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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노동이사제, ‘모국’ 獨서도 2000년대 들어 퇴조·회피… 韓 도입은 시대착오
 
2021-12-17 09:33:05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최준선의 Deep Read -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문제점

‘박주민 법안’은 노동계가 공기업 접수하라는 것… 공공부문 도입되면 민간으로 확산해 혁신·투자 방해요인 돼
“경제는 정치”라는 이재명 법안통과 압박 선창에 윤석열 ‘뒷북’… 親노조 제스처로 票 얻기 불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국회에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법안 통과를 압박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15일 한국노총 지도부와 만나 노동이사제 도입 찬성의 뜻을 밝혔다. 현재까지 노동이사제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 4건이 여당에서 발의됐다.

노동이사제의 모국인 독일에서는 이 제도의 퇴조 경향이 뚜렷하다. 특히 한국은 독일과 달리 직장 단위로 노조가 있고 파업이 자유로운 등 근로자가 이사회까지 진입해야 할 동기가 약하다. 그런데도 이 후보에 이어 윤 후보까지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친노조’ 제스처로 노조 표를 얻겠다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노동이사제 모국의 동향

노동이사제는 독일 특유의 제도로서 노사 공동결정제도에서 나왔다. 독일 기업은 이사회를 두 개 구성해야 하는데,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가 그것이다. 근로자 수 2000명 이상 기업에 대해서는 ‘공동결정법’, 500명 이상 1999명까지는 ‘3분의 1 참여법’에 따라 감독이사회에 노동이사를 둬야 한다.

독일의 대표적 공동결정제도 연구재단인 ‘한스 뵈클러 재단’은 2020년 4월 ‘공동결정제도의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공동결정제도는 스위스 치즈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구멍을 메우기 위한 조치가 없으면 공동결정제도의 함몰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독일에서 노사 동수의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기업 수는 2002년 765개사에서 2018년 638개사로 감소해왔다(그래프). 2001년 유럽법원(EuGH)의 ‘지점 설치 자유의 원칙’ 판결에 따라 공동결정법에서 자유로운 외국 지점 설치가 허용되고, 공동결정제를 의무사항 아닌 선택사항으로 규정한 유럽회사법(SE)이 시행(2004년)된 것 등이 영향을 미쳤다. 2005년 남녀동등임원직임명법(FuPoG), 2017년의 임시고용법(AUG) 개정 등의 영향으로 다시 약간 늘었지만, 줄어드는 추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이를 되살리려는 독일 정부의 노력 또한 보이지 않는다.

◇제도의 폐해와 회피

반면 노동이사제 도입을 회피하는 사례는 증가 추세다. 2018년 노사 동수 노동이사제 도입 대상기업 945개사 중 32.5%인 307개사는 도입하지 않고 있다. 회피 방법은 유럽주식회사(SE)로 전환, 외국 법인으로 등록, 공동결정이 필요 없는 법인 형태 선택 등으로 다양하다. 독일의 경우 감독이사회 구성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고, 위반 시 주주·감사·노조 등이 법원에 제소해 시정을 요구할 수는 있으나, 위반에 대한 뚜렷한 처벌규정이 없어 제도를 축소 운영하거나 아예 운용하지 않는 근로자 2000명 이상 대규모 회사도 113개사나 된다.

이 같은 퇴조 추세는 무엇보다 이 제도가 기업의 경영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수많은 계량경제학적 연구 결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업에 도움되지 않는 제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기업인들의 판단이다.

경영학자들의 다양한 연구 결과를 보면, 노동이사제가 경영 위기 상황에서 노사 화합에 기여하는 장점은 있지만, 기업의 유연성과 혁신 저해, 외투 기업 투자 장애, 근로자와 경영자 간의 거래에 따른 주주 이익 침해 가능성, 감독이사회의 의사결정 지연에 따른 효율성 저하 등의 문제점을 보였다. 또 노동이사가 노조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해 기업 이익을 대변할 수 없다는 것,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족쇄가 된다는 점도 단점으로 거론된다. 많은 다른 이해관계자에 대한 역차별이 되기도 한다.

