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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국민 슬픔 악용한 정치, 역풍 부른다
 
2022-11-14 14:32:35
◆ 칼럼을 기고한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현재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치개혁연구회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김형준 명지대 특임교수·정치학

국가애도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많은 시민이 156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현장을 찾아 추모하는 ‘이태원 참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압사 사고였다.

참사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가장 큰 원인은 좁은 공간에 밀집하는 군중 관리 매뉴얼의 부재, 주최자나 단체 없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행사는 관리 대상이 아니라는 잘못된 인식이었다. 수많은 인파, 양방 통행, 좁은 골목, 경사로, 소음으로 위험 신호가 뒤로 전파될 수 없는 상황 등으로 ‘군중 압착(crowd crush)’의 위험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의 허술한 보고 체계, 부실 및 늑장 대응이 사태를 최악으로 몰고 갔다. 참사 며칠 전 ‘코로나 이후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니 별도의 경찰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는 정보관의 보고서 삭제, 사고 4시간 전부터 인파 사고 위험성을 알리는 112신고가 묵살 당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 핵심 지휘부는 대통령보다 보고를 늦게 받는 등 재난 대응 보고 체계가 엉망이었다.

지금 할 일은 철저한 진상 조사를 통한 책임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책 마련이다. 만약 정부의 진상 규명이 미흡하면 국정조사는 불가피하다. 다만, 국정조사에서는 정쟁을 멈추고 전문가를 중심으로 초당적인 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새로운 재난 대응 체계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앞으로 더불어민주당이 본격적인 대정부 투쟁에 나서 ‘재난의 정치화’에 몰두한다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민주당은 ‘이태원 참사 당일 한남동 대통령 관저 등에 경찰이 대거 배치돼 참사 현장에 경찰이 부족했다’고 했지만, 이는 인과관계가 확실치 않다.

참사 이후 민심은 민주당의 뜻대로 흐르지 않고 있다. 참사 직후인 지난 1∼3일 첫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29%)과 국민의힘(32%) 지지도는 전주 대비 1%포인트(P)씩 떨어졌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첫 리얼미터 정례 여론조사(4월 21∼25일)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도가 각각 전주 대비 6.8%P와 4.7%P 하락한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세월호 때와 확연히 다른 것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윤 대통령이 신속히 대응하면서 수차례 사과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 때 희생을 정쟁화하는 것을 경험한 국민이 진보 단체의 자극적인 선동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 지난 5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집회를 주도한 ‘촛불승리전환행동’이라는 단체는 “윤석열 정부 퇴진”을 외쳤다. 이런 정치 선동은 자책골이 될 수 있다. 분명, 이번 참사의 기저 요인은 정치가 아니라 시스템 부재다.

미국에서는 대형 사고가 나면 분열돼 있다가도 단합한다. 가령, 2000년 대선에서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 후보에게 석패했던 민주당 앨 고어 전 부통령은 9·11테러 직후 “부시는 나의 최고사령관이다”면서 정적인 부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야당인 민주당은 부시 대통령 퇴진도 내각 총사퇴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보 시스템의 전면 개편에 협조했다. 이것이 정치다.

참사 직후 여론조사에서 여야의 유·불리를 따질 것 없이 모두 소폭 하락했다는 사실은 재난과 국민의 슬픔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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