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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대통령의 위험한 북핵관
 
2026-10-01 09:32:47

Hansun issue & focus 10월호 


<대통령의 위험한 북핵관>

이인배 한반도미래포럼 수석연구위원



북핵 문제의 해법 보따리를 푼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는 국면에서 대통령은 추석 연휴까지 반납하고 외교 행보를 이어갔다. 9월 초순 프랑스 방문에 이어 뉴욕과 멕시코를 방문하는 두 번째 미주 일정이다. (7월에는 샌프란시스코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방문이 있었다)


순방 시작과 함께 미국 AP통신 및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를 잇달아 공개하며 여론을 환기했고, 취임 후 두 번째 유엔총회 연단에 섰다. 언론에서는 이를 ‘기조연설(Keynote Speech)’로 명명하는 경향이 있으나, 유엔의 공식 명칭은 ‘일반토의(General Debate)’다. 이 대통령이 연단에 오른 당일 오전에는 브라질, 미국, 요르단 등 15개국이, 오후에는 몽골, 한국, 수리남, 시에라리온 등 18개국 정상이 연설을 진행했다. 사흘간 100여 개국 정상급 인사가 참여하는 다자외교 일정 가운데, 당일 저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30분간의 단독 회담이 성사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외교 일정을 통해 대통령은 구상 중인 북핵 해법의 방향성을 국제사회와 국내에 공개했다. 지난해 8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한반도 평화 정착과 비핵화 협력’을 선언한 이후 북한 조선중앙통신으로부터 “비핵화 망상증에 걸린 위선자의 정체가 탄로 났다”는 강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후 대북 메시지 발신을 자제하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의 공조를 통한 대화 재개에 집중해 온 과정 끝에 도출된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이미 파산 선고를 받은 해법의 재포장

 

이번 뉴욕 방문에서 공개된 대통령의 북핵 해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래의 핵에 대한 보상으로 현재의 현금을 쥐여주자’는 계산법이다. 이 대통령의 생각을 따라가 보자. 외신 인터뷰에서 단연 귀를 의심케 한 대목은 “별 효과도 없는 대북 제재와 북한의 추가 핵무기 및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중단을 맞바꾸는 것은 상당한 가치가 있다”는 발언이다. 우크라이나 파병으로 쏠쏠한 군사·경제적 실리를 챙기고 시진핑의 방북으로 북·중 관계까지 복원했으니, 이제 국제사회의 제재 따위로는 북한의 콧대를 꺾을 수 없다고 대통령은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떴다. 북한이 자국 생존에 충분한 핵과 미사일을 확보했다고 판단하면 외화벌이를 위해 이를 해외로 밀수출하려는 유혹에 빠질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진정 위험천만한 순간”이라는 경고까지 덧붙였다. 언뜻 들으면 정교한 분석 같지만, 이는 미국 워싱턴 조야의 비확산론자들에게 입맛 다시게 하는 논리다. 미국의 비확산론자들은 미국의 안보이익의 핵심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핵무기와 기술이 확산하는 것으로 본다. 이는 NPT 체제를 유지해야 할 미국의 이익에는 부합할 수 있으나, 우리의 북핵 안보 위협에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각이다.

 

결국 대통령의 구상은 현실론이라는 미명 아래 북핵 능력의 양적 팽창을 멈춰 세우는 ‘현상 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제재를 풀어 숨통을 틔워주고 북한을 달래가며 종국에는 비핵화로 가자는 청사진이다. 이를 위해 1단계 미·북 회담, 2단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 회담, 나아가 동북아 다자회담(6자 회담)으로 이어지는 거창한 다단계 로드맵도 띄웠다.

 

하지만 기시감이 너무 짙다. 1990년대 북핵 위기 발발 이래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를 시작해서 제네바 미북 기본합의, 6번의 본회담을 가졌지만, 합의 없이 막을 내린 4자 회담, 9.19 공동성명(2005년), 2.13 합의(2007년)까지 이뤄졌다. 결국 북핵의 검증 사찰의 문을 넘지 못한 6자 회담까지 다양한 협상 방식을 동원해 온갖 서명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2026년 오늘날 우리 머리 위에 얹힌 것은 북한의 실전 핵탄두뿐이다. 실패로 검증이 끝난 낡은 각본을 표지만 갈아 끼운 채 다시 명약이라 우기는 격이다.

