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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사용자性 혼선과 노봉법 개폐 시급성
 
2026-04-07 13:56:46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등 공공기관 4곳이 청소·경비 하청 노조에 대해 실질적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이들 공공기관이 안전관리 및 보건체계를 직접 총괄하고 책임지고 있다는 이유였다. 이 판정을 내린 위원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노란봉투법의 문제점을 폭로한 것이 이 판정 최대의 미덕이다.

 

다만, 이 판정이 고용노동부의 해석 지침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지적은 옳다. 고용노동부는 국회에서 심의·의결한 예산에 따라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경우는 교섭 대상이 아니다라는 해석 지침을 내놨고, ‘정부의 사용자성()은 인정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행정청의 지침은 법률이 아니니, 노동위가 법률에 어긋나는 지침을 따를 수는 없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한발 더 나가 최종 사용자는 대통령이라고 주장한다. 논리의 사슬을 따라가면 틀린 말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더 심각한 문제는 법률 간의 충돌이다. 하청 근로자가 작업 중 사망한 사건에서, 원청 회사 대표이사(경영책임자)가 안전조치 미이행, 안전보건관리체계 미구축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중대재해처벌법 등 3법 위반 실형을 받은 바 있다.(대법원 2023. 12. 28. 선고 202312316 판결)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원청 사업자가 중처법에 따라 처벌받고, 이를 구축하면 노봉법에 따라 실질적 사용자가 된다. 이처럼 모든 원청 사업자는 노봉법과 중처법의 함정에 빠지게 돼 있다. 위험을 피하려면 하청 자체를 없애야 하나, 이는 불가능하다.

 

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공공기관이야 정부가 있어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소·중견 기업이 이 구조에 노출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원청 교섭 의무, 쟁의 장기화, 형사 리스크가 동시에 덮칠 경우 기업은 존폐의 기로에 설 수 있다.

 

노봉법의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원청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하청에 떠넘기는 구조는 불합리하다. 그러나 실질적 지배라는 기준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안전 의무 이행이 사용자성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에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이 모든 질문에 법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졸속으로 만들어진 이 법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계속 만들어낸다. 안전·공정·품질·작업방식, 심지어 인력 배치까지 비슷한 교섭 요구가 터져 나오고, 이 법은 하청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 전략을 추구할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이제라도 사용자성인정 기준을 법률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지금처럼 노동위원회가 사안별로 재량 판단하는 방식으로는 기업도, 노동자도 예측할 수가 없고 현실적으로 큰 비용과 행정적 부담을 안긴다. 원청이 어느 범위까지 관여할 때 교섭 의무가 생기는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을 법조문에 담아야 한다. 다만, 이 방식도 미봉책일 뿐이다. 원점에서 이 법률의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처우 개선에 참여하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이대로는 하청 구조 자체가 무너지고,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법이 일자리를 없애는 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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