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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트럼프에 뒤통수 맞고도 ‘경의’...북핵 담판장에 한국 자리 있나
 
2026-08-25 13:27:16

Hansun issue & focus 9월호 


<트럼프에 뒤통수 맞고도 ‘경의’...북핵 담판장에 한국 자리 있나>

이용수 자유민주연구원 통일북한연구실 연구실장 /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최근 외교가를 가장 술렁이게 한 건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57천기누설도, 연내 김정은과 만나겠다는 폭탄선언도 아니었다. 트럼프가 한미연합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을 대폭 축소하자 그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한 이재명 대통령의 반응이었다. “한반도에서 적대와 대결을 넘어 평화를 만들기 위한 고심이 담긴 큰 결정이라며 올린 SNS 게시글이었다. 트럼프가 피스메이커가 되면 자신은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고도 했다. 미 조야에선 이 발언의 의도를 놓고 추측이 무성했다. 하나 확실한 건 UFS가 축소된 경위가 한국에 대한 배려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816일 전쟁부에 훈련 대폭 축소를 지시하며 한국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이란 문제에 협조를 요청했다가 이 대통령에게서 사양한다(No thanks)”는 답을 들었다고 했고, 미국이 한국을 지켜주는데 한국은 미국을 돕지 않는다는 불평도 했다. 악시오스가 한국을 트럼프의 보복 캠페인에 걸린 희생양으로 지목하는 등 미국 조야에서도 UFS 축소를 한국에 대한 징벌적 조치로 보는 기류가 역력했다.

 

3월 자유의 방패(FS)8UFS 같은 연례 연합훈련은 작전계획, 무기와 병력 운용, 지휘체계 조율 등을 위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을 준비한다. 올해 UFS817일부터 1011일간 진행할 예정이었다. 공들여 준비한 훈련이 개시 직전 트럼프의 돌발 지시로 큰 차질을 빚었다. 북한의 공격을 격퇴한 뒤 반격으로 넘어가는 후반부 연습이 통째로 사라졌고 야외 기동훈련도 대거 취소됐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서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 뒤통수 맞았다는 얘기다. 상대가 트럼프긴 하지만 정상적인 정부라면 우리가 동맹이 맞느냐고 따졌어야 할 중대 사안이다.


1. 빗발치는 경고음에도 "한미동맹 OK"


외교 상식에서 벗어난 이 대통령의 반응을 이해하려면 오늘날 민주당의 대북관에 큰 영향을 미친 운동권 세대의 머릿속부터 살펴야 한다. 이들은 연합훈련에 대한 북한의 두려움과 거부감에 공감한다. 이들에게 한미 관계의 근간이자 본질은 군사동맹이며 이것을 떠받치는 게 연합훈련이란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20218월 김여정이 연합훈련 취소를 요구하자 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 74명이 훈련 연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낸 적도 있다. 실제 문재인 정부 시절 한미연합훈련은 줄줄이 축소·중단됐다. 민주당 특유의 안보관이 트럼프의 천박한 동맹관과 결합한 결과였다.

 

이번 UFS 파행이 특히 심각한 것은 한미 간에 교감은커녕 오해와 불신이 누적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란 점에서다. 현 정부 출범 후 미측을 자극한 대표적 사례가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유엔군사령부의 충돌이다. 정 장관은 작년 말 안보실 인사의 DMZ 출입이 막히자 국가 체면을 거론하며 유엔사 공개 비판을 이어갔다. 민주당과 합세해 비군사 목적의 DMZ 출입 승인권을 통일부에 넘기는 ‘DMZ을 밀어붙였다. 유엔사가 정전협정 위반이라며 반발했고 급기야 사령관이 직접 안보의 정치화를 육성 경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유엔군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이 겸하고, 유엔사의 목소리는 워싱턴의 의중과 무관하지 않다. 조현 장관은 외교 수장으론 6년 만에 캠프 험프리스를 찾았다. 격화하는 갈등을 다독이려는 조치로 해석됐다. 불씨는 여전하다. UFS가 파행되기 직전엔 국방부와 유엔사가 경비·정전집행여단창설 문제로 진실 공방을 벌였다.

