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1 14:24:55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11월10일)을 앞두고 벼랑 끝에 서 있다. 국정 운영 지지도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도는 지난 4월 총선 이후 23%로 떨어진 뒤 7개월째 20%대를 못 벗어나다가, 결국 처음으로 10%대로 떨어졌다.
한국갤럽 10월 5주 조사(10월 29-31일)에서 윤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1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는 72%로 역대 최고치였다.
집권 3년 차에 10%대 지지율은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무려 34년 만에 처음이다. 야권은 “국정농단 사태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율보다 낮다”며 날을 세웠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이 이른바 ‘명태균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윤 대통령을 둘러싼 ‘공천개입’ 논란까지 벌어졌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10%선’으로 추락하면서, 정치권에선 이를 ‘레임덕’(대통령 권력의 조기 누수 현상)이 시작됐다는 시그널로 보고 있다. 야권에선 탄핵 전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율보다 낮아 이미 “심리적인 탄핵 상태”라고 지적한다.
윤 대통령 핵심 지지층에서의 이탈도 심상치 않다. 보수 강세 지역으로 꼽히는 대구·경북(TK)에서 긍정 평가는 18%로 전국 평균 지지율(19%)보다 낮았다. 일각에선 민생 경제가 어려운데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에 갈등이 증폭되고, 8개월째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의정갈등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다.
실제로 윤 대통령 부정 평가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건 ‘경제/민생/물가’(14%)보다 ‘김건희 여사 문제’(17%)였다. 이는 6주 새 약 6배 증가한 수치다. 이것은 촉발 요인이다. 보다 근원적이고 핵심적인 기저 요인은 윤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내걸고 당선되었지만, 집권 후엔 정반대로 갔다. 공정은 무너지고 비상식적인 일들이 넘쳐났다. 본인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해 놓고 자신에게 충성하라고 강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에 실망한 핵심 지지층조차 등을 돌리고 있다.
전국지표조사(NBS) 10월 4주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성에 대해 ‘올바른 방향’이라는 응답은 24%인 반면, ‘잘못된 방향’이라는 응답은 65%였다. 18-29세(18%), 30-39세(16%), 40-49세(14%)에선 ‘올바른 방향’이라는 응답이 10%대에 불과했다. 이런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 기조의 전환이 더 늦지 않게 필요하다. 민심이 매섭게 돌아서고 있다”며 “독단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 반감을 아프지만 인정해야 한다. 국정 기조의 내용과 방식이 독단적으로 보인 부분이 있는지 점검하고 시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7일 ‘대국민담화?기자회견’을 가졌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담화(회견)가 되길 기대하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회견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당내 5·6선 중진 의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대통령 담화가 국민에게 겸허한 자세로 변화와 쇄신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회견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윤 대통령이 진솔하게 사과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윤 대통령은 “제 주변의 일로 국민께 염려를 드렸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부덕의 소치”라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은 “알맹이 없는 사과, 구질구질한 변명, 구제 불능의 오만과 독선으로 넘쳐났다”며 “시종일관 김건희 지키기에만 골몰했다”고 혹평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김건희 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V1의 결사적 노력을 봤다”고 비꼬면서 “윤석열은 사실인정도, 진솔한 반성도 하지 않고, 되려 국민을 꾸짖었다”고 주장했다. 이렇다 보니 “윤 대통령은 사과를 했는데 무엇에 대한 사과를 했나"라는 질문마저 받게 됐다.
둘째, 고강도 국정 쇄신책이 포함되었는가. 윤 대통령은 국정 쇄신 관련 질문에 “적절한 시기에 인사를 통한 쇄신의 면모를 보여드리기 위해서 벌써 인재풀에 대한 물색과 검증에 들어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고위직에 대한 인적 쇄신은 국정 쇄신과 연결되는 문제고, 실무자들에 대한 것들은 자기가 자기 일 안 하고 엉뚱한 짓을 하고 말썽을 피우면 그것은 계통대로 조사하고 조치하겠다”고 했다. 한동훈 대표가 요구한 김 여사가 대통령실 비선라인을 활용해 인사·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는 고강도 쇄신책에 대한 즉각적인 인사 조치는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셋째, 김건희 여사 문제를 끊어낼 수 있는 대안이 제시되었는지 여부다.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의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한 질문에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좀 도와서 어쨌든 선거도 잘 치르고 국정도 남들한테 욕 안 얻어먹고 좀 원만하게 잘하기를 바라는 그런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그런다면 그것은 국어사전을 다시 정리를 해야 될 것 같다”면서 김 여사 국정 개입 등 의혹을 부인했다.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 특검 수용 없이 돌아선 국민의 마음을 달랠 길은 없다”며 “오직 특검의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만이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여권이 배제된 특검은 반헌법적이라고 거부했다. 당내에선 독소 조항을 제거한 ‘김건희 특검법’ 추진을 포함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윤 대통령은 특검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넷째, 개혁의 당위성과 방향보다 개혁이 성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는가. 윤 대통령은 ‘2024년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해 축사에서 “개혁에는 반드시 저항이 따르게 돼 있다. 역대 정부들이 개혁에 실패하고 개혁을 포기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면서 의료 개혁, 연금 개혁, 노동 개혁, 교육 개혁 등 4대 개혁 추진 의지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4대 개혁에 대해 “저와 정부는 저항에 맞서며 절대 포기하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완수해 내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돌 맞고 가겠다’는 각오만으로는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은 방향만 옳으면 방식은 다소 서툴러도 괜찮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이번 회견에서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의정 갈등과 관련 이를 해결할 정교한 로드맵을 내놓지 못했다.
다섯째, 협치의 제도화 구상이 포함되었는가.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수시로 만나 국정 현안을 논의하자는 제안이 포함되었는지가 큰 관심사였다. 행정 권력의 용산 대통령(윤석열)과 의회 권력의 여의도 대통령(이재명)이 충돌하는 ‘이중 권력 시대’에서 효율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선 야당과의 협치가 필수적이다. 윤 대통령은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 불참한 것과 관련해 “(야권이) 공직자 탄핵과 특검법(추진)을 반복하고 동행 명령권을 남발하는 것은 국회에 오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했다. 야당이 협치를 막고 있다는 입장이다. 협치는 본래 야당이 아니라 권력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주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협치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여권은 이번 회견이 윤 대통령과 김 여사 관련 의혹 해소돼 후반기 국정 동력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이번 기자회견을 다섯 가지 기준에 의해 평가해 보면 “기대에 못 미친다” “안 하느니만 못한 회견이었다”는 평가로 귀결된다. 한동훈 대표는 기자회견 전에 윤 대통령의 사과, 김건희 여사의 대외 활동 중단, 대통령실 참모진의 쇄신, 특별감찰관 임명 등을 공개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기자회견에서 이런 요구들이 적극 반영되지 않았다. 여당 내부에선 “당이 윤 대통령을 방어하기 어려워졌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대표가 향후 어떤 행보를 취할지가 정국의 큰 분수령이 될 것이다. 동시에 기대에 못 미친 기자회견으로 야권이 제기하는 대통령 탄핵과 임기 단축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탈지 여부도 큰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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