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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사생결단 대결 정치 일상화…文정권, 민주주의 훼손하며 '문근혜'로 전락'
 
2020-12-15 10:50:54
<'한국정치 연구 권위자' 김형준 명지대 교수 인터뷰>

민주주의 3대 가치 '타협, 협조, 합의'정신 찾기 어려워

관용 사라지고 '권력남용' 횡행하며 정치혐오 극에 달해

'남의 상품 나쁘다며 자기 상품을 사라'는 무기력한 야당

대안도, 매력도, 참회도 없는 '금수저 보수'에 국민 외면

절대권력에 저항해 형성된 尹지지율 쉽게 흔들리지 않아

목숨 건 투쟁으로 정치 역량 강화한 YS, DJ 길로 갈 수도

문재인 정권이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되레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 헌법에도 근거가 없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설치하기 위해 실력 행사를 일삼고 국정원법 개정안,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등 우리 국민의 기본권을 훼손하는 입법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새 임대차보호법을 강행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부동산 지옥’을 만들더니 기업 규제 3법을 통과시킨 데 이어 기업 징벌 3법까지 강행하려 하고 있다.

집권 여당의 일방통행식 질주에 질린 민심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리얼미터가 지난 7일부터 닷새 동안 전국 유권자 2,5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2.0%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36.7%로 나타났다. 일주일 전보다 0.7%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취임 이후 최저치를 다시 경신했다. 그런데도 권력의 단맛에 취한 집권 세력의 오만과 독선은 꺾일 기미가 없다.

한국 정치 연구의 권위자인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정치학) 교수는 14일 마포구 공덕동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한국 정치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포용의 정치로 가는 게 아니라 배제의 정치로 치닫는 양상을 보인다”면서 “극단적인 진영 논리에 빠져 사생결단식 대결의 정치가 일상화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여야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데, 집권당은 무조건 정부를 지지하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면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일련의 입법 폭주에 대해선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닌 절차와 과정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라며 “민주주의의 이름을 내걸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민주 독재’이자 절대 권력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주인인 ‘문(文)주주의’로 치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요즘 한국 정치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혼돈(chaos)’이라는 단어로 집약된다. 1950년대 주한미국대사관 외교관으로 근무한 뒤 학자로 변신한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 정치를 ‘소용돌이(vortex) 정치’로 규정했다. 한 번 바람이 일면 강한 구심력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현상에 한국 정치를 빗댔다. 외국인이 봤을 때도 극단·진영 논리와 편 가르기, 쏠림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 뒤 한국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뤘지만 ‘소용돌이 정치’는 갈수록 강화되는 양상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는 말인가.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을 쓴 사뮤엘 헌팅턴 교수는 어느 나라든 민주적 정권 교체가 평화적으로 두 번 이뤄지면 민주주의 국가라고 규정했다. 우리나라는 1987년 이후 3번이나 정권이 교체된 만큼 민주주의 토양을 확보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를 공고화해 성숙한 민주주의로 넘어가야 하는데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실질적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려면 타협(Compromise), 협조(Cooperation), 합의(Consensus)의 ‘3C 정치’가 필요하다. 3C가 잘 이뤄진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역동적 정치가 이뤄진다. 반면 3P 정치로 치달으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한다. 포퓰리즘(Populism), 양극화(Polarization), 힘에만 의존(Power-oriented) 등의 추악한 ‘3P 정치’가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걸림돌이다. 우리 사회는 ‘진보 대 보수’, ‘영남 대 호남’, ‘개혁 대 반개혁’ 등 극단적인 진영 논리에 빠져 사생결단식 대결의 정치가 일상화됐다.

민주주의 요체인 '상호존중'과 '제도적 자제' 훼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다수결 원칙에 따른다고 주장하는데.

△우리나라의 권력 구조 운영 형태는 매우 기형적이다. 내각제적으로 대통령제를 운영한다. 집권당은 무조건 정부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같은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수결 원칙(majority rule)’은 작동하는 반면 소수자 권리 보호는 무시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다수결 원칙만 신성시하는 경향이 짙은데 잘못하면 독단·독재로 갈 수 있다.