 

이게 다가 아니다. 내란 특검의 오산 미 공군기지 내 한국군 시설 압수수색 뒤 주한미군 부사령관 명의의 항의서한이 외교부로 날아들었다. 공정위가 쿠팡을 제재하자 백악관이 이재명 정부가 미국 기업을 표적 삼았다고 반발했다. 대만 유사시를 상정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확대에 대해 이 대통령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형 핵잠의 건조 방식을 놓고도 이견이 이어졌다. 관세 협상에서 약속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가 첫 삽도 뜨지 못한 데 대한 미측의 불만도 상당하다. 이번 UFS 파행을 트럼프의 일회성 변덕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사정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여당 외통위 간사는 방송에 나와 한미동맹은 굉장히 좋은 상태라고 했다.

 

2. 구경꾼신세 꿰뚫어 본 김여정

 

이 광경을 북한이 지켜보고 있다. 김여정이 820일 밤 발표한 담화의 제목은 그리도 즐겨하던 전쟁놀이를 못 하게 된 서울의 가긍한 처지였다. 김여정은 UFS 축소에 대해 상전에 대한 맹신에 빠져 설레발을 치던 한국 당국의 시대착오적인 망상이 초래한 응당한 참사라며 사상 처음 있는 변고라고 했다. 표현이 악의적이지만 참사’ ‘변고란 지적은 사태의 핵심을 찔렀다. “단 한 번의 합동군사연습 축소에 국가안보가 통채로 흔들리는 나라라고도 했다. 김여정의 조롱이 역설적으로 연합훈련의 중요성을 드러낸 셈이다. 대남 타격용 단거리 탄도미사일 10여 발을 동해로 난사한 뒤 나온 담화였다.

 

특히 김여정은 UFS 축소에 대해 사전 론의도 없이”, “쌍방간 조률도 없이”, “미 통수권자의 일방적인 지령”, “돌발사태같은 표현을 썼다. 한미동맹이 정상 작동하지 않은 정황들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경의발언에 대해선 앞에서는 낯간지러운 소리로 아첨하고 돌아앉아서는 자주국방을 운운한 리재명의 이중적 언행은 한국의 불안·초조한 모순심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도 했다. 이 대목이 이재명 정부에 가장 뼈아픈 지점일 것이다.

 

한국의 대북 존재감과 협상력은 상당 부분 한미동맹에 기대고 있다. 북한이 원하는 미북관계 정상화, 제재 해제, 체제 보장의 열쇠는 대부분 워싱턴이 쥐고 있고 미국의 정책 결정에 한국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반영돼 왔다. 과거 한미동맹이 철통같을 때 미국의 대북 메시지는 한마디로 서울을 찍고 워싱턴에 오라는 것이었다. 긴밀한 한미동맹 자체가 강력한 대북 레버리지였던 셈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중재자론’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남북관계 개선만큼이나 대미 외교에 공을 들인 것도 그 이치를 알았기 때문이다.

 

평양과 워싱턴이 일정 부분 인정했던 문 정부의 외교적 효용은 하노이 노딜 이후 급속히 감퇴했다. 문 정부가 제재 완화와 남북경협, 종전선언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미국과 이견을 노출한 탓이 컸다. 조국 당시 청와대 수석의 죽창가언급과 지소미아 파기’(종료 통보)를 비롯한 반일(反日) 몰이로 한미일 안보 공조가 휘청거린 게 결정타였다. 미 국무부가 이례적으로 강한 우려와 실망을 공개 표명했다. 동맹의 신뢰가 무너지자 한국의 대북 레버리지도 증발했다. 북한이 문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 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 조롱하며 남측과 다시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한 것이 그 무렵이다.

 

지금 상황이 문 정부 시절보다 낫다고 말하기 어렵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다. 윤석열-바이든 정부 시절 어렵사리 정상화된 한미관계는 정권 교체 1년 만에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을 공개 저격하며 연합훈련을 일방 축소할 정도로 훼손됐다. 물론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프 탓이 크다. 그래도 한미동맹의 속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골이 송연할 장면이다. 경의를 표한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의연한 척에 가까웠다.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했지만 현실은 구경꾼신세라는 불편한 상황을 애써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비쳤다.

