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4 19:12:55
국민들은 새해에 지혜와 성장을 상징하는 푸른 뱀의 기운을 받아, 나라가 안정을 찾고 새로운 도약이 이뤄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극단의 대립과 갈등으로 짙은 어둠속으로 빠져 드는 것 같다. 비상계엄이후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부조화와 충돌이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고 있다.
첫째, 권한과 여건의 부조화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상계엄은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서, 적과 교전하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돼 행정·사법 기능 수행이 현저히 곤란해야 선포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한 구체적인 사유로 야당의 고위공직자에 대한 탄핵 추진과 내년도 감액 예산안 단독 처리 등을 들었는데, 이는 비상계엄 사유가 될 수 있다. 국회법 제130조에는 ‘탄핵소추의 발의’권이 본회의에 보고된 때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탄핵소추 여부를 무기명투표로 표결한다. 이는 분명 국회의 권한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이후 29번 탄핵을 남발하면서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3인에 대한 임명을 보류하자, 야당이 즉각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탄핵안에는 5가지 탄핵 사유가 담겼다. 국무총리 재임 시절의 해병대원·김건희 특검법 재의요구권 건의, 12·3 내란 사태 당시 국무회의 소집으로 내란 절차적 하자 보충, 내란 행위 이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권력 행사를 하려 한 행위,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관련으로는 내란 상설특검 후보 추천 의뢰 의무 불이행,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3명 임명 거부다.
탄핵은 ‘중대한 법 위반’이 있어야 하는데 국무총리가 자신의 법적으로 부여된 거부권 건의가 어떻게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나? 권한은 있지만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불법이고 위헌이 된다.
둘째, 원칙과 편법의 충돌이다.
최근 비상계엄을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윤 대통령이 세 차례 출석 요구에 불응하자 강제로 신병을 확보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측은 공수처법상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기 때문에 “체포영장도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여권에선 “공조본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경찰이 수사를 하고 공수처가 영장청구를 하는 편법을 쓰는 것인데 명백한 헌법과 형사소송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공수처는 윤 대통령을 상대로 직권남용죄를 수사 할 수 있으니 관련 범죄로 내란죄를 수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수처법에는 ‘제1심 재판관할은 서울중앙지법으로 한다. 단 범죄지·증거소재지·피고인의 특별한 사정을 고려해 형사소송법 규정(피고인 주거지·현재지)에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은 ‘판사 쇼핑’이며 편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와 내란 혐의 등을 이유로 탄핵을 소추한 국회는 탄핵 심판 2차 변론준비기일에서 “내란죄를 탄핵소추 사유에서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헌재가 공수처에서 수사 중인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는 제외하고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헌법 위반 여부만 판단해 달라는 취지다.
여권과 법조계에서는 민주당이 조기 대선 국면을 노리고 탄핵 심판을 서둘러 마무리하려는 꼼수라는 비판과 함께 국회 표결을 다시 거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세훈 시장은 “이재명 본인 재판이 나오기 전 탄핵을 앞당겨 대통령 되는 길을 서둘겠다는 정치적 셈법”이라고 비판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헌법재판소가 만약 내란죄를 제외하면 이 사건 재판은 각하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던 200명 국회의원의 효력이 사라진 것”이라며 “200명의 단합된 의사가 없어진 것으로 탄핵소추가 합법적으로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호선 국민대학교 법과 대학장은 “공소장과 같다는 점에서 탄핵소추서는 일단 헌재에 접수되면 심판이 끝날 때까지 그 기재된 사실의 동일성이 유지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편법과 꼼수가 난무하며 법치는 훼손되고 민주주의는 질식하게 된다.
셋째, 제도와 운영간의 부조화다.
국회에서 헌정 사상 세 번째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서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확산되고 있다.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이유에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1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첫 만남에서 “헌정사에서 세 번에 걸친 (대통령) 탄핵 정국이 있는데, 우리 헌법이 채택한 통치 구조, 대통령 중심제 국가가 과연 국가 현실과 맞는지 이 시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개헌’ 카드를 던졌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즉답하지 않으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공약으로 대통령 중임제와 대선 결선투표제 등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계엄과 탄핵으로 조기 대선과 집권 가능성이 더욱 커진 상황에서 이 대표는 굳이 본인 스스로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개헌에 적극 나설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주로 ‘4년 중임 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순수내각제’ 등 권력구조 개편에만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개헌론의 시각은 국정 운영의 실패를 대통령이 아니라 제도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권력 구조를 4년 중임 대통령제로 바꾼다고 제왕적 대통령이 사라지고 국정 운영의 효율성이 담보될 수 있는가. 결국 대통령제의 중심에 있는 대통령 개인이 제일 문제다.
대통령이 정치를 부정하면서 모든 것을 자신이 처리하는 ‘만기친람식’ 리더십을 보이거나, 국회와 야당을 무시한 채 극단과 배제의 정치에 앞장서며, 집권당을 대통령실 여의도 출장소 정도로 취급하는 한 아무리 권력구조를 바꾸어도 백약이 무효다. 더구나, 현재와 같이 정당들이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본질적인 기능을 외면한 채 제왕적 당 대표가 군림하면서 당파적 이익에만 매몰돼 있는 상황에서 권력 구조를 바꿔 정치를 정상화시킨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대통령제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한 대원칙은 ‘4년 중임’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련의 정치적 실패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계엄과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것임이 드러났다.
미국 정부는 비상계엄 사태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그 회복력을 높이 평가하며 신뢰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회복력은 권한과 요건의 조화, 원칙 있는 법치, 제도와 운영의 조화가 이뤄져야 가능하다.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엔 고속 압축 성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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