 

북핵 인정이라는 독배, 돌아오는 것은 ‘한국 패싱’

 

“우리의 추정에 따르면 북한은 매년 10~20개의 핵무기를 추가로 생산할 능력을 갖췄거나 이미 생산하고 있을 수 있다.”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양산 능력을 이렇게 공식 석상에서 공인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북핵 위협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경고라지만, 뒤집어 보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앞장서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고 들어가는 위험천만한 자충수다.

 

한미일 외교장관이 ‘완전한 비핵화’라는 원칙을 재확인한 지 불과 이틀 만에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백년, 천년이 지나도 절대 불변할 핵보유 의지”를 표명하며 찬물을 끼얹었다. 이미 북한은 헌법 제56조에 ‘핵보유국으로서 나라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담보한다’고 대못을 박아둔 터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손에 쥐고 있는 핵을 우리가 부정한다고 사라지느냐, 현실을 보라”고 되묻는다. 일견 그럴싸하게 들리는 현실론이다. 그러나 안보와 외교는 엄연히 다른 층위다. 군사 안보의 제1원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대비(Worst Case Approach)다. 북한의 실질적 핵 위협을 상수(常數)로 놓고 우리 군의 방어망과 억제력을 구축하는 것은 군사적 당연지사다. 그러나 외교적 영역은 정반대다.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공인하는 순간, 수십 년간 촘촘히 엮어온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감시망은 단숨에 명분을 잃고 와해된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운신의 폭을 없애는 꼴이 된다.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면 남북 간 군사 안보 대화는 그 즉시 종 칠 수밖에 없다. 평양은 코웃음을 치며 “이 문제는 핵보유국끼리 담판 지을 일이니 비핵국가 대한민국은 저만치 빠지라”고 문을 걸어 잠글 것이다. 자국의 명줄이 걸린 안보 협상에서 정작 당사자가 문전박대 당하는 뼈아픈 굴욕, 즉 자가당착(自家撞着)의 외교 참사가 벌어지게 된다. 외교 테이블에서 북핵을 결코 공식화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북핵 동결을 명분으로 그들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려고 한다. 그리고 핵 물질과 기술의 외부 유출을 막는 것이 급선무라 역설한다.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은 외면하고 먼 이웃의 화재 예방에만 골몰하는 셈이다. 북한이 수십 년간 떼를 쓰며 요구해 온 ‘핵보유국 몸값 인정’을 우리 손으로 상납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다.


ICBM은 미국에 대한 위협, SRBM은 대한민국의 위협

 

또 한가지 우려가 되는 부분은 대통령의 구상에서 북한이 포기해야 할 항목으로 ICBM을 정확하게 거론한 점이다. ‘아직 실증되지 않은 북한의 미래 핵능력과 미국 본토를 겨냥할 ICBM 개발 중단’을, ‘현재 북한의 목을 죄고 있는 대북 경제 제재 해제’라는 알짜배기 실탄과 맞바꾸자는 것이다.

 

정부가 억제하고자 하는 사거리 10,000km 이상의 ICBM(화성-14형~19형)은 아직 정상 각도 발사나 대기권 재진입 등 핵심 기술의 완전성을 실증하지 못한 단계다. 미완성된 무기 체계의 개발 중단을 대가로, 현재 북한에 실질적인 압박으로 작용하는 경제 제재라는 핵심 지렛대를 해제하는 것은 전략적 불균형을 초래한다.

 

더 뼈아픈 문제는 이것이 다름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1기 재임 당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도발에 대해 “남들도 다 하는 통상적 시험”이라며 눈을 감았다. 태평양 건너 미국이야 태평양을 건너올 ICBM이 공포겠지만, 서울과 한반도 전역을 사정권에 둔 수백 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과 방사포는 우리 국민 5천만 명의 목숨을 정조준하고 있는 실존적 칼날이다. 올해만 해도 북한이 감행한 13차례의 미사일 도발은 모조리 우리 영토를 유효 사거리에 둔 단거리 발사체였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협상안에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단거리 핵 투하 수단에 대해서는 아무런 안전장치도 결여되어 있다. 이는 미국의 안보 우려만을 대변한 결과로 평가되며, 미북 대화 재개를 위해 국가 안보의 핵심 요소를 양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중단을 증명할 방법은 있는가?

