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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투데이] 한국 보수 위기의 본질
 
2026-03-09 09:49:46
◆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치개혁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5년 대선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최종 49.42%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총 1728만7513표로 역대 대선 최다 득표를 기록했다. 2위인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41.15%·1439만5639표)와의 격차는 8.27%포인트로 289만1874표였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후보를 상대로 0.73%포인트(약 24만표) 차이로 신승한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이런 변화는 지난 대선이 12·3 계엄과 탄핵에 대한 ‘정권 심판’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대선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대선 후보를 결정할 때 78.4%가 ‘윤석열 전 대통령 계엄과 탄핵’을 ‘고려했다’는 응답이 이를 잘 설명한다. 헌재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 71.7%가 ‘잘된 판결’이라고 응답했다. 한국갤럽이 대선 직후 실시한 조사(6월 4~5일)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에게 투표한 이유로 가장 많은 27%가 ‘계엄 심판·내란 종식’을 뽑았다. 이는 ‘정권 교체’(7%)보다 훨씬 높았다. 이런 조사 결과는 12·3 계엄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은 1심 판결에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민심이 이렇게 반응하고 있는데 보수를 대표한다는 국민의힘은 지리멸렬(支離滅裂)하다. 한국 역대 선거를 분석해 보면 보수는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한민국 보수 정당은 2016년 20대 총선(새누리당), 2020년 21대 총선(미래통합당), 2024년 22대 총선(국민의힘)에서 연속 패배했다. 지난 2024년 총선에서 범야권이 192석(64.0%)을 차지했다. 사회 각 분야에서 개발연대의 주역들이 물러난 자리를 586 전대협 세대와 97 한총련 세대가 차지하게 됐다. 보수 정당은 TK와 PK에서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영남당’으로 전락했다.

2025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6월 대선에서 패배한 국민의힘이 처한 작금의 상황은 참담하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2월 23~25일) 결과,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율은 17%를 기록하며 20% 선이 깨졌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67%로 취임한 이래 최고 지지율을 기록했고, 민주당 지지도는 45%였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지난 3일 ‘사법 3법’의 폐해를 국민에게 알리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강력히 촉구하려고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걷는 이른바 ‘사법 3법 규탄 대회’를 열었다. 하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국민의힘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국민의힘이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보수의 정당성 파산’과 ‘대안 부재의 늪’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위기의 가장 깊은 뿌리는 12·3 비상계엄에 있다. 헌법재판소 전원일치 판결로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이를 옹호하거나 방조했던 국민의힘은 ‘민주주의를 위협한 세력’이라는 치명적인 낙인이 찍혔다. 이는 단순한 정책 실패와는 차원이 다른 도덕적·정체성적 파산을 의미한다.

더구나 대선 패배 이후에도 당내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를 두고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윤어게인 세력은 “정권 탈환을 위해 결집해야 한다”며 과거 세력을 옹호하고 있다. 반면, 쇄신파는 “완벽한 절연 없이는 미래가 없다”며 지도부 사퇴와 인적 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계파 갈등은 국민들에게 ‘반성 없는 정당’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이는 지지율 10%대 추락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NBS 조사 결과, 보수 텃밭인 대구·경북에서도 국민의힘 지지도는 28%로 민주당과 동률에 그쳤다. 이는 ‘보수의 최후 보루’마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내 리더십의 취약성도 위기를 고착화하고 있다. NBS 조사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에 대해선 부정 평가가 62%로, 긍정 평가(23%)를 크게 웃돌았다. 보수층에서조차 부정(49%)이 긍정(40%)보다 높았다. 지금의 국민의힘은 “심폐소생술이 아니라 장기 이식이 필요한 상태”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는 국민의힘이 공중분해될 것인지, 아니면 극적으로 회생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마지막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론적으로 위기 극복은 결국 자기성찰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학습을 통해 변화에 적응하며, 혁신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러셀 커크(Russell Kirk)는 20세기 미국 보수주의의 부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상가다. 그의 저서 ‘보수의 정신(The Conservative Mind)’은 ‘바보들의 무리’라고 조롱받던 미국 보수주의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을 이끌었던 고(故) 박세일 교수가 제창한 ‘공동체 자유주의(Communitarian Liberalism)’는 한국 보수주의의 철학적 빈곤을 채우고 재건을 도모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하고 정교한 이론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현재 한국 보수가 겪고 있는 위기는 ‘철학적 구심점의 부재’와 ‘기득권 옹호 이미지’에 기인한 면이 큰데, 공동체 자유주의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몇 가지 핵심적인 논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공동체 자유주의가 보수 재건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와 책임의 균형(자유주의 + 공동체주의)이다. 기존 보수가 ‘규제 완화’나 ‘시장 만능주의’적 자유에만 매몰되었다는 비판을 받는 반면, 이 이론은 ‘공동체적 책임’을 강조한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되, 그 자유가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사회적 책임과 결합해야 한다는 논리는 보수의 외연을 넓히는 데 유리하다.

둘째, ‘정의로운 보수’로의 이미지 쇄신이다. 고 박세일 교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정한 기회를 강조했다. 이는 보수가 단순히 기득권을 지키는 세력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질적인 통합을 고민하는 ‘따뜻한 보수’ 혹은 ‘합리적 보수’로 탈바꿈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된다.

셋째, 국가적 과제 해결 능력이다. 박 교수는 ‘대한민국의 선진화’와 ‘한반도의 통일’을 공동체 자유주의의 실천적 목표로 삼았다. 이는 파편화된 정치적 쟁점을 넘어서 보수가 지향해야 할 거대 담론을 제시함으로써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다.

공동체 자유주의는 단순히 과거의 이론이 아니라, “보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 ‘개인의 창의와 자유를 극대화하되, 그 결실이 공동체의 통합과 국가의 선진화로 이어지게 한다’는 원칙은 보수가 중도층을 포섭하고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전략이다. 결국 이 이론이 보수 재건의 방안이 될 수 있느냐는, 현재의 정치인들이 이 철학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정책으로 구현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국민의힘에 필요한 것은 비판보다 반성, 투쟁보다 대안, 갈등보다 책임이 앞서야 한다.

이념은 단순한 ‘생각’이나 ‘의견’이 아니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튼(David Easton)이 말한 것처럼 정치는 ‘사회적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과정’인데, 이때 무엇을 가치로 보고,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적 관점이 바로 이념이다. 이념이 붕괴하면 정치가 감정으로 이동한다. 이념이 약해지면 정치는 인물 중심 경쟁 → 감정 동원 → 적대 정치 → 제도 불신으로 이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보수가 시급히 정상화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 보수의 위기는 단순히 진보가 강하기 때문이 아니다. 국민의힘이 내부 투쟁에 빠져 새로운 시대의 대안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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