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앤포커스 7월.pdf
Hansun issue & focus 7월호
1. 들어가면서
2025년 말 방영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이하 <김 부장>)는 50대 중년 가장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며 많은 화제를 모았다. 건실한 대기업에 몸담은 걸 인생의 대업으로 여기는 주인공은 업무 성과에서 뒤지고 사내 정치에서 밀려 지방 공장으로 좌천된다. 인력 감축을 목표로 한 회사는 그에게 희망퇴직을 압박하고, 결국 ‘김 부장’은 자신의 전부와 같았던 회사를 떠나 인생 이모작에 나서게 된다.
<김 부장>은 대기업 부장으로서의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오만한 태도를 보이던 ‘김 부장’이 회사에서 쫓겨난 뒤 진정한 자아와 행복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드라마는 일차원적이지만은 않아서 그가 사업에 실패하고 분양 사기를 당하는 내용도 함께 그려낸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퇴직을 앞둔, 혹은 언젠가 마주하게 될 중장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많은 논의를 일으켰다. 그중 핵심은 단연 정년 연장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은 2026년 6월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권에 즉각적인 정년 연장 법제화를 촉구했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가 검토 중인 걸로 알려진 단계적 정년 연장안에 소득 공백을 이유로 반대하는 한편, 법정 정년을 늘리면서 노조 동의 없이 임금 체계를 개편하는 취업규칙 특례 규정 설치에도 “노동조건 후퇴”라며 반대했다.
정년 연장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권에 있는 세대는 40대와 50대다. 이들은 노동조합의 주력 집단인 동시에 현 여권의 핵심 지지층이기도 하다. 인구수로도 60대와 함께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50대가 약 858만 명(16.64%)으로 가장 많고, 40대도 약 762만 명(14.77%)으로 60대(약 798만 명, 15.46%) 다음으로 많다. 반면 30대는 약 703만 명으로 전체 13.64%를 차지할 뿐이다. 20대는 더 적어 11.41%(약 588만 명)에 그친다. 유권자 수에 따른 정치적 유불리를 고려하면, 현재의 정년 연장 논의는 노동계가 요구하는 대로 흐를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럴수록 2030을 포함한 미래세대의 목소리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2. 정년 연장의 핵심과 쟁점
한국에서 ‘법적 정년 60세’라는 기준이 처음 등장한 건 1991년 고령자고용촉진법이 제정되면서다. 민주화 이후 노동자들의 권익이 증진되고 산업화를 일군 세대의 은퇴가 가시화하며 노년 진입 시기까지의 고용 안정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도입 초기 정년은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정하는 경우 그 정년이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권고 조항으로 강제성이 없었다. 이에 정부는 2013년 법 개정을 통해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하도록 의무화했다.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이 적용 대상이었다.
최근 정년 연장 논의가 다시 뜨거워진 건 제도는 그대로인데 개인의 기대수명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년이 처음 도입되던 시기인 1990년만 해도 71.7세였던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24년 83.7세로 증가했다. 34년 만에 12세가 늘어난 것이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전의 공백, 즉 ‘소득 크레바스’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1952년 이전 출생자는 60세부터 연금을 받는다. 그러나 계속된 연금 개혁 과정에서 수급 연령이 점진적으로 높아졌다. 1969년 출생자의 경우 65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60세에 은퇴한 뒤 65세에 연금을 받기 전까지 기간 동안 소득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게 현재 정년 연장 찬성파의 핵심 주장이다. 실제로 일본·독일 등도 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정년을 연동시켜 소득 공백을 줄이는 방식으로 정년을 다루고 있다. 특히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2025년 4월 희망 근로자에 대한 65세 고용이 전면 의무화되었다. 현재는 정년 70세를 향해 나아가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등 양당에서 논의되는 정년 연장안은 크게 다르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정년연장 특별위원회’에서는 현재 정년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정년 연장 대상자의 근로 시간 조정과 임금 체계 개편을 위해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국민의힘은 의원마다 개별 법안으로 대응 중인 상황인데, 대체로 일률적 65세 인상에 반대하는 동시에 사업주 부담을 덜기 위해 임금을 차등 지급하거나 퇴직 후 재고용하는 방안 등을 담고 있다. 입장이 엇갈리는 건 경영계와 노동계다. 경영계는 법적 정년을 연장하기보다 퇴직 후 재고용을 중심으로 하는 유연한 방식을 선호한다. 반면 노동계는 앞서 언급한 대로 65세로의 정년 연장이 조속히 이뤄져야 하며, 현재의 노동조건을 해쳐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3. 정년 연장에 관한 여론
정년 연장은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 구도로 다뤄지는 측면이 있다. 정년 연장에 따른 신규 채용 위축 우려가 거듭 제기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론조사만 놓고 봤을 때 청년층에서도 뚜렷한 반대가 표출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한국갤럽은 2025년 11월 2주 실시한 정기 여론조사에서 정년 연장과 관련한 내용을 물었다. 65세로 법적 정년을 상향해야 한다는 데에 18~29세의 71%가 찬성했고 21%가 반대했다. 30대는 찬성 77%, 반대 15%였다. 40대는 찬성 79%, 반대 17%. 50대는 찬성 69%대 반대 26%, 60대는 찬성 71%대 반대 23%였다. 현직에 있는 세대의 찬성 강도가 높았지만, 그렇다고 청년층의 반대가 크다고 보긴 어려웠다.
