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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흔들려선 안 될 ‘신속한 재판’ 원칙
 
2024-04-16 13:31:19
◆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미디어·언론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대표적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주인공 미카엘은 본래 천사였다. 어느 날 두 딸아이를 갓 출산한 엄마의 생명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라는 신의 명령을 받은 미카엘은 그 엄마가 불쌍하고 아이의 생명도 염려된 나머지 이를 어긴다. 신의 벌을 받은 미카엘은 오랜 시간 후에 그 아이들이 새로운 인연을 만나 사랑으로 양육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필자는 소명(召命)보다는 지나치게 많은 미래의 고민과 상황을 고려해서 결정을 미루고 실행하지 않은 미카엘의 심정을 헤아려 봤다. 하지만 잠시의 아픔과 슬픔이 있었으나 신은 결국 미카엘의 걱정과 달리 올바르고 행복한 방향으로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했다.

최근 사법부의 재판 과정과 속도를 두고 이 소설의 줄거리가 떠오른다. 헌법상 재판은 공정해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신속해야 하며, 원칙적으로 재판 외의 다른 일체의 사항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신속한 재판의 원칙’이라 함은, 피고인이 신속하게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일찍이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도 “사법은 신선할수록 향기가 높다”고 했다.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매우 높은 반면 재판의 신속성에 대해서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최근에는 법원 전체가 이를 주제로 토론과 보고서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할 정도로 재판 지연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정치인들이나 선거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건들은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더욱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

신속한 재판의 원칙은 수사와 공소 제기 절차, 공판 절차, 상고심 절차에 공통으로 적용돼야 한다. 특히, 형사사건의 신속한 처리는 헌법상 형사절차의 기본 이념이다. 최초의 범죄 혐의 발견부터 확정판결까지의 소송 기간을 최대한 줄여 피의자·피고인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실체적 진실 발견, 소송경제,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형벌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도 재판은 신속하게 진행·종결돼야 한다. 형사사건의 경우 형 선고 때까지 발생할지 모르는 증인의 변심, 증거의 멸실·훼손 방지라는 측면에서도 신속한 재판의 진행과 종결이 필요하다.

헌법상 삼권분립의 원칙 아래서 사법 적극주의와 소극주의의 대립은 사법부의 오랜 과제 중 하나다. 사법부가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지나치게 위헌으로 결정하거나 정치적 행위에 개입하는 경우에는 사법이 아니라 재판 자체가 ‘법창조행위’나 ‘입법행위’가 돼 재판이 정치행위로 비칠 가능성이 있어 법원이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반대로 사법 소극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해서 법원이 현재 문제 된 사건들에 대한 판결을 통상적인 법감정이나 기대보다 훨씬 미룰 경우 재판의 지연 자체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입법행위로 비칠 위험성도 없지 않다. 권력분립의 원칙 아래서 행정부나 입법부가 대개 다수파로 구성되더라도, 사법부는 ‘소수자와 약자’의 이익 보호를 위해 외풍을 이겨내고 오직 법에 따라 재판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 헌법 원칙이다.

행정부나 입법부의 구성이 여야 어느 편에 유리한 형세가 됐든 간에 사법부는 언제나 오롯이 국민의 편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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