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들어 ‘검찰청 해체’ 등 헌법상 사법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법안들이 발의돼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4일에는 3대 특검(내란·김건희·순직해병 특검)의 관련 재판을 일반에 녹화 중계를 의무화하는 이른바 ‘더 센 특검법’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 ‘알 권리’를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사법 절차의 정치적 소비에 가깝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허용돼선 안 된다.
첫째, 재판 중계는 헌법상 신체의 자유와 형사소송법의 기본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 헌법 제12조 제1항은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도 재판 중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국민의 ‘감정적 알 권리’에 호소해 중계를 강행한다면, 이는 적법절차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며 헌법상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특정인·사건에 대한 TV 중계를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평등권 원칙’과 ‘사법권 독립’에 위배된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중계는 사회적 유명세나 정치적 상징성을 이유로 특정 피고인에게만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같은 형사피고인이면서도 재판을 받는 조건과 환경이 다르게 설정된다는 점에서 불평등하다. 또한, 형사 절차에서 중계 여부는 법관이 결정해야 하는데, 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사법권 독립을 크게 해칠 우려가 있다.
셋째, 법정은 진실을 가리는 장소여야지 정치적 ‘쇼 무대’가 돼선 안 된다. 중계가 허용된다면 언론은 대중의 흥미를 끌기 위해 복잡한 사법절차를 단순하고 극적으로 구성하게 된다.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적정한 양형’이라는 본래의 사법(부) 기능보다는 주변적이고 부수적인 사안들, 가십 거리에 불과한 비본질적인 사건들이 형량에 주요하게 작용하는 이른바 ‘마녀사냥’ 또는 ‘여론재판’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주요 선진국에서도 재판의 생중계나 녹화방송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미국의 경우, 연방 대법원과 대부분의 연방 형사법원에서는 TV 중계가 금지된다. 독일은 더욱 엄격하다. 독일 기본법(헌법)은 피고인의 방어권과 인격권을 매우 중시하며, 형사재판의 경우 중계는 거의 금지된다. 독일 연방법원도 ‘공정한 재판을 위한 침묵과 집중의 분위기’를 중계가 해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프랑스도 이와 유사하다.
미디어 비평의 대가 닐 포스트먼은 저서 ‘죽도록 즐기기’에서 ‘TV는 모든 공적 담론을 오락화한다’고 했다. 사법 과정도 TV라는 매체에 담기면 결국 ‘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것이다. 재판 중계가 허용된다면 악의적 영상 짜깁기가 횡행하고, 법관들은 위축효과(chilling effect)로 재판 진행의 임의성이 크게 저하될 우려가 있다.
재판의 투명성과 공정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방식이 반드시 ‘중계방송’일 필요는 없다. 판결문의 공개, 기자 브리핑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국민은 충분히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법정이라는 공간이 쇼 무대가 돼선 안 된다. 사법의 독립성과 절차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재판 중계는 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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