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선 칼럼

  • 한선 브리프

  • 이슈 & 포커스

  • 박세일의 창

[에너지경제] 임금체불 사업주 구속이 능사인가
 
2022-10-20 17:13:32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유산’ 으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슨은 1812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존 디킨슨은 한때 빚을 갚지 못해 ‘채무자 감옥’에 수감되었던 적이 있다. 이때부터 아들 디킨슨의 생활이 매우 곤궁해져 결국 15세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어린 시절 어려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많은 걸작을 남겼다.

대검찰청은 이달초 ‘임금체불 피해회복을 위한 검찰업무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악의적’(상습적ㆍ고의적)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해 검찰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임금체불은 사업자가 근로자에게 일의 대가로 약속한 금전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근로자가 채권자, 사업주가 채무자이다.

채무는 빚이다. 빚을 갚지 못한다고 국가가 구속수사를 한다니, "우리가 지금 찰스 디킨슨이 활동하던 19세기에 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채무불이행에 대해 형사처벌하던 관습은 현대 문명국가에서는 사라진지 오래다.

다만 한국 노동법이 임금채무불이행에 대해서는 형벌로 다스리도록 정해 놓았으니 검찰로서도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지난해 임금을 체불해 입건된 사업주는 4만 명이고, 근로자들이 받지 못한 임금도 1조 3500억 원을 넘었으나, 구속된 체불사업주는 0.02%에 그쳤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근로자가 열심히 일했어도 그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근로자의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것이 되므로 임금체불은 다른 빚을 연체하는 것과는 무게가 다르다. 그래서 국가에서도 ‘임금채권보장법’을 제정해, 사업주의 파산 등으로 퇴직한 근로자가 임금 등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 절차에 따라 사업주 대신 노동부 장관이 미지급 임금 등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그 금액이 3개월분 봉급 정도여서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악의적 사업주 구속수사 원칙’은 우려스럽다. 우선 상습적이라는 것은 확인될 수 있을 것이나, ‘악의’의 존재 여부는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내심의 의사여서 확인이 어렵다. ‘악의’ 대신 ‘고의성’ 역시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므로 알 수 없는 영역이고, 수사관이나 검사도 알 수가 없다. 사업하는 사람이 임금을 떼먹을 생각으로 사업을 벌이고 일을 시킨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사기죄의 경우도 고발 건수는 많으나 다른 형사사건과 달리 기소율은 높지 않다. 고발 건수가 많은 것은 사기 사건은 민사적 구제가 어려우므로 답답한 피해자로서는 일단 고발부터 하고 보자고 나서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기죄는 ‘타인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뜨리고 그로 인하여 기망행위의 상대방이 처분행위를 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얻는’ 까다로운 요건을 고루 충족시켜야만 ‘성립’한다. 그런데 실제로 사기꾼이 타인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뜨릴 고의성을 증명하기 매우 어려워 기소율은 낮을 수밖에 없다.

검찰은 임금체불 사업주를 구속 수사한다는데, 개인사업의 경우에는 개인, 법인인 경우에는 법인 자체가 사업주다. 그런데 검찰은 ‘사업주’에 대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한다고 하므로, 일단 개인사업자는 개인 및 그 가족 재산까지 조사대상이 될 우려가 크다. 법인의 경우는 경영담당자(대표이사)도 조사의 대상이 되나, 원칙으로 대표자 개인 및 그 가족의 재산상태까지 조사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개인사업자든 법인의 대표자든 체불임금 사업주가 구속되면 기업은 일시에 혼란에 빠지게 된다. 구속수사는 도주 우려 또는 증거인멸 우려가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인정되는데, 대표자가 구속되면 자금조달 방법이 막히고 오히려 임금체불이 고착화될 수 있다. 임금체불 가능성이 있는 기업주는 신속히 폐업하고 잠적하는 것이 화를 피하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기업인의 영업상 채무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강하게 대응한다고 해서 과연 체불임금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인가. 기업인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전과자를 양산하며, 있던 일자리도 없애지 않겠는가. 검찰의 신중한 법 집행을 기대한다.

◆ 칼럼 원문은 아래 [칼럼원문 보기]를 클릭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목록  
번호
제목
날짜
2430 [한국경제] 시진핑이 강조하는 '신질 생산력' 과연 성공할까? 24-04-25
2429 [문화일보] 민심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24-04-23
2428 [문화일보] 위헌 소지 큰 ‘중처法’과 헌재의 책무 24-04-23
2427 [한국경제] 적화 통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24-04-22
2426 [아시아투데이] 우수한 ‘지배구조’ 가늠할 ‘기준’ 과연 타당한가? 24-04-19
2425 [파이낸셜투데이] 영수 회담을 통한 ‘민생 협치’를 기대한다 24-04-18
2424 [문화일보] 흔들려선 안 될 ‘신속한 재판’ 원칙 24-04-16
2423 [파이낸셜투데이] 민주 시민이 지켜야 할 투표 원칙 24-04-04
2422 [아시아투데이] 경제악법 누가 만들었나 따져보고 투표하자 24-04-03
2421 [중앙일보] 헌법 가치에 기반한 ‘새 통일방안’ 제시하길 24-04-02
2420 [시사저널] 1인당 25만원? 중국에 “셰셰”? 이재명의 위험한 총선 공약 24-04-01
2419 [아시아투데이] 서해수호의 날이 주는 교훈 24-03-26
2418 [문화일보] 선거용 가짜뉴스犯 처벌 강화 급하다 24-03-25
2417 [월간중앙] 부동산 정책 오해와 진실 (13) 24-03-22
2416 [파이낸셜투데이] 대한민국 정당들이여, 어디로 가려고 하나? 24-03-21
2415 [문화일보] 기업 목 죄는 ESG 공시… 자율화·인센티브 제공이 바람직 24-03-20
2414 [한국경제] 노조 회계공시, 투명성 강화를 위한 시대적 요구다 24-03-19
2413 [에너지경제] ‘규제 개선’ 빠진 기업 밸류업 지원정책 24-03-11
2412 [브레이크뉴스] 한반도에서 곧 전쟁이 터질 것인가? 24-03-11
2411 [파이낸셜투데이] 정당정치의 퇴행을 누가 막아야 하나? 24-03-07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