◇한국의 노동환경

독일 등 유럽의 노조 형태는 산별노조를 기본으로 하므로 직장 내 노조가 없다. 이에 비해 한국은 각 단위 기업별 노조가 결성되고, 노사협의회 설치가 의무화돼 있어서 개별 기업 노조가 사용자와 직접 교섭·소통·협력할 수 있으며 파업도 매우 자유롭다. 그러므로 독일과는 달리 근로자가 이사회에까지 진입해야 할 명분이 약하다. 한국 기업에는 감독이사회와 같은 것도 없다.

노동이사제가 공공부문에 일단 도입되면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민간부문으로 확산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재명 후보는 노동이사제의 민간 도입을 압박하고 있다. 대한민국 입법의 병폐 중 하나는 외국에서 예외적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확정하는 것이다. 감사위원 선임 시 ‘3% 룰’, 감사위원 1명 분리선임 등이 그런 경우다. 아무렇지도 않게 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

국회에 계류된 공운법 개정안들 가운데 특히 박주민 의원 안은 노동이사를 상임이사에 임명할 것을 요구한다. 유럽의 노동이사제가 근로자의 감독이사회 참여를 보장하는 것인데 비해, 노동이사가 경영까지 하라는 것은 노동계가 공기업을 접수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은 공공부문 개혁할 때

여당 의원들이 내놓은 법안들은 노동이사제를 우선 공공부문에 도입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지금 공공기관이 이런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을 때인지 의문이다. 2021년 기준 공공기관 수는 은행형 공공기관 3개를 제외하면 공기업 36개, 준정부기관 96개, 기타공공기관 218개로 총 350개다. 공공기관 부채는 2017년 495조1000억 원을 기록한 후 증가세로 전환돼 2020년 544조8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350개 공공기관 중 정부로부터 예산 또는 기금을 지원받는 기관은 304개로, ‘정부 총지출 대비 공공기관 정부지원 예산 비중’과 ‘공공기관 총수입 대비 정부지원 예산 비중’은 2019년 이후 증가 추세다. 공공기관의 정부지원 예산 의존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반면 공공기관의 수익성 악화에도 인건비와 복리후생비는 급증하고 있다. 공공기관 인건비는 지난해 29조3000억 원에 달했고, 복리후생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 경상운영비도 13조3000억 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0년 10월 현재 공공기관 이사회의 평균 인원은 10.7명으로 상임이사 2.5명, 비상임이사 8.2명이다. 한국 대기업 이사 수가 보통 5∼7명이며 아주 많은 경우 11명인 것보다 훨씬 많은 수치다. 이러고도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라는 선물까지 안기려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산업환경의 변화로 이미 유럽에서도 퇴조하고 있는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산업구조의 변화, 자본자유화, 글로벌 경쟁시대에 공공기관이라 해서 무사태평일 수는 없다. ‘경제는 정치’라는 이 후보의 말이 자꾸 떠오른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세줄 요약

노동이사제 모국의 동향 : 이 제도의 모국인 독일에서도 회피 경향이 뚜렷. 연구 결과 이 제도가 기업의 혁신과 투자,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떨어트리기 때문. 기업에 도움되지 않는 제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인식 강함.

한국의 노동환경 : 한국은 독일과 달리 기업별로 노조가 있고 노사협의회 설치가 의무화돼 있으며 노조가 사용자와 직접 교섭·소통·협력할 수 있음. 파업도 자유로움. 근로자가 이사회에까지 진입해야 할 명분이 약함.

지금은 공공부문 개혁할 때 : 한국 350개 공공기관의 부채 추이가 급증. 공공부문의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도 심각함. 급격한 산업환경의 변화로 이미 유럽에서도 퇴조하고 있는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시대착오.


■ 용어 설명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 멤버로서 발언권·의결권을 갖고 기관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제도. 독일에서 시작돼 유럽으로 전파됐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100대 국정과제로 제시.

‘한스 뵈클러 재단’은 독일노총(DGB)과 파트너십을 맺고 공동결정제도 대응, 연구 조사사업 등을 진행하는 재단. 명칭은 독일노총 초대 위원장인 한스 뵈클러로 부터 유래했으며 1977년 설립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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