 환경과 정주 여건을 결합한 패키지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 문화는 여전히 개인 연구실 중심, ‘개인 슈퍼스타’ 중심이다. 연구는 교수 개인 프로젝트 단위로 흩어져 있고 대학 차원의 연구 플랫폼이나 협업 구조는 부족하다. 연구 성과 역시 시스템보다는 개인 역량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AI 생태계에서는 대학 연구실이 기업과 공동으로 모델을 개발하고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기업이 상시 협의 채널을 통해 연구 과제를 제시하면 대학이 이를 해결하고 기술은 산업으로 이전된다.
정책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대학 지원 방식을 개별 연구비 지원에서 연구 플랫폼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형 연구팀과 공동 프로젝트 중심의 연구 구조가 필요하다. 둘째, 대학을 기업의 장기 연구 파트너로 재설계해야 한다. 산업 문제를 대학 연구 주제로 연결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상시 운영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아울러 연구자 평가 기준 역시 바뀌어야 한다. 현재처럼 개별 논문 실적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 산업 기여, 연구 플랫폼 구축 등 연구 생태계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셋째, 정부도 제도적 실험을 허용해야 한다. 연구 인력 교류, 교수 겸직 등을 추진하려 하면 현행 정부 규제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전략 기술 분야에서는 규제 예외를 적용해 새로운 산학 협력 모델을 시험할 필요가 있다. 넷째, 각 대학이 AI 특정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교육 생태계를 구축하도록 전략적 특화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만물상 식으로 대학의 연구 규모를 키우기보다 어떤 대학은 AI 반도체, 어떤 대학은 로보틱스, 또 다른 대학은 바이오 AI처럼 시그니처 브랜드 분야에서 세계적 연구 거점이 돼야 한다. 교육·연구·산업으로 이어지는 생태계가 형성되면 논문의 피인용과 질 지표가 높아지고, 이는 QS 등 세계 대학 평가에서 평판 상승으로 이어진다. 주변에 첨단 산업과 글로벌 기업이 포진할수록 이러한 상승효과는 더 커진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 그 자체보다 기업·대학·인재가 함께 움직이는 연구 생태계에서 나온다. 한국 대학이 개인 연구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산업과 연결된 플랫폼형 연구 생태계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AI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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