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8 10:33:13
정치 지도자들 중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정확히 알아서 자식이나 친지에게 설명해 주거나 국민에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와 자유시장 경제 체제라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정확히 알고 국가의 수많은 정책 중 어느 것이 국가 정체성과 부합하는지 또는 부합하지 않는지를 판별할 수 있는 지도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국가와 민족을 위해 현재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새싹의 정치인이 되고 싶어 하는 청년들 모두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그 기본 중의 기본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전문(前文)과 10개 장 130개 조문의 본문(本文) 그리고 5개 조문의 부칙(附則)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헌법 전문을 읽어 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상당히 긴 헌법 전문이 지향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어느 나라든 각 나라의 헌법은 그 나라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최고의 법률 문서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두 가지 개념으로 요약된다고 한다. 하나는 대한민국이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으로 대한민국이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 체제란 것이다.
사회 제도는 하늘과 자연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구성원이 만드는 것이다. 제도를 훌륭하게 설계하고 그 제도를 본래의 취지대로 적절하게 운영하면 어느 나라든 번창하고 국민은 잘살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정치 지도자이든 국가 정체성의 틀 속에서 활동하고 동시에 모든 정치가는 국가 정체성을 정립하고 유지 발전시켜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
국가 정체성에 관한 세 가지 질문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와 자유시장 경제 체제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첫째, 자유민주 정치 체제와 자본주의 자유시장 경제 체제란 무엇인가. 둘째, 우리나라 헌법이 과연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와 자본주의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얼마나 잘 구현하고 있는가. 셋째,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와 자본주의 자유시장 경제 체제의 양립이 가능한가.
위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초보적 답은 첫째,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나름 잘 알고 있으나 자본주의 자유시장 경제 체제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조차도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하며 둘째, 우리 현행 헌법은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는 상당 수준까지 구현하고 있으나 자본주의 자유시장 경제 체제와 관련해서는 매우 미흡한 수준이라는 것 셋째,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와 자본주의 자유시장 경제 체제는 기본적으로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 우리 사회를 병들어 앓게 하는 문제들이 이들 세 가지 요인으로 인해 야기되고 있다.
정치적 의사결정 대(對) 시장적 의사결정
우리 모두는 두 가지 의사결정 과정 속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하나는 유권자로서 참여하는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자·소비자로서 참여하는 시장적 의사결정 과정이다.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과 시장적 의사결정 과정은 의사결정 투표의 수·의사결정의 빈도·의사결정 합의의 기준 등에서 크게 다르다.
먼저 두 가지 다른 의사결정 과정에서 참여자가 갖는 투표 수에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결정은 사회 구성원들의 투표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사회 구성원은 모두 똑같은 수의 표, 즉 1인 1표를 가지고 참여한다. 반면에 시장적 의사결정의 경우 사회 구성원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경제력에 비례하여 불균등한 수의 표를 가지고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만약 A의 소득이 5000만 원이고 B의 소득이 5억 원일 경우 시장을 통한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B가 A에 비해 10배의 투표권을 행사한다.
