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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제조업 해치고 청년 고용 막는 파견법
 
2022-08-01 13:50:10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대법원은 지난달 28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협력사 직원 59명이 포스코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에서 “원청이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다”며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논지는, 하도급 업체가 포스코에 도급계약 아래 파견한 근로자들이 파견법상 허용되지 않는 원청의 지휘·명령 등을 직접 받은 것이 인정되므로 이는 도급이 아닌 불법 파견이라는 것이다. 본래 도급의 경우는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한 지휘·명령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건 원고들은 ‘포스코 작업표준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제품 생산·조업 체계가 전산관리시스템(MES)으로 관리되는 점에 비춰 도급이 아닌 파견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파견법은 경비와 청소 등 32개 업종에만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협력업체 직원을 2년 넘게 일을 시키거나 파견이 금지된 제조업 공정에 투입하면 원청업체에 직고용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 사건 원고 59명은 2년 넘게 제조업체인 제철소에서 근무해 왔다. 따라서 법원은 현행 법률을 달리 해석할 여지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내 하도급은 제조업의 특성상 불가피한 것이어서 독일·일본 제조업에서도 생산 효율화를 위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번 사내 하도급 제한 판결로 산업의 국제경쟁력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에만도 하청업체 직원이 1만5000여 명으로 원청 직원 1만7700여 명에 맞먹는 규모다. 포스코 3∼9차 소송이 법원에 계류돼 있고, 이들을 모두 직고용한다면 2조 원 넘는 비용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제철, 한국GM 등도 불법파견소송에 걸려 있다.

작업표준서는 도급 품질을 담보하기 위한 서류고, MES는 업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정보 제공 시스템일 뿐인데, 법원은 이에 다소 과도한 법적 해석을 가한 것이 아닌가 싶다. MES가 없었다면 포스코가 세계경제포럼(WEF)에 의해 국내 최초 ‘등대공장’으로 지정되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파견법 개정이 해결책이다. 제조업 공정 파견근로 불가, 32개 업종에만 허용, 2년 초과 근로 불가 등은 모두 지나친 규제다. 그리스·튀르키예처럼 아예 근로자 파견을 금지하는 국가도 있지만, 미국·영국·호주·캐나다 등은 아무 제한 없이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다. 독일은 파견 기간 제한이 없고, 일본은 항만 운송 등 4개 업무를 제외하고 제조업 파견을 허용한다.


하청을 어렵게 하면 결국 대규모 직고용이 불가피하고, 이는 청년실업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 뻔하다. 실제로 현대차는 2014년부터 사내 하도급 근로자를 특별 채용 형태로 직고용해, 2020년까지 정규직 직고용 인원은 9179명에 달한다. 이 기간 생산직 근로자 채용은 중단됐다. 직고용 특채 직원과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기존 직원과의 갈등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불안 요인이다.

모든 직원을 직고용하면 기업은 점점 더 고비용·저효율의 거대 공룡이 돼버리며, 비대해진 조직으로 제조업 강국 도약 역시 불가능할 것이다. 한편, 중소 협력업체는 직원을 원청업체에 뺏겨 회사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이게 진짜 비극이다. 조속한 법 개정으로 업계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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