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에 가까운 친척께 안부전화를 드렸더니 고향의 공터를 임대했는데 임차인이 잔뜩 쓰레기만 방치하고 전혀 연락이 안 된다고 하신다. 기한이 지나 치우려고 해도 법원에서 허가를 받아 경매에 부쳐서 본인이 낙찰받아야 하는데, 6개월도 넘게 걸린다고 하소연했다. 만일 임차인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소송을 2심, 3심으로 끌고 가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며 “무슨 법이 이러냐”고 토로했다. 송구하고 이상한 일이지만, 만일 여당이 지난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단독으로 처리한 ‘재판소원’이 입법돼 4심제가 도입되면 최종 권리구제까지 최소 2∼3년이 더 걸린다.
4심제 도입과 관련해 조희대 대법원장도 12일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가는 문제”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대한민국 사법 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한 위기라는 것이다. 4심제는 ‘국민을 소송 지옥에 빠뜨리는 희망 고문’이자, 헌법이 보장한 3심제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실험이다.
4심제는 현행 3심제(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에 더해,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즉, 대법원 판결이 끝이 아니라, 헌재가 다시 한 번 판결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고 필요하다면 취소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사실상 헌재가 대법원 위에 군림하는 ‘옥상옥’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사법 체계의 근본적인 변질을 의미한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단순한 법 개정이 아니라 헌법 개정 후 도입해야 할 사안이다.
첫째, 4심제는 헌법 질서의 근본적 붕괴와 극도의 사법 혼란을 일으킨다. 헌법 제101조는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 ‘최고법원은 대법원’임을 명시하고 있다. 4심제는 이 명문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대법원 판결이 더 이상 최종적이지 않게 되면,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은 사라진다. 판결의 ‘기판력(旣判力)’이 무너지고, 사회 전반에 법적 불확실성이 만연하게 된다.
둘째, 소송 기간이 길어지고 국민 불편이 가중된다.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 재판소원이 허용되지만, 실제 인용률은 0%대에 불과하다. 즉, 대개의 사건에서 실질적 구제는 이뤄지지 않고 소송이 장기화해서 비용 등 사회적 자원만 낭비된다. 헌재의 사건 처리 기간이 평균 2년 가까운 현실에서, 국민은 끝없는 소송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소송 한 번 하는 데 비용이 적게는 몇백만 원에서 몇억 원까지 더 필요한데 결국 재판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자들이나 권력자들만의 리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 4심제와 함께 추진되는 ‘법 왜곡죄’ 신설은 판사의 소신 판결을 위축시키고, 여론이나 정치권의 입맛에 맞는 판결만 양산할 우려가 크다. 법 해석의 모호성을 빌미로 판결이 수사기관이나 여론의 심판대에 오르게 되면, 사법부의 독립성은 심각하게 훼손된다.
사법 신뢰의 회복은 법원의 독립성과 3심제 원칙의 확고한 준수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민을 소송의 늪과 법적 혼란에 빠뜨리고 사법 개혁의 이름으로 헌법 질서를 뒤흔들 4심제 도입은 반드시 중단해야 한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기본권 보호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기를, 만일 통과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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