다음으로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선택은 시장적 의사결정 과정에서처럼 언제나 가능한 것이 아니며 매일매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기간이 지나야만 가능하다. 경제력만 있으면 보통 재화나 용역은 시장에서 언제든 구입이 가능하지만 국민이 선출하는 공직자는 비록 현재의 공직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정 기간, 즉 선출된 공직자의 임기가 다할 때까지 4년 또는 5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합의를 결정하는 기준에서 두 가지 형태의 의사결정 과정에 차이가 있다. 시장적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참가자 전원이 합의를 해야 거래가 이루어지므로 의사결정이 항상 만장일치로 이루어지는 반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만장일치에 의한 의사결정은 매우 드물고 통상적으로 참여자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받아들여지는 다수결 제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누가 참된 민주화 세력인가
1948년 건국과 함께 시작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 즉 민주주의를 놓고 정치 지도자와 국민 모두 회의에 빠져 있다. 인류가 갖게 된 지고지선(至高至善)의 정치 체제인 민주주의 체제에서 77년 성상(星霜)을 살며 때로는 민주화를 외치며 목숨 건 투쟁을 하기도 했는데 민주주의를 빌미로 정치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데도, 그리고 민주 세력이라 자처하는 집단이 반(反)민주적 행태를 일삼고 있는데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 나라의 일부 좌파 세력은 ‘민주화’나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전용 특허인 양 내세우면서도 3대에 걸친 진짜 독재국가인 북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민주주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언제 도입되고, 누구에 의해 정착되었는가. 민주주의는 만능인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런데 앞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정확히 답하고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유신 체제로 대표된 왜곡된 비(非)민주적 통치 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우리는 ?민주화 운동?이라 불러 왔다. 이 과정에서 ?닭장?과 ?철장?을 오간 사람들을 ?민주화 투사?라 부르고 이들에 의해 민주화가 완성된 것으로 생각들 한다. 사실 1980년대의 민주화 투사들은 참으로 고생을 했으며 그들의 희생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논한다면 먼저 건국 과정과 6·25전쟁의 와중에서 이 나라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의 노력이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기초로 해서 대한민국을 건국한 자체가 우리의 5000년 역사에서 가장 최초의, 그리고 가장 큰 민주화 작업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공산주의·사회주의가 정점에 달했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그 극심한 혼란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한 위업이 없었다면 1980년대 민주화가 가능했겠는가. 정부 수립 후 3년이 채 안된 시점에 공산 세력이 무력 도발을 했을 때 이를 격퇴시킨 그 고군분투의 과정이 어쩌면 건국 이후 우리나라 민주화의 두 번째 초석이 아닌가. 1980년대의 민주화는 세 번째 방점이다.
민주주의는 흠결 많은 정치 제도
민주정치 체제를 놓고 우리나라에서의 문제는 민주정치 체제를 지고지선의 제도, 하나의 절대적 가치로 신격화해 숭앙한다는 것이다. 사실 달리 보다 나은 대안이 없기에 민주정치 체제를 버릴 수 없지만 여기엔 치명적 결함이 존재하며 문제 또한 아주 많다. 성숙한 개인들의 독립적 판단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는 ‘떼’의 정치, ‘폭도’의 정치가 되며 우중정치로 쉽게 흘러간다는 것을 역사가 수없이 보여주고 있다. 투표에 의한 민주주의의 결과 파시즘·나치즘이 탄생했고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들에서 인민민주주의 독재 체제가 등장했다.
민주주의를 놓고 완벽한 정치체제라 찬양하기는커녕 모두 언제나 문제투성이임을 지적했는데, 영국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민주주의는 당파 투쟁·선전 선동·폭민정치 따위로 변질될 우려가 가장 많은 최악의 정치 체제”라 했고 60여 년 동안 영국 의회 의사당인 웨스터민스터 궁전을 드나들었던 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는 가장 나쁜 정부의 형태다. 모든 다른 정부 형태를 제외한다면”이라고도 했다.
지고지선의 가치는 자유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추구해야 할 정치적 가치는 자유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다. 인도와 홍콩이 그 좋은 사례이다.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정치 체제 국가이지만 인도인들은 자유를 제한하는 수많은 보호적 규제 속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그들의 소득 수준은 아직도 매우 낮다. 홍콩은 영국의 지배를 받던 옛날이나 중국의 지배를 받는 현재나 시민에게 통치자를 선출할 권리가 없기에 민주정치 체제가 아니다. 그러나 지구상의 그 어떤 곳보다 가장 광범위하게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어 있다(최근은 아니지만). 그래서 소득 수준이 높다.
