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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도덕 지향의 이중성과 부작용
 
2020-10-15 13:31:12

◆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칼럼입니다.

 

요즘 널리 들먹여지는 신조어는 ‘내로남불’이다. 그 백미는 ‘조만대장경’(조국+팔만대장경)으로 불리는 기인의 어록인데, 말과 행동이 다른 공인이 부쩍 눈에 띈다. 자녀가 다닌 특목고를 폐지하려는 교육감, 아들이 자원 복무한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한 교수, 유학 중인 자녀도 먹는 미국 소고기 수입을 반대한 의원, 자신이 유죄 판결한 위장전입을 세 차례나 한 대법관은 그나마 낫다. 해외여행 자제를 당부해 온 장관 배우자의 유람차 출국도 약과다.

판사와 목수의 망치값은 같아야 한다던 개그맨이 초고액 강의료를 받는가 하면, 첫 성희롱 소송으로 이름을 날린 자치단체장은 ‘미투 의혹’으로 피소됐다. 생계를 위해 부득이 군사정권에 앞장섰다는 유력 인사는 어쩌면 훨씬 절박한 상황에 내몰렸을 친일 인사의 파묘를 외친다. 아들에게 증여한 아파트 전세금을 크게 올린 며칠 뒤 ‘전월세 인상 제한법’을 발의한 의원마저 있다.

철학자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는 서울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지한파다. 그는 저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한국인은 도덕 지향적이지만, 도덕적이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주자학 뿌리가 깊은 한국인은 이념과 도덕을 대변하는 절대 규범인 ‘리(理)’를 신봉한다. 현실과 욕망을 집약한 ‘기(氣)’와 대칭되는 ‘리’에 매달리다 보니 현실과 이념, 욕망과 도덕의 괴리가 커졌다. 자구책으로 우리는 그런 간극을 무시·회피하거나 심지어 합리화한다. 남의 언동은 도덕적으로 환원해 냉정하게 평가하지만, 자신이 그에 걸맞게 살아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심리학의 ‘인지 부조화’와 같은 이중성이다.

최진석 서강대 교수는 이런 이중성이 우리 스스로 근대를 헤쳐나가지 못한 종속성과 집단 사고에서 빚어졌다고 본다. 우리는 수입한 이론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한 번 수용한 신념을 고수한다. 누가 성리학을 더 철저히 지키고, 누가 더 정통인지만 따지면서 이념을 숭배한다. 자기 이념과 맞으면 선(善), 그렇지 않으면 악(惡)으로 치부하기에 현실과 이념의 틈이 벌어진 것이다. 도덕 지향성은 ‘위정척사(衛正斥邪)’ 류(流)의 교조적인 역사의식에도 투영돼 있다.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에 따르면 조선조-일제-대한민국으로 이어진 국체 변혁 과정의 불편한 진실은 분식·폄훼가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다. 특히 위선적인 도덕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가 어울려 파생된 적과 동지의 이분법으로 역사가 재단돼선 안 된다. 최진석 교수는 일제 강점기엔 동질감을 종족에서 찾아야 했지만, 이제는 종족-민족주의를 깨고 시민-민족주의로 거듭나자고 주창한다. 토착 왜구나 죽창가처럼 종족 편 가르기로 접근해선 나치나 홍위병이 발산했던 집단광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 민족끼리’와 ‘주체’ 그리고 인류 보편의 기준 대신 북한 시각으로 바라보자는 내재적 접근법에 대한 감상적 친밀감에도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나친 도덕 지향성은 허술한 입법과 설익은 정책에도 뚜렷이 드러난다. ‘김영란법’,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탈원전, 대학 강사 처우 개선, 분양가 및 전월세 상한제와 토지거래허가제 등이 본보기다. 설령 목표가 올바르더라도 과정이 거칠고 속도가 빠르다. 그로 인한 시행착오와 학습비용이 넘치고 되려 변화를 위한 준비와 적응을 해친다. 저항도 만만치 않아 정책 수명이 짧고 정권이 바뀌면 뒤집히기 일쑤다.

도덕 지향성이 강해서 ‘무엇’에 관한 명분과 총론은 무성한데, ‘어떻게’를 갈고닦는 경세방략(經世方略)과 각론은 드물다. 탁상공론은 난무하지만,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일머리는 빈약하다. 미국 정치평론가로 1977년 퓰리처상을 받은 조지 윌은 경세방략을 ‘영혼의 기예(soul-craft)’라고 불렀다. “신(神)은 세부사항에 있다”라고 한다. 무엇보다 빅뱅에 따르는 반작용, 가혹함과 불공정성을 경계해야 프랑스혁명 이후 상황과 같은 후폭풍을 줄일 수 있다.

도덕 지향성의 부작용은 ‘내로남불’이나 엉성한 정책의 남발에 그치지 않는다. 인사 검증이나 청문회의 잣대도 도덕성 일변도다. 엄격한 눈높이에 맞추려다 엉뚱한 곳에 불똥이 튀기도 한다. 예컨대 집값이 폭등하자 다주택자는 고위직에 오르기 어렵게 됐다. 하지만 모든 고위직이 성인군자가 될 순 없다. 가혹한 도덕 지향성은 자칫 편법과 위선만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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