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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경제 살리기 행정부·입법부 따로 없다
 
2025-09-09 10:09:30
◆ 조준모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전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의 칼럼입니다

세계 각국은 경제위기를 노동개혁을 통해 돌파해왔다. 이는 보수가 아니라 진보정권이 주도한 경우가 많았다. 독일의 하르츠 개혁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초 독일은 '유럽의 병자'라는 오명을 들을 만큼 성장 둔화에 시달렸다. 슈뢰더 총리가 이끈 사민당 정부는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노동시장 유연화의 노동개혁을 단행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근로조건 결정의 중심축을 산업별 협약에서 기업별 협약으로 전환했다. 진보정권은 왜 노동개혁을 했는가? 진보진영의 경우 노동조합, 진보 시민단체들이 적극 지지해 선거에서 유리했다. 그러나 집권 후에는 국민들의 일자리를 걱정하며 경제 살리기 차원의 개혁을 추진하게 된다.

우리의 정치는 반대로 가고 있다. 미국의 관세 폭탄이 경제에 직격탄을 날리는 와중에도 전 국민이 아니라 지지세력을 위한 입법이 쇄도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코스피 5000을 목표로 주식시장으로 유동성을 유인하는 정책을 설계하고 있다. 코스피 5000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올해 베네수엘라의 주가는 500% 넘게 올랐다. 부실한 경제,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낳은 결과이다.

경제의 기초체력은 약한데 유동성이 끌어낸 코스피 5000은 의미가 없다. 경제의 기초체력은 잠재성장률로 대변된다. 정부는 임기 내 잠재성장률 3%를 달성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투입량, 자본투입량, 생산성이 증가해야 하는데 인공지능(AI)에 100조원 투자를 해도 자동으로 잠재성장률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AI는 생산성을 증가시키지만 노동을 대체해 노동투입량을 감소시킬 수 있다. 한미 간 관세협상 결과인 3500억달러 대미투자도 국내 자본투입량을 감소시킬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경제 살리기에 역행하는 입법은 잠재성장률을 깎아내리게 된다.

최근 입법된 노란봉투법은 유예기간 6개월 내 정부 매뉴얼이 마련되고 내년 3월 시행된다. 매뉴얼은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고 노사가 매뉴얼에 매달리지도 않을 것이다. 원청의 사용자성 범위를 두고 다투다가 법원 소송이 난무하게 된다. 그 와중에 노사갈등은 커지고 교섭비용은 폭증하게 된다. 법원 판결도 1심, 2심 등 심별로 판결이 달라지다가 대법원에 의해 정리될 때까지 상당 기간이 경과할 것이다. 6개월 유예기간 원하청 간 교섭창구 단일화 보완입법이 마련되지 못한다면 노란봉투법은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하청노조들은 원청에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주장하며 임금의 상향 평균화를 위한 공동파업을 할 수 있다. 기업들은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해외 공장이전, 자동화 및 하청 다변화를 할 수 있다.

또한 개정 상법은 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경영판단의 원칙 명문화와 형법상 배임죄와 중복되는 특별 배임제를 폐지하지 못했다. 현재 법으로는 행동주의 펀드들이 경영 판단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서, 경영진의 대형 투자와 기술개발을 위축시키게 된다.

더 큰 문제는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집중되는 입법 타이밍이다. 9월 정기국회에서 여당은 224개의 법안을 중점 추진한다고 한다. 혹자는 입법부에서 지지세력을 위한 입법이 행정부의 경제 살리기 정책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비판한다. 육식 입법부, 초식 행정부라고도 한다. 지금은 위기의 시간이다. 장기 성장 구조를 설계하고 성장잠재력을 회복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단기 경기부양에 매몰되면 저성장-경기부양이 반복되는 재정중독에 빠지게 된다. 정부는 경제구조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 일관된 경제정책을 집행하고 입법부는 이러한 개혁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해 총력 지원하길 바란다. 경제살리기에 입법부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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