민주정치 체제는 가장 나쁜 국가 형태, 즉 전제정치나 독재정치를 피하는 수단이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관심의 초점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이룰 것인가에 있었으며 ?왜? 민주주의여야 하는가는 관심의 주된 대상이 아니었다. 민주화를 위한 열렬한 투쟁이 있었지만 정작 민주정치 체제의 본질과 정당성에 대한 고민에는 그만큼의 열정이 바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날 폭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치 체제로서 민주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어려서부터 비교적 잘 교육을 받았으나, 경제 체제인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가 가져오는 각종 이득은 향유하면서도 그 체제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일반인이 제대로 교육받은 바가 거의 없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한 상당수의 학생들은 그러한 질문을 왜 하는지 무척 의아해 한다.
자유시장경제 체제란 무엇인가
사실 경제학 교과서뿐만 아니라 한글 사전은 물론이고 국내의 경제학 대사전에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실려 있지 않다. 예를 들어 한글학회가 펴낸 ‘우리말 큰사전’은 자본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자본주의란) 자본의 경제적 세력을 가지고, 또는 그 이득으로 인권·상권의 패권을 가지려는 주의, 곧 자본에 대한 이윤만을 유일의 목적으로 하는 경제적 활동 내지 경제 조직의 총괄적 표현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멸망을 예언한 카를 마르크스가 규정한 자본주의에 관한 정의인데, 아주 잘못된 정의라고 판단된다. 사전이 무릇 모든 설명이나 정의의 준거(準據)가 된다는 점에서 보면 이러한 잘못된 정의는 매우 심각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정착·발전되기 어려울 것이다.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사유재산 제도와 선택의 자유를 근간으로 각각의 경제 주체가 자기 책임하에 자유롭게 사익을 추구하게 하여 ‘어떤 재화를, 얼만큼, 누구를 위해, 어떻게, 언제, 어디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가’ 하는 기본적인 경제 문제를 정부 아닌 시장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사회 구성원의 복지를 최대로 증진시키는 경제 체제이다.
우리 국민은 경제에 관한 한 문맹이 많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정치가들을 포함해 국가 정책을 다루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상당수도 경제 문맹인이라는 점이다. 기본 개념을 잘 모르고 정확한 지식이 없이 경제 문제에 대해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한다.
경제 문맹이 지배적인 상태에서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각자가 자신의 주장을 제약 없이 개진하고 그리고 투표로써 경제 정책을 결정할 때 그 결과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비극적 종말로 귀착된다.
정치 논리 대 경제 논리
오늘날 우리 경제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그 구조에 있다. 따라서 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처방도 구조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경제 정책의 운용은 경제 이론이라는 과학을 근거로 한 하나의 정치적 예술이다. 과학적 요소와 예술적 요소가 잘 조화될 수 있을 때 경제 정책은 성공할 수 있으며 국민 복지 또한 증진될 수 있다.
최근의 중요한 정책 결정을 살펴보면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과학적 요소인 경제 논리는 뒷전으로 밀린 채 정치 논리가 경제정책을 지배하여 원하는 목적이 달성되지 않음은 물론 오히려 더 큰 부작용과 후유증만을 발생시키고 있다.
경제 논리와 정치 논리는 그 궤를 달리한다. 경제는 자체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이를 무시한 정책을 펴면 경제는 경제대로 병만 들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정치의 전당인 국회에서 정치 논리를 깡그리 무시하고 국정을 논하라고 요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 논리가 무시되고 정치 논리가 부각될 때 결국 정치 논리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시장경제와 경기 규칙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각종 혼란과 고통,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의 혼란과 고통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뒷받침하는 사회 질서, 즉 경기 규칙에 대해 정치가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해가 부족하고 문제의 핵심을 고심해 보지 않은 데서 초래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자본주의의 경기 규칙을 무시하고 자본주의를 실행하려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는 말이다.