-미국에선 소수자의 권리 보호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미국 연방 헌법을 만들 때 강조했던 것이 바로 ‘소수자 권리 보호’다. 강력한 연방 제도를 마련해야 효율적 정부를 만들 수 있는데, 핵심은 소수자를 배려하고 작은 주들도 함께 갈 수 있는 토양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미국 상원의 경우 주의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주가 똑같이 2명의 상원의원을 두도록 한 제도다. 작은 주들이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게 함으로써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통합을 말하면서 특정 소수자를 배제하고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인정하는 민주적 규범을 일컫는다. 즉 ‘관용’이다. 관용은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상대방의 역할과 기능을 인정하는 데 있다. 여당은 야당의 존재를 인정하고, 야당은 여당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관용이 생기고 민주주의도 발전한다. 제도적 자제는 ‘합법적 권한이라 할지라도 정치인은 주어진 권한을 무리하게 활용해 제도의 안정성을 흔들어선 안 된다’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다. 따라서 ‘권력 남용’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 두 요소는 민주주의를 일탈로부터 보호하는 ‘규범의 가드레일’이자 민주주의가 운영될 수 있게 하는 ‘윤활유’다. 윤활유는 없고 형식에만 매몰되다 보니까 정권은 교체됐지만 한국 정치에서 일어나는 메커니즘은 수십 년 전이나 마찬가지다. 역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혼돈 상황이다.

-민주주의가 매우 불완전한 제도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렇다. 민주주의는 불완전한 제도다. 보다 완전한 것을 향해 나아가는 중인데 인간은 사악하고 이기적이며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을 해야 한다. 나 하나만 옳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관용은 무조건 베푸는 게 아니므로 상대방의 가치와 기능을 인정해야 진정한 의미의 관용이 나올 수 있다.

절차 무시된 결과는 '민주' 이름으로 민주주의 파괴하는 행위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등 입법 과정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닌 절차와 과정이 아름다워야 성취되는 것이다. 국회 상임위에서 법안이 처리되는 과정만 봐도 대체토론, 소위 심사보고, 축조심사, 찬반 토론 등 모든 절차와 과정이 무시됐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편의주의적 원칙을 내세웠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원칙은 지키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안 지켜도 된다는 편의적 발상에 불과하다. ‘내로남불’이라고 하지만 내가 봤을 땐 ‘위선’이다. 절차와 과정이 무시된 결과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다.

-40%대였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30% 후반대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례를 보자. 집권 1년차 2·4분기 83%를 기록했던 YS 지지율은 4년차 4·4분기에 20%대로 내려앉더니 5년차 4·4분기에는 한자릿수인 6%로 수직 낙하했다. 결정적 계기는 집권 4년차인 1996년 12월의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파동이었다. 1996년 12월 26일 새벽 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 155명이 한강 둔치에 몰래 모여 버스를 타고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갔다. 의장 공관에서 야당 의원들에게 잡혀 있던 국회의장 대신 국회 부의장이 사회를 봤고, 여당 단독 기립 표결로 법안들이 통과됐다. 정부에 대한 불만이 이를 계기로 폭발하면서 YS 정부는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지금도 비슷한 양상으로 가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윤석열 검찰총장 갈등 직전 한국갤럽이 발표한 문 대통령 지지율은 45%가량이었다. 4년차 2·4분기 문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높았다. 하지만 최근 문 대통령 지지율은 급락하고 있다. 집권 3년 6개월이 지나고 나면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데 얼마나 빠르고 강하게 오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공수처법 개정안 강행 처리가 민심 악화에 불을 붙인 격 아닌가.

△여권이 권력기관 개혁을 얘기하면서 반개혁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은 매우 모순적이다. 검찰 개혁의 정당성을 인정 받으려면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함께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권은 검찰의 독립성은 뒷전으로 돌리고 민주적 통제만 강조한다. 민주적 통제를 위해 검찰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고 상징적 행위가 공수처 출범이라면 공수처도 통제해야 한다. 당초 여당은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비토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는데 거부권마저 제거했다. 검찰에 대해 민주적 통제를 얘기하면서 공수처에 대해 민주적 통제를 하지 않는다면 상호 모순이자 자기 부정이다. 결국 다른 목적이 있다는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상당수 국민들이 공수처가 현 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 이유다.

