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이사임명제에는 크게 영국식과 독일식 2가지 방식이 있다. 영국식은 BBC의 이사들을 문화부 장관의 추천으로 국왕 또는 이사회가 임명한다. 직간접적으로 국가의 행정 체계 내에서 작동한다. 일본의 NHK도 총리가 국회 양원(중·참의원)의 동의를 거쳐 12인의 이사를 임명한다. 한국은 영국식이다. 즉, 9∼11인의 공영방송 이사는 방통위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거나(KBS), 방통위가 임명하도록 규정돼 있다. 다만, 법문에는 규정이 없으나 관행적으로 정치권의 추천을 받아 왔다. 현행 제도는 BBC나 NHK의 예를 그대로 따르고 있고 위헌성도 없다.
그 반면 독일식의 공영방송 이사제도는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 대표자가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독일 제2TV(ZDF)의 경우 60명의 이사로 구성된다. 연방·주 정부에서 직간접으로 34명을 선출하고, 나머지 26명은 직능단체별로 할당돼 있다. 정부 추천 인원 중 상당수도 직능단체 대표자들이다. 독일식은 나치 시대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특히 공영방송이 한 기관·단체나 특정 이념에 편중되면 절대 안 된다는 국민의 역사적 경험 등이 반영된 결과다.
여당의 방송 3법 개정안은 쉽게 요약하면 영국식을 독일식으로 변경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식과는 완전히 다른, 위헌적이고 위험한 내용이다.
첫째, 현행 영국식 공영방송 이사선임제도가 정치권의 영향력 아래 있어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다. 현행 방송법상의 공영방송 이사선임제도는 영국 BBC, 일본 NHK와 거의 같다. 따라서 이 제도가 잘못됐다고 하려면 먼저 BBC나 NHK의 제도도 잘못됐다고 하는 게 논리적인데 전혀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전 세계적으로 공영방송 이사 추천은, 사회 각층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게 하는 ‘숙의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다.
둘째, 개정안은 이사 추천 단체를 특정하기 때문에 현행 제도보다 개악된 것이고 위헌이다. 현행 영국식의 이사선임 제도를 독일식(60인)으로 바꾸려면 이사 수를 대폭 늘려 적어도 50인 이상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개정안은 많아야 3, 4명을 더 늘리는 데 불과하다. 이사 수를 대폭 확대해 특정 단체·집단이 공영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독일식의 근본 취지는 사라지고, 아예 변호사·방송학계·언론종사자 등 특정 단체만 추천할 수 있도록 제한함으로써 기득권을 오히려 공고화하고 현행 제도보다 개악됐으며 위헌성이 짙다.
끝으로, 방송 3법 개정안은 특정 이념에 편중된 단체들의 영향력이 커서 공정한 이사 선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위험성이 크다. 그리고 국가가 이 기관들의 이사 선임을 ‘방통위 규칙’으로 특정하는 것은 위헌이다.
공영방송 제도 변경을 위해서는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그 끝은 낭떠러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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