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한수원 서로 주고받으며… 전력공급원서 신한울 배제
24일 전력정책심의회에선 이례적으로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와 민간 위원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정부가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한울 3·4호기 원전을 전력 공급원으로 넣지 않은 게 쟁점이었다.
25일 전력정책심의회 참석자들에 따르면, 전날 산업부 관계자는 “한수원은 지난 5월 14일 ‘신한울 3·4호기는 정부 정책 고려 시 불확실성이 있어 준공 일정 예상이 어렵다’고 보고했다”며 “현 시점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었다고 할 수 없으므로, 확정설비 제외가 타당하다”고 했다. 한수원이 신한울 3·4호기의 준공 날짜를 알 수 없다고 했으니 국가 에너지 공급 기본계획에서 신한울 3·4호기를 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정부, “한수원이 어렵다고 했다”
이에 원자력 전공 교수인 A위원은 “정부가 탈(脫)원전을 한다며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중단시켜 놓고 다시 이를 핑계 삼아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뺀다는 건 부당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막아 놓고 이 때문에 ‘완공 일자를 확정할 수 없다’는 한수원의 답변을 받은 후, 다시 이를 건설 재개를 막는 명분으로 삼는 ‘순환논리’를 펴고 있다는 취지다.
실제 신한울 3·4호기는 2017년 10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탈원전 로드맵에 따라 건설이 중단됐다. 하지만 정부는 다른 4기의 신규 원전을 백지화한 것과 달리 신한울 3·4호기에 대해선 별다른 행정조치를 하지 않고 보류 상태로 놔뒀다. 이미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데다, 토지 매입과 주(主)기기 사전(事前) 제작 등에 총 7900억원을 지출한 상태라, 취소할 경우 소송 등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7900억원 중 4927억원은 두산중공업이 주기기 사전 제작에 투입한 돈이다.
이 때문에 산업부는 신한울 3·4호기 건설과 관련해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고 한수원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정부가 명확한 결론을 보류한 상황에서 신한울 3·4호기는 내년 2월 말이면 발전사업 허가가 취소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전기사업법상 발전사업 허가를 취득한 지 4년 이내에 공사 계획 인가를 받지 못하면 발전사업 허가 취소 사유가 되는데, 그 기한이 내년 2월 26일까지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한울 3·4호기를 제외한 건 신한울 3·4호기를 회생 불능 상태로 몰아넣는 결과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이미 막대한 돈을 투입해 건설에 들어갔던 신한울 3·4호기를 정부와 한수원이 서로 핑퐁게임 하듯 백지화로 몰아가고 있다”며 “결국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이 엄중한 결정을 누가 내렸는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했다.
국내에 건설 예정인 최후의 원전인 신한울 3·4호기 건설 취소가 확정되면 고사(枯死) 상태에 놓인 한국 원전 산업 생태계도 회복 불가 상태로 가게 된다.
◇원전·석탄 줄이고 태양광·풍력·LNG 늘려… 전문가들 “전기요금 급등할 것”
정부가 24일 보고한 9차 계획은 원전과 석탄 발전 비중을 줄이고, 대신 LNG(액화천연가스) 발전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이는 지난 5월 9차전력수급기본계획 워킹그룹이 제시한 초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르면 2034년까지 가동 30년이 지난 석탄발전은 모두 폐지하게 된다. 신규 건설 예정인 석탄발전 7기를 고려하더라도 석탄 설비 용량은 2020년 34.7GW에서 2034년 29.0GW로 줄어든다. 폐지되는 석탄 30기 중 24기는 LNG로 전환한다. 같은 기간 LNG 설비 용량은 41.3GW에서 60.6GW로 늘어난다.
원전은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는 확대한다. 이에 따라 원전 설비용량은 2019년 24.7GW에서 2034년 19.4GW로 줄고,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19.3GW에서 78.1GW로 늘어날 전망이다. 전원별 설비 비중은 원전과 석탄을 합해 2020년 46.3%에서 2034년 24.8%로 거의 반 토막이 나는 반면에 신재생에너지는 15.1%에서 40.0%로 크게 확대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에서 선언한 ’2050년 탄소중립' 이행과 탈원전이 병행되면 전기료 급등으로 이어져 국가 경쟁력이 크게 훼손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탄소중립은 ‘배출한 만큼의 이산화탄소를 다시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온실가스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것으로, 선진국들도 국가 목표로 설정했다. 하지만 영국·프랑스·중국·일본 등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이 없고 저렴한 발전원(源)인 원전을 늘릴 계획을 잡고 있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중국·일본 등 경쟁국이 원전을 늘리는 와중에 우리만 원전을 없애면서 탄소중립을 하겠다는 건 한 발을 묶고 경주에 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원전을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하겠다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