24번에 걸친 부동산 대책은 정책적 무능 드러내는 것

-여당 내에서도 소신파가 있긴 하지만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1955년에 쓴 책 ‘용기 있는 사람들’은 위대한 역대 상원의원 8명을 다뤘다. 책임과 용기를 가진 이들이 당파나 개인의 이익이 아닌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했기 때문에 미국의 의회민주주의가 성숙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금태섭 전 의원이 용기 있게 말했다가 민주당에서 쫓겨난 일이나 박용진·조응천 의원 등이 소신을 밝히면 ‘대깨문’의 공격을 받는 것을 보면 참담할 따름이다. 헌법 제46조에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 국회법 제114조에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적혀 있다. 왜 국회선진화법을 지키자고 하면서 헌법과 국회법에 규정된 자율 투표 원칙을 지키지 않는가. 자율성이 없는 국회는 영혼이 없는 국회나 마찬가지다. 물론 미국에서도 각 정당마다 당론이란 게 있지만 권고적 당론일 뿐 강제적 당론은 아니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얘기다. 결국 여당 의원들이 청와대를 견제해야 하는데 절대 권력인 대통령에게 어느 누구도 쓴소리를 하지 않으니 ‘문주주의’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게 아닌가. 또 검찰에 대해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대통령은 왜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는가. 더 큰 권력을 갖고 있는 대통령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왜 얘기하지 않나. 이건 엄청난 자기 모순이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우리와 어떤 점에서 다른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새로운 정부 형태로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그런데 이들은 최초로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 인간은 사악하고 이기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다고 봤다. 이런 속성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됐을 때 권력을 사유화하고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을 집중 연구했다. 대통령제가 성공하기 위한 제1의 원칙으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채택했다. 이런 맥락에서 의회가 예산 편성권을 갖고, 입법권을 독점하며, 감사원을 의회에 두고, 대통령이 임명한 모든 고위직 인사에 대해 인준할 때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에서 각각 표결하도록 명시했다. 반면 대통령에게는 법안 제출권도 없다. 지방정부가 연방정부에 예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권한을 행사하도록 했다. 즉 입법, 예산, 인사, 지방 분권을 통해 대통령의 권력을 이중삼중으로 견제하도록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어떤가. 정부가 예산 편성권과 법안 제출권을 갖고 있고, 감사원은 정부에 예속돼 있다. 대통령이 검찰·국세청·감사원 등 권력 기관 수장에 대한 인사권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 한마디로 예산권, 검찰권, 인사권을 장악한 대통령은 형식적인 견제만 받을 뿐 왕처럼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한은 미국 대통령보다 더 강력하다. 출범하면서 ‘촛불 정권’이라고 불렸던 문재인 정권이 박근혜 정권을 닮아가고 있다. 유사한 통치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향하는 가치나 이념이 박근혜 대통령과 다르지만 통치 스타일은 거의 같다. 그러니 ‘문근혜’의 길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실정에서 보듯이 정책적으로 무능하고 아마추어 같다는 것도 문제인데.

△바둑으로 따지면 9급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자기들은 9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더 기가 막힌다. 실력이 부족하면 좋은 참모를 써야 한다. 사실 코드 인사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미국도 코드 인사를 활용한다. 하지만 최소한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과 실력을 갖춘 사람을 기용해야 하는데 실력도 경험도 없는 사람을 쓰니까 나라가 망가지는 것이다. 단적으로 스물네 번의 부동산 정책을 내놨다는 것은 실력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아닌가. 정책적 무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위선과 무능, 독선과 오만, 선동과 배제로 국정을 끌고 가려고 하니까 국민들이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민심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징후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미국의 경우 모든 대통령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일관성 있는 여론조사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항목이 ‘미국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이다. 트럼프가 이번 재선에서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경제 정책은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미국이 올바른 사회로 가고 있지 않다는 국민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선 한국리서치가 2주마다 실시하는 여론조사에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묻는 항목이 있다. 지난 7월 초부터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11월 마지막 주 실시해 최근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부정 평가가 50%에 달하고 긍정 평가가 37%로 격차가 13%포인트나 벌어졌다. 대통령 지지도에 대한 선행지표라는 점에서 주목해봐야 할 중요한 변화다.