자신의 취업에 불리한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청년층에서 정년 연장 찬성 여론이 높게 나타나는 건 한 가정 내에서도 여러 이해관계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청년층에게 정년 연장은 자신의 취업에 장애물로 작용하지만, 반대로 부모님의 근로기간을 늘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기댓값은 후자가 더 크다. 누군가의 ‘60세 정년퇴직’으로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불확실한 보상이다. 반면 부모님의 정년 연장으로 얻게 될 가계 소득은 확실한 보상이다. 따라서 정년 연장은 단순히 세대 간 이해관계의 충돌로 보기보다, 세대를 포함한 일자리 구조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4. 정년 연장의 문제점
① 대기업·공공기관 중심의 어젠다
현재 노동계가 요구하고 있는 정년 연장안의 문제점은, 정년 연장의 수혜가 대기업·공공기관의 정규직 근로자들에게만 돌아간다는 점이다. 이미 사업장 규모에 따라 정년 시행 여부가 크게 나뉘는 실정이다. 고용노동부의 2024년 6월 조사에서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사업장은 전체의 21.8%에 불과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큰데, 3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 95.3%가 정년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5인 미만 영세기업은 12.1%에 그치는 걸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에선 정년 자체가 의미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제도의 유무와 상관없이 정년까지 일하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정규직을 기준으로 2024년 300인 이상 사업체의 평균 근속연수는 남성이 10.9년, 여성이 8.9년이었다. 하지만 5~9인이 일하는 소규모 사업체는 남성이 6.3년, 여성이 5.3년이었다. 제조업 일자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청년들이 기피하는 업종의 경우 법적 정년을 훌쩍 넘긴 중·노년층이 없으면 구인난으로 폐업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조선·건설 업체 등은 60세 정년을 넘긴 숙련공들을 재고용하는 방식으로 인력을 유지하고 있다. 요컨대 대기업·공공기관 등 일부 ‘질 좋은 일자리’를 제외하면 정년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인 셈이다.
② 청년 고용 축소 심화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것에 반대하는 주장의 핵심은 청년 고용 악화다. 한국은 많은 기업이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을 높이는 연공서열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2025년 4월 발간한 ‘BOK 이슈노트-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에 따르면, 우리나라 30년 차 직장인의 임금은 1년 차 신입보다 약 3.4배 높다. 유럽연합(EU)의 평균은 1.7배이며, 우리보다 임금 연공성이 강하다고 알려진 일본의 2.5배보다도 높은 수치다. 2022년 11월 챗GPT가 출시된 이후 일반 사무직은 물론 개발자 직군에서도 신규 채용이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인력의 정년이 연장되면 새로운 인력에 대한 고용 여력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고용이 대단히 경직돼 있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번 고용한 사람은 쉽게 내보낼 수 없는데, 거기에 노동계의 요구대로 임금 삭감 없이 정년을 연장하게 된다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크게 늘 수밖에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업이 노동력을 AI로 대체하도록 강제하는 동인으로 작용해 청년 고용은 더욱 위축된다는 점이다.
5. 대안: ‘정년 보장’이 아닌 ‘연령에 따른 고용 차별 폐지’에 초점 맞춰야
2025년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개혁 때와 달리, 정년 연장에 관해선 청년층에서도 뚜렷한 반대가 나타나지 않는다. 2020년부터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래 일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청년층에서도 공유되고 있기 때문인 걸로 판단된다. 실제로 세대 전반의 노동 시간이 길어지는 건 청년들에게 나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잠재성장률 하락을 방어할 수 있고, 국민연금·건강보험 등에서 미래 세대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노동계가 요구하고 있는 형태의, 임금 구조 개혁을 동반하지 않는 정년 연장은 특정 세대·소수 일자리만을 위한 특혜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아직 논의 단계라 여론이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있지만, ‘임금 삭감 없는 정년 연장’이 도입되면 청년층에서도 반발 여론이 확산할 걸로 예상된다. 2020년대 들어 대기업 공채가 크게 줄어든 상태에서 정년 연장까지 더해지면 청년층이 직면한 취업난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정년 연장의 핵심은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이전의 소득 공백을 메우자는 것이다. 그 취지를 생각하면 오히려 대기업·공공기관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적용될 정년 연장보다 더 큰 틀에서 대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다수 해외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법적 정년이 없는 미국은 고령 근로자의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1986년 연령차별금지법을 도입했다. 단순히 정년을 늘리기보다 연령에 따른 고용 차별을 폐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미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20%를 넘나든다. 70대가 되어서도 일하는 사례가 흔하다. 싱가포르는 2012년 퇴직 및 재고용법을 시행해 최대 68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기존 임금 체계를 유지하지 않아도 되게 해 사업주의 부담을 줄였다. 논쟁의 초점이 ‘정년 연장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맞춰지면 기성세대는 물론 청년층의 동의를 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60세 이후에도 일할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이며, 그로 인한 기업의 부담은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게 청년 세대를 설득하는 데 더 효과적인 방편인 걸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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