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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고신용 고금리, 저신용 저금리의 함정
 
2021-04-23 09:47:51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신용 등급 높을수록 대출 이율 낮아지는데

문대통령 "구조적 모순"

저신용 대출 정책은 복지로 접근해야



최근 누리꾼들 간에 “고신용 고금리, 저신용 저금리”가 맞는지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그동안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는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다. 곧바로 발언이 취소되긴 했지만, 이 같은 표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당장 돈이 급한데 대출이 안 나와서 어려워하는 이들을 안타까워 할 수 있다. 빈곤층과 서민층을 도와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신용이 높은 사람에겐 낮은 이율, 신용이 낮은 사람에겐 높은 이율 적용이 모순이라면 그 반대가 옳다는 뜻이겠다. 그럼 신용이 높은 사람에겐 높은 이율(고신용 고금리), 신용이 낮은 사람에겐 낮은 이율(저신용 저금리)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대출조건이 저신용자에게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으니 신용이 높은 사람들까지도 낮은 이율을 적용받기 위해 신용점수를 낮추려고 애 쓸 것이다. 있는 돈과 재산을 감춰 신용등급을 가급적 아래로 낮출 것이다. 이미 신용이 낮은 사람들은 저금리에 따라 한도껏 돈을 빌릴 것이고, 갚는 일은 게을리 해 저신용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그래야 다음에도 낮은 이율로 돈을 더 빌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짜와 가짜 저신용자들이 넘쳐나면 은행들은 파산하거나 대출 자체를 중단할 것이다. 그럼 신용이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어느 누구도 제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없게 된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달려갈 것이다.


대부업자도 영업을 하는 만큼, 빌린 돈 잘 값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싶지, 잘 값지 못하는 자에게 돈 빌려주기 싫은 것이 당연하다. 저신용 고금리 고신용 저금리는 모순이 아니다. 구조적 모순도 아니다. 하이 리스크(저신용) 하이 리턴(고이율), 로우 리스크(고신용) 로우 리턴(저이율)은 금융시장의 원리이다. 통계적으로 저신용자 6명 중 5명은 갚지만 1명은 갚지 않는다고 하자. 갚지 않는 1명의 대출금을 저신용자 5명이서 부담하는 것이 고이률 구조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부업이 존속할 수 없다.


지금 2030세대가 연 3200% 폭탄금리가 적용되는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부업체에 2002년 66%에 달하던 법정 최고금리가 현재는 24%가 적용되고 있다. 그런데 값지 않는 돈(대손비용)이 총 대출금의 10%에 달하고, 자금 차입비용 5~6%, 관리비와 모집비용 7% 등을 계산하면 적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대부업체가 신규 대출영업을 중단하거나 폐업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기댈 곳 없는 청년층은 불법 사채시장의 마수(魔手)를 벗어날 수 없다. 정부는 올 7월부터 등록대부업체의 법정최고금리를 20%로 낮춘다고 한다. 이 경우 대부업계는 공멸하고 코로나 사태로 벼랑 끝에 선 젊은이들은 청춘을 저당잡힐 사채시장으로 가야 한다.


금리는 수학이고 통계고 확률이다. 금리는 가진 재산이 많다고 높은 세금을 매기는 세율이 아니다. 반드시 돈이 많다고 신용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인격과 성품, 노력의 결과 높은 신용을 유지하는 경우가 더 많다. 10년 무사고 운전자에게 보험료를 낮추고 매년 사고를 내는 사람에게 보험료를 높이는 것이 구조적 모순인가. 능력 있는 사람이 높은 임금을 받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이 구조적 모순인가. ‘고신용 고이율, 저신용 저이율’은 모든 인간의 노력을 우습게 만들므로 사람 사는 이치에 맞지 않다. 수학에서 구고현의 정리(勾股弦의定理), 물리학에서 열역학 제2 법칙을 아무도 모순이라 하지 않는다. 자연의 법칙이고 사물의 도리일 뿐이다.


저임금자도, 비정규직도, 무주택자도 그 처지가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최저임금 올렸고, 정규직으로 강제 전환했고, 투기를 잡는다며 대책들을 쏟아 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불러온 재앙적 효과, 집값과 전세값 폭등은 이미 경험했다. 이제는 저신용자가 불쌍하니 은행이 저이율로 대출해 주는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하는 것이 정의롭고 공정하고 평등할 것이라는 의미겠다. 논자들은 이에 대해 신용사회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발상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금융업이 복지제도가 아닌 이상, ‘고신용 고금리, 저신용 저금리’는 현실적 작동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절대로 신용사회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안심해도 좋다. 경제는 복잡계이다. 단순한 감성적, 1차원적 대응으로 경제를 잡으려 들면 정책 효과가 나타날 리 없고 부작용만 폭발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일수록 더 부담이 크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렇다고 이것을 시장을 통해 인위적ㆍ강제적으로 수정하려고 하면, 지금까지 했던 수많은 실패를 되풀이하게 될 뿐이다. 이것은 복지제도로 해결해야 한다. 이를테면 저소득자 스스로가 신용불량 상태에서 탈출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일정한도까지 지급보증을 해준다거나 이자 일부를 지원한다거나 해당 이자를 소득공제해주는 등, 시장이 아닌 복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은 구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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