-문 대통령이 당초 기대와 달리 ‘불통’ 리더십을 지니고 있고 폐쇄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추-윤 갈등 정국에서 문 대통령이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는 스스로 리더십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리처드 E 뉴스타트는 ‘대통령의 권력’이라는 책에서 “대통령의 힘은 설득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간결하고 명쾌하며 정곡을 찌르는 메시지는 설득의 요체가 될 수 있다. 검찰이 집단 반발하는데 “모든 공직자는 집단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받들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공허할 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검사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야 울림이 생기는 법이다. 대통령의 침묵은 설득의 적이고, 불통보다 더 나쁘다.

-문 대통령이 최근 민주주의를 여러 차례 언급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민주주의가 아니라 ‘문주주의’를 말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이 지켜졌는지 강한 의구심이 생긴다. ‘대통령의 위기’라는 책을 쓴 크리스 윌리스는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부터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16명 대통령의 통찰력과 결단력을 분석했다. 핵심은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그때그때 일어나는 일만 처리하려고 하는 ‘거래적 리더십’에 머물러 있다. 국민들이 봤을 때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한국리서치의 ‘여론 속의 여론’을 보면 2019년 이후 문재인 정부의 16개 핵심 정책(일자리, 부동산, 고령화, 보건의료, 복지분배, 교육 등)에 대한 긍정 평가 중 단 하나도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보다 높게 나오지 않는다. 구체적 정책에 대한 지지율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보다 밑으로 나온다는 것은 대통령 지지율이 단순 지지도일 뿐 정책 지지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정책적으로 무능하다는 얘기다. 단순히 대통령 지지도가 몇 퍼센트인지에 빠져 ‘오기의 정치’를 지속하면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3년 6개월 지나면 레임덕...얼마나 빨리 오느냐 관건

-문재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닮은꼴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미국의 정치 전문가들은 “대통령을 연구할 때 대통령의 인지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어떠한 성장 과정을 거쳤는가가 무척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문 대통령에게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던 것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정치는 소통하는 것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말수도 적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두 번째는 명확한 자기의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문 대통령은) 참모들이 올려주는 대로 읽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정책을 설명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능력이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와 다른 게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와 닮은꼴은 또 있다. 끊임없이 정책 어젠다를 바꾼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를 보면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집권했다. 별안간 ‘창조 경제’를 들고 나오더니 ‘통일은 대박’ ‘경제 혁신 3개년 계획’ ‘공공 개혁’을 얘기했다. 5년 단임 대통령이 3년 6개월 사이에 핵심적 어젠다를 5개씩 갖고 있으면 그건 결국 부동산 정책 24번 내놓을 것이랑 다른 게 무엇인가. 문 대통령도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집권 초기에 소득주도성장을 얘기하더니 갑자기 포용적 혁신국가를 들고 나오더니 별안간 평화경제를 얘기한다. 최근엔 한국형 뉴딜까지 나왔다. 패턴이 똑같다. 결국 각각의 정책적 사안에 대해 대통령의 이해도나 철학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비박(非朴)’ 세력이라도 있었는데 지금 정부는 당내 견제 세력도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실수를 반복해도 제어가 안 되는 최악의 환경이다. ‘대통령은 무조건 옳다’ ‘대통령은 무오류다’ 식의 인식을 여당에서 갖고 있으니 정책에 대한 반성과 수정이 있을 리 없다. 국가 운영이 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조차 없이 선거 치르듯이 통치를 하고 있다. 내 편과 네 편을 나누고 선과 악의 개념으로 구분해 끊임없이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상징 조작 등이 먹히며 대다수 국민들이 문 대통령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제임스 데이비스가 제시한 ‘J-커브 이론’처럼 당초 기대했던 것과 현실 사이에 인내할 수 있는 격차를 넘어서며 민심이 폭발하는 형태로 가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 차이가 20%포인트를 넘는다는 사실은 단순히 추-윤 갈등 때문이 아니다. 이건 촉발 요인일 뿐이고 기저 요인은 따로 있다고 봐야 한다. 바로 ‘문재인 정부는 정책적으로 무능하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것들이 누적되면서 정부에 대한 기대는 사라지고 콘크리트 지지율이었던 40%마저 무너지게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다른 지도자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아쉽다.

