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노란봉투법’ 국회 강행 처리로 노동조합은 앞으로 기업 경영에서 광범위한 동의권과 거부권을 갖게 됐다. 이제 노조 허락 없이는 근로 조건에 영향을 주는 투자, 기업 인수합병(M&A), 사업 통폐합, 구조조정 등을 하기 어렵게 된다. 노란봉투법을 흔히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제한 관련 법 정도로 알고 있지만, 가장 논쟁적이고 파장이 큰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이 지점이다.
자본과 노동의 대립 구조에서 노동은 그동안 지배와 종속의 대상이었는데, 노란봉투법 통과로 기업경영의 동반자 또는 공동경영자로 위상이 높아졌다. 가보지 않은 실험의 끝에 성장과 번영이 있을지, 대립과 빈곤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단순히 “두려워 말라”고만 하기엔 변화와 파장이 매우 커 보인다.
노란봉투법엔 노조의 권리 강화와 권한 확대를 직접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대신 노동쟁의라는 개념의 확대를 통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차원의 힘을 부여하고 있다. 노동조합법의 노동쟁의 개념은 실무상 단체교섭의 대상으로 기능하기도 하고, 파업 등 쟁의행위의 목적이자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노동쟁의의 개념 확대는 단체교섭 사항의 확대로, 쟁의행위 목적의 확대로 이어진다.
기존 노동조합법에서는 노동쟁의를 ‘노동조합과 사용자 내지 사용자단체 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로 정의했다. 그 결과 임금 등 근로조건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를 놓고 노사가 협상하고 다툴 수 있었다. 기본급 인상, 상여금 인상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교섭과 다툼의 대상에 ‘사업경영상의 결정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었는데, 그동안 법원은 이를 경영권에 관한 것으로 간주해 원칙적으로 단체교섭 사항에서 제외해왔다. 예컨대 2001년과 2002년 판례를 보면 대법원은 정리해고나 사업조직의 통폐합 등 기업의 구조조정 실시 여부는 경영 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이는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봤다.
노란봉투법은 바로 이 부분을 파고들었다. 노란봉투법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도 노동쟁의의 대상에 포함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아니었던 해외투자, 공장증설, 인수합병, 구조조정, 투자 등의 경우에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준다면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파업 등의 목적이 될 수 있게 됐다. 즉, 이제 노사 협상 테이블에 ‘임금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사업경영상의 결정’도 올라가게 된 것이다. 심지어 관세 협상에 따른 해외 투자의 경우에도 노사교섭 대상이 될 수 있고, 교섭이 결렬되면 합법적 파업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노란봉투법 문구상으로 모든 경영 사항에 대해 노동조합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로 국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향’이란 어떤 사물의 효과나 작용이 다른 것에 미치는 것을 의미하고, ‘미치다’는 이러한 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해지거나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이란 근로조건에 변화를 주는 일체의 사업경영상의 결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해석상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다고 볼 수 있다. 달리 문구상 이를 ‘중대한 영향’이나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축소 해석할 여지도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이런 측면에서 노란봉투법이 한국사회와 경제 체제에 줄 파장과 혼란은 가늠하기 어렵다.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고민과 사회적 합의가 있었는지는 상당한 의문이 든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영국 경제학자 로날드 코즈가 설파한 ‘거래비용 이론’이나, 기존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 틀만으로는 기업의 본질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질 것 같다. ‘반기업법’이라 비판받는 노란봉투법은 기업에 대한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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