우리 모두가 선진국 진입을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 진입은 역사적으로 예외적인 사건이다. 지난 1세기 동안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는 일본과 아일랜드뿐이다. 남미의 몇 나라는 20세기 초에 미국·유럽에 견줄 수 있는 선진국이었으나 최근엔 중진국으로 후퇴했다.
대다수 전문가가 우리의 선진국 진입이 시간의 문제이지 종국엔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현재와 같은 반(反)시장적 정책 기조·국론 분열·국제 사회에서의 고립·노사 관계의 불안·근로 의욕의 저하·저출생과 고령화·지구적 경쟁의 심화·안보 불안 등이 계속될 경우 선진국 진입은커녕 남미와 같이 추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많은 사람들, 특히 정치가와 관료들도 입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신봉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과 정책은 아직은 거리가 멀다. 모든 것을 정부가 주도하는 정부 중심적인 경제운영 방식에 기본적으로 큰 변화가 없다. 심지어 민간에서도 ‘작은 정부’를 주장하다가도 어떤 문제에 가서는 정부에 의존하려는 경향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도대체 왜 우리는 누구나 구호로 내세우는 ‘시장경제’를 실천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우리 자신도 모르게 체화되어 있는 뿌리 깊은 ‘형평’ 위주의 사고방식이 정치를 통하여 반(反)시장적 정책을 양산해 내는 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을 짓누르고 ‘민족’ ‘평등’ ‘복지’라는 미명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교묘히 제한하면서도 자신들을 시장경제주의자라고 오도하는 사람들이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는 한 경제는 멍들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의 오류
최근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는 단연 경제민주화이다. 경제민주화는 말 그대로 경제의 민주화이고 이는 곧 경제의 정치화를 의미한다. 즉 경제민주화란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이 시장적 의사결정 과정을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가 경제를 다스린다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본질이라면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정치와 경제의 각각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리고 정치와 경제가 어떻게 상호 연관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경제를 민주화하고 정치화하면 그 경제는 멍들어 쇠락한다. 이는 단순한 추측이 아니고 역사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경제의 민주화를 역사상 가장 완벽히 이룬 나라들이 옛 소련과 중국 그리고 현재의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다. 재벌도 없고, 노동자가 기업 운영, 아니 나라 운영의 핵심이고, 일감 몰아주기도 없고, 동반성장위원회도 필요 없고, 세금은 아예 없고,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도 필요 없는 등 오늘날 경제민주화 주창자들이 내세우는 경제민주화가 완벽히 실현될 뻔했던 곳이 북한을 포함한 이들 사회주의 국가들이 아닌가.
양립 불가능한 민주정치 체제와 자유시장경제 체제
민주정치 체제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공통적으로 개인의 자유·책임·경쟁·참여·법치를 강조하는 자유주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병행 발전하는 속성이 일부 있다. 민주정치 체제는 정치권력의 남용을 차단함으로써, 그리고 자유로운 풍토를 조성함으로써 진정한 시장경제 체제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다. 또한 시장경제 체제는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받게 함으로써 민주정치 체제의 물적 기반을 제공하고 정치적 안정에 기여한다.