△노 전 대통령은 훨씬 유능하고 책임감이 있는 정치 지도자였다. 자신을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하면서 필요하면 당론이 아닌 국익을 우선한 정책을 추진했다. 또 야당과 협치하고 양보하는 통 큰 리더의 모습도 보여줬다. 2005년 12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53일간 사립학교법에 반대하는 장외 투쟁에 나섰을 때다. 여야 간 극한 대결 양상으로 치닫던 2006년 4월 노 전 대통령이 당시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불렀다. 이 전 원내대표가 가보니까 그 자리에 김한길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와 있었는데, 노 전 대통령이 김 전 원내대표에게 “대표님! 이번에는 우리가 양보합시다”라고 말해 물꼬를 텄다. 이런 게 바로 타협의 정치이고 관용의 정치다.


'오픈 프라이머리' 흥행몰이로 인물난 극복해야


-무기력한 야당도 문제 아닌가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지난 4월 총선에서 103석에 그치는 궤멸적 참패를 당했다. 이는 보수 정당 사상 가장 적은 의석수라고 할 수 있다. 야당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4연속 패배를 당했다. 일각에선 ‘진보 우위의 정당 체제’가 구축됐고, ‘민주당 집권 30년’도 가능하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총선 후 메트릭스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4월 22∼23일)에서 무려 73%가 미래통합당에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그 만큼의 반사이익을 더불어민주당이 가져갔다는 뜻이다. 야당이 싫은 이유에 대해선 가장 많은 22.4%가 ‘인물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라고 대답했다. 엄밀히 말하면 야당에 참회가 없다는 것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이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친박’이 대오각성을 해야 하는데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국민들이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최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의 과오를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소신을 드러내자 당이 찬반 논란에 휩싸였는데.

△2007년 대선에서 여당이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500만 표 이상 뒤처진 대패를 당했을 때 안희정 당시 참여정부 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은 12월 26일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을 통해 친노 세력을 ‘폐족(廢族)’이라고 표현했다. ‘폐족’은 조상이 큰 죄를 지어서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는 족속을 일컫는데 스스로 ‘폐족’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이들은 정권을 잡게 됐다. 대통령 탄핵 상황까지 맞은 친박들도 당연히 ‘친박 폐족 선언’을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참회는커녕 뻔뻔하게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격이다. 그러니 국민들이 봤을 때 이들은 ‘금수저 보수’일 뿐이다. 이들에겐 치열함이 없다. 과거에도 결정적 순간에 권력 앞에서 무릎을 꿇는 비겁한 행태를 일삼았다. 전략도 없고 어젠다도 없고 참회도 없는 무능력한 야당일 뿐이다. 상품을 사고 싶은데,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단순히 저 상품이 나쁘니 내 상품을 사라고 떼쓰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러니 윤석열 검찰총장 한 사람이 뜨니까 지리멸렬하고, 진중권 교수의 페이스북 메시지가 103석 의석보다 강력한 게 아닌가. 보수 야당에 메시지가 있다고 해도 메신저(인물)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무기력한 야당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2022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가 힘들 것으로 보는가.

△단순히 정당 지지율로 보는 것은 의미가 크지 않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제1야당인 국민의힘 지지율이 20%를 살짝 넘긴 수준인데 그게 정상이다. 2016년 탄핵 정국 이전까지 문재인 후보가 차기 주자 선호도에서 선두권이었지만, 민주당 지지율은 지금의 국민의힘처럼 20%대 박스권에서 수년간 머물렀다. 하지만 지금 야당에서 언급되는 차기 대선 후보는 올드보이 일색이다. 새로운 인물이 거의 없다. 보수 야당에서 새로운 인물이 부각되는 데 정권 교체 후 10년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정권 교체 10년 주기설이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차기 대선에서 범여권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가.

△나는 그렇게 본다.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보수 진영에서 새 인물이 부상할 절대적인 시간이 너무 짧다. 두 번째 2022년 대선에서 여당의 캐치프레이즈를 예상한다면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일하는 대통령을 원하십니까, 일하지 못하는 대통령을 원하십니까’. 범여권이 180석가량 갖고 있어서 새 대통령이 온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의회에 발목 잡혀 2년을 허송세월할 것이다. 세 번째는 유권자 지형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유권자 지형 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는가.