 

대통령은 “지금 비핵화를 목표로 잡으면 아무것도 손에 쥘 수 없다”며 핵 폐기가 아닌 ‘중단(stop)’을 요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시계열로 쪼개어 보자. 먼저 ‘과거핵’은 이른바 북한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핵물질이다. 그리고 ‘현재핵’은 북한이 현재 가동하며 만들고 있는 핵무기와 무기급 핵물질이다. 끝으로 ‘미래핵’은 더 크고 강력한 위력으로 증강될 잠재적 북한의 핵무기 특히 ICBM 그리고 향후 생산할 무기급 핵물질을 의미한다.

 

대통령이 언급한 ‘중단’이란 결국 무기급 핵물질 제조를 멈추고 추가 핵실험과 ICBM 기술 진전을 보류하는 미래핵의 포기를 의미한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중단을 도대체 어떻게 검증해 낼 것인가?

 

상대의 중단을 확인하려면 현재 북한이 쥐고 있는 핵무기 수량, 고농축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재고, 미사일 기술 수준을 정확한 장부로 확인하는 ‘신고’와 ‘사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출발점의 눈금을 알아야 바늘이 멈췄는지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30년 북핵 외교사에서 협상이 원점으로 회귀하고 파탄 났던 결정적 뇌관이었다. 북한은 단 한 번도 과거핵에 대한 정밀 사찰을 허용한 적이 없으며, 국제사회가 이를 파고들 때마다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와 무력 도발로 판을 엎어버렸다. 임시방편적인 동결 약속에 의존하여 사찰 전 제재 해제를 단행하는 것은 협상의 원칙을 역행하는 것이다. ‘동결(Freeze)’ 대신 ‘중단(Stop)’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검증의 필요성이 면제되지는 않는다. 투명한 사찰 없이 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평화적 해결의 안전장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다. 실존하는 과거나 현재의 위협을 유지한 채 미래의 불확실한 핵 능력을 협상 카드로 활용하여 실물 보상을 얻어내는 것은 전형적인 ‘살라미 전술’이다. 이러한 협상 행태에 선제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심각한 전략적 오류다.

 

미북정상회담에 이렇게 올인할 일인가?

 

뉴욕을 찾은 이 대통령은 어렵사리 트럼프 대통령과 30분간 마주 앉았다. 일반토의 후 리셉션장 인근에 마련된 별도 공간에서 열린 ‘번개 미팅’이었다. 우리 대통령이 준비해 간 현안 보따리를 부지런히 풀어놓았으나, 트럼프 측에서는 이렇다 할 전략적 호응이나 알맹이 있는 답변이 돌아오지 않은 채 그저 의례적인 경청으로 마무리된 모양새다. 회담 전 정교한 의제 조율 조차 없었으니 당연히 예견된 겉핥기였다. 오히려 트럼프 특유의 화법대로 “나는 김정은과 유례없이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자화자찬만 메아리쳤을 뿐이다. 미북정상회담과 관련해서는 며칠 전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미국 측이 “미·북 대화와 관련해 진전된 것은 전혀 없다”고 확인했던 선을 그었던 기류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트럼프의 머릿속은 다른 곳에 가 있다. 11월 중간선거의 승패와 무관하게 연말부터 미국 정계의 스포트라이트는 차기 대권 주자들의 지지율 각축전으로 쏠리게 되어 있다. 조기 레임덕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가운데, 트럼프에게 필요한 것은 미국의 안보를 근본적으로 지켜낼 정교한 비핵화 로드맵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번쩍 과시할 ‘화려한 쇼’다. 중간선거 이후 김정은과의 깜짝 회동설이 꾸준히 흘러나오는 것도 트럼프 개인의 정치적 계산법과 맞닿아 있다.

 

이처럼 철저히 자신의 정치적 무대 장치로 미·북 쇼를 저울질하는 상대에게,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북한의 요구 조건을 대신 관철해 주며 협상의 문턱까지 낮춰줄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미·북 정상회담의 문만 열리면 한반도의 먹구름이 걷히고 영구적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무모한 환상은, 곱씹어 볼수록 대한민국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위험천만한 외통수 도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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