 

3. 핵무장한 채 현대전 경험 축적한 북한군

 

얼마 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북한군 3~5만 명이 러시아에 추가 배치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202410월 최초 파병도 ()’에서 시작됐다. 젤렌스키가 1만 명 파병 얘기를 꺼낸 다음 날 국정원이 북한 특수부대의 러시아 이동을 확인했다. 이번 주장도 흘려들을 수 없다. 이미 1만 명 넘는 북한 병력이 실전을 경험했다. 6·25 전쟁 이후 70여 년 만이다. 파병에서 돌아온 장교, 부사관, 병사들의 생생한 전투 경험 자체가 막대한 군사적 자산이다. 한국은 월남전 세대가 야전을 떠난 지 오래다. 핵을 거머쥔 북한의 재래식 전투력 증강은 안보적으로 간과할 수 없다. 파병 규모가 커질수록 속도도 높아질 것이다.

 

북한은 첨단 공군력과 정밀타격, 정보감시정찰 등 재래식 전력의 질에서 한미를 따라잡기 어려웠다. 벌어지기만 하는 군사력 격차를 만회하려 택한 게 빈자(貧者)의 무기인 핵 개발이었다. 그런 북한이 이번 파병을 통해 드론·포병·미사일 운용능력과 최신 지상전 경험을 축적했다. 재래식 전력이 향상되면 핵의 효용은 훨씬 커진다. 핵 사용 문턱 아래에서 택할 수 있는 군사 카드가 그만큼 늘기 때문이다. 작년 한미안보협의회의(SCM)가 북러 협력을 통한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재래식 전력 현대화를 나란히 중대한 도전으로 명시한 이유가 있다.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의 고질적 경제난과 식량·유류 부족을 장기전 수행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거론하곤 했다. 상식도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북한의 포탄 공급과 파병 대가로 러시아는 석유·식량·광물을 제공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 경제는 20233.1%, 20243.7%, 20253.5%3년 연속 3%대 성장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작년 말까지 북한의 파병과 군수물자 수출 대가를 최대 144억 달러 규모로 추산했다. 적어도 유류·식량·외화 부족으로 전쟁을 오래 끌기 어렵다는 북한의 오래된 약점은 상당 부분 완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올해 UFS는 그런 상대를 겨냥해 설계된 것이었다.

 

이 훈련이 반토막 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전작권의 임기 내 환수를 정부 계획대로 차질 없이 추진하라고 했다(818일 을지 국무회의). 우리 국방비가 북한 GDP1.4배라며 우리 스스로를 지킬 역량이 차고 넘친다고도 했다. 전작권 전환은 돈의 문제만이 아님을 군사 전문가들은 안다. 관건은 한국군이 유사시 한미연합군을 지휘통제할 유무형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갖췄느냐다. 이것을 판단하고 검증하는 무대가 3FS8UFS 같은 연례 연합훈련이다. 정부는 문제없다지만 트럼프의 일방 축소 지시로 이 과정이 심각한 차질을 빚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군에 임기 내 환수를 주문하고, 다음 날엔 트럼프에게 경의를 표했다.

 

4. 훈련 파행에도 전작권 독촉, 지금이 그럴 땐가

 

이란전이 장기화하고 우크라이나·가자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트럼프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돌파구가 절실하다. 트럼프는 북한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며 김정은과 연내 만나겠다고 했다. 미북 핵 담판 가능성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물론 미국의 공식 대북정책은 여전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다. 하지만 핵 폐기를 거부하는 김정은과 가시적 성과를 원하는 트럼프가 막상 마주 앉을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 UFS 일방 축소 과정에서 나타난 서울 패싱이 향후 북핵 협상에서 되풀이되지 말란 법이 없다. 미 본토를 위협하는 ICBM만 제한하고 한국을 위협하는 나머지 핵은 용인하는 나쁜 거래의 가능성을 걱정하는 이유다. 미국의 핵우산과 확장억제 공약이 당장 휴짓조각이 되진 않겠지만 미국이 서울을 위해 LA를 희생할 수 있겠느냐는 실존적 의문은 갈수록 증폭될 것이다.

 

한국의 군 통수권자는 이런 상황을 막고 대한민국의 안위를 지켜야 할 헌법적 책무가 있다. 북한의 핵·재래식 위협이 동시에 커지는 상황에서 전작권 전환을 임기 내로 못 박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이번 UFS 축소는 앞으로 닥칠 안보 위기의 전조일 수 있다. 적어도 이런 심각한 사태에 경의를 표하며 여유를 부릴 때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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