△2012년 12월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51.6%를 얻었고 문재인 후보는 48.0%를 얻었다. 3.6%포인트 차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당시 2040대 5060의 지형이 형성된 마지막 선거였다는 것이다. 당시 50대의 투표율이 무려 82%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64%가량이 박근혜 후보를 찍은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은 각각 68%, 70%에 불과했다. 2016년 이후 4번의 선거에서 야당이 패배한 이유는 2040대 5060의 유권자 대결 구도가 2050대 6070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1960년부터 1969년생은 386그룹인데 1960년생이 올해 60세가 됐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보수 야당이 승리하기는 어렵지 않나.

△전반적으로 여당에 유리한 구조인 건 맞다. 3040의 표는 거의 못 찾아온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최근 추이를 보면 20대가 흔들린다. 이들은 이념적으로 진보가 아니다. ‘이남자(20대 남자)’층의 대통령 지지율은 30%에 못 미친다. 그나마 ‘이여자(20대 여자)’가 버텨줬는데 고용 대란과 여권 인사들의 잇따른 성추문 등으로 이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다 부동산 실정으로 집값은 물론 전월셋값까지 급등하면서 30대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50대의 경우 엄밀하게 따지면 이중적 인지 구조를 갖고 있다. 386세대에 속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연령 효과와 세대 효과가 중첩된 양상이다. 그런데 지난 4월 총선 당시 2050대 6070의 구도가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는 현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 표 차이로 지더라도 결국 지는 것이다. 지역구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49.9%, 미래통합당 41.5%였다. 개별 선거구로 보면 그렇게 많은 표차로 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압도적으로 패배한 이유는 소선거구제이기 때문이다. 양당의 비례대표 득표율도 33.84%(미래한국당)대 33.35%(더불어시민당)였다. 거의 차이가 없었다. 지금도 선거를 치르면 범여권과 범야권이 붙으면 52대 48이다. 20대와 50대에서 유권자 지형 구조가 바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새로운 관심도 불러 일으키고, ‘대깨문’이 아니라 새로운(New) 것을 계속 추구한다는 의미의 ‘대깨뉴’가 나와야 한다.

-야당이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미국식의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 경선제)를 통해 흥행을 일으켜야 한다. 단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율 1%부터 시작해서 미국 대통령이 됐다. 안철수든 황교안이든 유승민이든 다 들어오고 심지어 김종인도 나오라는 거다. 여기에 윤석열도 나오면 된다. 그러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국민 참여 경선에서 승리한 것처럼 일종의 혁신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인물을 배출할 수 있다. 그게 바로 김 비대위원장의 역할인데 자꾸 ‘뺄셈 정치’를 하는 게 문제다. 쟤는 안되고 얘는 안 되고 하는 식으로 배제의 정치를 하지 말고 ‘덧셈 정치’를 해야 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문을 활짝 열어 열린 경쟁 구도 속에서 단일 후보를 배출해야 한다. 새로운 후보들을 대거 참여시키고 국민의힘은 발전적 해체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로선 백약이 무효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선두로 올라섰다. 윤 총장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여권이 이렇게까지 검찰총장 찍어내기에 혈안이 안 됐으면 윤 총장도 자신의 본분에만 충실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내걸고 법치와 민주주의를 흔들어대니 윤 총장 입장에서는 시대적 소명 의식을 갖게 됐을 것이다. 권력이 핍박할수록 역설적이게도 윤 총장은 엄청난 정치적 맷집을 키우게 된 셈이다. 절대 권력이 칼을 겨누고 죽이려고 하니까 조직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윤 총장을 지지하는 것은 그의 일관성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일관성을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로 인식하는데,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을 하고 권력에 저항하니까 그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윤 총장 지지율은 스스로 만든 지지율이라는 사실이다. 최고 권력자의 후광에 기대 만들어진 지지율은 허상일 뿐이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지지율은 견고하다. 유력 대선주자인 이낙연 대표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으나 이재명 경기지사의 지지율이 견고하게 유지되는 건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한국 정치사를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국민은 절대 권력에 항거하고 투쟁한 사람에게 그에 합당한 지지를 보내왔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이 그러한 궤적을 그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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