그러나 민주정치 체제와 시장경제 체제는 근원적으로 출발에서부터 다르고 진행 과정과 지향 목표도 다르기 때문에 각각 분리하여 논의되어야지 ‘민주적 시장경제’나 ‘경제민주화’ 같이 혼합될 경우 개념이 혼돈스러워지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이 수립되는 경우 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이는 어느 한 나라가 완벽한 민주정치 체제와 완벽한 시장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더라도 본래 이질적(異質的)인 두 체제가 상충할 것이고 특히 경제정책을 두고는 양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정치적 의사결정은 과오를 범하지 않는 전지전능한 주체에 의해 높은 곳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최근 화두로 등장한 경제민주화 논의 내용과 방법을 두고 진행되는 논의에서 갑론을박의 근원은 관련자 모두가 정치적 민주정치 체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본질 그리고 그 양자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민주정치 체제의 경우 강제성이 항시 전제되나 시장경제 체제는 자발성이 근간을 이룬다. 선거를 통해 직접 결정되든 또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든 민주정치 체제에서의 의사결정은 다수결로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서 반대를 한 소수도 최종 결정이 이루어진 후에는 반드시 그 결정에 따라야 할 의무를 진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강제성은 시장경제 체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생산자든 소비자든 상대방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제공할 의사를 표명하고 상대방이 자신의 제의를 수용할 때에만 거래가 이루어진다. 어느 누구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선택을 강요할 수 없다. 모든 거래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며 성사되는 거래의 경우는 항시 만장일치가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이 정치적 민주정치 체제와 시장경제 체제를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민주정치 체제와 시장경제 체제가 잘 조화되는 제도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앞서 간략히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이해와 인식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점에 있다. 참으로 잘못된 이해와 인식이 최근 대두된 경제민주화 등장의 배경이며 경제민주화 주창자들조차도 헷갈리고 소리만 요란하지 구체적 내용에 오면 전혀 새로운 것이 없는 이유이다.
경제민주화를 놓고 일반 국민에게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우리 국민은 대체로 정치를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 혐오하는 지경이다. 우리 국민은 또한 정부의 무능력과 비효율을 한탄한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에 대한 정치의 개입이고 정부에 의한 경제의 통제이다. 정치인들이 하는 대부분의 일에 전혀 신뢰를 보내지 않는 국민이, 정치인들이 경제에 개입하면 경제가 잘 되리라고는 어떻게 신뢰하는가. 정부의 무능력과 비능률을 한탄하는 국민이,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면 경제가 잘 되리라고 어떻게 기대하는가.
국가 번영의 요체
잘사는 국가 번창의 길을 놓고 선각자들이 내놓은 수많은 처방의 핵심은 ‘리더십(leadrship)’ ?제도(institution)’와 ?사상(ideology)’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한 나라의 장기적 번영을 결정하는 것은 그 나라의 천연자원도 아니고, 문화적 자산도 아니며 ?지도자와 제도와 이념?에 있다. 훌륭한 제도와 이념의 핵심은 자유주의 정신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인데 우리의 경우 반(反)자유주의 정신이 풍미하고 있으며 반(反)자본주의적·반(反)시장적 정책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20세기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나라는 번영을 누리고 경제가 번창하는 데 반하여 한정된 이성과 이기주의적 편견의 소유자인 인간 또는 그 집단이 무제한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면 그 사회는 부패하고 경제는 쇠퇴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냉혹함에 대해 말이 많은데 그 이유는 자본주의가 모든 사람을 각자의 능력과 기여에 따라 달리 대우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많은 사람이 불행함을 느끼는 것은 자본주의가 각자에게 가장 바람직한 상황 또는 지위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는 예외 없이 부여하지만 그 상황 또는 지위에는 소수의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능력을 발휘하고 더 많은 재능을 가진 소수의 모습을 볼 때 다수는 자존심이 상하고 불평하게 마련이다.
자유경제 체제에 벗어나는 특단의 조치만으로 크게는 경제 위기가 극복되고, 작게는 문제로 대두된 각각의 사안이 해결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어려운 국면이나 내용이라 하더라도 문제를 순리대로, 원칙에 따라, 원천적으로 풀어야지 충격요법으로,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찾다 보면 모든 일을 정부가 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기 십상이다. 따라서 정부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살피고 이를 제대로 인식·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민간 또는 시장이 잘할 수 있는 일들에 정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하며, 더더욱 국민 세금을 투입해 낭비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경제적 번영을 보장하는 각종 제도를 확립·정착시키면서 정책의 내용을 제대로 만들어 필요조건을 충족시키고 정치적 지도력이 발휘되어 국민적 에너지가 결집되는 충분조건이 충족될 때 경제정책은 성공을 거두고 경제는 번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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